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rs Ra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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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verin M. Koller - peeling w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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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무' 아래서
오에 겐자부로 지음, 송현아 옮김, 오에 유카리 그림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온세상에 호기심으로 가득차 보이고 배울것과 볼것이 많은 이들에게 적합한 책이라는 점과 작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추스려 이정도만 성장과정때 배려해 주고 격려해 준다면! 아주 좋겠다라고 공감하는 것 외에 책에서 파생된 느낌을 되짚어 보았다.

그건 간단히 말하면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고 자극이다.

아..이 작가는 자신이 보고 겪은 것들을 이렇게 보고 생각을 키워왔구나.  살아가면서 어려움이나 공부하는 방법을 이렇게 이겨내고 발견했구나. 올바름에 대해 탐색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그럼 나는 내 주변에 것들은 무엇이 있고 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자각의 자극을 주는 것이다. 더불어 나는 어떻게 해볼까?하는 의지도.

기실..작가의 충고와 방법은 귀담을 만 하지만 이책에서  느끼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노스롭 프라이의 <거대한 체계>를 예를 들듯..내 삶과 주변의 것들을 새로 만들고 그것을 풀어내는 자극과 억압을 걷어내는 따스한 격려가 책 곳곳에 그리고 책의 중심에 버티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백석의 <촌에서 온 아이>라는 시 끝부분에

촌에서 와서 오늘 아침 무엇이 분해서 우는 아이여

너는 분명히 하늘이 사랑하는 시인이나 농사꾼이 될 것이로다.

라는 구절이 있다...오에 겐자부로도 자신이 고스란히 겪은 삶의 질곡에서 간곡히 발산하는 격려를 백석의 시속 촌에서 온아이같은 이들에게 자근자근 이야기 하는 내용과 함께 그렇게 하는 행위까지 보여주는 것 같아 이것이 책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현대의 사람들이 비웃고 잊어버린 용기, 배움, 배려, 격려가 무엇인지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말이다.

<책을 읽는 나무의 집>부분에서 내 자신만의 이야기를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한 것이 있다.

유연하게 대처함이 그저 나부끼는 의미가 아니라 곧게 홀로선 느낌을 포함한 것이라..여러 설명을 하지만 나에게는 유연함이 기다림이고 또다시 바라봄이고 자신의 사고의 결론을 일부분 비우는 것이라 책을 읽으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 이것이 작가가 옆에서 격려해서 이런 내 생각을 자연스레 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린 소년시절에 기억과 그때의 발랄한 느낌이 하나씩 긍정하면서 바라보고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건..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나온

<어렸을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의 풍경속에서 작가의 소설작품<조용한 생활>의 이요가 외친 <저는 쭉 낙관하고 있습니다!>라는 목소리도 들리는 듯 감회에 빠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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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프군단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12월
평점 :
절판


현직 경찰관인 삼촌은 강력범을 단속하는 사람이다.  일인칭 서술의 목소리는 오짱이라는 고등학생이다.

오짱은 아버지가 작가이고 어른스런 누나와 장애를 가진 형이 있고..취미생활은 오리엔티어링을 하고 있는 청소년이다. 오짱과 삼촌은 원서로 디킨스의 <골동품 가게>를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삼촌은 건장한 경찰이란 인상과 달리 디킨스를 집중적으로 오랫동안 읽은 사람이다.

초반 소설은 <골동품 가게>의 간략한 소개와 이 소설의 전개방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킬프의 형상과 의미 그리고 킬프에게 도망다니게 되는 과정과 도피생활 과 결말을  아무렇치도 않게 압축적 구조의 깃발로 제시한다.  이것은 복합적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모모에와 하라로 이어지는 시발점과 연결점이 되고 있고 작가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벌써 사족인데..편집하지 않은 텍스트를 읽고 싶었지만..골동품 가게라는 책을 구할수 없었다...아..좁은 한국이여.>

모모에와 하라가 ?기는 과정은 넬이 도망가는 과정과 흡사해 보인다. 돈을 빌리고 그들에게 ?긴다.. 그러나 주제는 돌연히 <죄의 용서>와 <속죄>라는 무거운 주제가 돌출해 독자로 하여금 머리를 감싸게 한다.

그것은 킬프의 의미, 죄란 무엇인가..속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라는 것과 관련된  아브라함의 시험과 야훼의 의미, 지옥등을 말하는 내용에서 분명해 진다.

이미 <하마에게 물리다>를 읽어본 독자라면 <혁명당파>가 나오고, 오짱이 오수처리에 연관되어 있는 장면, 한 종류의 책을 오랫동안 보는 풍경을 떠오리며 작가 계속 탐구하는 주제의식을 감지했을 것이다. 또한 <레인트리를 듣는 여인들>에서 보듯이 자신의 희생으로 속죄하는 모습도 하라에게서 봤을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삶을 희생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타락의 징후이다라고 분명히 말한적이 있는데...일부 공감하는 봐가 있다. 이것은 킬프라는 것에 ?기는<책중에서는 킬프가 야훼라는 해괴한 논리도 있지만...> 해결책으로 하라가 자신을 밝히지 않고 살해당하는 것에 정점을 이룬다.

