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 보면 늘 애잔한 덕수궁. 이미 많은 궁역과 전각들이 소실되고 훼철되었을 뿐더러 남아있는 부분마저 건축물들의 양식과 배치가 중구난방이다. 이 의도치 않게 포스트모던한 광경이란. 당대 서구에서 유행했거나 유명했던 온갖 위엄있고 화려해 보이는 건축 양식을 맥락도 조화도 없이 이것저것 끌어다가 흉내내 놓았다고밖에는. 통일성도, 일관성도, 철학과 가치를 보여주는 조화로운 배치에의 고려 같은 것도, 자기다움에 대한 성찰이라든가 확신 같은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건 뭐, 오백 년 조선 왕조 멸망 직전의 카오스적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격변하는 국제 사회에서 어떻게든 낙오되지 않으려는 그 불안 강박이 건축적 의지로 드러나니 차라리 애잔하다. 덕수궁은 경복궁과도 창덕궁과도 다르다. 자긍심과 위용이 당당하게 흘러넘치지도 않고, 안락하고도 건실한 여유와 안정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아무리 그런 멋을 연출해 보려 한들 이곳에 어쩔 수 없이 감돌고 있는 것은 자기 의심과 불안 강박이다. 존재론적 분열과 혼돈 속에서 사면초가의 국면을 헤쳐나가야 했던 그 시절의 마음이 이곳에 올 때마다 아리게 전해져와 걷다 보면 궐 안 어느 차디찬 담벼락이라도 한 번씩 어루만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