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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뢰즈와 가타리, 또는 들뢰즈-가타리, 또는 들뢰즈가타리는 두 개의 구분되는 고유명사이자 서로 뗄 수 없게 연결된 머리 둘 달린 <괴물>(이들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에서)이면서, 또한 수없이 많은 흐름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익명의 뿌리이기도 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무언가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그들이 이러한 통일성으로서의 다양성, 다원성으로서의 일원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철학사에서 공동의 저술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1846), 『공산당 선언』(1848) 등을 공동으로 저술했으며, 그 외에도 그들의 작업은 늘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들뢰즈와 가타리에 조금 앞서 루이 알튀세르는 자신의 제자들이자 동료들인 발리바르, 마슈레, 랑시에르, 에스타블레와 함께 공동으로 저 유명한 『자본을 읽자』(1965)를 발표했다. 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의 작업은 두 개의 분리된 인격체, 두 명의 독립적인 사상가가 결합해서 그들이 각자 이전에 추구해 왔던 사상과 구분되는 새로운 사상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례들과 구분되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2.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은 또한 그 자체로도 매우 새롭고 매우 강력하다. 매우 새롭다는 것은 이들의 사상이 플라톤 이래 서양 사상의 주요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노선을 제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매우 강력하다는 것은 이러한 노선이 플라톤주의 철학 또는 초월성의 철학과 지배권력 사이의 본질적 연관성을 드러내 주고, 이를 넘어설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은 일차적으로 존재행동학(onto-éthologie)의 관점에 따라 파악될 수 있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1968),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1968) 및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1972) 『천개의 고원』(1980) 등에서 체계화된 존재행동학의 요소들은 존재의 일의성 또는 <고른 판>과 역량의 존재론 또는 <기관 없는 신체> 및 일반행동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이와 반복』에서부터 말년의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일의성은 들뢰즈와 가타리 철학의 열쇠어로 남아있다. 존재의 일의성(univocité)이란 일차적으로는 존재가 하나의 의미로 말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왜 존재가 하나의 의미로 말해진다는 사실이 그토록 중요할까? 이는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어온 일체의 초월성의 담론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존재의 일의성을 확인하고 체계화하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존재의 일의성, 존재가 하나의 의미로 말해진다는 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복합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존재의 일의성의 핵심은 단순히 존재의 하나의 의미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원론으로서의 일원론에 있다. 곧 존재와 존재자들, 근거와 근거지어지는 것들 사이의 존재론적 구분이나 간극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존재의 근원적인 다양성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들에게 스피노자(또는 베르그송)의 철학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에 따르면 스피노자(또는 라이프니츠)는 <긍정적 무한>의 철학자다. 곧 그는 무한을 단순히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무한의 내재적 인식가능성을 긍정하면서, 다양한 무한들, 따라서 환원 불가능한 다양한 질적 차이들의 소통, 관계의 문제를 자신의 철학의 핵심 문제로 삼았다. 이 때 각각의 무한들은 정의상 자율성과 동등성을 함축하기(이것이 소위 <평행론>의 존재론적 함의다) 때문에, 무한들의 소통, 관계는 항상 이미 타율성과 종속관계를 함축하는 초월적 질서인 <신학적 구도>가 아니라, <내재적 평면> 또는 <고른 판> 위에서 이루어진다.

존재론의 영역에서 초월적 구도, 수직적 위계관계를 배제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내재적 평면 위에서 충분한 합리성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존재자들 사이의 평등한 자유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일의성은 항상 이미 역량(potentia/puissance)의 존재론 또는 기관 없는 신체론을 함축하며, 이를 요구한다.

역량의 존재론은 서양철학의 두 가지 전통에 대한 비판적 대결을 함축한다. 이 두 가지 전통 중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이고, 다른 하나는 원자론이다. 이 두 가지 전통은 서로 비판적인 긴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기에 이들은 존재자들의 생성, 즉 개체화의 문제를 내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공통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곧 이 두 전통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요소들(이것이 형상이든 원자이든)의 관점에서 생성의 문제를 다룰 뿐, 요소들 자체의 생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기에 이는 이들이 존재자들의 내재적 역량을 단순한 가능태(le possible), 곧 그 자체로는 비실재적이며, 초월적인 외부의 원리의 작용에 의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는 허구화된 힘으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니체-베르그송을 따라 이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역량은 그 자체가 실재적인 힘이며, 역량의 내재성 덕분에 존재자들은 자신들의 관계설정을 위해 초월적 원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량의 존재론의 관점에서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운동(비실재적인 무에서 실재적인 현실의 창조라는 점에서 이는 본질적으로 신학적이다)이 아니라 잠재성에서 현행적인 것들(actualités)로의 내재적 차이화의 운동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역량의 존재론의 논리적 귀결은 주체와 객체, 사물과 인간,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존재론적 구분이 실격되고 그 대신 기술적 존재자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의 활동의 문제를 다루는 행동학(éthologie)의 문제가 실천철학의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에톨로지는 원래는 동물들의 행태를 다루는 생물학의 하위분과중 하나이지만,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이는 일의성과 역량의 존재론을 완성하는 철학 체계의 한 부분으로 격상된다. 이런 행동학의 문제설정에 따르면 유와 종의 분류법 대신 역량의 관점에서 존재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분류의 핵심 기준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예를 들면 짐을 끄는 말은 경주용 말보다는 짐을 끄는 소와 같은 부류로 분류된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행동학에서는 목적론적으로 위계화되고 질서지어진 기관과 기능보다는 정서/변용(affection)과 배치가 실천철학의 기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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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존재행동학의 체계가 다루려고 하는 실천적 문제는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1670)에서, 그리고 빌헬름 라이히가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에서 각자 제기했던 질문이다. “수 세기에 걸친 착취 이후에도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도 <현실적으로> 착취와 예속을 <원할> 만큼, 모욕과 착취를 감내하고 있는가? ... 대중들은 전혀 순진한 얼뜨기들이 아니다. 어떤 지점, 어떤 일련의 조건들 아래에서 그들은 파시즘을 <원했으며>, 해명될 필요가 있는 것은 대중들의 욕망의 이러한 도착(perversion)이다.”(『안티 오이디푸스』) 왜 대중들은 자신의 지배를 욕망할까?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이는 대중들의 본질을 이루는 대중들의 역량이 바로 대중들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대중과 대중의 역량의 분리를 조직화하는 것이 바로 미시 파시즘의 체계다.

