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철학과에서 11월에 서산철학강좌를 개최합니다. 


이번 서산철학강좌의 주제는 들뢰즈 철학입니다. 


저도 이번에 "들뢰즈와 스피노자"로 하나 발표를 하게 됐습니다.


아래는 서산철학강좌 안내의 글과 포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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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철학강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가 지난 2005년 2학기부터 진행해온 '서산철학강좌'는 이제 140회가 넘었습니다.

해방 뒤 서양철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셨고 연세대 철학과의 단단한 초석을 놓으신

서산(西山정석해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마음에서 "서산철학강좌라고 이름 붙인 이 강좌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학 사회에 부재했던 개방적인 학술강연문화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2018학년도 2학기에는 “들뢰즈 철학사유의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네 차례의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11월 1일(오후 6시 30분부터 외솔관 110호에서 열리는 서산철학강좌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연세대 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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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2학기 서산철학강좌

 

주제: 들뢰즈 철학사유의 다양성 

 

매주 목요일 6시 30-8시 30분

장소연세대 외솔관 110

 

148(11월 1)

들뢰즈와 예술

성기현(서울대)

 

149(11월 8)

들뢰즈와 스피노자변용과 정서

진태원(고려대)

 

150(11월 15)

들뢰즈와 과학

주재형(연세대)

 

151회 (11월 22)

들뢰즈 사유의 궤적사유실천창조

이찬웅(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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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국프랑스철학회에서 68혁명 50주년을 맞아 연세대에서 "철학, 혁명을 말하다"라는 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 


그때 발표된 글들을 묶은 책이 이학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이라는 글을 기고했고, 


그 이외에 사르트르, 라캉, 푸코, 들뢰즈, 데리다, 바디우와 68의 관계에 대한 글이 실려 있고 


68혁명운동 전공 역사학자와 페미니즘 연구자의 논문이 곁들여져 


68혁명과 프랑스철학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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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생각의 힘 출판사에서 출간될 루이 알튀세르의 유고작, [검은 소: 상상 인터뷰] 한국어판 해제를 올립니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 번역자인 배세진 선생이 또 한 번 번역을 맡아 수고를 해줬습니다. 


2008년 이매진 출판사에서 나온 알튀세르의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 한국어판 해제를 썼는데, 


10년 만에 다시 알튀세르의 유고작에 해제를 쓰게 돼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알튀세르의 유고작들이 더 많이 소개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글인 만큼, 토론이나 인용을 원하는 분들은 출판된 책에 실린 판본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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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 [검은 소] 한국어판에 부쳐

 

 

1. 알튀세르의 유령들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인가?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였는가? 루이 알튀세르는 누구이게 될 것인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꽤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던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내가 보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리 자명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무엇보다 알튀세르가 1990년 사망한 이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필두로 해서 올해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알튀세르 유고의 효과 때문이다.


1992년 알튀세르의 자서전인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가 출간되고 그 이듬해부터 몇 년 사이에 그의 이론적 유고들인 󰡔철학정치학 저술󰡕 1~2, 󰡔정신분석에 관한 저술󰡕, 󰡔철학에 대하여󰡕, 󰡔재생산에 대하여󰡕, 󰡔정신분석과 인문과학: 두 편의 강의󰡕 등이 잇달아 출간될 때만 해도, 알튀세르의 유고는 매우 제한적인 분량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알튀세르 유고집의 출간 현황에 관해서는 뒤에 나오는 유고집 목록을 참고) 더욱이 초기 알튀세르 유고집 출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프랑수아 마트롱(François Matheron)이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인해 더 이상 유고 편집 작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면서 알튀세르의 유고󰡔정치와 역사: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까지, 고등사범학교 정치철학 강의록󰡕 출간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에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유고 출간 작업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은 고쉬가리언(G. M. Goshgarian)이라는 탁월한 편집자가 유고집 편집 작업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미 󰡔철학정치학 저술󰡕 1~2(뒤의 목록의 5번과 6번 저작)의 영역본 편집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바 있는데,[영어판은 시기순주제순으로 분류되어 3권으로 편집되어 출간됐다. Louis Althusser, The Spectre of Hegel: Early Writings, Verso, 1997; The Humanist Controversy & Other Writings (1966~67), Verso, 2003; Philosophy of the Encounter: Later Writings, 1978-1987, Verso, 2006. 그는 또한 󰡔재생산에 대하여󰡕󰡔비철학자들을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가 된다는 것󰡕 등도 영어로 번역했다.] 2014년 출간된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랑스어판 편집자로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2018년 현재까지 그가 편집한 책은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검은 소: 상상 인터뷰󰡕, 󰡔역사에 관한 저술󰡕, 󰡔무엇을 할 것인가󰡕까지 5권에 이르며, 또 다른 유고집도 편집 중에 있다.


이처럼 프랑수아 마트롱과 고쉬가리언이라는 두 명의 탁월하고 헌신적인 편집자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다음 목록이 말해주듯, 알튀세르가 생전에 출간했던 것보다 더 많은 유고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L’avenir dure longtemps, Stock/IMEC, 1992(수정증보판 2003);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수정증보판).

2. 󰡔포로일기󰡕Journal de captivité (Stalag #4 1940-1945), Stock/IMEC, 1992.

3. 󰡔정신분석에 관한 저술󰡕Écrits sur la psychanalyse, Stock/IMEC, 1993; 부분 번역, 󰡔알튀세르와 라캉󰡕, 윤소영 옮김, 공감, 1995.

4. 󰡔철학에 대하여󰡕Sur la philosophie, Gallimard, 1994; 󰡔철학에 대하여󰡕, 서관모백승욱 옮김, 동문선, 1995.

5. 󰡔철학정치학 저술 I󰡕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 Stock/IMEC, 1994; 부분 번역, 󰡔철학과 맑스주의󰡕, 서관모백승욱 옮김, 새길, 1995.

6. 󰡔철학정치학 저술 II󰡕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II, textes réunis par François Matheron, Stock/IMEC, 1995.

7. 󰡔재생산에 대하여󰡕Sur la reproduction, PUF, 1995(수정증보판, 2011); 󰡔재생산에 대하여󰡕, 진태원황재민 옮김, 리시올, 근간.

8. 󰡔정신분석과 인문과학: 두 편의 강의󰡕Psychanalyse et sciences humaines(deux conférences), Livre de Poche, 1996.

9. 󰡔프란카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à Franca (1961-1973), Stock/IMEC, 1998.

10. 󰡔마키아벨리의 고독 외󰡕Solitude de Machiavel, présentation par Yves Sintomer, PUF, 1998; 부분 번역, 김석민 옮김, 󰡔마키아벨리의 고독󰡕, 새길, 1992. 알튀세르 생전에 책으로 묶이지 않았던 논문 모음집.

11. 󰡔알튀세르 사유하다󰡕Penser Louis Althusser, recueil d'articles, introduction par Yves Vargas, Le Temps des Cerises, 2006. 알튀세르가 생전에 프랑스 공산당 학술지였던 󰡔팡세󰡕(Pensée)에 기고했던 글 모음집.

12. 󰡔정치와 역사: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까지, 고등사범학교 정치철학 강의록󰡕Politique et Histoire de Machiavel à Marx - Cours à l'École normale supérieure 1955-1972, Seuil, 1996; 󰡔정치와 역사󰡕,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근간. 알튀세르가 고등사범학교에서 했던 정치철학에 관한 강의록을 모은 책.

13. 󰡔마키아벨리와 우리󰡕Machiavel et nous, Editions Tallandier, 2009. 󰡔철학정치학 저술 II󰡕에 수록되었던 원고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책. 국역본: 󰡔마키아벨리의 가면󰡕, 김정한오덕근 옮김, 이후, 2001. 국역본은 번역이 좋지 않아서 참고하기 어려움.

14.󰡔엘렌에게 보내는 편지󰡕Lettres à Hélène, préface de Bernard-Henri Lévy, Grasset/IMEC, 2011. 알튀세르가 부인이었던 엘렌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

15. 󰡔루소에 대한 강의󰡕Cours sur Rousseau, Le Temps des Cerises, 2012; 󰡔알튀세르의 루소 강의󰡕, 황재민 옮김, 그린비, 근간.

16. Initiation à la philosophie pour les non-philosophes, PUF, 2014;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안준범 옮김, 현실문화, 근간.

17. 󰡔끝없는 불안의 꿈󰡕Des rêves d'angoisse sans fin: Récits de rêves (1941-1967) suivi de Un meurtre à deux (1985), Grasset, 2014.

18.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PUF, 2015;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다는 것󰡕, 주재형 옮김, 그린비, 근간.

19. Les Vaches noires: Interviews imaginares (le malaise du XXIIe congrès), PUF, 2016; 󰡔검은 소: 상상 인터뷰(22차 당대회의 불만)󰡕, 본서.

20. 󰡔역사에 관한 저술󰡕Écrits sur l’histoire, PUF, 2018; 󰡔역사에 관한 저술󰡕, 배세진이찬선 옮김, 오월의 봄, 근간.

21. 󰡔무엇을 할 것인가󰡕Que faire, PUF, 2018; 󰡔무엇을 할 것인가󰡕, 배세진 옮김, 오월의 봄, 근간.[분류하자면, 1, 2, 9, 14, 17은 알튀세르의 전기적인 삶과 관련된 유고들이며, 나머지는 이론적인 성격의 유고들이다. 또한 10번과 11번은 알튀세르가 생전에 발표한 글과 강연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22. Louis Althusser & Lucien Sève, Correspondance 1949-1987, Sociales, 2018.[이 책은 알튀세르 유고집과 다른 맥락에서 출간된 책으로, 흔히 프랑스 공산당 내에서 알튀세르의 이론적 적수라고 알려진 뤼시엥 세브와 알튀세르가 40여 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묶고, 여기에 세브가 해설을 붙인 책이다. 세브는 알튀세르의 이론적 적수이면서 동시에 그의 후배이자 친구였는데, 이 책은 이들의 이론적 차이와 인간적인 우정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는 책이다.]

 

알튀세르는 생전에 매우 과작(寡作)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으며, 특히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 같은 혁신적인 이론적 저술 이후 생애의 말년까지 이렇다 할 만한 저작을 발표하지 못해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유고들만으로도 우리는 알튀세르가 꽤 많은 분량의 저술을 끊임없이 생산했으며, 특히 1970년대 이후 출간을 염두에 두고 저술했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출간하지 않은 여러 권의 저작을 남겼음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 저작들은 단편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거의 완성된 상태의 원고들이라는 점에서 알튀세르 사상을 구성하는 독자적인 요소들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푸코 사상의 우회할 수 없는 요소가 되었듯이, 이제 알튀세르의 유고들 없이 알튀세르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이 유고들이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알튀세르(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이해하든, 인식론적 절단의 철학자로 이해하든 아니면 이데올로기론과 호명의 이론가로 이해하든 간에)에 대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더해줄 것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유고들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알튀세르는 과연 어떤 알튀세르인가? 그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언가 새롭고 시의적인 통찰을 제시해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실로 지난 20여 년 동안 알튀세르에 관한 국내외의 논의의 중심을 이루어온 질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초기 유고작의 핵심 쟁점이었던 우발성의 유물론내지 마주침의 유물론에서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알튀세르의 정반대의 모습인 콩종크튀르(conjoncture) [이 개념은 보통 알튀세르 연구에서는 정세라고 번역되지만 사실 그 의미는 더 복잡하며, 더욱이 초기 알튀세르에서 말년의 알튀세르까지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상세하게 고찰해볼 만한 주제다.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편, 󰡔서강인문논총󰡕 52, 2018, 441쪽 이하 참조.] 또는 사건의 사상가의 면모를 찾아냈다. 또한 다른 이들은 󰡔마키아벨리와 우리󰡕에서 마키아벨리가 알튀세르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상가였는지, 그리고 알튀세르가 발굴한 마키아벨리 사상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 탐구하기도 했다. 아울러 알튀세르가 라캉의 정신분석을 역사유물론에 적용한마르크스주의자라는 주장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더 정확히 알게 된 것도 유고를 통해서였다. 알튀세르는 일찍부터 라캉의 한계와 애매성에 대하여 의혹을 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정신분석을 포함한 모든 과학들의 과학 또는 이론들의 이론으로서 재구성하려는 기획을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Louis Althusser, “Trois notes sur la théorie des discours”, in Écrits sur la psychanalyse, op. cit.; 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1976), op. cit. 참조. 또한 이 문제에 관한 평주로는 진태원, 라깡과 알뛰쎄르: ‘또는알뛰쎄르의 유령들, 김상환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비, 2002 참조.] 오히려 우리는 유고를 통해 그가 스피노자 철학에서 깊은 영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의 작업이 얼마나 큰 철학적 야심을 품고 있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유고들 덕분이다. 알튀세르가 1980년대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던 우발성의 유물론이나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글들은 사실 1970년대 집필된 여러 미완성 유고들에서 발췌된 단편들이었던 것이다(특히 16, 18번 유고 참조). 또한 최근 출간된 유고들은 그람시에 관한 성찰이 1970년대 알튀세르의 정치적 사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알튀세르의 위상을 재고찰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질문들은 앞으로 더 많이, 그리고 더 체계적이면서도 풍부하게 제기되리라고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그만큼 알튀세르의 유고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그의 사상의 여러 면모들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당대 프랑스철학(흔히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운동으로 알려진)의 쟁점과 전개과정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와 라캉, 알튀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관계를 비롯한 구조주의와의 관계, 알튀세르와 데리다, 또는 알튀세르와 푸코, 알튀세르와 랑시에르 또는 바디우의 관계 등은 앞으로 더 많은 탐구의 대상이 될 만한 주제들이다.

 

2. 󰡔검은 소󰡕의 이론적정치적 배경

 

그렇다면 󰡔검은 소󰡕가 알튀세르의 유고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무엇인지, 그것이 기존의 알튀세르 사상에 대하여 새롭게 조명해주는 바는 무엇인지,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당연히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지금까지 출간된 다른 유고들과 비교해보면 󰡔검은 소󰡕가장 정치적인 저작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자였고 또한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모든 저술은 정치적인 저술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검은 소󰡕는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책은 당대의 정치에 직접 개입하기 위해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방금 언급했던 것처럼 알튀세르의 주요 저작,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를 비롯하여 󰡔레닌과 철학󰡕,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에 이론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저술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당대의 정치적 정세에 효과를 미치려고 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것은 이중적인 목표를 지닌 개입이었다. 하나는 본래의 혁명적 성격을 점점 상실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민중에 대한 지배체제로 변해버린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가 대표하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었다. 다른 하나는 스탈린 사후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자본󰡕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후기 저작보다는 󰡔경제철학 수고󰡕 같은 청년기 저작을 중시했던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에 맞서기 위한 개입이었다.[생전에 출간된 글 중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참조하고, 유고 중에서는 특히 Louis Althusser, “La Querelle de l’humanisme”,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I, op. cit. 참조. 지나치는 김에 말해두자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humanisme’인도주의또는 휴머니즘’(humanitarisme)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근대의 신 중심적(따라서 종교적인) 철학을 대체하는 근대의 부르주아적세속주의적 기획의 핵심인 주체성의 철학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알튀세르는 개인 숭배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격하 운동을 전개했던 흐루시초프 이후의 소련 공산당의 관점 자체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우파적 비판의 표현이었다고 간주했다.


