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설, 지난 일요일에 술자리 왔으면 재밌었을텐데.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었거든. 그날 술자리 대화의 결론은 <불가능한 꿈을 지닌 리얼리스트가 되자>는 체의 명언을 곱씹는 것이었지. 어때, 퍽 재미났겠지? 어쨌거나 퇴장을 무릅쓴 장문의 빽태클 고맙다. 너의 생각에 대해 내 의견을 몇 자 적어본다.

 

근거 1에 대하여

나는 특식을 부정하지 않아. 다만 특식이 주식을 압도하는 사태에 대하여 조소하는 것이지. 주식도 못 챙겨먹는 주제에 특식의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코미디가 아니겠니? 그리고 나는 너와 달리 삶에서 그다지 낭만을 기대하지도 않아. 오히려 낭만을 경계하는 편이지. 너는 또 꼬였다고 말할테지만.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계속 꼬일 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꼬였다 풀리기를 반복할거야. 그렇게 죽을 때까지 반복하면서 나날의 이력을 온통 매듭의 흉터로 문신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웅덩이처럼 패인 흉터마다 그 시절의 실존적 고민이 고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근거 2에 대하여

내가 정의한 '소풍'의 개념이 인간의 꿈과 실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너의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도움의 손길이 '결정타'로서 발휘되는 순간이 과연 앞으로 내 인생에서 몇 번이나 찾아올까. 적어도 내 경우엔, 인문학 위주의 독서와 사색이라는 것은 투자 시간 대비 효용 면에서 볼때 굉장히 사치스런 활동인 것 같다. 그냥 요즘엔 그런 결론을 내려가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몰스킨노트를 불살라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누군가 추궁한다면, 이건 정말 진지한 대답인데, 아마도 내가 태생적으로 허영심이 많고 사치스런 인간이기 때문인 것 같다.

 

물음에 대하여

야 완전 이 자식 막간다 ㅋㅋ 고 생각했음. 이 자식아 내가 뭘하냐고? 나는 노동을 한다. 노동이란 건 정말 치욕적이야. 왜냐하면 노동을 위해서는 자아를 말소시켜야 하거든. 내 경우에 직장생활에서 얻는 가장 큰 스트레스는 상사 때문도 아니고 업무 때문도 아니야. 나는 그저 자아를 말소시키는 작업이 너무나 힘들어. 하지만 나는 그걸 아주 열심히 하지. 돈을 벌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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