이들의 미시 파시즘 이론을 이해하려면 우선 푸코의 규율권력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푸코는 17세기 이래 서양 사회의 지배 권력의 작동방식을 규율권력이라는 개념에 따라 이론화했다(특히 『감시와 처벌』 및 『성의 역사 1권』 참조). 곧 푸코는 프랑스 혁명 이래 근대 정치사상이 유포시킨 사회계약론과 주권적 주체의 관점과는 달리,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부정하고 금지하고 억압하는 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권력은 자유롭다고 가정되어 있고 또 스스로도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주체들을 생산해 내고,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지배의 체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푸코는 이를 규율권력이라 부른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19세기 이후 규율권력은 통제권력으로 바뀐다. 통제권력은 규율권력보다 더 심층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며, 규율권력에서는 여전히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는 데 반해, 통제권력에서는 이 양자가 단일한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곧 규율권력에서는 예속적 주체가 자신의 인성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지배장치에 따라 규율되고 감시되지만, 통제권력에서는 이러한 통일성이 해체되고 지배장치 자체가 예속적 주체의 구성요소에 포함된다. 따라서 통제권력은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나 가치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우리가 이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들 및 능력들 자체를 통제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미시 파시즘이 존재한다.

따라서 문제는 미시 파시즘을 변혁하는 일인데, 미시 파시즘은 본질적으로 우리 각자의 근본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이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내재적 해체/변혁과 맞물려 있는 문제다. 바로 이 때문에 이들에게 생성/되기의 문제가 핵심적인 윤리적-정치적 과제로 부각된다. 그리고 다시 이들에게 다수자의 생성들(devenirs de majorité)이나 소수자의 생성들(devenirs de minorité)이 아니라, 소수화되기(devenir-minoritaire)가 중요한 과제라면, 이는 이 후자의 생성/되기가 피지배집단 내에서도 배제된 타자의 타자(여성 흑인 노예들, 이주노동자들, 동성애자들 ...), 또는 오히려 이들을 타자의 타자로 만드는 메커니즘을 변혁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과 집단의 상호구성적 관계, 즉 배치(agencement)를 이론적 문제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며, 이를 수행적 형식으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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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내가 보기에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지지자들이 결국 여전히 답변해야 할 문제는 실천의 문제인 것 같다. 리좀, 배치물, 지층, 성층작용, 판, 절편, 도주선과 단절선, 파괴의 선, 추상적 기계, 도표, 전쟁기계 등과 같이 이들의 저서에 담긴 현란한 개념들과 정신분석, 기호학, 마르크스주의, 문학 등은 물론이거니와 현대 수학 및 물리학, 화학, 결정학, 분자생물학, 동물행동학, 정신의학, 경제학, 음악 등을 넘나들면서 현란하고 난삽한 논의를 전개하는 이들의 작업에 얼이 빠지고 현기증을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슬그머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법하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 모든 논의들이 여기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들의 논의가 노동자들의 분신,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노숙자들의 추위와 굶주림에 대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이는 분명 호의적인 질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의적인 질문도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들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자신들의 사상을 세우면서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질문들과 다르지 않을 질문들이며, 따라서 그들의 사상을 공감하고 따르는 이들 역시 품어야 하고 또 나름대로 답변해야 할 질문들이다. 아마 그때 비로소 들뢰즈와 가타리는 두 개의 분리된 고유명사이기를 그치고, 새로운 가지들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익명의 뿌리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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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 예정인 책의 일부로 들어갈 원고입니다. 아직 최종 교열이 끝나지 않은 원고이므로, 무단 복제나 인용을 불허합니다. 내용에 관해 지적할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코멘트를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1. 데까르뜨 정념론의 구조