프랑스 국내의 정치 정세와 관련해서 보면, 이것은 한편으로 노동자 계급 및 민중과의 진정한 소통 관계를 상실한 채 부르주아 국가를 닮은 관료적 지배체제로 변모해간 프랑스 공산당에 대한 내부에서의 투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 책의 1장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알튀세르는 1948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한 이후 평생 당 내에서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평당원(militant)으로 남아 있었다. 프랑스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정치적조직적인 지위라는 점에서는 아주 보잘 것 없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고등사범학교의 이 철학자가 당의 이론적 노선에 반기를 들면서 당의 이런저런 방침들에 끊임없이 비판과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일례로 알튀세르는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른바 청년 마르크스와 성숙기 마르크스 사이에 인식론적 절단이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루이 알튀세르, 청년 마르크스에 대하여, 󰡔마르크스를 위하여󰡕 참조.] 이 테제가 충격적인 이유는 일차적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이 통일성을 지닌다는 신념, 곧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마르크스의 사상은 동일하거나 적어도 일관된다는 거의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본 신념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청년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를 비롯한 청년 헤겔주의의 문제설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마르크스가 아닌 마르크스이며, 󰡔독일 이데올로기󰡕로 대표되는 절단기의 저작을 거치면서 비로소 그는 마르크스로서의 마르크스가 된다. 더욱이 알튀세르는 󰡔자본󰡕에서도 마르크스의 사상은 온전하게 완성되어 있지 않으며, 여전히 불완전하고 공백을 지닌 상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이론적 오류만이 아니라 정치적 편향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성숙한 마르크스의 사상 역시 끊임없는 개조와 정정 작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프랑스 공산당이 대표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하여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이들이 중시했던 청년기 마르크스, 󰡔자본󰡕을 비롯한 노년기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비해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하는 마르크스, ‘소외인간 해방또는 사회 해방같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폭넓은 (또는 오히려 애매모호한) 이념들에 기초하고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이들에게까지 공감과 지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르크스에 편안하게 준거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는 더욱 명료하게 인간주의적 사회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란 이데올로기적 통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이 글은, 알튀세르를 인간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착각한 폴란드의 철학자 아담 샤프Adam Schaff와 에리히 프롬Erich Fromm(당시 사회주의적 인간주의를 대표하던 두 명의 이론가)의 요청곧 사회주의적 인간주의의 국제 연대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집필되었으며, 두 사람을 무척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고 한다. Louis Althusser, “La querelle de l’humanisme”,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I, op. cit. 참조.더욱이 이 책에서도 나타나듯이, 1970년대 이후 알튀세르는 이러한 인간주의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고유한 경제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보완물로 기능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알튀세르는 19685월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학생노동자 운동에 대하여 프랑스 공산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학생들 및 노동자들을 비롯한 기층 민중과 소통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앞의 글 참조.] 알튀세르 자신은 685월 운동 당시 1달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느라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고 그 전개과정을 직접 목격하지도 못했지만, 이후 몇몇 글에서 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운동이 제기한 쟁점들을 공산당이 면밀히 탐구해야 하며 기층 노동자들 및 청년 학생들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문에서 알튀세르가 지적하듯이 프랑스 공산당은 알튀세르의 주장을 대개 무시했으며, 당 내에서 그를 정치적이론적으로 고립시키려고 했다. 알튀세르가 자신의 주요 저작들을 프랑스 공산당 출판사인 에디시옹 소시알(Éditions Sociales)에서 출판하지 않고 프랑수아 마스페로(François Maspero)에서 출간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프랑스 공산당의 정치 노선 및 정책들에 관해 알튀세르가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된 데는 1976년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가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의 핵심 주제는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었다. 따라서 이 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의 핵심 개념에 대한 알튀세르의 가장 포괄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독특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자인 고쉬가리언이 말하듯, 1976년 이전에 알튀세르의 저작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는 산발적으로만 등장할 뿐 결코 체계적인 성찰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그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1966~67년 작성된 미발표 원고 이데올로기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의 전체 역사에서 결정적인 지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G. M. Goshgarian, “Préface”, in Être marxiste en philosophie, op. cit., p. 34.] 하지만 1976년 이후 알튀세르의 이론적 작업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가장 중심적인 개념 중 하나가 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의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은, 알튀세르가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듯이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는 결정이 이루어진 것이었다(본서 주 75) 367). 프랑스 공산당은 1972년 프랑스 사회당 및 급진좌파운동(Mouvement des radicaux de gauche)공동정부강령을 채택했으며, 22차 당대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개념의 포기를 선언하고 프랑스 특색의 사회주의”(socialisme au couleur de France)를 건설하기 위해 광범위한 프랑스 민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프랑스 민중 연합을 내세우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프랑스 공산당은 1978년 총선을 대비한 2차 공동정부강령의 구성을 추진했지만, 프랑수아 미테랑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이미 광범위한 중도좌파 세력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은 사회당의 강경한 태도와 주요 정책(특히 경제 정책)에 대한 차이점으로 인해 사회당과의 교섭이 결렬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1978년 총선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사회당에 지지율 및 의석수에서 뒤처지게 되며, 좌파 세력의 주도권도 상실하고 만다.[여기에는 5공화국의 권력 구조가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당에는 1965년부터 좌파의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미테랑이 있었던 반면, 공산당에는 그와 견줄 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프랑스의 정치적 지주인 공화주의가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공화주의에서 제도적이고 법치주의적인 공화주의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물 중심의 포퓰리즘정치가 강화되는 데도 기여했을 것이다. 이점에 관해서는 Gino G. Raymand, The French Communist Party during the Fifth Republic: a Crisis of Leadership and Ideology, Palgrave MacMillan, 2005 2부 참조.]


프랑스 공산당의 이러한 노선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프랑스 정치의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20세기 후반 좌파 정파들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정치의 흐름에 대한 좋은 개관으로는 Neill Nugent & David Lowe, The Left in France, St. Martin's Press, 1982 Maxwell Adereth, The French Communist Party: A Critical History,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4를 참조할 수 있고, 국내의 연구로는 은은기,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의 제휴 모색: 1972년 공동통치강령의 형성배경을 중심으로, 󰡔경북사학󰡕 21, 1998 및 민유기, 68혁명 전후 프랑스 좌파연합과 공동정부프로그램, 󰡔서양사론󰡕 109, 2011 참조.]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의회제에 기반을 둔 제4공화국 체제 하에서 좌파와 우파의 정당들이 연립정부 형태를 유지했으며, 프랑스 공산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영웅적인 레지스탕스 활동을 수행하여 전후 좌파 정치를 주도하는 정당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1954년 발발한 알제리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1958년 드골이 주도하는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이 성립하면서 세력의 급격한 약화를 겪게 된다. 4공화국 내내 20%가 넘는 지지율과 100석이 넘는 의석수를 획득했던 공산당은 1958년 드골 체제가 등장한 이후 첫 번째 총선에서 불과 10석을 획득하여 교섭단체도 형성하지 못하는 군소 정당으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이루어진 스탈린 통치에 대한 비판, 1956년 헝가리 봉기에 대한 무력 진압, 1968년 체코의 자유화 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 중국과 소련의 분열, 685월 운동에 대한 프랑스 공산당의 관료적 대응 등으로 인해 프랑스 사회에서 프랑스 공산당의 도덕적정치적 위신이 크게 실추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프랑스 공산당은 1960년대 초까지 고수했던 반체제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점차 포기하고, 사회당 및 급진좌파운동과의 제휴를 통해 드골주의에 맞서는 좌파 연합을 형성하려고 했다. 그런데 좌파 연합을 구성하려는 공산당의 노력에 장애가 되었던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이었다. 이것은 다른 계급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지배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유일한 혁명 정당으로서 공산당의 배타적인 지도적 지위를 함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뒤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부르주아 정당들만이 아니라 다른 좌파 정당들 및 민중들에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은 스탈린주의와 동일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 공산당은 1964년 제17차 당대회에서 드골주의 지배를 타도하기 위한 좌파연합의 공동 목표로 민주주의적이고 비()사회주의적인 대안을 제시했으며,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비사회주의 체제>란 진정한 민주주의를 뜻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가교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 이행기는 경제적이며 사회적 발전의 분명한 단계로서 간주되어야 한다.["La résolution politique du XVIIe congrès (Paris, 14-17 mai 1964)", Les Cahiers du communisme, nos. 6-7, juin-juillet, 1964; 은은기, 앞의 글, 16쪽에서 재인용.] 19685월 운동으로 의회가 해산되고 나서 실시된 6월 총선에서 드골이 이끄는 공화국민주연합에 참패한 이후 프랑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2월 샹피니(Champigny) 선언에서 민주사회의 진전이 사회주의로 가는 통로이며 이 통로에서 부르주아 제도는 유지될 수 있다고 천명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대규모 생산수단의 집산적 소유, 노동계급과 그 동조자들에 의한 정치권력의 행사, 사회구성원의 물질적, 지적 요구에 대한 점진적 만족, 개인의 개성 발현에 필요한 조건을 창출하기 위한 모든 것[민유기, 68혁명 전후 프랑스 좌파연합과 공동정부프로그램, 앞의 글, 183.]을 뜻한다고 정의함으로써, 68 운동으로 표출된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충실한 스탈린주의자였던 모리스 토레즈(Maurice Thoréz) 사망 이후 프랑스 공산당 서기장이 된 조르주 마르셰(Georges Marchais)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전통적인 볼셰비키코민테른의 노선이었던 공산당 유일당 개념과 더불어 사회주의에서 공산당의 지도적 지위까지 포기할 의사를 표명하게 된다. 그는 1968년 겨울의 한 인터뷰에서 만약 프랑스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합법적으로 전복된다면, 공산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만일 인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사회주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우리는 그 문제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이 사회주의 건설에 노동자 계급과 대다수 인민의 참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Georges Marchais, “Interview de Georges Marchais par Georges Leroy”(12 décembre 1968), Europe n° 1, 1968, p. 19; 은은기, 앞의 글, 19~20쪽에서 재인용.]

 

이 인터뷰는 프랑스 공산당의 공식적인 노선이 아닌 마르셰 개인의 입장 표명이었지만, 이는 프랑스 공산당이 1960년대 중반부터 유럽에서 가장 볼셰비키적인 정당 또는 오히려 가장 스탈린주의적인 정당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나 나중에 유로코뮤니즘으로 불리게 될 새로운 노선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프랑수아 미테랑을 중심으로 새로 창설된 사회당이 에피네(Epinay) 전당대회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확고히 하고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좌파정당의 좌파 연합 전술을 채택함에 따라 결국 1972년 프랑스 공산당, 사회당, 급진좌파운동 사이에 공동정부강령이 채택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미 공산당은 사회당에게 추월당했으며,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급격하게 세력의 약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정세를 염두에 두면,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주창하는 정치적 입장은 다소 엉뚱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1968년 이후 프랑스 공산당은 좌파 정치의 주도권을 점차 상실해갔으며 대중적인 지지 기반도 사회당에게 잠식당하고 있었는데, 알튀세르는 오히려 볼셰비키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져 프랑스 공산당이 점점 거리를 두려고 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로써 자신의 교조주의적인 관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그는 변화된 시대의 상황을 무시한 가운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가장 교조적인 정치적 원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견지함으로써 당시의 프랑스 공산당 노선에서 후퇴하여 오히려 그 이전의 스탈린주의적 노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성급히 판단을 내리기 전에 우선 알튀세르 주장의 논점과 그 함의를 좀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왜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고수하고 있는가?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알튀세르가 22차 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역설적이게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해방시켰다”(본문 87쪽)고 간주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알튀세르의 다른 텍스트에서도 엿볼 수 있는 태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튀세르는 1977년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라는 유명한 강연을 한다.[Louis Althusser, “Enfin la crise du marxisme!”, in Yves Sintomer ed., 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PUF, 1998;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이진경 엮음, 새길, 1992. 프랑스어판 편집자에 따르면 알튀세르는 이 강연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오랫동안 작업했으며, 이 원고의 네 가지 판본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강연에서 그는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Louis Althusser, Ibid., p. 272; 같은 책, 64.]고 선언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인식하는 태도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대하는 세 가지 방식을 구별한다. 하나는 위기라는 말을 거론하지 않은 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침묵하는” 방식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적들이라고 간주하는 태도다. 두 번째 방식은 “위기가 가져다준 충격을 감수하면서 그것을 견뎌내고 헤쳐 가는 것, 나아가 노동운동과 민중운동의 힘 안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는”[Louis Althusser, Ibid., p. 272; 같은 책, 63.]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윤리적으로 필요하고 바람직한 방식이지만,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같은 중대한 역사적 현상에 대한 설명과 전망, 거리를 둔 성찰의 필요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마지막 세 번째가 알튀세르 자신이 택한 방식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인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는 사실을 반갑게 여기고, 이를 일종의 해방의 기회로, 마르크스주의의 쇄신과 부활의 기회로 간주하는 태도다.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했다! 마침내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는 그 위기의 요소들을 분명하게 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내 이 위기를 통해서, 그리고 이 위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결정적인 어떤 것이 해방될 수 있다!”[Louis Althusser, Ibid.; 같은 곳.]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 것으로, 말하자면 마르크스주의의 죽음 내지 소멸의 증상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결정적인 어떤 것(quelque chose vital et de vivant)이 해방될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위기를 구성해왔던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가 위기로서 드러나지 않도록 억압하고 그것을 가짜 해법으로 봉쇄해왔던 것이라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스탈린주의의 핵심을 ‘개인숭배’와 그에 따른 전체주의적 일탈이라고 이해하던 소련 공산당 및 우파적인 비판가들에 맞서 알튀세르가 1960년대부터 특히 ‘이론적 반(反)인간주의’라는 문제설정 아래 지속적으로 고수해왔던 관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스탈린주의를, 스탈린이라는 폭군 또는 독재적인 지도자의 개인적인 일탈과 전횡의 문제로 간주하게 되면, 소련 공산당을 비롯한 동유럽과 서유럽의 공산당 지도부들로서는 당과 조직, 더 나아가 이론적 난점에 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와 개조의 시도 없이 실용적인 타협을 통해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역으로 스탈린주의에서 기존 공산당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고발하는 우파적인 비판가들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주의’, 당의 관료적 지배체제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도입하는 해법을 중시하게 된다. 반면 알튀세르는 초기 저작에서부터 줄곧 이러한 우파적 비판을 넘어서 말하자면 “스탈린주의에 대한 좌파적 비판”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개념은 계급투쟁, 부르주아 독재, 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등과 같은 공산당의 의례적인 정식들하나로 존재해왔을 뿐이며, 사람들은 대개 이 개념을 계급의 적들에 대항한 독재적인혁명 권력의 힘, 내전 그리고 폭력을 통한 권력쟁취와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연결”(본문 87)해왔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 특히 공산주의자들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스탈린주의적 독재와 동일시해왔으며, 독재라는 점에서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군사독재나 스탈린주의나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녀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민중들은 독재 체제로서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사회주의의 조국이 자신들이 원하던 계급적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세계와 전혀 다른 어떤 것이라는 실망과 환멸을 품게 되었다.

 

인민 대중은 파시즘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독재 이외에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이 동일한 인민 대중이 거대한 희망을 품고, 계급적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세계에서, ‘사회주의 조국’에서, 다시 말해 소련에서 기대했던 것은 분명 스탈린주의 시기 동안 나타났던 거대한 공포와 절멸의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으며, 또한 비록 소련이 이미 거대한 사회적 성과들을 획득했음에도 그들이 소련에서 기대했던 것은 현재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억압의 형태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본문 88쪽-강조는 원문)

 

착취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사회,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평등과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독재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민중의 거대한 실망과 불신이 당시 공산주의 운동이 맞게 된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은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논점 중 하나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유럽의 공산당들(이탈리아 공산당, 스페인 공산당 등)은 소련과 같은 현존 사회주의 국가들과 거리를 두면서 사회주의로 향하는 여러 길이 존재한다고 선언했으며, 서유럽 국가들에 고유한 사회주의로의 이행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 유로코뮤니즘이라 불리는 노선을 채택했다. 그런데 알튀세르는 이렇게 질문한다. “‘다른 길에 의한 사회주의가 현존하는 사회주의와 동일한 결과에 이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는가?”[Louis Althusser, “Enfin la crise du marxisme!”, op. cit., p. 270; 마침내 맑스주의의 위기가!, 앞의 책, 60.] 


이러한 질문이 뜻하는 바는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와 거리를 두려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전략이 충분치 않다는 것, 심지어 더 나아가 양자는 동일한 원환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양자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탈린주의가 왜 어떻게 해서 형성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어떻게 해서 1930년대부터 40여 년이 넘는 동안 지속될 수 있었는지 근본적으로 질문하지 않은 채 그것을 단순히 감추거나 축소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질문에 좌우된다.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왜, 어떻게 해서 스탈린에 이를 수 있었고, 현재의 체제에 이를 수 있었는가?”[Louis Althusser, Ibid.; 같은 곳.] 곧 만약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서유럽의 공산당들이 진정으로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정치를 수행하고 싶다면, 그 일차적인 조건은 마르크스주의 및 공산주의 운동을 위기에 빠뜨린 그 원인을 마르크스주의 자신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일이다. 만약 지금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는 분명 소련이 망각하고 있거나 고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어딘가 그 자체의 사회적 관계들 속에 이 같은 오류에 대한 정치적 필요가 이들 관계들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고, 나아가 그 오류를 지속시켜야 할 필요가 또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Louis Althusser, “Histoire terminée, histoire interminable”, Ibid., p. 242; 미완의 역사, 같은 책, 15~16. 강조는 원문.]


