성과 속 한길그레이트북스 30
M.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옮김 / 한길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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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사회가 있다. 성스러운 사회와 세속적인 사회. 전자는 외계에 대한 경외감으로 충만한 고대 원시사회를 가리키고, 후자는 주술적 마인드 대신 과학과 합리정신이 지배적인 가치를 이루는 문명화된 근대 이후를 말한다. 엘리아데는 이 책에서 고대 여러 지역의 원시사회 문화 연구를 토대로 성스러운 사회의 원초적 세계관을 조망하고 있다.  

2. 원시사회 사람들이 미개하고 무지하다는 생각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근대적 인식이며, 그것은 사실 굉장히 폭력적이기도 한 관념이다. 영성적인 방면에 있어서 현대인은 원시사회 사람들에 비해 명백히 퇴화된 측면이 있다. 원시인들의 세계관은 현대인의 그것보다 훨씬 종교적이었으며 그만큼 신과 근접해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의 현현인 자연에 유기적으로 귀속결합되어 있었으며, 자연과의 미메시스가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그들은 대지와 나무와 연못과 바람과 소통할 줄 알았다. 외계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차 있는 그들에게 있어 '초자연적 영성체험' 혹은 '하이데거식 존재의 드러남'이란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으로 여기는 많은 것들이 그들에게는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3. 이 책이 말하는 '성스러운 사회'는 '셈족 문화권'이 아니라 '인도 게르만 문화권' 이야기에 해당한다. 셈족 문화권이 인도게르만 문화권에 비해 보다 진보된 양태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셈족 문화권에서 잉태된 유대교의 특성을 살펴보면, 확실히 기존의 원시종교와는 차별화된 몇가지 양상들을 띠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인류보편의 전통적 상징들이 유대교의 교리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종교 역시 원시종교와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4. 예전에 바넷 뉴먼의 white zip이 천상계와 지상계를 연결하는 신단수로서의 상징을 갖는다는 미술평론을 읽고 이것이야말로 아전인수식 평론의 결정판이 아닌가 하여 실소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의 비웃음이 전적으로 나의 무지의 소치였다는 게 자명해졌다. 머쓱하다. 결코 엉터리 평론이 아니었다. <성과 속>을 읽어보면 '성스러운 사회'에서 '기둥'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상당하다. 즉, 기둥=세계수=신단수=세계 창건의 고정점(중심을 부여하여 카오스를 코스모스로 변환시키는 결정적 존재)=초월적 세계와의 교섭을 가능하게 하는 제의적 상징물(하나의 존재양식에서 다른 존재양식으로 가는 존재론적 이행을 가능하게 함). 그 zip이 보통 zip이 아니었던 것.  

5. 생명의 끝없는 출현이라는 신비는 우주의 리드미컬한 갱생과 결부되어 있다. 이 때문에 우주는 거대한 나무의 형태로 상상된다. 코스모스의 존재양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이 갖는 끝없는 갱생의 능력은 나무의 생명에 의하여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게르만 신화의 이그드라실과, 메소포타미아의 생명의 나무, 아시아 지역 신화에 등장하는 불멸의 나무, 구약성서에 나오는 지혜의 나무, 메소포타미아, 인도, 이란 신화에 등장하는 청춘의 나무 등등(p.133). 우주를 상징하는 거대 수목은 현대에 와서도 예술 작품의 소재로 꾸준히 차용되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레인트리 연작소설을 썼고, 클림트는 생명의 나무를 그렸으며, 가깝게는 우리나라 사진작가들의 단골 메뉴야말로 가지가 만발한 고목인 것이다.  

6. 거룩함과 신성함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세기를 초월하여 유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끝내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규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끊임없이 잃어버린 태곳적 가치에 천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시 인류의 생물학적 후예로서 갖는 본능적 향수인가. 유사 이래 최고의 '속'을 구가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기형성을 극복하기 위한 반동적 움직임일까. 알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초-합리적, 초-이성적, 초-과학적 가치들이 현재 내게 대단히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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