근대 합리론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념의 문제 역시 데까르뜨가 논의의 기반을 마련해 준다. 데까르뜨는 최후의 저작인 『정념론』(Passions de l'âme)(1649)에서 스꼴라철학의 정념론과 상이한 이론적 기초 위에서 정념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룸으로써 이후 합리론에서 논의되는 정념론의 이론적 모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데까르뜨 정념론의 핵심 문제는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1-1) 정념론의 철학적 기초: 시초관념들

먼저 정념론의 철학적 기초에 관한 문제가 있다. 데까르뜨는 형이상학과 자연학에서 영혼과 물체, 사유와 연장의 엄격한 이원론에 기초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영혼과 물체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전혀 상이한 속성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일체의 인과관계 및 상호작용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욕망과 같은 정념들은 외부 물체의 운동이 우리 신체에 미친 영향에 따라 생겨난 정기들(esprits animaux)의 운동이 뇌 안의 송과선에 전달되어 일어난 영혼 내의 결과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 정념론은 형이상학과 자연학의 차원에서 배제된 영혼과 신체의 상호작용을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데까르뜨는 정념이라는 현상에 직면하여 이론적 모순에 빠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원론적 틀에서 정념이라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시초관념들(notions primitives)에 관한 이론으로 제시된다(엘리자베쓰에게 보내는 1643년 5월 21일, 6월 28일 편지). 이 이론에 따르면 시초관념들은 우리의 모든 인식의 근거를 이루는 원천과 같은 것으로, 모든 학문은 이 관념들을 잘 구분하고 이것들을 각각의 영역에 잘 적용하는 데서 성립한다. 데까르뜨는 세 가지 시초관념을 제시한다. 먼저 사유가 있다. 이는 영혼과 신에 적용되는 것으로, 이를 기반으로 해서 형이상학이 확실하고 안전한 토대를 갖는 학문으로 성립할 수 있다. 그 다음 연장은 모든 물체들에 적용되는 것으로, 자연학은 이를 바탕으로 해서 구성된다. 데까르뜨가 제시하는 마지막 시초관념은 인간, 즉 “영혼과 신체의 연합”(union)으로서 인간이라는 관념이다. 사유라는 첫 번째 시초관념이 감각과 상상에서 분리된 순수 지성의 활동을 필요로 하고, 연장이라는 두 번째 시초관념은 상상의 도움을 받는 지성의 활동을 요구한다. 반면 세 번째 시초관념은 자신의 명석함을 감각으로부터 도출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세 번째 시초관념은 대상에 대한 이론적 인식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 아니라, 실천학을 추구함을 의미한다. 즉 이는 우리에게 유용하고 해로운 것을 식별함으로써 우리 존재를 잘 보존하게 해주는 실천적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데까르뜨의 형이상학과 자연학에 함축된 이원론적 관점은 정념에 관한 연구에서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이원론적 관점에서 정념의 문제를 사고할 때 제기되는 내적 모순의 문제 역시 제기되지 않는다. 즉 정념의 문제에서 상호작용은 영혼과 신체라는 상이한 존재론적 질서에 속하는 실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만약 그렇다면 데까르뜨의 철학체계는 내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상호작용은 영혼과 신체의 연합으로 사고된 인간과 외부의 대상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곧 데까르뜨에서 정념의 문제는 실천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탐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2) 정념의 정의

그러나 데까르뜨의 정념론이 실천적 유용성을 목표로 하기는 하지만, 이는 그가 정념에 대한 탐구에서 학문적 엄밀성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념론의 실천적 유용성의 조건은 전통적인 정념론을 새로운 학문적 토대 위에서 개혁하는 것이며, 이는 정념에 대한 데까르뜨의 정의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데까르뜨는 먼저 영혼의 분할이론에 기초하고 있는 정념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열등한 부분과 우월한 부분, 감각적인 부분과 이성적인 부분 사이의 싸움터가 아니라 하나의 불가분한 실체다. 이는 불가분적인 영혼과 가분적인 물체를 엄격히 구분하고, 기능(faculté)의 구분 이외에 일체의 영혼의 분할을 인정하지 않는 데까르뜨의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필연적으로 비롯하는 결과다. 따라서 그에게는 전통적인 영혼 내의 갈등이라는 문제 역시 영혼과 신체 사이의 갈등의 문제, 또는 신체의 운동을 표현하는 정념과 영혼의 활동을 나타내는 의지 사이의 갈등의 문제로 제기된다.