알튀세르는 동일한 문제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과 관련해서도 지속된다고 간주했다. 서유럽 공산당들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와 거리를 두겠다고, 그들과 달리 자신들은 자유를 중심에 두고 있고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본문 83)를 허용하며,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적인”(본문 85~86)을 추구하겠다고, 따라서 그들과 다른 사회주의, “프랑스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를 오류라고 비난하고 회피할 뿐 왜 그러한 오류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그러한 오류가 정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 때문인지 제대로 설명하거나 토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역시 오류에 대한 정치적 필요”, “오류를 지속시켜야 할 필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알튀세르는 소련에 대한 거대한 환멸이라는 이유”(본문 88)야말로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게 만든 중요한 이유이지만, 그들은 이러한 이유를 거론하지 않은 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본문 90쪽 이하).


따라서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옹호하고 그것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만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서유럽 공산당들의 공통점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한다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은 이 개념에 대한 매우 특정한 이해 방식과 결부되어 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강압적 통치로, 따라서 가능한 한 짧은 시기 안에 끝마쳐야 하는 일시적인 독재의 형태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부정했던 것은 다름 아닌 스탈린 자신이었으며,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테제와 모순되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질문 ...... 1936년 이래로, 다시 말해 소련은 이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했다고 스탈린이 공식적으로 선언했던 때 이래로 현재적인 문제였습니다. ...... 한 사회구성체가 사회주의에 도달했을 때 이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한 것이라는 이러한 스탈린의 생각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테제들과 모순됩니다.”(본문 129~30) 곧 서유럽 공산당들과 같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독재적인 전술, 따라서 오늘날 서유럽 사회의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전술로 이해하든 아니면 스탈린처럼 소련은 이미 사회주의로, ‘전 인민의 국가로 완전히 이행했으며, 따라서 더 이상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강제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요 없다고 주장하든, 양자는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동일한 이해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사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원래 테제와는 모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알튀세르에 따를 경우, 마르크스와 레닌은 모두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 시기와 일치”(본문 130)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주지하다시피 이는 알튀세르나 발리바르의 다른 글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루이 알튀세르, 프랑스 공산당 22차 당대회의 역사적 의미, 󰡔당 내에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 앞의 책 및 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최인락 옮김, 연구사, 1988 참조.]


따라서 알튀세르에 따르면 문제는 오히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스탈린주의적 실천으로부터 분리하는 것”(본문 91, 강조는 원문)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강압적인 통치로 이해하는 것, 다시 말해 부르주아 계급을 비롯한 적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노동자 계급과 그 동맹세력의 승리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폭력과 강제를 행사하고, 내적으로는 공산당의 유일한 지도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이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스탈린주의의 요체이며,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원래 생각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과는 모순되는 것이다.[바로 여기에서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헤겔 󰡔정신현상학󰡕에서 유래하는 검은 소라는 제목은 컴컴한 그믐밤에 검은 소들이 어떤 게 어떤 것인지 서로 구별되지 않듯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기로 한 프랑스 공산당의 결정은 프랑스 공산당이 어떤 게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이고 어떤 게 이데올로기인지, 어떤 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이고 어떤 게 스탈린주의적 독재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레닌을 인용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궁극의 민주주의”(본문 168)로 규정한다. 독재라는 단어의 통상적 용법과 달리 마르크스와 레닌이 염두에 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동의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란 노동자 계급을 비롯하여 농민과 빈민, 청년, 여성 등과 같은 광범위한 인민대중의 이익을 보장하고 그들의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민주주의다. 더 나아가 이러한 민주주의는 윗사람들(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든 자본가든 아니면 공산당 관료 든 간에)이 스스로 알아서 아랫사람들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민주주의, 또는 오히려 민본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항상 다스리는 위치에 있고,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항상 다스림을 받는 위치에 있는, 지배자 집단과 피지배 집단, 통치자와 피통치자, 관료와 평당원 사이의 일종의 존재론적인간학적정치적 분업에 입각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민주주의, “궁극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원래 알튀세르의 제자였지만 나중에 알튀세르를 비판하는 책을 쓰기도 했던 자크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이러한 분업의 논리, 그가 아르케(arkhe) 논리라고 부르는 것과 단절하는 데서 찾는다. “정치는 아르케 논리와의 특정한 단절이다. 그것은 사실 힘을 행사하는 자와 그것을 감수하는 자 사이의 정상적인위치 분배와 단절하는 것을 전제할 뿐 아니라, 이 위치들에 고유하게’[적합하게] 만드는 자질들에 대한 관념과 단절하는 것이다.”[자크 랑시에르, 정치에 대한 열 개의 테제3번째 테제, 양창렬 옮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도서출판 길, 2013, 212~13.] 곧 아르케의 논리는 능동적인 의미에서 통치할’(archein)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들(귀족, 지식인, 부자 등)만이 통치할 자격이 있으며 수동적인 의미에서 통치될’(archesthai) 수 있는 능력만을 지닌 이들(데모스 또는 민중 일반)은 계속 통치 받는 것에 머물러야 함을 전제하는데,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통치하는 것과 통치 받는 것의 상호성으로 정의된다. 때로는 다스리고 때로는 다스림을 받는 것, 다스림을 받는 이들이 때로는 다스리다가, 다스림이 끝나면 다시 다스림을 받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 다스리는 일이 어떤 특정한 자격과 지위, 조건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것, 아무나 다스리고 아무나 다스림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랑시에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의미일 것이다. 알튀세르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궁극의 민주주의로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핵심 역시 대중들이 의회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직접 개입하는 데 있다. “레닌에 따르면 대중민주주의는 부르주아적 의미에서 의회체계를 통해 정치에 개입하는 대중일 뿐만 아니라 국가장치, 생산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개입하는 대중 자체이기도 합니다.”(본문 169)


그런데 만약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궁극의 민주주의로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뜻한다면, 이것을 왜 굳이 독재라고 불러야 할까? 또는 왜 독재의 계기가 이러한 궁극의 민주주의에 필요한가?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고안해낸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독창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대립물, 곧 부르주아 독재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르주아 독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본문 141쪽) 부르주아 독재를 전제하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공허한 것이며 그 특성이 제대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정치의 본질, 통상적인 의미의 제도적인 정치를 넘어서는 진정한 정치는 계급투쟁이며, 계급투쟁은 항상 지배 계급의 독재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계급투쟁으로서의 정치는 법적ㆍ제도적 층위를 넘어서는 것 또는 그 기저에 그것의 가능 조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법적 측면에서 정의되는 민주주의냐 독재냐 하는 구별 역시 넘어서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주장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독창성은 그 이전까지 법적ㆍ정치적인 의미의 권력 형태를 의미했던 독재라는 단어를 한 사회계급 전체가 실행하는 권력이라는 의미로 변용시켰다. 이러한 의미의 계급 독재(부르주아 독재이든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든)는 단지 제도적인 정치 영역에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서 행사되는 지배다.

 

왜냐하면, 고전적 전통 내에서, 그러니까 현존하는 언어 내에서 독재라는 단어가 절대권력을 지시했었다면, 이는 단지 정치권력, 다시 말해 (로마와 같이) 한 사람에 의해 전유되든 ([프랑스 혁명기의] 국민의회Convention와 같이) 의회에 의해 전유되든 -게다가 이 두 경우 모두 합법적인 형태 하에서 전유되죠- 통치권력만을 의미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 이전에 그 누구도 하나의 사회계급의 독재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정치제도가 강제하는 참조틀 내에서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는 모든 지배계급(봉건제, 부르주아지, 프롤레타리아)이 필연적으로 행사하는 일종의 절대권력-마르크스 이전에는 자신의 이름을 가지지 않으면서 행사되었던 절대권력-이며, 단일한 정치 내에서가 아니라 이를 넘어서, 사회적 삶 전체 즉 토대에서부터 상부구조까지, 착취에서부터 이데올로기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계급투쟁 내에서, 정치를 경유-단지 경유하기만-함으로써 행사되는 것입니다.”(본문 139. 강조는 원문)


실로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것이 이런 의미의 독재가 아닌가? 비록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흔히 우리나라를 재벌공화국’, ‘삼성공화국등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재벌 중 누구도 합법적인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그들 중 일부가 국정농단의 연루자가 되어 법적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정치권력이 재벌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라면 재벌은 평생 재벌이며, 재벌의 힘은 경제만이 아니라 행정과 입법, 사법, 문화 등과 같이 우리 사회 곳곳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10 : 90, 1 : 99 같은 표현들이 전 세계적인 불평등을 표현하기 위한 상용구가 되었거니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쉽지 않은 내용에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더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자각을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법적정치적 영역에서 그나마 유지되던 민주주의의 질서마저 점점 침식하여,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이들조차도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또는 불평등 민주주의라고 지칭하고 있다.[자크 랑시에르, 󰡔불화: 정치와 철학󰡕, 진태원 옮김, 도서출판 길, 2015 및 콜린 크라우치, 󰡔포스트민주주의󰡕, 이한 옮김, 미지북스, 2008, 레리 M. 바텔스, 󰡔불평등 민주주의󰡕, 위선주 옮김, 21세기북스, 2012 참조.] 알튀세르가 이들과 다르다면, 그것은 그가 이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계급 독재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약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뜻한다면, 이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법적ㆍ제도적 의미에서 반드시 독재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무리 “선진적인” 또는 “진전된” 민주주의 제도와 형식을 갖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최종 심급에서’ 본다면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표현하는 법적ㆍ정치적 방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법적ㆍ정치적 의미에서 독재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가 상당히 넓은 범위의 자유와 권리, 평등을 허용하듯이, 아니 그 이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실행될 수 없거나 사고될 수 없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또 그럴 때에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정치의 새로운 실천”(본문 185쪽. 강조는 인용자)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레닌을 따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가장 광범위한 대중들의 민주주의이자 인간들이 전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유다”(본문 174쪽)라고 선언한다.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또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그것은 똑같은 계급 독재이기는 해도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근본적으로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부르주아 독재가 부르주아지를 지배계급으로 구성하고 그 계급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국가장치들을 강화한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중의 목적을 갖는 지배이자 과정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심원한 모순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과정이다. 우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적 독재로서 프롤레타리아를 지배 계급으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당연히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해체하고 전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 계급을 이루는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1차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러한 국가 자체의 소멸을 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무리 민주적이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잘 대표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국가를 보존하거나 더욱이 강화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국가이면서 동시에 비국가이어야 하며, 자기 자신의 소멸을 목표로 하는 국가라는 성격을 띠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지배 계급으로서 계속 존속하기보다 계급으로서의 자신의 해체를 추구하는 계급, 따라서 계급이면서 동시에 비계급인 계급이어야 한다.


여기서 알튀세르가 이해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마지막 특징이 도출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항상 공산주의 전략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공산주의의 전략이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 근거할 때만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일시적인 강압적 통치로 이해되지 않고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정 전체로 이해될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국가는, 비록 그것이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강화를 위한 국가가 아니라 국가 소멸을 위한 국가라는 점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와 그 동맹자들의 계급투쟁에 관한 어떠한 전략적 또는 심지어 전술적 행동도, 제국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도, 사회주의 하에서의 계급투쟁도, 국가권력의 쟁취도, 국가장치의 파괴도, 계급투쟁의 폐지도, 다시 말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건설도, 이것들을 계급투쟁의 최종 목적인 공산주의를 향한 전략에 위치시키지 않는다면 전혀 실행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본문 185)


그렇다면 알튀세르는 공산주의를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알튀세르가 공산주의에 관해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서술한다는 점이다(특히 6장과 7). 그는 공산주의는 먼 미래에 도래할 이상적 사회 또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의 눈앞에서 실현되는 현실의 운동”(본문 173. 강조는 원문)이라고 주장한다. 공산주의는 이미 자본주의 사회 내에 각인되어 있는 객관적인 경향이며, “세계 속 공산주의의 작은 섬들 ...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본문 186) 그것은 상품관계가 더는 지배하지 않는 인간의 모든 연합체에서, “공산당과 비교 가능한 모든 자유로운 연합체에서”(본문 177) 실현되어 있으며, 공산주의 사회란 상품관계가 없는 사회, 그러므로 계급착취와 적대적 계급이 없는 사회이고 법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 “정치적 장치, 정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레닌이 말하듯이 민주주의조차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본문 182) 사회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는 공산주의에서도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알튀세르는 여기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모든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관행들pratiques의 기능이 될 것이며, 이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변화시키려는 목적으로 국가의 힘에 의해 더는 점유되고 지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본문 183) 따라서 공산주의에서는 도덕적법적 이데올로기와 부르주아적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지배되는 가족이라는 것도 변형될 것이며, 개인은 자유롭게, 다시 말해 불평등하게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상기시키듯, 개인의 평등이라는 허구는 부르주아적법률적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죠발전할 수 있”(같은 곳)게 된다. 요컨대 상품관계가 지배하지 않고, , 국가,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 더욱이 공산당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알튀세르는 공산주의로 예측하고 있다. 간략히 평가한다면, 매우 막연하고 추상적인, 심지어 종교적인 공산주의관이라고 할 수 있다.

 

4.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 알튀세르의 아포리아

 

우리는 이 글의 제목을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이라고 붙였다. 여기서 필연적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알튀세르가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테제들이 우회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해방의 정치 내지 변혁의 정치로서 민주주의라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에티엔 발리바르의 제안을 따라 해방의 정치변혁의 정치를 구별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제도적인 정치의 토대가 되며 따라서 그것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정치를 가리키는 대체 가능한 두 가지 표현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들을 사용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문제설정, 적어도 그 중 어떤 논점들은 필연적인 것이다. 특히 정치의 문제는 좁은 의미의 제도적인 정치 내에서의 갈등과 경쟁, 권력 투쟁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자유주의적 구별로 포섭될 수도 없고, “사회적 삶 전체에 걸친 착취와 지배, 권력의 문제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렇게 정치를 확장된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반드시 마르크스주의나 알튀세르의 관점만은 아니다. 가령 푸코가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1󰡕 또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제기한 규율권력이나 생명권력, 통치성의 문제는 그 나름대로 법이나 제도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는 권력과 지배의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철학논집󰡕 29, 2012 규율권력, 통치, 주체화: 미셸 푸코와 에로스의 문제, 󰡔가톨릭철학󰡕 29, 2017을 참조.] 또한 랑시에르가 치안과 정치를 구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부르주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모두 계급적 독재이기는 하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근본적인 비대칭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곧 부르주아 독재,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지배계급으로서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익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착취와 불평등, 부자유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특정한 계급의 계급적 지배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피지배 계급들 또는 피억압자들의 보편적 이익과 해방을 위한 정치(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을의 민주주의)[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그린비, 2017 참조.]라는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알튀세르의 테제들은 필연성을 지닌다.


아울러 이러한 보편적 해방의 정치(적어도 그 중 한 측면)가 자본주의적 착취의 메커니즘을 비판하고 해체하지 않고서는,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또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개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안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는 점에서도 알튀세르의 테제들은 적어도 오늘날 숙고해봐야 할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은 필연적이지만 동시에 불가능한 것, 따라서 근본적으로 아포리아적인 것이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아포리아(적어도 오늘날 데리다나 발리바르 같은 철학자들이 개념화하고 실천하는 바와 같은[이 점에 관해서는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49쪽 이하; Jacques Derrida, Apories, Galilée, 1994;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을 각각 참조.])는 단순히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어떤 것, 따라서 우회해야 하거나 배제해야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그 불가능성을 통과함으로써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 그것을 통과할 경우에만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는 어떤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아포리아의 관점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알튀세르의 테제에서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국가에 대한 매우 특수한 관점, 곧 국가를 지배계급의 도구로 이해하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있는 대중들의 정치적 역량에 관해 존재론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 이데올로기에 관한 알튀세르의 혁신적인 관점과 모순되는 것들이다. 가령 다음 문단을 보자.

