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과학 인문학 - 유럽 지적 담론의 지형
이종흡 지음 / 지영사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오늘날의 주된 과학사 연구가 논리실증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한 '휘그적 역사관'에 기반해 있다고 말한다. 휘그식 관점에서 보면 과학에서 이론의 계승 과정은 항상 합리적이고 의도적인 정신에 의해 추진되어왔기 때문에 결코 비합리적일 수 없으며, 과학 이론은 언제나 경험세계를 더욱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진보적 방향으로 나아간다. 또한 이러한 진보성은 이론 선택의 주체인 과학자의 합리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 인식론은 인식의 시초 단계인 가설의 설정 과정이 대단히 비과학적이라는 자기모순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가설은 논리가 아니라 직관이다. 포퍼는 가설의 형성이 우리 정신의 자유로운 창조물이요, 거의 시적 직관의, 즉 자연법칙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의 결과라고 말한다. 특정 가설을 정립하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창조적 상상력의 작용으로서 논리적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난점 때문에 논리실증주의 인식론은 착안(가설) 자체보다 착안에서 비롯한 절차(방법)나 결과(이론)에 관심을 둔다. 말하기 곤란한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회피해 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 지점에서 논리실증주의적 인식론에 근거한 휘그적 역사관 또한 모순에 빠지게 된다. 과학사에 나타나는 '단절'(패러다임의 전환)이 그것이다. 휘그식 과학사는 자신의 모순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클리셰를 등장시킨다. 즉 과학사가 일순간 도약하는 껄끄러운 순간마다 '천재'들을 만들어 해명하는 것이다.

비학 연구자들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순간을 느닷없이 쏟아져나온 무수한 천재들의 업적으로 돌리는 휘그식 과학사를 지양한다. 그들은 과학사에 있어서 전환과 도약이 개인의 천재적 재능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상황적인 담론에 의해서 서서히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과학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서 뉴턴 같은 천재들에 관심을 두기보다 자연마술, 점성술, 연금술, 헤르메티시즘 등 근대과학이 쓰레기로 치부했던 비학을 하나의 담론으로서 탐구한다.

 

그러나 중세에서 근대로의 도약을 설명하기 위해 비과학적 담론을 끌어들이려는 비학연구자들의 시도가 과연 휘그식 역사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또한 근본적으로는 논리실증주의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려는 대단히 휘그적인 태도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들 역시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한 시기에 발견되는 인식론적 단절을 매끄럽게 봉합하기 위해, 즉 '천재론'보다 좀 더 수긍할 만한 논리적 절차와 과정과 맥락을 찾기 위해 비학이라는 담론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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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3-04-09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 절판되어서 너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