데까르뜨에게 표상은 일반적으로 사물을 정신에게 표상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표상의 하나인 정념의 종별성은 사물, 대상에 대한 인지적 정보를 제공해 주는 데 있지 않고,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데까르뜨는 정념을 “지각(perceptions) 또는 감각내용(sentiments) 또는 영혼의 동요(émotions)”(『정념론』 27절)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정념이 지각이라는 것은 영혼의 활동인 의지와 구분하여 정념이 영혼에게 수동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념이 감각내용이라는 것은 지성의 지각과 달리 정념은 혼잡하고 모호한 지각이라는 점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영혼의 동요라는 것은 인지적인 표상과 달리 정념의 특성은 영혼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처럼 정념은 표상, 즉 사유의 일종이라는 점에서 영혼 안에 존재하지만, 정념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영혼이나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 대상과 정기들의 운동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정념이 발생하는 최초의 원인은 외부 대상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이 자극에 따라 발생한 신경기관 내의 정기들의 운동이 뇌 안의 송과선(glande pinéale)을 자극한다. 그리고 끝으로 이 송과선을 통해 영혼 내에서 정념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기들의 운동은 정념 발생의 마지막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과는 상이한 본성을 지닌 것에 의해 수동적으로 발생하는 사유의 양태들이라는 데서 정념(passion), 즉 수동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따라서 데까르뜨에서 정념들은 외부 대상 내지는 인간 자신의 신체의 운동을 원인으로 갖고 있지만, 영혼에 속하는 사유양태들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정념의 발생과정에 대한 설명에서 중요한 것은 데까르뜨가 정념발생의 원인을 신체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데까르뜨가 전통적인 정념론의 문제점을 정념의 성격과 원인의 혼동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곧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스꼴라철학에 이르는 정념론은 정념의 원인을 영혼 자체에서 찾고 이에 따라 정념을 의지의 표현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데까르뜨에 따르면 이는 정념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서나 정념의 유용성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데서 장애가 될 뿐이다.

1-3) 정념의 분류와 열거

데까르뜨의 방법의 이념에 비추어볼 때 정념의 분류와 열거는 정념론을 하나의 학문으로 확립하는 데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데까르뜨의 보편수리학(mathesis universalis)의 이념은 모든 학문대상의 동질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학문영역에서 확실성을 수립하는 절차가 올바른 순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형이상학과 자연학에서처럼 정념론에서도 이 보편적인 방법론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곧 정념의 분류나 열거로 표현된다.

데까르뜨의 방법은 우선 가장 단순한 것, 가장 기초적인 것을 찾고 이로부터 복잡한 것, 파생적인 것을 연역하도록 요구한다. 정념론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여섯가지 기초정념들, 즉 놀람, 사랑과 미움, 욕망과 기쁨, 슬픔으로 제시된다. 이 여섯가지 정념들은 말 그대로 기초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다른 기초정념들로 환원되거나 포섭되지 않은 자율성을 지니고 있으며, 각각 자신의 하위 정념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 정념들 사이에 위계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이것들을 분류하고 제시하는 순서는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가장 먼저 제시되는 정념은 놀람이고, 그 다음 사랑과 미움이 뒤따르며, 마지막으로 욕망과 기쁨, 슬픔이 제시된다. 이러한 순서는 세 가지 기준에 의거하고 있다. 정념을 열거하는 첫 번째 기준은 새로움 또는 단순성이다. 여기에서 새로움이란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항상 영혼을 놀랍게 만든다. 영혼의 변화가 모든 정념의 공통적인 특성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의미의 놀람은 정념의 가장 절대적인 기준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것은 아직 우리에게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알려져 있지 않고, 따라서 자신의 반대항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기도 하다. 이 첫 번째 기준에 따르면 최초의 기초정념은 놀람(admiration)이다.

두 번째 기준은 우리에게 이로운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이다. 여기서 이로움과 해로움은 대상 자체의 객관적인 성질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부합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판별된다. 우리에게 부합하는 것으로 표상된 대상은 우리가 그것을 사랑하게 만들고 해로운 것은 그것을 미워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 기준에 따른 기초정념은 사랑과 미움이다. 사랑과 미움이라는 정념은 놀람에 비해서는 복잡하지만, 아직 시간과 관련을 맺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욕망과 기쁨, 슬픔에 비해서는 단순하며, 따라서 두 번째 순서에 위치하게 된다.

마지막 세 번째 기준은 시간이다. 이는 욕망과 기쁨, 슬픔이라는 세 가지 기초정념을 분류한다. 데까르뜨는 과거 및 현재보다는 미래가 정념에 고유한 시간성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중에서 미래와 관계하고 있는 욕망을 맨 앞에 위치시키고 있다. 욕망 다음에는 현재와 관련을 맺고 있는 기쁨과 슬픔이 따라나온다. 데까르뜨는 이 여섯가지의 기초정념들을 기준으로 다른 여러 정념들을 설명하고 있다(69절 이하). 당대의 정념 분류법의 표준을 제시해주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분류기준은 욕구하게 하는 것(concupiscibilis)과 성마르게 하는 것(irascibilis)의 두 가지 종으로 정념을 분류하고, 이 두가지 종들에 각각 6개와 5개의 하위정념을 귀속시켜 총 11개의 정념을 기본정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분류법과 비교해 본다면 데까르뜨의 정념론은 두 가지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의 정념론은 욕구와 성마름이라는 영혼의 분할이론에 기초한 전통적인 종적 구분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둘째,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정념들 사이에 일체의 파생관계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1-4) 정념의 기능