 

마르크스와 레닌은 국가가, ‘비록 노동자들의 국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고유한 법칙에 의해 또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 스스로 민주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존속하는 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절대로 자유를 촉진할 수 없다라고 수없이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주도권이 외부로부터 도래하기를, 즉 당(당을 국가와 혼동하지 않는 한에서), 노동조합(노동조합이 전달벨트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마지막으로는 대중 자신(대중이 자유롭게, 하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세공하는 한에서)으로부터 도래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중들로부터 그들이 계급투쟁의 실천 속에서 국가에 대한 공산주의적 분해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데에 적합한 새로운 조직형태들을 창조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계급투쟁에서 각 단계마다 이 형태를 새롭게 변형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본문 188~89)

 

이 문단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단순히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국가 내지 정치에 머물지 않고 비국가로서의 국가로 작용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소멸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알튀세르의 주장에 전제된 게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그것은 한편으로 국가는 스스로 민주화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 그것은 본질적으로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점이며, 다른 한편으로 만약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가능하고 도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국가 바깥에서 도래해야 한다는 점, 당과 노동조합, 궁극적으로 대중 자신에게서 도래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지배계급의 도구라는 생각은, 국가를 장치’(appareil) 내지 기계’(machine)로 이해하는 관점과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알튀세르는 이 책에서 국가를 장치 또는 도구로 이해하면서,[또 다른 유고에서는 장치기계를 더 엄밀히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국가 개념에 관해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다른 곳에서 더 깊이 있게 다뤄볼 만한 주제다. Louis Althusser, “Marx dans ses limites”, in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vol. I, op. cit. 참조.]  “힘을 권력으로 변형하는, 힘을 법으로 변형하는, 다시 말해 계급투쟁의 세력관계를 법률적 관계(droits, 정치적 법lois, 이데올로기적 규범)로 변형하는 기계”(본문 150)로 정의한다. 이러한 개념화는 국가를 중립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자유주의적 또는 관념론적 국가론의 맹점을 보여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또는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주장했던 것과 달리 국가가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너무 협소하게 한정하고 있다. 곧 이러한 개념화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은 단순히 계급적 세력관계 또는 지배관계를 중립적인 법적 관계로 은폐하거나 기만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국가에 대한 이러한 도구적 개념화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있는 대중들에 대한 존재론적 신뢰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신뢰는 “~인 한에서라는 제한을 수반하지만, 그러한 제한은 구조적인 또는 원리상의 제한이 아니라 정치적 기술이나 의지의 함수라는 점에서 실용적 제한이다. 대중이 자유롭게, 하지만 진지하게 그들의 정치이데올로기를 세공하는 한에서대중은 국가에 대한 공산주의적 분해라는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강조한 대목에서 보듯이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지배나 피지배와 무관한 순전히 기능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며, 주체가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알튀세르가 보여준 것은 이데올로기의 핵심적 기능은 주체를 구성하는 기능이라는 점이었다. 주체는, 그것이 개인적 주체든 집단적 주체든 간에 이데올로기 이전에 또는 이데올로기 바깥에 미리 형성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 내에서,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만 형성된다. 알튀세르 자신이 강조했다시피 이데올로기는 물질적인 것이며 더욱이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통해 생산되고 확산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데올로기인 만큼, 이데올로기가 구성하는 주체는 지배적인 관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예속적 주체들이다. 이러한 테제는 알튀세르 이전까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를 지배했던 기만과 신비화 또는 가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라는 관점과 단절하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이 문제에 대한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서동욱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 민음사, 2017을 각각 참조.]


그리고 여기에서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생산적인 모순 또는 아포리아가 나오게 된다. 만약 이데올로기 이전에 그리고 그 바깥에 미리 존재하는 주체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성되는 주체들은 예속적 주체들이라면, 어떻게 해방과 변혁의 정치가 가능한가? 이러한 아포리아를 단순한 논리적 모순이나 난점이라고 생각하고 우회하거나 배제하려고 하면, 다시 이데올로기에 관한 도구론적이거나 관념론적인 개념화(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라고 불렀던)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주의주의적인 메시아주의(가령 지젝의 몇몇 저술에서 엿볼 수 있는)로 나아가게 된다.


반대로 이러한 아포리아를 회피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이 알튀세르의 제자였던 에티엔 발리바르였다. 그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테제를 제시함으로써 이 아포리아에서 새로운 개념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이데올로기의 기능작용 속에서 특권적인 능동적 역할을 피억압자들 또는 피착취자들에게 (적어도 잠재적으로) 부여하는 이유들을 설명하는 것이다.”[에티엔 발리바르, 비동시대성: 정치와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윤소영 옮김, 이론사, 1993, 183~84. 강조는 원문.]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가상이나 허위의식, 왜곡된 관념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이데올로기를 지배 계급에 의한 조작과 기만 또는 주입과 강제로 보는 관점과 단절하자는 뜻이다. 이데올로기를 왜곡된 관념이나 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하고 무지한 대중들이라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 이데올로기 바깥에서 이데올로기를 통제하고 조작할 수 있는 지배 계급의 능력이라는 생각을 전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정의할 때 품고 있었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를 상상계로, 곧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자연적 조건(생활세계)으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관념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적인 관념이나 표상들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개인들과 대중들이 모두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상상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또는 그람시의 개념을 원용하자면 헤게모니적인 이데올로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이어야 한다.”[같은 책, 186.] 그리고 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상상적 경험이란 지배자들의 체험된경험이 아니라 ...... 피지배대중들체험된경험이다. 다시 말해 지배 이데올로기가 진정으로 지배적인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 곧 피지배자들, 약소자들, 억압받는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욕망하는 것에 뿌리를 두고 그러한 상상계를 자기 나름대로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이렇게 설명해볼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 피지배대중들의 상상계의 핵심은 자유와 평등, 박애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지배어는 사실은 지배 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대중들의 혁명적 봉기를 통해 선언되고 또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은 이를 대표하는 문건 중 하나다. 발리바르가 이데올로기에서 대중들의 존재론적 우위라고 부른 것은, 이러한 지배어들이 혁명의 정신이자 원리로 천명되고 정치 제도들 속에 기입되었다는 사실(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선언은 프랑스 헌법의 전문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정치적 근대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킨다.


물론 이러한 원리는 그 자체로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제도적 매개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단지 선언적으로 언표되었을 뿐, 실제적인 제도에서는 최소화될 수도 있다. 예컨대 정치적 선거권이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개인들(이른바 능동 시민들”)에게만 허가되었다는 점이나 여성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권리를 향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단적인 사례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근대 사회의 어떤 지배 집단도 피지배대중들의 이러한 상상계를 무시하고서는 또는 그러한 상상계를 재구성하고 활용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지배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혁명의 지배어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따라서 정치적 상상계 및 제도화에서 피지배대중들이 (제도적으로는 열등한 위치에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계적으로 배제될 수도 있지만) 존재론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평등자유명제(1989) 이후 근대 부르주아 정치 또는 자유주의 정치와 마르크스주의 정치 사이에 양립 불가능한 단절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 대신 정치적 근대성의 근본 원리로서 평등자유명제가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모든 해방의 정치의 이상적 보편을 형성한다는 테제를 제시하게 되었다.[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무정부주의적 시민성? 한나 아렌트,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을의 민주주의󰡕, 앞의 책을 참조.] 반면 알튀세르는 이 책의 8장에서 말하듯이 평등과 자유 또는 더 일반적으로는 인권일반을 지배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 법률적 이데올로기”(본문 220쪽 이하)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를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와 날카롭게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발리바르의 테제와 비교해보면,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알튀세르의 주장은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이 제시하는 아포리아를 오히려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알튀세르의 인용문에서 대중들(아마도 노동자 대중들)은 이데올로기 안에 존재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성되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들은 이데올로기, 그것도 지배와 예속의 기능이 아닌 순전히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이데올로기(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또는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대중들은 국가 바깥에, 국가 이전에 존재한다. 이렇게 지배와 예속에서 자유로운 대중들(아마도 네그리와 하트라면 다중(multitude)이라고 했을 것이다)이 존재하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국가 소멸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정말 그런 대중들이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가? 현실에서 존재하는 대중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에 존재하던 대중들, 문화혁명에 참여했던 대중들이 지배와 예속에서 자유로운 대중들이었는가? 스피노자가 이미 이러한 생각에 대해 인간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고 그들이 그렇게 존재했으면 하고 원하는 대로 인식한다고, “어떤 실천적인 용도를 지닐 수 있는 정치학이 아니라 단지 환상(chimaera)으로 생각될 수 있고 오직 유토피아 내지 시인들의 황금시대에서나 가능한 정치학을 구상”(󰡔정치론󰡕 11)한다고 비판하지 않았는가?


더욱이 이러한 대중들이 계급적인 측면에서만 포착될 뿐, 성적 차이 및 젠더 관계의 측면이나 인종주의 및 국민주의(nationalism)의 측면 등에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튀세르의 개념화가 지닌 중요한 한계일 것이다. 이는 알튀세르 과잉결정 개념의 애매성(ambiguity)과 연결돼 있다. 한편으로 보면 과잉결정 개념은 전통적인 경제결정론을 넘어서 모순의 복합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을 계속 보존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과잉결정은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의미 있는 범주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과잉결정 개념이 자본주의적 모순과 다른 모순들(성적 모순, 인종적 모순 등)의 복합적 관계를 사고하는 인식론적 장애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과잉결정만이 아니라 과소결정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또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의 동시적인 작용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루이 알튀세르와 68: 혁명의 과소결정?, 앞의 글 참조.]


󰡔검은 소󰡕는 알튀세르 생전에 출판되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의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시대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검은 소󰡕, 특히 그 핵심을 이루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테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적어도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있는 불평등과 지배, 착취와 배제의 문제가 자본주의적 모순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필연성은 불가능성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필연성, 곧 아포리아적인 필연성이다. 이러한 불가능성의 시험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길-없음(a-poros)이며, 독자들 각자 스스로 통과해 나가야 할 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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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현상학 연구]에 실릴 논문 한 편 올립니다.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글이니, 논문을 인용하거나 논문에 관해 토론하려는 분들은 


[철학과 현상학 연구]에 실린 판본을 대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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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미트와 자크 데리다: 주권의 탈구축

[이 논문은 칼 슈미트와 21세기 정치현상학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2018428일 한국 현상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이후 수정보완을 거쳐 완성된 논문이다. 좋은 논평을 해준 학술대회 참석자들 및 익명의 심사위원들에게 감사드린다.]


 

 

I. 데리다와 주권의 문제

 

지난 1990년대 이후 데리다는 {법의 힘}[Jacques Derrida, Force de loi, Paris: Galilée, 1994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마르크스의 유령들}[Jacques Derrida, Spectres de Marx, Paris: Galilée, 1993(󰡔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그린비, 2014(수정 2)).], {우애의 정치}[Jacques Derrida, Politiques de l’amitié, Paris: Galilée, 1994.], {환대에 대하여}[Jacques Derrida & Anne Dufourmantelle, De l’hospitalité, Paris: Calmann-Lévy, 1997(󰡔환대에 대하여󰡕,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불량배들} 등과 같은 저작들을 통해 또는 데리다가 사망한 뒤에 유고로 출판되고 있는 여러 강의록을 통해 법, 정치, 환대, 주권, 마르크스주의 등과 같은 정치철학 내지 실천철학의 주요 쟁점들을 다루는 탈구축적인 방식을 충실히 보여주었다.


이 글에서 내가 다뤄보려고 하는 것은 그 중에서도 주권에 관한 데리다의 작업이다. 주권의 문제는 초기 데리다 저술에서는 거의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기록과 차이}에 수록된 조르주 바타이유에 관한 논문에서 바타이유의 낭비, 일반경제 개념 등과 관련하여 주권 개념이 부분적으로 논의되기는 했지만,[Jacques Derrida, “De l’économie restreinte à l'économie générale. Un hégélianisme sans réserve”, in L'écriture et la différence, Paris: Seuil, 1967. 이 책은 󰡔글쓰기와 차이󰡕라는 제목으로 국역본이 나와 있으나(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1), 번역에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특히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을 계기로 출간된 {테러 시대의 철학}에 수록된 자기면역-실재적이고 상징적인 자살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었으며[Jacques Derrida, “Autoimmunity: Real and Symbolic SuicidesA Dialogue with Jacques Derrida”, in Giovanna Borradori, Philosophy in a Time of Terror: Dialogues with Jürgen Habermas and Jacques Derrida,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데리다와의 대화: 자가-면역,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자살, 지오반나 보라도리, 󰡔테러 시대의 철학: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담󰡕, 손철성 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다른 한편으로 파울 첼란(Paul Celan)의 시학과 관련하여(따라서 홀로코스트, , 주권적인 것, 상징적 폭력, 독특성, 표상/대표 등과 연결하여) 발전되었다[이점에 관해서는 파울 첼란과 주권의 문제에 관한 데리다의 저술을 편역한 다음 저술을 참조. Jacques Derrida, Sovereignties in Question: The Poetics of Paul Celan, ed. Thomas Dutoit,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5.]. 하지만 이 주제가 가장 집약적이고 밀도 높게 다루어진 것은 데리다가 생전에 출판한 마지막 저작인 {불량배들}이었으며[Jacques Derrida, Voyous, Paris: Galilée, 2003. 이 책은 2003년 우리말로 번역된 적이 있는데, 오역이 심해서 도저히 참조하기 어렵다. 󰡔불량배들󰡕, 이경신 옮김, 휴머니스트, 2003.], 유고로 출간된 강의록 {짐승과 주권자} 및 {사형}에서도 주권의 문제가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Jacques Derrida, Séminaire. La bête et le souverain, tome I ~ II (2001 ~ 2003), Paris: Galilée, 2008~2009; Séminaire la peine de mort, tome I ~ II (1999 ~ 2001), Paris: Galilée, 2012~2015.


주권에 관한 데리다의 논의는 보통 정치학이나 정치철학에서 주권 개념을 다루는 것과 매우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정치철학 내지 실천철학에 관한 데리다의 다른 논의와 마찬가지로 주권에 관한 논의 역시 한편으로 매우 사변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데리다가 수십 년 동안 전개해온 자신의 철학적 논리(이것을 차이(差移, différance)의 논리라고 하든[데리다의 이 신조어는 우리말로 보통 차연이라고 번역되지만, 필자는 본문에서 사용한 번역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필자는 김남두-이성원의 제안을 따른다. 이 개념의 번역 문제에 관해서는 이성원, 해체의 철학과 문학비평, 이성원 엮음, 󰡔데리다 읽기󰡕, 문학과지성사, 1997 참조. 최근 주재형은 챠이라는 번역어를 제안한 바 있는데, 흥미로운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주재형, 데리다: 혁명의 탈-구축, 󰡔마르크스주의 연구󰡕 153, 2018 참조.] 아포리아의 논리라고 하든 또는 유사초월론(quasi-transcendentalism)의 논리라고 하든 간에[데리다가 1968년 프랑스철학회에서 강연했던 “Différance”라는 글(나중에 󰡔철학의 여백들󰡕(1972)에 수록되었다)은 데리다 초기 철학의 논리를 집약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초기 데리다 철학에 관한 논의에서 중심적인 개념이 되었다. 반면 데리다는 후기 철학에서는 아포리아개념을 더욱 빈번하게 사용했으며, 이에 따라 후기 데리다 사상과 관련해서는 아포리아의 문제가 많은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한편 유사초월론적’(quasi-transcendantal)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는 진태원, 유사초월론: 데리다와 이성의 탈구축,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53, 2018 참조.])에 입각하여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논리를 변용하고 확장하면서 전개된다. 이 글에서는 데리다의 풍부하고 다면적인 논의를 충실히 따라 가기는 어렵고 그 논의의 몇 가지 논점만 이끌어내 볼 것이다.


