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영국사 - 아서 왕에서 엘리자베스 2세까지 이야기 역사 9
김현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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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프랑스와 같은 대규모 유혈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까닭은 혁명의 과정이 온건하고 장기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 덕분에 그 사이에 여러 완충지대들이 생겨났기 때문인 듯하다. 영국의 민주주의 발달사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야만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영국의 경우도 그렇고 확실히 유럽 국가에서 군주의 입지는 동양권 전제국가에 비할 바가 못되는 것 같다. 군주가 결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없고 끊임없이 제후들과 상호 견제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영국의 민주주의가 자연스레 태동할 수 있었다면, 조선 후기 과열되었던 당파 싸움이 그토록 소모적이기만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당쟁은 무조건 국론분열을 초래하는 정치악이며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는 곧 나라의 기틀이 다져지는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식의 논조로 일관했던 국사 교과서의 필자들은 꽤나 보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영국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참혹한 국론분열과 내전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인데.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 영국'왕실'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찬탄을 거듭하며 영국 왕실의 역사를 훑고 나니 뭔가 가슴 벅찬 소회가 밀려온다. 왕실이 점차적으로 치국의 전면에서 물러나 의회와 국민 사이를 중재하는 완충 역할을 담당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영국의 전통과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나는 자연스런 일련의 과정들은, 그야말로 민주주의 초석을 세운 국가답게 지극히 이상적이다. 영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근대 정치사는 참으로 내세울 것이 없구나.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달사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개도국의 전형 아닌가.

영국에서 정부가 노동당을 승인한 것이 조지 5세가 집권했던 20세기 초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년 전이다. 출범한지 세 돌을 갓 넘은 민노당마저 사분오열의 위기에 봉착한 한국의 현 정치 상황은 영국의 백년 전 수준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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