데까르뜨 정념론의 또다른 독창성은 정념의 긍정성을 강조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정념은 배제되거나 될 수 있는 한 억제되어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데까르뜨는 정념을 영혼과 신체의 연합체인 인간의 고유성에서 비롯하는 자연적 조건으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의 보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데까르뜨가 제시하는 정념의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까르뜨 정념론의 두 가지 중요한 구분을 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먼저 정념과 의지의 구분이 있다. 데까르뜨에 따르면 정념과 의지는 각각 영혼의 수동과 능동을 나타낸다. 즉 정념이 자신과 상이한 존재론적 질서에 속하는 신체의 운동이 영혼에 산출한 결과로서 신체의 운동에 대한 영혼의 수동성을 나타낸다면, 의지는 영혼의 고유한 힘, 능동성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구분이 갖는 첫번째 의미는 영혼에게는 정념을 발생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외부대상이 위협을 할 때 정기들의 운동에 따라 영혼에는 두려움의 정념이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우리에게 해로운 대상이 표상될 때 미움의 정념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는 신체가 영혼에 직접 작용할 수 없듯이, 영혼 역시 신체에 직접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번째로 이는 영혼의 활동이 신체에 속하는 정기의 운동에 의해 결정거나 구속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체와 결합되어 있다는 자연적 조건 때문에 영혼은 정념을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면 영혼은 신체의 운동과 정념의 발생 사이의 습관적 인과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영혼이 지니고 있는 이 힘이 곧 의지의 능동성이다. 데까르뜨에게 의지의 능동성은 영혼이 신체의 직접적 요구를 표현하는 정념들의 힘에 좌우되지 않고, 삶을 잘 보존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행위들을 수행하게 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능력의 요체는 신체의 직접적 요구와 정념 사이의 자연적 인과관계를 변화시켜 정념이 의지의 명령에 따르게 만드는 데 있다.

또다른 중요한 구분은 정념과 내적 동요(émotions intérieures) 사이의 구분이다. 데까르뜨는 전통적인 영혼의 분할론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그 역시 영혼이 겪는 두 가지 동요를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외부 물체의 작용에 의해 야기된 외적 동요, 즉 정념이며, 다른 하나는 영혼 자신의 힘에 의해 생겨난 내적 동요다(『정념론』 147-148항). 내적 동요는 정념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닌 감정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외부 대상이 아니라 영혼 자신을 원인으로 지닌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영혼이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개념적 장치가 된다.

데까르뜨에 따르면 영혼이 자신의 정념들을 제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자신의 정념들에 대한 영혼의 반성이다. 자신의 정념들에 대한 이러한 반성은 정념으로서의 기쁨, 즉 슬픔을 맞짝으로 갖고 있는 기쁨이 아니라, 정념들의 성격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내적 평정을 유지하는 데서 오는 기쁨, 즉 지적 기쁨을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지적 기쁨은 영혼이 정념들에 좌우되지 않고 정념들을 잘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준다. 데까르뜨가 “다른 모든 미덕의 열쇠”(『정념론』 161항)로 간주한 관대함(générosité)이 미덕이면서 동시에 감정으로서의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내적 동요 덕분이다.

2. 기회원인론과 정념의 일반화: 말브랑슈의 정념론

말브랑슈의 정념론은 『진리탐구』(1675)에서 체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의 정념론은 데까르뜨의 이원론적 관점을 좀더 철저하고 일관되게 밀고나가면서 이를 기독교적 관점과 화해시키려고 한 점이 특징이다. 즉 말브랑슈는 데까르뜨가 영혼과 신체의 연합이라는 세번째 시초관념을 통해 정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을 비판하면서 기회원인론의 관점에서 정념을 일반화하고 원죄론의 관점에서 정념의 유용성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2-1) 기회원인론과 영혼과 신체의 연합의 부정

말브랑슈 정념론의 이론적 기초는 기회원인론에 있다. 앞서 본 것처럼 데까르뜨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가지 시초관념 이외에 영혼과 신체의 연합이라는 세번째 시초관념 위에서 자신의 정념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세번째 시초관념이야말로 말브랑슈의 기회원인론의 주요한 비판대상이며, 이 비판이 그의 정념론의 기초를 이룬다. 말브랑슈가 세번째 시초관념에서 문제삼고 있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이질적인 두 실체인 영혼과 신체의 상호작용, 따라서 정신과 물체 사이의 인과관계라는 점이다. 데까르뜨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충실히 따르려는 말브랑슈에게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론적 후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념이라는 현상이 어떤 식으로든 영혼과 신체의 연관성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말브랑슈는 이원론의 틀을 유지하면서 이 연관성을 해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된다.