주권에 대한 탈구축 작업과 관련하여 칼 슈미트에 대한 데리다의 독해를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데리다 저작에서 슈미트는 중심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따라서 가령 아감벤, 데리다 및 일군의 현대 주권 이론가들은 슈미트의 두 개의 경구적 텍스트[󰡔정치적인 것의 개념󰡕, 󰡔정치신학󰡕]과 관련하여 자신의 방향을 설정해왔다”(Anne Norton, “Pentecost: Democratic Sovereignty in Carl Schmitt”, Constellations, vol. 18, no. 3, 2011, p. 389)는 식의 주장은 사태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이는 아감벤이나 다른 주권 이론가들에게는 사실일 수 있겠지만, 데리다에게는 들어맞지 않는 주장이다. 이런 식의 단순화와 일반화는 데리다의 정치철학이나 주권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도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아감벤과 데리다 사이의 갈등적인 관계를 해명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데리다와 슈미트(아감벤)의 차이에 관한 좀 더 세심하고 균형 있는 평가들로는, Benjamin Arditi, “On the Political: Schmitt contra Schmitt”, Telos, no. 142, 2008; Matthias Fritsch, “Antagonism and Democratic Citizenship(Schmitt, Mouffe, Derrida)”, Research in Phenomenology, vol. 38, 2008; Bonnie Honig, Emergency Politics: Paradox, Law, Democrac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9 4~5장을 참조.] 후설이나 하이데거, 또는 칸트나 헤겔, 아니면 프로이트나 라캉 또는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 블랑쇼, 레비나스 같은 사상가들이 초기 데리다에서부터 후기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그리고 자주 거론되고 면밀한 독서의 대상이 되었던 것에 비해, 슈미트는 데리다가 정치철학 및 법철학의 문제들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후기 저술, 특히 {우애의 정치}에서 처음 거론되며, 강의록 {짐승과 주권자}에서도 부분적인 논의의 대상이 된다.[이 때문에 칼 슈미트와 자크 데리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슈미트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적 독해는 주권 개념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논의,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정치적인 것에 관한 슈미트의 논의에는 주권에 대한 그의 고유한 관점이 깔려 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탈구축하는 데리다의 독서는 슈미트의 주권 개념에 대한 데리다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2절에서 우선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주요 논점을 살펴본 뒤, 그와 관련하여 {정치신학}에 나타난 주권의 논리를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3절에서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과 주권 개념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의 요점을 결정 불가능성’, ‘약한 메시아적 힘’, ‘자기면역을 중심으로 제시해볼 것이다. 마지막 4절에서는 데리다 주권론의 구체적인 함의를 살펴보기 위해 국경의 민주화라는 주제를 고찰해보겠다.

 


II. 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본질과 주권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1장은 국가의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전제한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Berlin: Duncker & Humbolt, 1979, p. 7; 󰡔정치적인 것의 개념󰡕, 김효전정태호 옮김, 살림, 2012, 31. 󰡔정치적인 것의 개념󰡕 독일어판 텍스트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해두기로 하자. 이 텍스트는 1927󰡔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논총󰡕(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 Politik) 581호에 논문 형태로 처음 출판되었으며, 1932년 단행본 저작으로 출간되었다. 그 뒤 1963년 같은 출판에서 슈미트의 새로운 서문과 함께 1932년 판이 재출간되었으며, 국역본과 영역본을 비롯한 대개의 번역본들은 이 판본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하인리히 마이어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더 탁월한 최종판”, 1933년의 제3판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한 슈미트의 선택이었다. 그것은 1933년 판에는 나치스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반유대주의적 언급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Heinrich Meier, Carl Schmitt, Leo Strauss und “Der Begriff des Politischen”, Stuttgart: J.B. Metzler, 2013(초판은 1988), p. 14 5). 마이어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슈미트의 텍스트들 가운데 예외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이 텍스트가 3종류의 상이한 판본을 지닌 유일한 저작이며, 이 텍스트가 촉발한 적수들과의 논쟁을 반영하기 위해 이러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든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변형을 초래한 것이 레오 스트라우스의 비판이었으며,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주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슈미트의 주선으로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논총󰡕에 실렸다. Leo Strauss, “Anmerkungen zu Carl Schmitt, Der Begriff des Politischen”, 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 und Sozial Politik, vol. 67, no. 6, August-September, 1932, pp. 732~49; 국역본은, 카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주해, 󰡔정치적인 것의 개념󰡕, 187~223. 1932년 판과 1933년 판 사이의 차이는 바로 스트라우스와의 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게 마이어의 논지다. 반면 윌리엄 슈어먼은 마이어가 정치신학의 영향을 과장한다고 비판하면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1927년 판 논문과 1932년 판 저서의 차이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한스 모겐소(Hans Morgenthau)의 영향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Willaim E. Scheuerman, “chapter 9. Another Hidden Dialogue: Carl Schmitt and Hans Morgenthau”, in Carl Schmitt: The End of Law, Lanham, Maryland: Rowman & Littlefield, 1999 참조.그리고 2장에서는 다시 정치적인 것의 규준”(Kriterium des Politischen)동지의 구별”(Unterscheidung von Freund und Feind)에서 찾는다(Schmitt 1979, 14 (국역) 39. 강조는 원문).

 

이 구별은 새로운 고유 영역(eigenen neuen Sachgebietes)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앞서 말한 하나 또는 몇몇 대립들에 근거하지도 않으며, 또한 그것들에게 귀착시킬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독립적이다. ... 적과 동지의 구별은 결합 내지 분리, 연합 내지 분열의 최고의 강도를 나타낸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것은 상술한 모든 도덕적미적경제적 구별 등에 동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도 존립할 수 있다. 정치상의 적이 도덕적으로 악할 필요는 없으며, 미적으로 추할 필요도 없다. 경제적인 경쟁자로서 등장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 적이란 바로 타자, 이방인(der Andrere, der Fremde)이며, 그 본성상 그가 특별히 강렬한 의미에서 실존적으로 어떤 타자이며 이방인이라는 것만으로 족할 것이다. ... 동지와 적이라는 특수한 대립을 다른 구별들로부터 분리시켜 독립적인 것으로서 파악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 이미 정치적인 것의 존재로서의 사실성과 독립성이 나타나는 것이다.”(Schmitt 1979, 1415 (국역) 39. 강조는 인용자)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슈미트의 구별은 도덕적인 것, 미적인 것, 경제적인 것 또는 종교적인 것 등과 구별되는 정치적인 것의 고유성을 식별하려는 이론적 노력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겉으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이 다른 영역, 곧 미적인 영역, 종교적 영역, 도덕적 영역, 경제적 영역과 같은 사회적 삶의 영역들과 구별되는 별개의 한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고유 영역이 아니며 결합 내지 분리, 연합 내지 분열의 최고의 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이를 단순히 정치라고 규정하지 않고 정치적인 것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치에 관한 당대의 학문이나 정치가들의 규정에 대한 슈미트의 근원적인 반발과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정치적인 것20세기 정치철학자들 다수가 각자 독특한 방식으로 이론화를 시도했던 개념이며,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적 계보학은 20세기 정치철학의 흐름을 해석학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표본적인 기획이 될 수 있다.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20세기 유럽정치사상사의 맥락에서 재구성하려는 한 가지 시도로는, Samuel Moyn, “Concepts of the Political in Twentieth Century European Thought”, in Jens Meierhenrich & Oliver Simons eds., The Oxford Handbook of Carl Schmit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참조. Moyn은 슈미트적인 계보와 (레몽 아롱에게서 유래하는) 프랑스적인 계보(특히 클로드 르포르)의 차이를 강조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다소 자유주의적인 관점이다. 슈미트가 적대성을 강조하는 반면, 프랑스적인 계보는 공동체의 적극적 토대를 정초하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좌파 하이데거주의라는 맥락에서 특히 프랑스 정치철학을 정치적인 것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다른 관점의 시도는 Oliver Marchart, Post-Foundational Political Thought,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Ltd, 2007 2“Politics and the Political: Genealogy of a Conceptual Difference”을 참조. Marchart의 시도는 하이데거적/데리다적인형이상학 탈구축의 시도따라서 존재론이라기보다는 유령론(hauntology)그람시/라클라우적인정치학 탈구축따라서 정치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을 접합하려는 시도이며, 말하자면 제일철학으로서 정치사상”(162)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인데, 내가 보기에 이는 데리다 자신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곧 정치 내지 정치적인 것의 근원적 핵심을 파악하는 대신 정치적인 것을 국가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일이 일어나거나, 더 나쁜 경우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Schmitt 1979, 56 (국역) 93)의 경우처럼 정치 자체를 탈정치화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하인리히 마이어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새로 정의하려는 슈미트의 작업의 바탕에는 정치를 기술적인 것으로 환원하려는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감이 존재하며, 더욱이 슈미트는 이점에서 자유주의는 공산주의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간주했다. Heinrich Meier (2013) 11~12. 또한 나종석, 정치적인 것의 본질과 칼 슈미트의 자유주의 비판, 󰡔헤겔연구󰡕 25, 2009도 참조. 다른 한편 레오 스트라우스는 슈미트 자신의 반자유주의가 사실은 자유주의적 전제에 의거해 있음을 홉스와의 비교를 통해 보여준 바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 (1932) 참조.] 더 나아가 슈미트에 따르면 이것은 전체 국가”(der totale Staat)로의 경향을 더욱 강화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승리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가 정당한 적이라는 범주를 배제한 가운데 오히려 적을 범죄자”(Schmitt 1979, 2 (국역) 18)로 만들게 되고, 중립적이거나 비정치적인 수사법 아래 새로운 십자군 운동이나 인류의 최후의 전쟁”(Schmitt 1979, 65 (국역) 105) 같은 훨씬 더 파괴적이고 전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낳게 된다. 따라서 적과 동지의 구별, 그리고 그것을 전제하는 고전적인정치의 모델, 곧 슈미트에 따르면 유럽공법질서로의 복귀 내지 재구성이야말로 오히려 전쟁을 제한하고 국제법에 따라 그것을 규제하는 것, 󰡔대지의 노모스󰡕의 표현을 따르면 전쟁을 길들이는 것”(Hegung des Krieges)을 가능하게 해준다.[슈미트의 국제관계론에서 전쟁 길들이기에 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주권 개념에 대한 서론, 진태원 옮김, 󰡔우리, 유럽의 시민들?󰡕, 후마니타스, 2010 및 베노 테슈케, 결정과 비결정: 칼 슈미트의 지적정치적 수용, 󰡔뉴레프트리뷰 4󰡕, 도서출판 길, 2012를 각각 참조.]


슈미트는 이러한 적과 동지의 구별을 공적인차원과 사적인차원에서 다시 구별한다.

 

적이란 단지 적어도 때에 따라서는 현실적 가능성으로서 투쟁하는 인간 전체이며, 바로 그러한 전체와 대립하는 전체이다. 따라서 적이란 공적인 적만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인간의 전체, 특히 전체 국민과 관련되는 것은 모두 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적이란 공적(公敵, hostis)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사적(私敵, inimicus)은 아니다.”(Schmitt 1979, 16 (국역) 42. 강조는 원문)

 

슈미트는 공적인 적사적인 적의 구별을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폴레미오스”(polemios)에크로스”(Echthros)의 용례에서 가져오는데, 이는 다시 헬라스인과 헬라스인이 아닌 사람들 간의 전쟁으로서 폴레모스(polemos)와 헬라스인 내부에서의 갈등, 곧 일종의 내전으로서의 스타시스(stasis) 사이의 구별에 근거를 두고 있다.[데리다의 슈미트 독서와 관련하여 칼 슈미트에게서 의 두 가지 개념 구별의 의미에 대해서는 David Lloyd Dusenbury, “Carl Schmitt on Hostis and Inimicus: A Veneer for Bloody-Mindedness”, Ratio Juris, vol. 28, no. 3, 2015; Jacques de Ville, “The Foreign Body Within the Body Politic: Derrida, Schmitt and the Concept of the Political”, Law and Critique, vol. 26, no. 1, 2015를 각각 참조. 전자는 슈미트의 개념 구별의 문헌학적 부정확성(따라서 이 구별의 문헌학적 출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데리다의 부주의함)을 드러내고 있고, 후자는 이 구별에 대한 탈구축(이는 저자에 따르면 곧 정치적인 것의 개념 속에 내재해 있는 자기 파괴의 가능성으로서 자기면역을 보여주는 것이다)을 데리다의 슈미트 독서의 핵심으로 간주한다.]

적과 동지의 이러한 구별은 일차적으로는 엄밀한 의미의 정치와 내치(內治, Polizei)를 구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며, 더 나아가 이라는 범주를 유럽공법질서의 규범에 따라 규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슈미트는 1963년 판 서문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된 이른바 냉전에서 전쟁과 평화와 중립, 정치와 경제, 군인과 민간인, 전투원과 비전투원 같은 구별들 및 그 기초를 이루는 적과 동지 같은 모든 개념의 축들이 무너지고 있다”(Carl Schmitt 1979, 10 (국역) 28)는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그 본질적인 증상으로서 고전적인 의미의 ’(enemy) 개념과 다른 범죄자로서의 ’(foe)이라는 개념이 수백 년 간의 침묵 끝에 다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슈미트는 1963년 판 서문에서 이제 국가중심의 시대(Epoche der Staatlichkeit)는 끝나 간다고 지적하면서, “<국가적>이라는 개념과 <정치적>이라는 개념이 일치했던 시대고적인 유럽의 국가의 시대, 유럽공법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Schmitt 1979, 4 (국역) 1617) 그러면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재규정하려는 자신의 시도에 대한 두 가지 도전을 바로 파르티잔 개념과 냉전의 문제에서 찾고 있다. 더 나아가 1972년 출간된 󰡔정치적인 것의 개념󰡕 「이탈리아판 서문에서는 국가와 더불어 또는 국가 없이, 국가적인 내용과 더불어 또는 그 내용 없이 정치적 투쟁에 참여하는 새로운 주체들의 다양성이라는 문제를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 사고해야 할 새로운 정치적 현실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관한 중간 논평이라는 부제를 지닌 󰡔파르티잔 이론󰡕의 중심 주제를 이룬다. Carl Schmitt, Theorie des Partisanen, Berlin: Duncker & Humbolt, 1963; 󰡔파르티잔: 그 존재와 의미󰡕, 김효전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8. 이에 관해서는 Benjamin Arditi, “Tracing the Political”, Angelaki: Journal of the Theoretical Humanities, vol. 1, no. 3, 1996 참조.] 따라서 슈미트에 따르면 적과 동지의 구별이 존재할 때 어떤 갈등 내지 대립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 가령 종교 단체들 간의 투쟁이 적과 동지의 구별에 의거하면 이 종교 단체들은 종교 단체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정치적 통일체이다.”(Schmitt 1979, 25 (국역) 51) 또한 산업 콘체른이나 노동조합의 경우도 그러하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계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계급 투쟁을 진지하게 행하고, 상대방 계급을 실제의 적으로 다루고 국가 대 국가든 한 국가 내부의 내전이든 그것과 투쟁하는 경우에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며 정치적 세력이 된다. ...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와의 대립 ...”(같은 곳)


적과 동지의 구별을 공적인 차원에서 규정하려는 노력을 넘어서 슈미트는 이를 전쟁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이는 정치적 대립은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대립”(Schmitt 1979, 17 (국역) 43)이며, 그 본질은 전쟁이라는 투쟁 형식에서 가장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슈미트는 자신이 말하는 전쟁을 다른 유형의 전쟁, 곧 논쟁이나 경합 같은 정신적인 의미의 전쟁이나 국가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으로서의 내전과도 구별한다. 엄밀한 의미의 전쟁에는 조직된 정치적 통일체 간의 무장투쟁만이 속한다.

 

여기서 투쟁이라는 말은, 적이란 말과 마찬가지로 그 본래의 존재양식이 의미하는 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투쟁이란 경쟁이 아니며 순수하게 정신적인논쟁도 아니다. ... , 동지, 그리고 투쟁이라는 개념들이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들이 특히 물리적 살해의 현실적 가능성(reale Möglichkeit der physischen Tötung)과 관계를 맺으며, 또한 계속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 있다. 전쟁은 적대 관계에서 생긴다. 적대 관계란 타자의 존재 그 자체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란 적대 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실현에 불과하다.”(Schmitt 1979, 20 (국역) 4546)

 

그리고 슈미트는 여기에서 정치적인 것을 결정하는 기준인 적과 동지의 구별을 주권의 문제와 연결시킨다. 정치적인 것이 적과 동지의 구별, 곧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결정하는 데 의거하고 있다면, 이러한 결정 위에서 정치적 통일성의 가능성이 성립하며, 이러한 결정의 수행 주체가 바로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자의 결정의 중요성은 위급사태 내지 예외상태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기준이 되는 것은 언제나 이와 같이 결정적인 사태, 즉 현실적인 투쟁의 가능성과 이러한 사태가 현재 발생했는가 여부에 관한 결정뿐이다. 이러한 사태가 예외적으로만 발생한다는 것은 그 규정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확증하는 것이다. ...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이란 사태는 위급사태’(Ernstfall). 이 경우에도 또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외상태(Ausnahmefall)는 결정적인, 사물의 핵심을 명백히 하는 의미를 지닌다.”(Schmitt 1979, 2223 (국역) 49)

 

여기서 슈미트가 사용하는 주권이라는 말은 정치적 통일성을 함축하며, 이러한 통일성은 예외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통해 표현된다. 주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정치적 통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Schmitt 1979, 27 (국역) 53)


주지하다시피 슈미트는 󰡔정치신학󰡕 첫머리에서 주권자를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정의한 바 있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Berlin: Duncker & Humbolt, 2004(초판은 1923) p. 13; 󰡔정치신학󰡕, 김항 옮김, 서울: 그린비, 2010, 16.이것은 법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주권자가 역설적인 위치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주권자는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타당한 법질서의 외부에 있으며, 그럼에도 그러한 질서에 속해 있는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헌정을 전면 중단시켜야 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은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Schmitt 2004, 14 (국역) 18. 번역은 약간 수정) 우리가 슈미트의 주권 및 주권자 개념의 논점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이를 데리다의 주권에 대한 탈구축과 관련하여 해명하려면 󰡔정치신학󰡕에 나오는 다음 대목을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인용문 본문에 괄호로 표시한 숫자는 필자가 붙인 것이다.]

