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asy Street: The Anxieties of Affluence (Hardcover)
Rachel Sherman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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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거주 부자 55인과의 심층 면담을 통해 미국 부유층의 공통된 심리를 들여다 본다. 베블런이나 부르디외와 차별되는 이 책의 특장은, 전자가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그러니까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자기 가치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본다면, 후자는 보다 내면적인 차원에서 그와 같은 과정을 조망한다는 점이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것은 우월한 지위를 향해 혹은 구별짓기를 위해 타인과의 경쟁적 투쟁에 목숨 건 부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특권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으로 믿는) 도덕적 가치를 고수하기 위해 내적으로 고군분투하는, 아울러 거기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모순으로 인해 항시적으로 불편한 딜레마를 겪고 있는 혹은 혼란스런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미국 부자들의 복잡다단한 내면 풍경이다. 이 책의 제목이 'uneasy' street인 까닭이다.


누리는 특권을 합당한 것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부자들이 표방하는 도덕적 가치란 무엇인가. 도덕적으로 어떤 면을 준수한다고 자부하기에 그들은 자신이 부자로 사는 것이 옳다고 스스로 믿는가. 인터뷰 과정에서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good people"임을 피력한다. 굿피플의 요건은 크게 세 가지로, 첫 번째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으며, 노동에 중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자급자족(자생자활), 생산성, 실력주의를 미덕으로 삼는 반면 방만하고 게으른 태도, 의존성은 비난한다.

굿피플이란 검소하고 신중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인터뷰이들은 청교도 윤리에 어긋나는 과시적이고 물질적이고 낭비벽 있는 부자들과 자신을 구분하면서 그런 이들에 비하면 자신은 부자로서 entitled 되어 있지 않은, 평범하고 견실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상의 덕목들은 원래 중산층 계급의 것으로서, 이와 같이 하향화된 자기 인식 프레임은 (본의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부를 독점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심정적 불편함을 상쇄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자기 규정과 실제 현실 간의 괴리는 부득이 모순을 자아낼 소지를 안게 된다.

굿피플의 마지막 요건은 "awareness" 즉 사회의식에 관한 것이다. 기부 활동으로 대표되는,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한 이들의 지속적인 노력은 여기서 비롯한다. 그런데 기부라는 행위에는 자신이 누리는 사회적 특권에 대한 인정과 감사가 전제되어 있는 바, ‘평범한 사람’임을 천명하는 앞의 요건들과 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 그래서 기부를 하면서도 자신이 부자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는 이들이 겪는 여러 딜레마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으로는 기부를 한다는 사실, 그만큼 내가 계급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적인 갈등과 고민을 겪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도덕적 자기 회유, 자기 달래기(moral appeasement to self)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기부 행위가 자기정당화와 자기위안을 위한 하나의 절차화된 의식적 활동이 되는 것.

사회의식을 지니는 것은 타인과의 교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부가 부각되지 않도록 경제적 격차를 환기시키는 주제를 가급적 삼가고, 계층에 상관없이 모두의 인격을 존중하며 예의를 갖추어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미덕으로 중시된다. (이는 자신이 결코 부자로서 entitled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계급 격차에 대한 인식'이 도리어 '계급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행동'을 이끌어냄으로써 사회는 평등한 것으로 간주 내지 가장된다. 계급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남이 나를 대해주길 바라는 식으로 나도 남을 대한다는 기독교적 골든룰은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에 엄존하며 사회적 갈등의 핵심을 구성하는 계급 격차를 (겸손하고 사려깊게) 지워버리는 효과를 낳는다.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며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규정하고, 이러한 척도에서 벗어난 부자야말로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몰상식한 진짜 부자(?)라고 여기는 것- 저자는 부자를 선한 종류와 악한 종류로 양분하고 자신을 전자에 귀속시키며 후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런 사고가 부의 편중 자체를 용인함으로써 부의 재분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차단해버리는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가령, '착한 부자' 역할을 맡기 위해서는 논리를 완성하는 상보적 쌍으로서 반드시 'suffering others'가 필요하다. 이 책의 어느 인터뷰이는 good citizenship을 발휘하는 착한 부자로서 자기 자신을 포지셔닝하기 위해 도리어 경제적 약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본말이 전도된 듯한 발언을 흘리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귀감이 되는 '옳은 부자' 개인의 사례가 관심을 끌수록 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도외시된다.    

이 책은 사회의 최상류층에도 적빈계층이 겪는 심리적 스트레스 못지 않은, 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복잡한 심사가 존재함을 보여주면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격언에 따라 이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 결부시켜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단순히 관음증적 차원에서 부유층의 경험과 관점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미디어의 선정적인 조명에 직면하여 그들을 "humanize"하려는 것도 아니라면서, '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도덕적으로 옳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개인의 내면에 구체적으로 어떤 풍경을 조성하는지 살펴보고자 했음을 강조한다. 미국의 부유층이 "legitimately privileged"로서의 자신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것. 이러한 심리적 기제는 사람들의 상식을 구성하고 나아가 부의 사회적 불균형을 온당한 것으로 용인하며 자원의 불균등한 분배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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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24-05-17 0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집필 의도와는 어긋나게도 순전히 말초적인 호기심으로 집어든 책이었는데, 가정 경제 규모는 달라도 심중은 비슷하구나 싶고 그다지 의미있는 연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실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고 느껴져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