말브랑슈의 해결책의 요체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말브랑슈는 기회원인론을 통해 신체만이 아니라 영혼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을 과감하게 탈실재화하는 길을 제시한다. 기회원인론에 따르면 인과적 힘은 신에게만 존재할 뿐이며, 일체의 유한한 존재자에게는 독자적으로 운동을 일으킬 만한 힘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외부 물체의 인과 작용에 의해 우리의 신체가 변용되고 이것이 다시 정기들의 운동을 통해 송과선에 전달되고, 그 결과 영혼 안에 어떤 정념이 발생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외양에 불과하다. 말브랑슈에 따르면 이는 사실은 각각의 경우마다 작용하고 있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가시적일 뿐만 아니라 비가지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신의 의지의 연속적인 활동의 표현일 뿐이다(『형이상학과 종교에 관한 대화』 7권 13장).

둘째, 말브랑슈는 신과 정신의 연합, 신체와 정신의 연합으로 연합 개념을 이중화한다. 이 두 가지 연합 중 사유라는 속성을 공유하는 신과 정신 사이의 연합만이 실재적 연합이며, 이 연합은 수동적인 정신에 대한 능동적인 신의 활동을 사고하기 위한 범형적인 틀을 제공해준다. 신에 대한 정신의 이러한 원초적인 수동성은 뒤에서 볼 것처럼 말브랑슈에서 정념 개념이 일반화되는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이처럼 신과 정신 사이에는 무매개적인 연합관계, 또는 오히려 의존관계가 존재한다. 반면 데까르뜨가 정신과 신체의 연합이라고 부른 것은 항상 이미 신과 정신의 연합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 더 나아가 정신과 신체/물체가 전혀 상이한 이질적 실체인 데다가 정신에 비해 신체/물체의 존재론적 위상이 훨씬 낮기 때문에,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연합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과 신체의 연합이라 불리는 것은 사실은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이 우연적이게 되는 만큼 전능한 신의 의지의 작용력은 더욱 더 강화된다.

이 두 가지 논변의 결과 영혼과 신체의 연합이라는 데까르뜨의 세번째 시초관념은 실재성과 합리성을 상실하게 되며, 정념의 본성에 대한 이해 역시 광범위하게 변모된다.

2-2) 정념의 재분류와 일반화

기회원인론이 낳은 주요 결과 중 하나는 정념의 재분류다. 말브랑슈는 형식적으로는 데까르뜨의 정념의 분류와 순서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즉 그는 데까르뜨와 마찬가지로 놀람을 첫번째 정념으로, 사랑과 혐오(aversion)를 그 다음에 오는 정념의 쌍으로 제시하고, 마지막에 기쁨과 슬픔, 욕망의 정념들을 위치시킨다. 하지만 이런 외양과는 달리 데까르뜨와 말브랑슈의 정념 이해와 분류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한다.

말브랑슈에서 정념은 신체의 운동의 결과로 영혼이 겪게 되는 표상이라는 데까르뜨의 정의와는 달리 “정기들의 외재적 운동의 기회에 영혼이 자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모든 동요들”(『진리 탐구』 5권 1장)로 규정된다. 즉 기회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유한자들에게 일체의 인과적 작용력을 박탈하는 기회원인론의 결과로 정념은 외부 물체에 의해 신체가 변형되는 순간에 신에 의해 영혼 안에 생산된 심리 현상으로 규정된다. 이 정념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데까르뜨의 정념론에 대한 세 가지의 변형을 함축한다.

먼저 이는 정념들을 신의 원초적 사랑의 양상들로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외부 대상이 우리의 지성이나 감각에 나타나고 이것이 정념을 촉발할 때, 우리의 의지는 이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보이면 이를 추구하고, 나쁜 것으로 보이면 이를 회피한다. 그런데 말브랑슈에 따르면 의지에 의한 이러한 추구와 회피의 작용은 실은 자기자신에 대한 신의 사랑의 표현에 불과하다. 즉 신이 자기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것을 의지하게 되며, 따라서 우리가 좋은 것을 추구하고 나쁜 것을 회피하는 것은 신이 설정한 선 일반에 대한 우리의 자연적 이끌림의 표현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말브랑슈는 의지를 “우리를 비규정적이고 일반적인 선으로 향하게 하는 자연적 운동 또는 인상”(『진리 탐구』 1권 1장)으로 정의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정념 이해는 사랑을 모든 정념의 원형으로 제시하게 된다. 즉 놀람은 데까르뜨와 마찬가지로 첫번째 순서에 놓이지만, 말브랑슈에게 이는 “불완전한” 정념으로 간주된다. 놀람은 선에 대한 관념이나 감각에 의해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놀람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진리 탐구』 5권 7장). 그리고 데까르뜨에서 사랑과 미움에 해당하는 정념인 사랑과 혐오는 사실은 사랑의 두 가지 표현에 불과하다. 혐오는 사랑의 부정적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쁨과 욕망, 슬픔이라는 나머지 정념들 역시 말브랑슈에 따르면 각각 “기쁨의 사랑, 욕망의 사랑, 슬픔의 사랑”으로 나타난다. 슬픔은 우리가 추구하는 선이 우리에게 금지된 상태를 표현하며, 따라서 슬픔은 이러한 금지를 벗어나 선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의지, 즉 사랑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또한 기회원인론은 데까르뜨가 능동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의지를 근원적으로 수동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이는 곧 정념의 일반화를 가리킨다. 데까르뜨는 영혼의 상이한 능력을 구분하면서 의지에 능동성을 부여하고 지성에게는 수동성을 부여했다. 반면 말브랑슈에게는 기회원인론의 결과로 인간의 의지는 능동성을 결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인식과 의지 모두는 인간 영혼 안에서 각자가 맡고 있는 기능에 따라 분화되기 이전에 신의 능동적인 작용의 수용이라는 공통적인 특성에 따라 규정된다. 따라서 말브랑슈에서 정념은 매우 일반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아르노와의 논쟁을 통해 잘 드러나듯이 말브랑슈가 관념을 자체적인 인과적 작용성을 보유한 신의 본질의 일부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2-3) 정념의 기능