 

“(1) 예외란 포섭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일반적인 정식화의 범위를 넘어선다. (2-1) 하지만 동시에 예외는 결정이라는 특수한 법학적인 형식 요소를 그 절대적인 순수성 속에서 드러낸다. (2-2) 예외적 사태는, 우선 법적 규칙들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절대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 (2-3) 혼돈 상태에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은 없다. 법질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즉 정상적 상황을 창조해내야 한다. 이러한 정상적 상태가 실제로 군림하는지 여부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모든 법은 상황법’(Situationsrecht)이다. (3-1) 주권자는 전체로서의 상황을 그 총체성 속에서 창조하고 보증한다. 주권자만이 이러한 궁극적인 결정권을 독점한다. (3-2) 국가 주권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법학적으로 보아 국가 주권에 적절한 정의는 결코 제재나 처벌의 독점이 아니라 바로 결정의 독점으로 ... 예외적 사태는 국가 권위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

(4-1) 예외는 정상적인 경우보다 더 흥미롭다. 정상적인 경우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지만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4-2) 또한 예외는 단순히 규칙을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규칙 자체가 예외를 통해서만 생존한다. (...) 19세기의 신학적 성찰이 얼마나 놀라운 강렬함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어느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는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예외는 일반적인 것과 그 자체를 동시에 설명해준다.””(Schmitt 2004, 1921 (국역) 25. 번역은 다소 수정)

 

매우 밀도가 높은 이 대목에서 슈미트는 다음과 같은 논점을 전개하고 있다. 우선 그는 예외의 기본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예외란 포섭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일반적인 정식화의 범위를 넘어선다.” 기본적인 뜻에 따라 이해할 경우 예외는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a) 일탈, 비정상 (b) 일시적인 것, 잠정적인 것 (c) 규칙이나 정상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 그런데 슈미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기본적인 또는 일상적인 의미의 예외가 아니라 법학적인 의미에서 결정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개념으로서의 예외다. 예외와 결정의 관계를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예외적 사태는 법적 규칙들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절대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예외는 (a)(b)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c)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c)규칙과 예외, 또는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사이에 일종의 존재론적 순서를 전제한다. 곧 규칙이나 정상적인 것은 예외나 비정상적인 것에 논리적존재론적으로 우선하는 것이며, 전자로부터의 일시적인 일탈로서의 후자는 가급적 빨리, 그리고 온전하게 전자로 복귀해야 한다.


반면 (2-2)는 이러한 순서의 역전을 함축한다. 왜냐하면 슈미트가 관심을 갖는 예외는 절대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예외적 사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대적 예외 상태는 정상적인 것으로 가급적 빨리 복귀해야 하는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법적 규칙들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해야 하는 상태이다. 곧 이러한 예외 상태는 일반적인 법적 규범이 존재하지 않거나 이미 자신의 타당성을 상실한 상태(역사적으로 보면 국가 또는 법질서의 존망이 달려 있는 혁명이나 전쟁 상황), 따라서 (c)에서처럼 복귀하거나 회복해야 할 정상적인 질서가 부재하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예외 상태는 (2-3)에서 보듯이, 정상적인 상황을 창조해내야 하는 상태, 절대적 혼돈의 상태이다.


이러한 예외적 상태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앞에 나온 주권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살펴보자.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이 명제는 두 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 ‘주권자는 예외상태에서 결정하는 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상사태나 긴급사태에 처해 있을 때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주권자라는 의미이다. 둘째,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본다면 이 명제는 주권자는 예외상태에 대하여 결정하는 자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 의미에서는, 어떤 것이 예외상태인지 이미 확립되어 있고 또한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면, 두 번째 의미에서는 무엇이 정상이고 예외인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예외와 정상을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타당한 헌정 질서가 무엇이고 반역 세력이 무엇인지, 아니면 이미 낡은 질서가 어떤 것이고 새로운 정당성을 지닌 세력이 어떤 것인지는 주권자의 결정에 달려 있다. 또는 그러한 구별을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다. 그렇다면 헌정 질서를 헌정 질서로 만드는 것이 바로 주권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슈미트는 (3-1)에서 주권자는 전체로서의 상황을 그 총체성 속에서 창조하고 보증한다. 주권자만이 이러한 궁극적인 결정권을 독점한다. 국가 주권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의 본질은 (3-2)에서 말하듯 결정의 독점에 있다. 어떤 것이 정상적인 질서이고 어떤 것이 예외인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예외 상태에서 어떤 헌정 질서를 창조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주권의 본질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처음에 출발했던 예외에 대한 기본적인 또는 상식적인 의미의 완전한 전도가 이루어진다. (4-1)에서 말하듯 정상적인 경우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지만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하는데, 왜냐하면 정상적인 경우는 이미 주어져 있는 법질서가 타당하다는 것을 전제한 가운데 그러한 법질서의 한 가지 경우로 포섭되어 있는 반면, 예외는 이러한 법질서의 타당성 내지 효력이 중단되어 버린 상황이며, 따라서 그러한 법질서의 한계가 드러나고 그와 다른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이 모색되거나 이미 드러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예외는 단순히 규칙을 입증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규칙 자체가 예외를 통해서만 생존한다”(4-2)고 할 수 있다. 곧 예외는 규칙 내지 법질서의 본질 및 그 한계를 드러내주는 것일뿐더러, 법질서의 존재 자체가 예외상태에서 내려지는 정상과 예외의 경계에 대한 결정에 따라 성립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예외상태는 어떤 일시적인 상황, 가령 전쟁이나 계엄령, 긴급사태가 포고되는 경우만이 아니라 정의상 모든 법질서 내부에 그것의 가능 조건으로서 항상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모든 법질서는 주권의 심급을 전제하는데, 주권은 예외상태에서 예외상태(와 정상상태의 차이)를 결정하는 작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권자는 법질서의 궁극적인 가능 조건이되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법질서에 속하지 않는 것, 법질서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슈미트가 주권자는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타당한 법질서의 외부에 있으며, 그럼에도 그러한 질서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슈미트는 정상적인 타당한 법질서라는 한정을 부여하지만, (2-3)에서 보듯 정상적 상태가 실제로 군림하는지 여부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라고 한다면, 사실 주권자는 이러한 한정을 넘어선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법 일반과 그 바깥을 결정하는 자가 곧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슈미트가 말하는 외부 또는 바깥은 정확히 말하면 법의 바깥이다. 그것은 법과 관련하여 규정된 바깥이며, 법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니는 바깥인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는, 슈미트 자신은 명시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법과 그 바깥의 경계를 결정하는 초월론적인 근거이되, 주권자를 이러한 근거로 만드는 것, 주권자를 주권자로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슈미트는 법학자들에게는 반()법학적인 법학자 또는 적어도 비정상적이거나 예외적인 법학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철저히 법의 관점에서 사고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슈미트(또는 아감벤)에게 법 바깥의 사회적인 것 또는 법 바깥의 정치적인 것과 같은 것은 부재한다는 비판이 일리가 있다. 이점에 관해서는 베노 테슈케, 결정과 비결정: 칼 슈미트의 지적정치적 수용및 같은 저자의 지정학의 물신: 고팔 발라크리시난에 대한 답변, 󰡔뉴레프트리뷰 4󰡕, 도서출판 길, 2012; Jef Huysmans, “The Jargon of Exception: On Schmitt, Agamben and the Absence of Political Society”, International Political Sociology, no. 2, 2008을 각각 참조.]

 


III. 결정, 폭력, 자기면역: 슈미트에 대한 탈구축

 

그렇다면 데리다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및 그것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적대, 갈등, 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또한 정치적인 것의 개념 근저에 놓여 있는 주권에 관하여 어떻게 사고했을까? 이 장에서는 이러한 쟁점들에 관해 결정의 아포리아폭력과 메시아적인 힘’, ‘주권과 자기면역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다.

 

1. 결정의 아포리아

 

데리다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독서에서 슈미트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도 않으며, 또한 슈미트의 관점에 대하여 자유민주주의적인 규범적 토대를 옹호하지도 않는다. 그는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내재한 아포리아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한다. 그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결정(decision)의 아포리아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정치신학󰡕 그리고 다른 여러 저작들에서도 결정의 문제는 슈미트에게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90년대 이후 데리다의 저술, 특히 정치철학 내지 실천철학에 관한 저술의 주요 논점 중 하나는 결정 불가능성의 아포리아였다.


이러한 아포리아가 가장 명료한 언어로 표현되는 󰡔법의 힘󰡕에서 데리다는 아포리아의 경험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것일지라도이 없이는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정의는 불가능한 것의 한 경험”(Derrida 1994a, 37)이라는 점을 환기시킨 뒤, 법과 정의 사이의 세 가지 아포리아 가운데 두 번째 아포리아를 결정 불가능한 것의 유령”(Derrida 1994a, 같은 곳)이라고 부른다. 결정이 적법한 결정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결정, 곧 정의로운 결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계산 가능한 것과 규칙의 질서를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지고 나면 그것은 다시 한 번 어떤 규칙, 주어져 있었거나 발명된 또는 재발명된, 그리고 재긍정된 어떤 규칙을 따랐던 것이 된다.”(Derrida 1994a, 5253) 곧 어떤 규칙이나 계산 가능성의 질서의 한 사례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규칙이나 계산 가능성의 질서를 무시하거나 그것을 무조건 침해하려고 하는 것은 최악의 도착적인 결정을 낳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결정이 정의로운 결정이기 위해서는 결정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기존의 지식이나 계산 가능성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시 정의로운 결정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식이나 규칙 또는 계산 가능성을 무시하는, 그것에 위배되는 결정이어서도 안 된다. 이것이 데리다가 󰡔법의 힘󰡕에서 결정 불가능한 것의 유령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우애의 정치󰡕에서 데리다가 슈미트를 독서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논리적 분석이 제시된다. 아주 집약적이고 밀도 있는 한 대목을 보자.

 

우리는 모든 결정 이론, 특히 외관상 근대적인 모양을 띠는 이론, 가령 슈미트의 결정주의 및 그 우파적이거나 좌파적인’, 심지어 네오마르크스주의적인 유산우리는 뒤에서 이점에 대해 다룰 것이다이 관여해야 하는 아포리아를 예고하기 위해 결정에 관해 강조한다. 이러한 결정주의는 알다시피 적에 대한 이론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조건 자체를 이루는 적의 모습은 20세기에 고유한 의미의 적의 상실로 인해 지워지고 있다. 우리는 적을 상실하고, 따라서 정치적인 것을 잃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사건의 아포리아는 아마도(peut-être)와 관련하여 결정의 아포리아와 교차하며, 또한 그것을 축적하거나 과잉규정한다.[알튀세르의 개념인 surdétermination은 대개 과잉결정으로 번역되지만, 여기에서는 decision과 구별하기 위해 과잉규정으로 번역했다.]...... 결정은 확실히 사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결정은 또한 모든 주체의 자유와 의지를 기습해야/놀라게 해야(surprendre) 하는, 한 마디로 말하면 주체의 주체성 자체를 기습해야/놀라게 해야 하는, 주체가 모든 결정 이전에 그리고 결정을 넘어서모든 주체화 이전에, 심지어 모든 객체화 이전에노출되어 있고 민감하고 수용적이고 취약하며, 근본적으로 수동적인 곳에서 주체를 변용하는, 이러한 돌발(survenue)을 중립화한다. ...... 주체 이론은 최소한의 결정을 해명하는 데 무능력하다. 하지만 이는 특히 사건에 대하여, 그리고 결정과 관련된 사건에 대하여 언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코 어떤 것도, 사건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어떤 것도 주체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결정의 도식은 규칙적으로적어도 그 공통적이고 헤게모니적인 수용(여전히 슈미트의 결정주의, 그의 예외 및 주권 이론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에서 본다면주체의 심급(instance), 고전적인 주체, 자유롭고 의지적인 주체, 따라서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일어나지 않는, 심지어 주체 자신이 가령 예외적인 상황에서 어떤 독특한 사건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보존한다고 믿고 있는 순간 그 독특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주체의 심급을 함축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Derrida 1994b, 8697. 강조는 원문)

 

데리다가 사건의 아포리아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방금 전에 봤던 결정 불가능한 것의 아포리아에서 모든 지식과 계산 가능성, 규칙성을 넘어서는, 기존의 인식적경험적실천적 지평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고 심지어 측정될 수도 없는 어떤 것, 그야말로 미증유의 것(데리다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이점을 함축할 때에만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다)의 발생과 관련된 것이다. 어떤 것을 사건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그것은 사건으로 규정될 수 있어야 하지만, 사건이 사건이기 위해서 그것은 규정 가능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아포리아는, 데리다에 따르면 결정의 아포리아와 교차하고, “그것을 축적하거나 과잉규정하는것이다. 왜냐하면 결정이 계산 가능성 및 지식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면, 결정은 항상 어떤 사건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사건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이 지닌 이러한 사건성이 강조된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결정의 아포리아는 더 첨예하게 제기된다. 그것은 늘 확정 불가능한 아마도”(peut-être, perhaps)의 양상을 띠게 된다.


