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임은 우리 약국의 전산담당 직원이다.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 있었던 당시, 이회창이 국무총리냐고 물어 약국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그녀는 이태원 클럽에 가는 것이 취미이다. 영어 이름이 비키라고 하는데 아닌게아니라 외국인 친구들도 상당하다. 자투리 시간마다 우선순위 기초영단어를 펼쳐들고 있는 김주임의 옆모습은 어찌나 진지한지.

김주임은 친절하다. 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도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깍듯하고 공손하다. 그녀를 오래도록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처방전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에 설명을 거듭하는 그녀의 옆모습에서 직장생활의 번뇌 따위는 이미 초탈해버린 선각자의 아우라마저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말실수라든가 하는 예기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단서들을 조합해볼 때 '자연인 김주임'은 결코 도승이 아니며 오히려 탕아라 해도 시원찮을 인물이다. 약국에서 그녀는 한껏 위장하고 있지만 기실 안하무인의 행동거지와 저돌적인 말본새야말로 김주임의 실체인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조금은 설워진다. 김주임이 별안간 야생성을 잃어버린 서커스단 소속의 맹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월급을 위해 함양한 인성이라는 것은 어쩐지 서글픈 구석이 있다. 은행 창구 직원의 상냥함이라든지 백화점 안내 데스크 여직원의 화사한 미소라든지, 여하튼 그런 종류의 친절은 항용 어떤 알 수 없는 비애감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가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숭고한, 그런 알싸한 비애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본연의 자기를 말살해가며 고객만족에 전력투구하는 이 시대의 투철한 서비스 정신이 종종 슬프다. 불타는 훌라후프를 뛰어넘는 태국서커스단의 날렵한 호랑이만큼이나.      

나는 김주임이 제멋대로 자란 쭉정이처럼 굴 때가 제일 좋다. 주눅 들지 않고 성질 낼 때가 좋다. 그럴 때가 가장 그녀답고, 그녀다우므로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우니 아름답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태원 클럽의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모글리처럼 괴성을 지르고 있을 그녀는 더더욱 아름다우리라. 외국인 친구들한테서 얻어들은 슬랭과 우선순위 기초영단어에서 밑줄 그은 응용 문장들이 그녀의 입속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올 때 그녀의 아름다움은 절정일 테지.  

아름답다는 건 가장 자기다울 때를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생명체가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핵심적인 무언가를 최대한 표출할 때, 그때야말로 그 생명체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그러니 맹수는 포효해야 제맛이고, 김주임은 남의 눈치 보지 않는 당찬 발랄함이 제맛이다. 직장생활이 때때로 우리에게 불타는 훌라후프를 뛰어넘으라고 강요할 때마다 우리는 집요하게 아프리카 초원을 상기해야 한다. 아니면, 집이 파주에 있는데도 발바닥이 닳도록 이태원을 들락거리는 어느 약국 전산직원의 정신을 기리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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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8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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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7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