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우리 선희
홍상수 감독, 정재영 외 출연 / 디에스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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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근래(라고는 하지만 개봉된 지가 벌써 십 년 전이다) 홍상수 영화 중 제일 재밌게 봄. 마치 여러 기표들 사이를 이리저리 부유하며 일시적인 결합과 미끄러짐을 반복하는 기의처럼- 긴 잠적 끝에 갑자기 나타난 '우리 선희'는 세 남자들을 가뿐하고 자유롭게 때로는 전략적으로 오가면서 그 와중에 제 실속은 실속대로 차리고 (이 점이 매우 인상적인데 그러니까 그녀는 히스테리적인 주체가 아닌 것) 다시금 표표히 떠나버린다.

세 남자들에게 선희의 이미지는 불충분하게 포착되지만(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보게 되는 선희의 이미지는 또 다르기 때문에) 이 불충분한 혹은 부정확한 명명은 재미있게도 남자들 사이에서 (중구난방이 아닌) 하나의 완벽한 합의를 이룬다. 기적에 가까운 이 인식론적 합의는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이 영화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이 하는 말을 제가 한 말인 양 그대로 떠드는 사회적 인간 특유의 재주가 (역설적이게도 말을 돌게 만드는 윤활유가 됨으로써) 이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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