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1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시리즈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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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주억이며 읽긴 했지만 몇 가지 의구심도 남는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동안 세계관의 변천이 철학적 통합 경향(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 실재론, 합리론 등의 관념론적 신념)과 해체 경향(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론, 유명론, 경험론 등의 유물론적 회의주의)의 진자 운동에 의한다는 전제 하에 각 시대정신의 반영으로서의 예술사를 조망하고 있는데, 이렇게 선제적으로 설정하는 프레임이 확고할수록 거기서 벗어나는 사례들은 쉽게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폄하되거나 아류 내지 부수물 정도로 간과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통시적인 고찰을 위해서는 어떤 기준으로든 선별과 배제가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이론을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부득이 확증편향이나 무리한 꿰맞추기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은 아닌지.

흡사 밤하늘에 별자리를 그리듯 환하고 또렷한 맥락을 짚어낸다는 것이 이 책의 독보적인 안목과 장기임에는 틀림없겠으나 한편으로 이런 식의 환원주의적 접근은 분명 어떤 맹점과 한계를 노정하고 있을 것만 같다. 저자의 표현을 이 책에 다시 돌려주자면 이 또한 '횡포에 의해 얻어지는 기하학적 형상'(451)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상은 관점에 따라 전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가령 16세기를 르네상스로 17~18세기를 고전주의 시대로 19세기 칸트 등장 이후를 근대로 구분하고 각각을 서로 완전히 단절된 인식론적 지층으로 파악하는 푸코의 시대 구분을 따르게 되면 푸코가 포착하는 각 시대의 독자적 인식 구조에 의해 예술사의 별자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중세와 르네상스가 실재론이라는 인식틀을 공유했다면 이후 등장하는 매너리즘은 단지 반동적 변이나 일탈의 수준을 넘어서 (지동설, 마키아벨리즘, 종교개혁을 추인하는 유명론-예정설 신앙과 함께) 이전의 르네상스와는 인식론적 측면에 있어서 단절과 전환이라 할 만한 질적 차이를 갖는다는 것,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중세와 근대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적 시기로 봐야 하고 매너리즘은 내용분열 혹은 내용부재의(허울에 불과한 내용의) 형식주의라는 측면에서 이행기에 해당하며 기계론적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근대의 본격적인 시작은 사실상 사물에 외재하는 동적 메커니즘을 포착하게 되는 케플러와 데카르트 그리고 바로크의 등장부터라는 얘기,

북유럽 르네상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각각 중세말의 경험론적 세계관과 근세초의 인본주의적 관념론의 반영으로 보면서 북유럽에서는 한층 진보한 중세는 있었으되 인간의 지성이 여전히 신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자면 르네상스 같은 건 없었고(!)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근세의 포문을 연 르네상스라는 것은 사실상 피렌체 고유의 업적이라는, 그중에서도 (후기고딕양식 계열이 아니라) 공간성의 구현에 성공한 조토-마사초-만테냐-페루지노로 이어지는 환각주의 계열의 작가들에 국한된 성취라는 주장,

그리스적 가치를 옹호했으나 정작 그들 자신의 정신적 업적은 고전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에라스무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심지어 몽테뉴까지도 르네상스 예술가가 아닌 매너리스트로 분류하고 있는 점, 데카르트 이후 근대의 관심사가 존재에서 운동으로 옮겨감에 따라 탐구의 주제 역시 사물 내재적인 보편 개념에서 사물 외재적인 필연 법칙에 관한 것으로 대체되며 그러한 가운데 존재의 고유성은 사라지고 존재는 그저 필연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추상적 기술 대상으로 전락하는 바, 역동성 속에서 존재를 희석시키는 바로크 회화가 근대의 이러한 경향성과 정확한 일치를 보인다는 것 등등 솔깃하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한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매너리즘 부분은 이 책의 압권이다.



322쪽 밑에서 4번째 줄: '자연을 담는 예술'과 '예술을 담는 자연' --> '자연을 닮는 예술'과 '예술을 닮는 자연'
325쪽 9번째 줄: 엄격함이 있다 --> 엄격함이 없다
345쪽 1번째 줄: 내재화된 델리커시에 대한 슬픔 --> 내재화된 델리커시에 의한 슬픔
414쪽 7번째 줄: 근대인들이 이해하는 근대란 존재는 --> 근대인들이 이해하는 존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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