주체와 관련해 보면, 사건은 늘 주체를 기습하는, 따라서 주체를 놀라게 만드는(surprendre) 어떤 것이다. 사건이 진정한 의미의 사건이라면 그것은 예상 가능하거나 계산할 수 있는 어떤 것이어서는 안 되며, 주체를 기습하고 놀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는 사건에 대해 속수무책이고 수동적이고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에 늘 노출되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자유로운 주체라 하더라도 사건에 대해서는 자유롭지도 능동적이지도 자율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사건은, 주체를 변용하는(affecter) 것이다. 사건은 주체를 기습하여 주체를 놀라게 하고 주체를 다른 것으로 변용시킨다. 사건 이전과 이후 주체는 동일한 주체로, 동일한 어떤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슈미트가 적과 동지의 구별을 정치적인 것의 규준으로 삼고, 특히 예외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가장 탁월한 정치적 주체인 주권자의 본질로 정의할 때, 그는 주권자가 사건에 대해 수동적이거나 취약한 것이 아니라 또한 그것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하고 보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사건이 아닐 것이며, 주체가 여전히 주도권을 장악하고 보존할 수 있다면, 주체는 늘 바로 그것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첫 머리에 언급하듯이 192030년대에 쓰인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나 󰡔정치신학󰡕, 그리고 다른 저작들 역시, 또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저술들까지도 슈미트의 중요한 의도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20세기에 고유한 의미의 적의 상실,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상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막거나 여기에 맞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권자가 사건에 대해 주도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보존하고 있는데, 또한 예외상태에서 적과 동지를 구별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어떻게 적을 상실하는 일이, 따라서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 소멸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가? 슈미트의 시도 자체가, 그리고 그의 시도의 실패 자체가 정치적인 것에 관한, 예외상태, 주권에 관한 그의 논의가 본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논의에 깔려 있는 주체 개념의 한계로 인해, 따라서 결정 불가능성의 아포리아 및 사건의 아포리아에 대한 맹목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는 슈미트가 그 자신이 유럽공법이라고 부르는 법질서 체계를 불변의 국제적인 규범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질서에서 주요한 행위자로 존재하는 국민국가들을 보편적인 정치적 공동체로 전제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것의 기원에 관한 물음도 또한 종말에 관한 물음도 슈미트의 법학이나 정치신학에서는 제기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보면 이러한 기원에 관한 물음이 󰡔대지의 노모스󰡕에서 체계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Carl Schmitt, Der Nomos der Erde im Völkerrecht des Jus Publicum Europaeum (1950), Berlin: Duncker & Humbolt, 1974(󰡔대지의 노모스: 유럽 공법의 국제법󰡕, 최재훈 옮김, 민음사, 1995.] 하지만 그 물음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원이나 종말 또는 역사적 변화, 곧 주체를 놀라게 하고 주체에게 기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슈미트 자신의 개인적역사적 우여곡절이 그것의 탁월한 표본이 아닌가? 데리다가 계산을 넘어서야 할 필연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계산이나 규칙, 적법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 정의로운 결정은 이 두 가지 필연성을 모두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착의 위험이 모든 결정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 폭력의 불가피성, 하지만 권력을 넘어 약한 메시아적 힘을 향해

 

다른 한편 데리다가 슈미트와 더불어 투쟁, 갈등, , 폭력이 정치의 고유한 요소를 이루고 있는 점에 찬동하리라는 것은 그의 다른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가령 󰡔법의 힘󰡕을 생각해보면, 데리다가 법으로서의 정의 개념 자체에, 이 되는 것으로서의 정의, <>으로서의 법 개념 자체에 본질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힘”(Derrida 1994a, 15. 강조는 원문)에 관해 말할 때, 힘은 법, 법적인 정의, 따라서 정치의 고유한 요소라는 것을 긍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법이라는 것이 법 외부에 있는 어떤 힘이나 세력(가령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계급) 또는 폭력의 도구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법 자체가 힘이자 세력 또는 폭력이라는 것을 뜻한다.[이점에서 데리다는 알튀세르나 푸코와 구별된다. 알튀세르가 법 자체가 지닌 힘 내지 강제성을 환기시키면서도 그 힘의 수행성에 주목하는 대신 그것을 계급 지배의 도구로 환원한다면(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aris: PUF, 1995(󰡔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4장 참조), 푸코는 법을 전근대적인 주권 권력의 핵심으로 파악할 뿐, 그것에 대해 근대 권력의 장 속에 고유한 위상 내지 기능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점에 관해서는 진태원, 󰡔을의 민주주의: 새로운 혁명을 위하여󰡕, 그린비, 2017 7장 참조.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의 제목의 더 정확한 번역은 법이라는 힘(force de loi)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데리다가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폭력적법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 힘”(Derrida 1994a, 1617)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할 때, 이는 단순히 수사학적인 질문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법에 고유한 적법한 힘과 부당한 폭력 사이의 구별이 개념적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함축하는 질문이다. 실로 해당 대목에서 데리다는 매우 미묘한 논변을 전개하고 있다.[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폭력의 쉬볼렛: 벤야민, 데리다, 발리바르, 󰡔세계의 문학󰡕 135, 2010년 가을호 참조.]


또 다른 텍스트에서도 데리다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데리다는 {우편엽서}에 수록된 유명한 논문 프로이트에 대해 사변하기/프로이트에 편승하기[Jacques Derrida, “Spéculer sur Freud”, in La Carte postale, Paris: Flammarion, 1980. 이 논문의 제목은, 데리다의 다른 많은 글이나 제목과 마찬가지로 너무 다의적이어서 한두 가지 표현으로 충분히 의미를 살리기 어렵다.]에서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제기한 죽음충동’(Todestrieb, pulsion de mort)에 관해 엄밀하게 살펴본 바 있으며, 20년 뒤에는 다시 한 번 이 문제로 돌아가 죽음충동과 결부되어 있는 Bemächtigungstrieb, 권력충동 내지 주권적 장악의 충동”(pulsion de pouvoir ou maîtrise souveraine)의 문제를 제기한다. [Jacques Derrida, États d’âme de la psychanalyse, Paris: Galilée, 2000, p. 14. 이 책의 제목 역시 거의 번역이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이처럼 갈등과 투쟁, 힘과 폭력, 권력 등의 불가피성을 긍정한다고 해서 그가 칼 슈미트처럼 실존적 현실주의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슈미트는 적과 동지의 구별을 규준으로 삼는 정치적 대립은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대립이라고 주장하며, “, 동지, 그리고 투쟁이라는 개념들은 ... 물리적 살해의 현실적 가능성과 ... 관련된다는 점에서 현실적 의미를 가진다”(Schmitt 1979, 20 (국역) 4546)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인 것은 결국 전쟁으로 귀착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슈미트는 전쟁이란 적대관계의 가장 극단적인 실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의도는 정치적인 실존이 유혈투쟁에 불과하다거나 정치적인 것의 정의가 호전적이거나 군국주의적인 것”(Schmitt 1979, 20 (국역) 46)을 본질적으로 포함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전쟁으로 환원한다는 비판에 대한 반비판으로는 특히 에른스트 볼프강 뵈켄회르데, 카를 슈미트 국법학 저작의 열쇠로서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 헬무트 크바리치 엮음, 김효전 옮김, 󰡔반대물의 복합체: 20세기 법학과 정신과학에서 카를 슈미트의 위상󰡕, 산지니, 2014 참조.] 곧 그의 논점은 사람을 살해하는 것, 특히 집단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어떠한 합리적 목적, 얼마나 정당한 규범, 또 얼마나 이상적인 강령,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적 이상, 어떠한 정당성이나 합법성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정치적인 것이란 존재적 의미에서 현실적으로 적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며, 이때에는 타인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전쟁 ... 그것은 규범적 의미가 아니라 실존적(existenziellen) 의미에 불과한 것”(Schmitt 1979, 36 (국역) 66)이다.


하지만 데리다는 슈미트의 이러한 주장의 근저에는 목적론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현상은 오직 적과 동지의 편 가르기의 현실적 가능성(reale Möglichkeit)과 관련을 가짐으로써만 파악되거나 포착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물리적 살해의 현실적 가능성과 같이 여러 군데에서 되풀이해서 현실적 가능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데리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이러한 '현실적 가능성'이 현존화되거나 현실화되는가, 가능태로서 아니면 현실태로서? 어떻게 이러한 현실이 때로는 현존을, 때로는 가능태 자체를 표시하는가? 전쟁에서. 아무튼 극단으로서의 전쟁, 예외상태의 극단적 한계로서, “극단적 사건성으로서의 전쟁에서. ... 이러한 현실적이거나 가능적인 현존은 사실이나 사례의 현존이 아니라, 목적의 현존이다. 정치적 목적, 이런저런 정치적 목표 또는 이런저런 정치의 목표가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목적(...)의 현존이다.”(Derrida 1994b, 155. 강조는 원문)

 

요컨대 슈미트 자신은 전쟁은 정치적인 것의 목적이 아니라 전제또는 그것의 극단적인 실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쟁과 정치적인 것 사이에 거리를 두려는 슈미트의 시도는, 그것에 본래적인 목적론으로 인해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데리다는 20세기 자유민주주의의 규범적 질서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이러한 갈등과 투쟁, 폭력과 권력의 범람에 직면하여 그 너머가 어떻게 가능한지 사유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나의 질문은 오히려, 그리고 뒤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사유에 대하여, 도래할 정신분석적 사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또 다른 너머(un autre au-delà)가 존재하는가, 잔혹성이 고지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실행되는 것으로 보이는 쾌락원리와 현실원리, 그리고 죽음충동 내지 주권적 장악의 충동, 그리고 다른 것들과 같은 이러한 가능태들 너머에 있는 어떤 너머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전혀 다르게 말하면, 이 외관상 불가능한 것, 하지만 다르게 불가능한 것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가? 곧 죽음충동 내지 주권적 장악의 충동의 너머, 따라서 잔혹성 너머, 충동들과도 원리들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을 어떤 너머를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가?”(Derrida 2000b, 14. 강조는 원문)

 

정신분석과 죽음충동, 따라서 잔혹과 주권을 가능성과 불가능성 또는 불-가능한 가능성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일은 또 다른 심층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간단히 논점만 언급해둔다면, 데리다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너머를 불가능한 무조건적인 것(l’inconditionnel impossible)의 다수의 형상들(Derrida 2000b, 83)에 입각하여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한 형상들에는 환대, 선물, 용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견 불가능성, ‘아마도’, 사건의 그리고 만약’, 도래, 타자 일반의 도래, 타자의 도착함”(Derrida 2000b, 같은 곳)이 있다. 또한 {법의 힘}에서 데리다가 말한 정의’, 그리고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제시한 바 있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도 데리다가 언급한 불가능한 무조건적인 것의 형상들에 포함될 것이다.

 

3. 주권과 자기면역

 

데리다는 {불량배들}에서 민주주의가 자기의 권력, 자기의 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의 자기는 그리스어로는 autos, 라틴어로는 ipse에 해당하는 것으로, 데리다는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원리 내지 가치를 이루는 자유, 평등, 인민 등과 같은 개념들이 모두 이러한 의미의 자기”, 또는 자기성”(ipséité)의 성립 가능성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나는 자기성이라는 말을, 모종의 나는 할 수 있다”(je peux), 또는 적어도, 모임 내지 회합/의회(assemblée), 함께-있음, (또는 흔히 말하듯) “함께 살아가기의 동시성 속에서 자신을 재전유하면서 자신에게 자신의 법, 자신의 법의 힘, 자신의 자기 표상/자기 대표(représentation de soi), 주권적 모임(rassemblement)선사하는 /권력으로 이해하겠다.”(Derrida 2003b, 30. 강조는 원문)

 

그것은 민주주의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정치적 행위, 곧 선언하고 발언하고 투표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또 때로는 저항하고 봉기하고 변혁하는 모든 행위는 다른 사람의 권위나 도움, 또는 강제나 제약 없이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의 힘으로 이를 수행하는, 따라서 자기 자신으로서 성립하고 실존하고, 유지될 수 있는 어떤 자기의 가능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기가 전제되지 않은, 그것이 성립할 수 있으며 작동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정의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데리다는 이러한 자기의 권력이 주권이라는 개념에 집약되어 있다고 본다. “모든 국가 주권 이전에, 국민국가, 군주정의 주권 이전에, 또는 민주주의에서는 인민 주권 이전에, 자기성은 적법한 주권 원칙, 어떤 권력이나 힘, 크라토스(kratos), 크라티(cratie)가 지닌 인정되거나 신임이 부여된 지배권(suprématie)을 명명한다.”(Derrida 2003b, 31) 그것은 주권이야말로 분할 불가능한 일자, 자기의 상징이자, 지고한(“sovereign”이라는 단어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 자율적 결정의 심급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가 없이 민주주의가 성립 불가능하다면, 또한 주권 없이도 민주주의는 성립 불가능하다.


하지만 데리다가 주권을 마냥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데리다 사상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데리다의 주권 개념은 그의 후기 사상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자기면역(autoimmunité) 개념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이 개념은 생물학이나 의학에서는 보통 자가면역이라고 번역되는데, 이 개념의 접두어 ‘auto-’는 어원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철학에서도 대개 자기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언어적 일관성을 위해 이 글에서는 자기면역이라고 번역한다.1993년 저작인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처음 등장했을 때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살아 있는 자아는 자기면역적이지만, 그들[마르크스와 슈티르너-인용자]은 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살아 있는 유일한 자아로 구성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동일한 것으로서 자기 자신과 관련시키기 위해, 살아 있는 자아는 필연적으로 자기 내부로 타자를 영접하게 되며(기술 장치들의 차이(差移), 되풀이 ()가능성, 비유일성, 보철, 합성 이미지, 허상과 같은 죽음의 여러 가지 모습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언어와 함께, 언어 이전에 시작된다), 따라서 외관상으로는 비자아, , 대립자, 적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면역적인 방어기제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맞서서 작동시켜야 한다.”(Derrida 1993, 275)

 

그리고 이 개념은 그 이후 {신앙과 지식}(Derrida 2000a, 67 (국역) 205206, 23)), {테러 시대의 철학}(Derrida 2003a, 107 (국역) 206 이하) 등에서 활용되었다가 {불량배들}에서는 특히 다음과 같이 재규정된다.

 

내가 자기면역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자기 자신에 대해 해를 끼치거나 약화시키는 것, 심지어 자기 자신의 보호장치를 파괴하는 것 ... 그리하여 자살에 이르거나 자살의 위협을 가하는 것만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또한 좀더 심각하게는 ... 나 또는 자기, 에고 또는 자기(autos), 자기성 자체를 손상시키는(entamer) , 자기의 면역성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단지 자기 자신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따라서 또한 자기성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단지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시성/자기 준거성(sui-référentialité), 자살의 자기(soi)를 위태롭게(compromettre) 만드는 것이다.”(Derrida 2003b, 71. 강조는 인용자)

 

원래 생물학 및 의학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원래의 맥락에서 본다면 질병을 가리키며, 따라서 매우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에게 아포리아, 결정 불가능한 것 또는 차(差移) 등이 일방적으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성격을 띨 수 없는 것처럼 자기면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데리다에게 자기면역은 민주주의의 원리 자체에 내재한 민주주의의 난점 또는 아포리아를 뜻한다. 자기면역이 가리키는 것은 첫째, 민주주의는 보편적인 평등과 자유, 권리를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항상 시민들 가운데 일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공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자기면역적 위상학은 항상 민주주의를 다른 곳으로 보내도록/면직하도록/연기하도록(renvoyer) 명령한다.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의 적들을 밖으로 보내고 밀어내고 배제함으로써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민주주의를 밀어내거나 축출하고 배제한다. ... 자기면역적 논리와 연계된 결정 불가능성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근대의 자유주의적인 의회 민주주의 ... 내에서 우리는 결코 이민자들, 특히 국민적 영토 안으로 들어와서 노동을 하고 있는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허가하거나 거부하는 것, 따라서 그들을 배제하는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지 아닌지 입증할 수 없을 것이다. ... 이른바 다수자 투표가 비례 투표에 비해 더 민주주의적인지 덜 민주주의적인지도 입증할 수 없을 것이다. 두 가지 투표 형태는 민주주의적이면서도 동시에 배제를 통해, 보냄/면직/연기(renvoi)을 통해 자신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보호한다.”(Derrida, 2003b, p. 60) 󰡔불량배들󰡕에서 랑부아(renvoi) 또는 동사인 랑부아예(renvoyer)는 다의적으로 산종되어 있다. 그것은 보내기’, ‘반송하기를 의미하지만, 또한 지연을 뜻하기도 하고, ‘해고내지 면직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둘째, 또한 민주주의는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민주주의를 지연시킨다. “하지만 보냄은 또한 시간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자기면역은 또한 민주주의의 선거와 도래(avenement)를 나중으로 지연할(renvoyer) 것을 명령한다. 이러한 이중의 랑부아(renvoi)(타자에게, 타자를 보내기, 지연하기)는 민주주의 자체 속에 기입된 자기면역적 숙명성이다.”(Derrida 2003b, 6061. 강조는 원문) 이러한 배제와 지연의 필연성을 고려한다면, 민주주의적인 자기면역은 부정적인 것이라고, 민주주의의 온전한 실현,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장애가 되는, 따라서 원칙적으로 제거하고 뿌리 뽑아야 할 질병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데리다는 자기면역에 바로 민주주의의 기회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데리다가 민주주의는 자기의 권력에, 곧 주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할 때, 이는 민주주의는 본원적으로, 그 개념, 그 원리 자체 내에서 면역적인 성향을 띠고 있음을 함축한다. 곧 민주주의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비자아, , 대립자, 적수를 몰아내고, 민주주의의 자기의 논리, 자기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기-면역은 바로 이러한 면역의 경향, 곧 자기의 논리, 자기의 권력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점, 민주주의가 자기를 고수하고 이를 위해 타자를 절대적으로 배제하고 몰아내려고 하면 할수록 민주주의는 자기 파괴, 자살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따라서 자기면역은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 속에 함축되어 있는 자기의 논리, 주권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그 속에 이질성, 타자성의 여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자성은 민주주의의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타자성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리로서, 항상 이미 민주주의 자체 내에 기입되어 있으며, 자기의 권력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하면서도 또한 분리될 수 없게 결부되어 있다.