말브랑슈에게 정념의 기능, 정념의 유용성의 문제는 그의 종교철학, 특히 원죄론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데까르뜨와 마찬가지로 말브랑슈도 정념의 자연적 유용성을 긍정한다. 즉 인간이 영혼으로만 이루어진 존재자가 아니라 신체와 결합되어 있는 한 정념은 불가피하게 생겨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정념은 우리의 신체를 보존하는 데 유용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정념이 유용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조건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지니고 이를 신이 설정한 질서를 추구하는 데 잘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 이후의 인간들은 원죄 때문에 신체에 대한 이러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오히려 신체의 감각적 욕구에 좌우되어 선 일반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욕구(concupiscence)다. 말브랑슈에 따르면 욕구는 “원죄에 의해 생겨난 자연의 무질서”(『진리 탐구에 대한 8번째 해명』)로서, 모든 인간은 원죄 때문에 처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고 이에 따라 욕구의 운동에 좌우된다. 아담도 역시 그의 후손들과 마찬가지로 영혼과 신체가 결합된 존재였으나, 원죄를 범하기 전에는 감각적 자극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영혼이 원하는 방향대로, 즉 신이 설정한 질서에 따라 신체를 잘 통제할 수 있었다. 따라서 말브랑슈에 따르면 모든 악덕은 원죄 이후에 생겨난 이러한 신체의 반역에서 비롯하며, 반대로 미덕은 오직 신이 설정한 질서를 잘 따르는 데 있다.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미덕은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질서가 요구하는 행동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이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이 아니라, “질서를 잘 따르려고 의지하는” 것이다. 즉 의지적 노력이야말로 미덕을 특징짓는 핵심적 요소다.

하지만 원죄에 의해 사람들이 욕구에 따르게 되었다면 어떻게 미덕을 지니는 것이 가능한가? 말브랑슈에게 이는 답변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원죄 이후의 인간에게 습관 개념과 욕구의 개념이 일종의 악순환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렇다. 신체와 정신 모두가 행동을 용이하게 해주는 습관에 따라 작용하고, 원죄 이후 이 습관은 욕구를 강화하는 쪽으로 형성되어 왔다면, 어떻게 이 악덕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말브랑슈는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원죄를 지니고 있는 모든 인간들은 항상 자신 안에 또한 질서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이 유덕한 활동의 능력을 교육을 통해 잘 길러낸다면 욕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질서에 대한 사랑의 습관을 기를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희망어린 답변이다.

3. 정념에서 정서로: 스피노자의 정서론

우리가 본 것처럼 데까르뜨와 말브랑슈는 심신이원론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정념론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한편으로 정신과 신체가 자율적인 질서에 따라 존재하며, 따라서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코나투스론을 통해 이를 일원론적으로 통합하고 있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정서론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는 정서의 문제를 코나투스라는 존재론적 기초 위에서 다루고 있으며, 둘째, 정서의 문제를 역량의 증대와 감소 및 수동성과 능동성의 문제와 결부시켜 논의하고 있다.

3-1) 정서론의 존재론적 기초: 코나투스

스피노자의 정서론은 코나투스(conatus) 이론에서 출발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유한한 존재자는 자신의 역량에 따라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는 노력으로서의 코나투스를 자신의 현행적 본질로 갖는다. 인간의 경우 이는 충동(appetitus), 또는 충동에 의식이 결합된 욕망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코나투스를 유한 양태의 현행적 본질로, 그리고 욕망을 인간의 본질로 정의하는 것은 정서론과 관련하여 세 가지 주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코나투스론은 데까르뜨와 말브랑슈와 달리 일원론적 관점에서 정념 또는 정서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존재론적 기반을 제시해준다. 데까르뜨는 정념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형이상학과 자연학의 이원론적 관점 대신 영혼과 신체의 연합이라는 세번째 시초관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그는 신체의 작용과 영혼의 작용을 매개해주는 송과선이라는 신비스러운 가설을 도입함으로써 후배 철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말브랑슈는 기회원인론을 도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의 존재론적 통일성을 함축하는 코나투스 개념에 근거하여 데까르뜨의 문제설정을 변화시키고 있다. 즉 코나투스는 정신과 신체 중 어느 한 쪽의 존재 및 활동 역량이 아니라 이 양자를 통해 동시에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되는 동일한 역량이다. 그리고 이처럼 유한자가 지니고 있는 존재 및 활동 역량의 증대와 감소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정서들이다.

