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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발달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5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7월
평점 :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 늦가을을 제일로 / 숨겨놓은 곳은 / 늦가을 빈 원두막 / 살아도 살아갈 곳은 / 늦가을 빈 원두막 / 과일을 다 가져가고 / 비로소 그 다음 /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 혼자서 / 다 바라보는 / 저곳이 / 영리가 사는 곳 / 살아도 못 살아본 곳은 / 늦가을 빈 원두막 /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못 살았지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전문
시인은, 과일 떨어지고 난 빈 밭은 아직 제대로 된 늦가을이 아니라고 말한다. 과일 다 떨어진 다음에, 그 다음에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자잘한 잎사귀들마저 하나 둘 지기 시작하고 종내는 제일 마지막으로 남은 잎사귀마저 스러지는 것, 그게 진짜 늦가을이라고 한다. 시인에게 있어 빈 원두막은 그런 광경을 혼자서 오롯이 다 바라볼 수 있는 장소이고, 그래서 늦가을이라는 계절을 가장 진정으로 보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원두막은 '영리'가 사는 곳이다.
시를 읽다가 아무래도 시인이 '영리'라는 시어를 일부러 (한자어로 쓰지 않고) 한글로 남겨놓아서 뜻을 모호하게 처리해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리'의 한자어를 찾아봤는데 웬걸, 날카로운 의혹이 무색하게도 그냥 '영리할 영'에 '영리할 리'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영리할 영'이라는 한자가 영리하다는 뜻과 함께 '지혜롭다, 불쌍히 여기다, 가엾게 여기다, 어여삐 여기다, 귀여워하다, 사랑하다'의 뜻도 있더라. 옛날엔 '가엾게 여길 줄 아는 것'이 '영리'한 거였구나. 아, 그렇구나.
늦가을 지나기 전에 빈 원두막에 가고 싶다. 단 하루라도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바라보고 나서 아주 조금은 영리해져 돌아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