 

나를 괴롭혀온 것, 나를 의문에 빠뜨린 질문은 어떤 민주주의의 공리계를 구조화하는 것, 곧 전체, 원과 구의 자기 복귀, 따라서 일자의 자기성, 자율성의 자기, 대칭성, 동질성, 유사성, 닮은 것 또는 비슷한 것, 심지어 결국에는 신,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인 것의 또 다른 진리, 타자, 이질적인 것, 타율적인 것, 비대칭적인 것, 산종적 다수성, 익명적인 아무나”, “누구나”, 비규정적인 각자의 진리와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심지어 충돌하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으리라는 점을, 아마도 고백해 두어야 할 것 같다.”(Derrida 2003b, 35)

 

데리다에게 타자 또는 타자성, 이질성은 민주주의의 외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진리,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리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진리는 익명적인 아무나”, “누구나”, 비규정적인 각자””의 진리다. 이는 내가 다른 글에서 말한 것처럼 데모스의 이중적 측면, 곧 보편적이면서 독특한 데모스라는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진태원 2017 5부록참조) 데모스의 보편적 측면이 평등과 자유, 권리 등의 보편성을 뜻한다면, 데모스의 독특한 측면은 정체성을 갖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곧 데모스로서의 시민은 다른 시민들과 평등한 권리와 자유, 행복을 누릴 권리를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특한 존재로서의 시민은 아무런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을 권리, 익명적인 누군가로 존재할 권리, 비밀을 지닌 존재자로 살아갈 권리”(진태원 2017, 216. 강조는 원문)를 갖는다. 이것은 아마도 달리 말하면 주권자가 아닐 권리를 뜻할 것이다. 따라서 데모스는 주권자이면서 동시에 주권자가 아닌 존재자, 주권자로 존재하고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자격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데모스는 주권자에 속하지 않을 권리, 주권자가 아닐 권리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데리다의 관점은 슈미트처럼 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적과 동지의 구별이라는 가장 강도 높은 극단적인 대립에서 찾으려고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자유주의의 또 다른 변종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의 입장에서 보면 슈미트의 현실주의적또는 실존적관점은 국민국가라는 단위(또는 그 국민국가들의 체계)를 정치의 본래적 단위로 전제하게 되며, 더욱이 국민적인 것을 주권으로 환원한다. 그리고 이때 주권적인 것은 다시 루소적인 인민주권과 달리 (또는 그것에 거슬러) 인격화된 주권자의 형상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이는, 슈미트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인민또는 국민에 본질적인 갈등성과 이질성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거나 환원하는 것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순환성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길이 민주주의의 자기면역 및 데모스의 이중성이라는 데리다의 관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데리다 주권 이론의 의미 중 하나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IV. 국민적인 것을 넘어서: 국경의 민주화

 

따라서 데리다가 (옳든 그르든 간에) 주권이라는 개념을 폐기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아감벤에게 이는 데리다가 실패한 메시아주의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징표 중 하나일 것이고(Giorgio Agamben, Homo Sacer: Il potere sovrano e la nuda vita, Torino: Einaudi, 1995(󰡔호모 사케르󰡕,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반대로 자유주의적 이론가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데리다 주권 개념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으로는 Paul Patton, “Deconstruction and the Problem of Sovereignty”, Derrida Today, vol. 10, no. 1, 2017 참조. 또한 약간 다른 맥락이기는 하지만 데리다 정치철학을 자유주의적(또는 네오 칸트주의적) 세계시민주의의 논리 속에서 (제한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로는 Seyla Benhabib, The Rights of Others: Aliens, Citizens and Residents. The John Seeley Memorial Lectures, Cambr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타자의 권리: 외국인, 거류민 그리고 시민󰡕, 이상훈 옮김, 철학과 현실사, 2008 5; Another Cosmopolitan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6 pp. 45~75를 각각 참조. 하지만 데리다가 보기에 여전히 형이상학, 특히 서양 형이상학의 논리에 빠져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감벤일 것이며(Derrida 2008, 여러 곳 참조), 그가 명시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지만, 자기면역의 역설 내지 이율배반(이는 곧 정치 그 자체의 역설 내지 이율배반)을 중화하려는 자유주의적 시도는 이러한 역설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그 역설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점에 관해서는 Honig 2009 1장 참조.] 더 나아가 주권이라는 것이 단지 잔재라든가 불가피한 악 내지 차악이라는 의미에서만 명맥을 유지한다고 볼 수도 없다. 주권이 자기성을 함축하고 자기성이 모든 주체성의 조건이라면, 자기성으로서의 주권은 정치 일반,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기성으로만 존재할 때, 자기성의 요소만을 보존하고 강화하려고 할 때, 그것은 면역 및 더 나아가 자기면역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데리다의 논리를 조금 더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의미에서 국민 또는 국민적인 것의 문제를 살펴보자. 국민, 국민국가 또는 국민주의의 문제는 그동안 아주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상하게도 국민적인 것의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국경(frontière, border)의 문제는 거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국경에 관해 일찍부터 주목하고 흥미로운 주장을 제시한 사람이 에티엔 발리바르인데(Balibar 2001 Balibar 2005를 각각 참조), 는 국경을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국경은 정상적인법질서에 대한 통제와 보증이 중지되는 대표적인 장소(국경이야말로 진정으로 근대 법치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예방적인 대항 폭력의 형태를 띠는 장소다.”(Balibar 2001, 329) 슈미트와 아감벤은 예외상태와 주권이라는 개념을 현대 정치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부각시킨 바 있는데, 발리바르는 이들을 염두에 두면서도 이들과 다소 다르게 예외상태의 대표적인 장소를 국경이라는 정치 제도에서 찾는다. 그는 특히 적과 동지, 예외상태에서의 결정을 본질로 지니는 슈미트 주권 개념의 실질적 핵심은 국경 개념에 있다고 주장한다.

 

슈미트에게 주권은 항상 국경 위에서 설립되고 무엇보다도 국경의 부과로 실행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주권 이론과, 친구와 적의 관점에서 정치를 정의하는 것(또한 이런 정의의 연장으로서, 내부의 적의 범죄화. 이는 외부의 적, 정당한 적(justus hostis)에 대한 정당화와 맞짝을 이루고 있다) 사이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경은 정상적인법질서에 대한 통제와 보증이 중지되는 대표적인 장소(국경이야말로 진정으로 근대 법치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 “폭력의 합법적 독점예방적인 대항 폭력의 형태를 띠는 장소다. 따라서 대지의 노모스는 국경들의 질서 자체, 곧 국가적 합리성에 봉사하게 함으로써 폭력을 길들이는 것으로 간주되는 폭력이다.”(Balibar 2001, 329. 강조는 원문)

 

국경이 민주주의의 반민주주의적 조건이라는 것은 우선 국경이 정치 공동체, 특히 근대국가의 헤게모니적인 형태인 국민국가가 성립하고 존속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국경의 설정을 통해 국민적 정체성이 물질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경은 자신과 타자, 국민과 비국민을 구별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며, 따라서 국민적 경계 바깥으로 외국인들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국민 성원들 중 일부를 이방인들(또는 외국인들의 첩자 내지 내통자. 우리나라의 경우는 빨갱이’, ‘종북’, ‘친일파)로 표상하여 억압하고 배제하기 위한 제도다. 이런 의미에서 국경은 탁월한 배제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본격화된 국민국가의 위기는 국경의 약화를 낳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상상적으로 강화하기도 한다. 초국적 자본의 힘에 의해 국민국가의 경제 및 사회질서가 좌우되고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의 군사적정치적 힘에 약소 국민국가들의 안보가 좌우되는 상황에서 대중들은 심각한 정체성 위협을 느끼며, 이런 공포 내지 외상을 상상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다. 이 때문에 극우 정당들이 조장하는 극단적 국민주의(nationalism)가 쉽게 먹혀들게 되며, 특히 사회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개인들 및 집단들에게 더욱 더 쉽게 수용된다. 이들은 사회권 축소(곧 실업수당 삭감, 복지 예산 축소 등과 같은)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이런 피해의 원인이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에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포퓰리즘의 확산 속에서 이런 대중적인 국민주의 및 인종주의는 국가정책이 점점 더 제도적 인종주의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 국민과 외국인의 차별 및 배제 경향을 강화하게 되며, 유럽적인 수준에서(또는 더 나아가 지구 전체의 수준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경계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발리바르는 오늘날 국경은 더 이상 국가의 지리적 한계, 곧 국가와 국가가 지리적으로 맞닿은 지점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국민국가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경제 영역과 문화 영역에서 사적인 관계들 및 사회적 관계들이 점점 더 ()-국민적(trans-national)이고 관()-국경적인(trans-border) 차원에서 전개되는 반면, 대부분의 공적 제도는 여전히 국민국가의 틀을 유지하는 데서 생겨나는 결과다. 이에 따라 세계화된 거대 도시들의 근교에서 다양한 인종들 간의 민족적인(ethnic) 경계들이 재생산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한 아감벤이 특히 주목했던 것처럼 주요 국제공항에서 볼 수 있는 구류 지대 및 검색 체계가 탁월한 예외 상태, 곧 개인의 자유를 비롯한 권리들이 정지되는 장소가 되는 현상도 생겨난다.


이런 경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발리바르의 답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장기적인 제도적 창조의 과제로, 인민과 주권, 시민권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근원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경이 영토와 인구, 주권 사이의 관계가 물질적제도적으로 집약되어 있는 상징적 장소이며, 따라서 세계화가 강화하고 있는 국경의 모순과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의 틀에 대한 변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고대 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 또한 제국에서 국민국가로 이행하는 과정과 비견될 만한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이고 갈등적인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발리바르가 그 제도적 창안의 실마리 중 하나로 제시하는 것은 소속의 시민권을 거주의 시민권 내지 이산적 시민권”(diasporic citizenship)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전자가 혈통이나 언어, 문화, 국적 등과 같은 공통적인 기원과 소속을 중심으로 시민권을 사고하고 제도화하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출신의 차별 없이 외국인들에게도 정치체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대응 방안은 국경의 민주화에서 찾을 수 있다. 발리바르는 특히 국경의 강화 경향에 맞서기 위한 정치의 방향을 여기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국경의 무조건적인 철폐라는 무정부주의적 주장(이것의 다른 표현은 이른바 유목주의)과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테제다. 국경의 무조건적인 철폐는 오히려 경제적 세력들의 야만적인 경쟁에 좌우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Balibar 2001, 230)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섣부른 해법 대신 발리바르는 국경에 대한 표상을 탈신성화하고 국가와 행정 기관이 개인들에 대하여 국경을 활용하는 방식을 쌍무적인 통제의 대상으로 만드는것을 핵심으로 하는 국경의 민주화를 가능한 현실적인 해법으로 제시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국경의 민주화라는 발상은,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의 법칙, 곧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 사이의 아포리아적인 협상의 논리와도 부합하는 발상이다.


국경의 민주화는 국민적인 것, 국민 문화의 상징적이고 상상적인 구성 및 재생산에 관해서도 의미 있는 화두를 제기한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는 용어는 이제 상당히 보편화된 용어이며, 동시에 그 자체가 매우 차별적이고 내적 배제의 의미를 함축하는 용어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보면 대외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곧 세계화의 과정 속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사회는 정의상 다-문화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한 20여 년 사이에 더 이상 외국인들이 낯선 존재자들이 아닌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주의라는 것이 차별과 배제의 기표로 작용한다면,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Etienne Balibar, “Europe: Provincial, Common, Universal”, Annali di scienze religiose, Turnhout, no. 10, 2017 참조.첫째, 다문화주의는 한편으로 문화에 대해 매우 <정태적인> 관념을 함축하고 있다. 곧 문화라는 것은 어떤 집단의 고유한 생활양식이자 관습, 사고방식이자 행태이며, 따라서 정의상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한국의 문화는 한국인들(한국 민족’)의 고유한 생활양식과 관습, 사고방식, 행태를 표현하는 것이며, 중국 문화는 중국인들, 일본 문화는 일본인들, 미국 문화는 미국인들, 프랑스 문화는 프랑스인들 등과 같이 문화 자체의 불변성을 가정하고 있다. 둘째, 따라서 이는 어떤 문화의 <내적> 다양성 내지 혼성성(hybridity)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다. 마치 한국 문화라는 것은 단군 이래 수 천 년 동안 불변적인 정체성 내지 동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따라서 김치는 단군 이래 한국인들이 계속 섭취해온 음식인 것처럼, 제사의 관습은 적어도 조선 시대 이래 아무런 변화 없이 계속 되어온 것처럼, 한국어는 처음부터 오늘날의 한국어로 존재해온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미국이나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알다시피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김치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며, 오늘날 통용되는 여러 제사의 관습도 일제시대 또는 해방 이후에 형성된 기형적인 혼성물이다. 중국의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 역시 매우 혼성적일 뿐더러 최근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전제에 입각해보면, 다문화주의란, 불변적이고 단일한 한국의 문화,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이러한 기본적인(정당하면서 보편적인) 문화의 바탕 위에, 오늘날의 조건에 맞춰 이러한 문화를 보존하고 강화하기 위한 행정적치안적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는 사실 국민주의의 한 변형이자 그 방편인 셈이다. 이런 조건에서 다문화주의가 한국 문화에 이질적인 것들을 위계적으로 포섭하거나 차별적으로 배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국민적인 것의 논리 및 그것이 수반하는 폭력을 넘어서고 싶다면, 문화 자체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실천, 제도화가 필요하다. 그것을 상호문화”(interculturalism)라고 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다중문화”(poly-culturalism)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존의 다문화주의가 기반을 둔 두 가지 전제를 깨뜨리는 것이다. 가령 한국어가 한국 사회의 유일한 보편적 언어로 기능한다면, 상호문화나 다중문화의 여지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어를 습득하고 한국어를 잘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어 이외에 다른 언어들이 또 다른 공용어로 사용될 수 있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할 것이다.[이점에 관해서는 Jacques Derrida, Le monolinguisme de l’autre ou la prothèse de l’origine, Paris: Galilée, 1996 참조.더 나아가 국적과 상관없이 더 많은 시민 대중들이 공론장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 TV에서는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제작되고 방영되고 있지만, 이것은 매우 제한적일 뿐더러 예능적인 성격에 한정되어 있다. ‘특별한 외국인이 아닌 이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실은 부재하는 유령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재현/대표할(represent)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이것은 한편으로 국민적인 것의 경계에 갇혀 있는 시민성을 좀 더 보편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적인 것의 논리가 전제하는 획일적 정체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국민적인 것을 내적으로 더 다양하고 혼종적인 것으로, 따라서 관-국민적이고, -국경적인 것으로 전화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는 데리다가 말하는 주권의 자기면역, 데모스의 이중성에 대한 실천적 번역의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나종석, 정치적인 것의 본질과 칼 슈미트의 자유주의 비판, 󰡔헤겔연구󰡕 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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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mhhh 2018-10-2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진태원 선생님. 데리다에 많은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는 한 대학원생입니다.(철학과는 아닙니다)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지금 데리다의 저서를 대부분 영어로 독서 중인데, 불어 원저로 공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까요? 이왕 데리다의 철학에 의지하기로 했다면 불어를 공부해서 원전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대부분의 저서가 영어로 나와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입니다. 일종의 ‘결정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결정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즉시 결정해야겠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almas 2018-10-26 01:2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약간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답변할 수 있겠네요. 평범한 연구자가 되려면 영어로 만족하고 훌륭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면 불어를 공부해서 불어로 읽어보도록 하세요. :) 무엇을 전공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리다 저서를 대부분 영어로 읽을 수 있다면, 상당한 언어적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데리다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매우 많습니다. 실제로 읽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요.^^; 만약 데리다를 불어로 읽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읽게 된다면, 영어로 만족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원과 역량, 그리고 인내심과 자신감도 덤으로 얻게 되겠죠. 데리다 이외의 다른 사상가들이나 작가들도 접근할 수 있겠고요. 그러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당장 도전하십시오. ㅎㅎ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국민청원"의 제목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인터넷 웹하드 업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성범죄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놀라운 고발입니다.


한편으로 국산 야동을 올려서 돈을 벌고, 이 야동을 지워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디지털 장의사"라는 삭제 업체를 따라 만들어서 또 돈을 벌고, 


시간이 지난 뒤 제목을 바꿔서 다시 야동을 등록해서 돈을 버는 


파렴치한 성범죄 카르텔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료일이 8월 28일이니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서 서둘러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청원의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322420?navigation=best-pet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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