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이 교묘하다. 전혀 다른 쪽으로 해석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감독은 어쩌면 관객을 향해 너는 어떤 결단을 내리겠느냐고 칼끝을 겨누며 묻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비정하고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극단적인 자기포기를 통해 끝내 사랑과 낭만을 사수할 것인가? 후자는 사실 옛시대의 전설이고 현실을 초월한 신화다. 그러나 일말의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우리에게 최종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여전히 미몽에 잠겨있는 순진한 자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감독의 마지막 신사적 배려일는지도. 미장셴과 배경음악 모두 더없이 고상하고 우아하고 고전적이다. 의도된 고전미가 오히려 작중의 모든 고전적 행위 양식을 조롱하는 가운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괴미는 일품이다.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기괴하고 잔혹한 디스토피아를 미학적으로 너무도 빼어나게 구현해 놓았다. 기발하고 영특하고 통렬하고 짓궂고 잔혹하고(영화 자체가 잔혹하다기보다 현실의 잔혹성을 그에 부합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폭로하고 있다고 해야겠지만) 매혹적이고 황홀하고 비장하고 처연한 영화. 블랙코미디를 넘어선 영화. 번뜩이는 섬광 같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