그런면에서 책이 진행되는 동한 삼촌과 오짱이 디킨스의 책을 읽는 모습은 종교적 모습과 흡사하고 경험적으로 말하자면 기독교에서 성경공부하는 모습과도 연관이 된다. 텍스트가 현실이되고 현실은 다시 텍스트로 환원되는 과정이 그것이다...작가가 기독교와 다른 구도를 말하는 있는 것은..이미 죄인인 듯한 자신에게 계속 몰려드는 킬프처럼 애착이 가지만 혁명당파처럼 목숨을 노리는 현실에서 누가 지금 여기서 속죄양이 되겠는가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희생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양 삼는 것은 마치 예수나 어떤 타인의 희생으로 평화가 오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희생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허나..현실에서 벌어지는 희생이란 광란의 축제 혹은 숭고한 기도는 그리 간단히 <희생>될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소설속 하라가 하루종일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 이유도 예수라는 절대적 희생값을 별도로 우리가 지불해야 할 값을  어떤식으로 산출해야 하는지 삶이 아직 미숙해서인지도...모른다.

하라가 킬프라는 상징에게 ?기는 이유는 실은 세상을 좋게 변하시키겠다는 혁명의 의지와 모모에를 행복하게 하려는 납득할 이유이지만 그것은 그를 절벽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래서 킬프라는 삶의 여러 불안하고 납득못하고 알수 없는 요소중에 야훼라는 것이 포함되어 표현된 것 같으며 그 과정에서 하라의 <기도>는 갈등의 시작이었던 다른 당파의 동료대신 자신을 내어주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고스란히 반대로 넘어간다. 숭고한 이유나 지극히 당연한 이유로 타인을 희생하게 하는 킬프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나...오짱의 마지막 모습처럼..내가 누군가를 죽인건 아닐까 하는..심각한 질문과 죄의식...

디킨스의 여러 작품중에서 골동품 가게는 문학를 연구하는 쪽에서는 저평가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그걸 이렇게 끌어들이는 작가는 평소 무슨 마음씨를 품고 숨쉬고 있는지 왠지 상상이 되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두가지가 생긴다.. 하나는 주제와 달리 등장인물의 정중함과 따스함때문에 생기는 바른 씩씩함 같은것과 세밀한 자상함이다. 문득 문득 그들끼리 주고 받는 말이나 독백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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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생활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책 마지막 구절에서 이요는 이렇게 말한다.

<조용한 생활은 어떨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니까요!>

작가가 위기를 맞아 미국으로 날아가고 남은 삼남매의 생활을 여자인 마짱의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 중 <가족일기>를 필두로 내면의 서술, 장애를 가진 오빠인 이요와 재수생인 오짱등의 잔잔하고 때론 격동이 있는 일상을 소곤대듯 풀어낸다.

6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일단은 오에의 생각과 일상등의 어울림등을 작가의 시선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고 작가 자신의 사상설명, 소설관등도 드문드문 들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두가지 관점에서 다시 읽을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는 각 단락에서 나오는 작가 자신의 생각위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무렇치도 않는 인간의 신앙,신학적 의미도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다른하나는 소설 내내 일상의 긴장감으로 쓰여진 섬세하고 자상한 내면의 목소리인데 그것이 가족간의 사랑의 목소리라고 인정해도 다른한편으로는 일본의 문화적,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라는 점, 일본 계층과 지위에서 나오는 일상적 문화는 어떤 건지라는 궁금함 그리고 내면서술에서 작가가 고백했듯이 로베르트 무질이 연상이 된점등의 자잘한 배경의 기원이 궁금하다는 점이다. 이런 궁금함의 이유는 아마 구조와 환경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관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마짱은 여자이지만 기실.. 작가가 보는 자식의 내면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시선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정중하고 깊이있게 사람을 대하는 걸까라는 점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물론 이요가 불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것 아닌가, 작가는 왜 영어에 대해 컴플렉스가 있나라는 자잘한 의구심은 가족에게 해꼬지 하는 아라이군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접근에 금세 잊혀진다.

책을 읽은 사람들은 대부분은 지금의 자신의 가족과의 관계와 그 관계속에 무심히 말하고 독백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고 크게 구분하고 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목소리가 가족뿐만 아니라 세상과의 관계의 단초와 시발점이라는 것도 이해했으리라..

주도적인 목소리는 가지지 않았지만 이요의 목소리는 늘 느낌표를 달고 다니고 시원하고 명랑하게 기억된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살아가는 과정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부러워 진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하는 시케토 선생, 연약하지만 자상한   마짱과 현실적인 오짱,  나는 쭉 낙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요도 모두 나름의 영역을 가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어울리고 있는 모습이 내가 본 조용한 생활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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