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밖의 사회는 어디까지나 '직업'을 통해 자기를 증명하는 구조로 되어있고, 직업을 갖기 위해 우리 대부분은 자본가에게 자신의 정신과 신체를 고스란히 제공해야 하는 산업프롤레타리아의 신분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아무래도 '소풍'보다는 '전투'를 떠나야 할 상황인 것 같은데요. 솔직히 우리는 누구나 소풍을 흠모하면서도 결국은 전투에 임할 수밖에 없는 불운한 처지가 아닐까요?

 

생애가 소풍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겠죠. 관념의 유희를 즐기며 노동과 유리된 삶을 살았던 그리스 시대 사상가들이나 아니면, 자본주의 시장경제 구조에서 이탈한, 어떤 면에서는 낙오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천상병 시인같은 사람들이나. 소풍을 찬미하는 오빠의 글이 저에게는 자본사회의 투쟁적 생존구조에 정면돌파로 맞서겠다는 지사적 선언인지, 아니면 소풍 가서 아직 비를 맞아본 적이 없던지, 그도 아니면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도태되려는 반사회진화론적 계획인지 셋 중에 하나로 읽힐 뿐이네요.

 

며칠 전에 저는 제 나름의 '소풍놀이' 중 하나였던 몰스킨 노트를 책장 구석으로 밀쳐버렸어요. 사상, 역사, 철학, 문학, 사회 등 내가 기웃거린 각 방면의 책에 대한 요약 정리와 생각들을 적어놓은 그 노트의 존재가 나의 현실을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불온서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예요. 만약 저에게 있어 '소풍'이 '관념의 탐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헤세가 그랬듯이 관념은 오로지 위기의 순간에만 간혹 써먹을 수 있을 뿐이죠.

 

육지에서 사는 인간은 굳이 영법(泳法)을 배울 필요가 없어요. 오로지 광막한 평야만 펼쳐져 있는 육지에서 생활하는 인간이 영법을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아둔하고 사치스런 일일까요. 삶에 실질적인 보탬이 되는 활동이란, 천재일우의 사태를 대비하여 영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시간에 어제 배운 기마술을 한 번이라도 더 복습하는게 아닐까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자 몰스킨 노트가 한없이 경멸스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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