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 비행
우디 앨런 감독, 미아 패로우 외 출연 / 썬필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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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없을 때 우리의 죄는 어떻게 사해질 수 있을까. 신에게 위임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 이같은 질문은 곧 자기 책임의 문제로 귀결되고 여기에는 필히 어떤 실존적 결단이 요청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완전 범죄에 성공한 안과 의사 유다는 말한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하여 윤리적 책임을 짐으로써 삶을 비극으로 치닫게 만드는 것은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에 불과하다고. 그것은 이상적인 환상에 불과하며 현실은 그와 다르다고.

그렇게 유다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일상에 완벽하게 복귀하여 잘 살아간다. 자기합리화하거나 부인하거나 하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대신 그의 오랜 환자였던 랍비의 눈이 멀어버림으로써 공교롭게도 벌은 엉뚱한 사람의 몫이 되고 만다. 심각한 도덕적 흠결을 지닌 유다는 세속적으로 성공한 삶을 이어가고 윤리의 상징이라 할 랍비가 유다의 죄를 대속하는 아이러니- 현실이란 신이 던지는 고약한 농담에 의해 굴러가는 잔혹한 희극 같은 것이라고, 우디 앨런은 말하고 싶었던 걸까.

어느 철학자의 생전 녹취록을 들려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에 따라서 정의됩니다. 우리가 우리 선택의 전부입니다. (...) 너무나 불공평하게도 인간의 행복은 창조적 설계 속에는 없는 듯 합니다. 이 무심한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랑의 능력을 가진 인간일 뿐입니다." 이 모호한 독백은 다름아닌 앨런의 목소리일 터. 잔혹한 농담으로 점철된 이 무망한 세계에서 오로지 사랑만이, 사랑에의 추구만이 창조적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인가. 그러나 극 중에서 삶에 대한 긍정과 사랑을 설파하던 이 철학자는 역설적이게도 급작스런 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리고, 그 바람에 철학자를 다룬 다큐 제작마저 엎어지고 만다. 지극히 자조적인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최근에 본 <한나와 그 자매들>과 더불어 우디 앨런의 가치관이랄까 세계관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 주관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완성도가 있다. 그의 영화를 크게 수작과 범작으로 나누자면 기꺼이 전자의 범주에 들어갈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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