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 : 형이상학적 해명 서양예술사 : 형이상학적 해명 1
조중걸 지음 / 지혜정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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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한 주제를 일이관지하며 명석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독서의 고난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지적 쾌감을 준다. 개별적인 이해 속에서 막연하게 흩어져 있던 지식의 파편들이 비로소 맥락을 갖추고 전체 가운데 하나의 좌표를 부여받아 그 의미가 선명해질 때 오는 깨달음의 기쁨이 상당하다. 이 분의 저서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작주의를 목표로 하는 게 좋을 듯하다. 모든 책들이 일종의 데이터베이스라고 할 만한 일관된 통찰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물론 이 데이터베이스가 궁극의 해답은 아니며 이 또한 하나의 관점 혹은 입장이라고 해야 옳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철학적 언명을 바로 이 책 자신에게 돌려주자면 각 시대의 예술에 대한 저자의 형이상학적 해명 역시 실재를 요청하는 자의적 체계이며 이것 자체가 실재는 아닌 것이다.

이른바 대륙철학이 아닌 영미분석철학에 적을 두고 있는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에게 근대의 칸트에 버금가는 지위를 부여하면서 이후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시도에 대해서는 비트겐슈타인의 부연이나 주석 쯤으로 일축해버린다. (저자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에 대한 평가는 '기생'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가혹하다. 그러나 푸코를 19세기 환원주의자들의 연장선상에 놓는 견해는 가혹한 정도를 넘어 자못 부당해 보인다. 푸코는 오히려 환원주의를 메타적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론의 질서가 미시적 실천 속에서 어떻게 형성 및 구축되고 작동하는지, 지배 담론을 생산하는 권력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을 시도하는 푸코의 중기 작업을 고려해 보면 푸코는 차라리 비트겐슈타인의 사례연구를 수행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이 전통 형이상학의 사망을 최종 선고함과 동시에 현대 철학의 본령을 규명한 이래, 철학의 재구축을 위한 오늘날의 새로운 탐구와 모색은 그저 잘해봐야 애처로운 사후 경련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한편으로 현대의 예술은 역사의 검증을 마치고 이미 응고된 것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 매 순간 미지의 의미를 낳고 있는 미완의 영역이기에 그 종합적 이해와 통찰을 보여주는 형이상학적 해명에의 또 다른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점증하는 의문들은 잠시 접어두자. 걸음을 재촉할 일이다. 거인의 발걸음을 좇다 보면 어느덧 언덕이다. 그 언덕에서 내가 나고 자라온 이 고장의 장대한 풍경을 조감하게 된다. 머릿속이 환해지는 경험이다.



144쪽 1번째 줄: 플라톤이 --> 플라톤의
147쪽 12번째 줄: 예술인한 --> 예술인 한
220쪽 밑에서 8번째 줄: 아니라 사실 --> 아니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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