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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평점 :
이 책 <진실을 읽는 시간>을 읽는 내내 가시 방석에 앉은 듯한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책에서 나오는 여러 사건과 관련된 자세한 묘사 혹은 죽음 그 자체와 맞닥뜨려서 일수도 있고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이 세상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보게 되어서 일 수도 있다. 아니면 셋 다일수도.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녔던 “죽음”이라는 그 자체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무튼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좀 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저자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었다.
이 책 <진실을 읽는 시간>에는 총 10개의 사건들이 들어 있다. 사건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었고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실제 사건 사진들은 마치 내가 사건 자료들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그리고 마지막 재판에 이르기까지 각 사건들을 다루면서 결코 화려한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루하기도 한 인생의 한 부분으로써 또 직업이자 소명으로써 법의학자가 하는 일들과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3장 <아기의 빈방>에서 강조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반복되는 이야기가 조금 지루했을 뿐 매 장을 읽어 나갈때 마다 죽음이라는 것이 한발자국씩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고 이전보다 더 실제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유럽의 그림자>라는 책에서는 콘크리트의 암울한 회백색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이 책에서는 블랙홀보다 더 진한 짙은 검정색의 느낌이 받았다. 몇몇 사건의 이야기만 보는데도 이런데 이런 일들에 아무런 영향도 우울감도 받지 않는다는 저자는 정말 법의학자가 천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면 재판 과정이 거의 매 장마다 등장하는데 과학이 발전하고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를 얻는 제약이 없어지고 아무리 인간의 지성이 발달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감정적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객관적인 사실 앞에서도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으며 감정적이 되고 여론에 쉽게 휩쓸려 불편한 진실은 애써 외면하려는 모습. 저자도 185페이지에 썼지만 사람은 5000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죽음이라는 것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마지막에 저자는 미국에서 법의병리학자가 충분히 배출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4년간의 대학과정, 3-4년간의 병리학 분야에서의 훈련, 1년간 공인된 법의관실에서의 펠로우십 그리고 병리의학자 자격시험 통과. 그렇게 법의병리학자가 되어도 다른 의료분야보다 낮은 연봉. 이런 현실로 병리학자가 충분히 길러지지 않는다면 부검이 줄어들고 수사는 힘들어지고 증거는 분실 또는 간과되며 범죄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돈이나 시간만 잃는 것 뿐만 아니라 정의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법의학자로 실제 병을 치료해 환자들에게 삶을 돌려주지는 못하지만 정의는 찾아 줄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야기 맺음을 하고 있는데 이 일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마음가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우리나라는 법의학 현실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죽음과 함께하고 있는 저자는 정작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p.368). 하지만 나는 저자와는 반대로 죽음과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항상 해 오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던 죽음과의 거리감이 지척거리로 더 좁혀지게 된 것 같다. 그만큼 이 책은 법의학과 관련된 드라마와 같이 화려한 책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무겁고 꺼려하는 죽음에 대해서, 범죄가 발생하는 현실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의 곁가지들을 펼치게 해 준 책이다.
오랫만에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적어 본다.
언제나 진짜 진실이 우리가 바라는 진실보다 낫다. p.39
나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 느낌은 상관없다. 법의학자의 임무는 진실이다. 나는 공정해야 하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진실은 도덕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미스터리란 대답 없는 질문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스터리가 풀리는 순간, 미스터리는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해할 가치도 없는 문제가 되어버릴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모순적이다. p.40
법의학적 증거는 정의의 기반이다. 법의학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억을 변주하지 않는다. 법원 계단에 군중이 모여 있어도 주눅 들지 않는다. 두려움에 달아나거나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때조차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을 정직하고 숨김없이 말해준다. 우리는 진실로 그것을 보고 해석하는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p.49
아뇨, 아름다운 시신은 본 적이 없습니다. 시신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닌, 생명 없는 물체일 뿐이거든요. 이미 아름다움은 사라진 거죠. p.58
나는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신앙심과 직업정신이 나를 지켜주었다. 테이블에 놓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몸둥이다. 그저 껍데기. 사람, 영혼은 이미 떠났다. p.101
훌륭한 전문가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재판을 피하면 정의는 패배한다. 전문가 증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말한다. p.298
나는 불편부당하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p.299
부정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느낌만큼 인간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다. 한 사람에 대한 평범한 모욕이든 수백만 명에 대한 전 세계의 묵인이든 우리는 지독히도 잘못된 일이 벌어졌다고 느끼면 순식간에 일어선다. 잘못을 바로잡는 직업인 경찰, 판사, 변호사, 법의학자는 더욱 강렬하게 그런 감정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할 때도. 그러나 ‘잘못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는 것이 ‘올바르게 행동한다’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완벽함이 아니라 용기를 바라야 한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우리의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과 지혜다. 거기에 하나를 덧붙인다면 최대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