둘째, 스피노자에게는 데까르뜨 및 기회원인론자들을 포함한 당대의 데까르뜨주의자들의 정념론의 근본 문제였던 영혼과 신체의 상호작용이라는 문제가 더 이상 하나의 문제로 제기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에게는 정서의 능동성과 수동성의 문제가 근본 문제로 제기된다. 데까르뜨에서 정념의 문제는 영혼에 신체가 작용한 결과의 표현, 곧 ‘영혼의 수동’의 문제로 제시되었다. 이는 곧 영혼과 신체, 정념과 의지의 반비례 관계를 나타낸다. 반면 “관념의 질서와 연관은 사물의 질서와 연관과 같다”(『윤리학』 2부 정리 7)는 스피노자의 평행론에 따르면 사유와 연장 사이에는 일체의 인과적 상호관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양자는 동일한 존재론적 통일성을 표현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에서는 데까르뜨와 달리 정신의 능동과 수동은 신체의 능동과 수동과 비례한다. 이에 따라 스피노자 정서론에서는 영혼에 대한 신체의 작용, 즉 정념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과 신체를 통해 동시에 표현되는 존재 및 활동 역량을 증대하고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셋째, 정서는 수동성만을 함축하지 않으며 능동성도 함축하고 있다. 이는 스피노자가 역량(potentia)의 표현으로서 코나투스를 유한한 존재자들의 본질로 규정함으로써, 유한자들에게 능동성의 존재론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유한자들은 신의 본질의 표현으로서 코나투스를 자신의 본질로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유한자들은 실체와 같이 본질과 실존이 일치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항상 수동적이고 예속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원초적으로 능동화의 경향을 지니게 된다. 그런데 정념들의 능동화는 적합한 인식, 즉 이성의 활동을 요구하며, 역으로 적합한 인식의 두 가지 유형으로서 제 2종의 인식과 제 3종의 인식은 정서들의 능동화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정서론의 또다른 특징은 정서와 이성의 지속적인 결합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3-2) 정서의 정의와 분류

스피노자에게 정서(affectus)는 신체의 활동역량을 증진하거나 감소시키는 신체의 변용들(affectio)인 동시에 이 변용들에 대한 관념으로 정의된다(『윤리학』 3부 정의 3). 이 정의의 의미를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정의에서 동원되고 있는 스피노자 철학의 다른 두 가지 주요 개념, 즉 관념 및 변용과 정서의 차이점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먼저 정서는 관념의 한 종류이지만, 인지적 기능에 따라 정의되는 일반적 관념과 달리 신체와 정신의 역량의 증대 및 감소를 나타낸다. 그리고 변용은 외부 물체가 우리의 신체에 작용을 미쳐 생겨난 신체적 상태를 가리키는 반면, 정서는 변용되는 사물의 존재역량의 증대나 감소, 그리고 더 나아가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의 이행과 결부되어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스피노자 정서 개념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역량의 증감 및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의 이행이라는 문제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데까르뜨나 말브랑슈가 정념으로 간주한 것, 즉 놀람,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욕망 등이 스피노자에게는 정서의 한 부분, 즉 수동적인 정서로 한정됨을 의미한다. 또는 이 각각의 정서들은 수동성과 능동성의 분화 과정 속에서 사고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말브랑슈가 기회원인론을 통해 유한자들의 역량을 최소화한 데 비해, 스피노자는 처음부터 정서를 역량의 변화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는 점도 주요한 차이점 중 하나다. 그 결과 스피노자 철학에서 정서는 윤리적, 정치적 실천을 사고하기 위한 필수적인 범주로 제시된다.

스피노자는 정서 분류에서도 데까르뜨 및 말브랑슈와 큰 차이를 보여준다. 데까르뜨가 여섯가지의 기초정념을 제시한 데 비해(이는 말브랑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피노자는 세 가지 기초정서를 제시한다. 이중 첫 번째는 욕망이며, 그 다음은 좀더 작은 완전성에서 좀더 큰 완전성으로의 이행을 가리키는 기쁨의 정서와 좀더 큰 완전성에서 좀더 작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을 가리키는 슬픔의 정서가 있다. 이 세 가지 중 욕망이 첫번째 순서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인간의 코나투스, 인간의 현행적 본질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정서 분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데까르뜨에게는 최초의 기초 정념으로 제시된 놀람이 아예 정서의 영역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보기에 놀람은 어떤 적극적인 원인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에서 생겨난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역량의 증대나 감소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놀람은 우리를 놀라게 한 외부 대상에 우리의 주의를 고착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에 따라 사물에 대한 부적합한 인식을 낳는다는 점에서 수동성의 한 요인이 된다). 그리고 스피노자는 데까르뜨가 두번째로 위치시킨 사랑과 미움을 주요 정서들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이는 사랑과 미움이 각각 외부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과 슬픔이며, 따라서 기쁨과 슬픔의 변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랑(적어도 그 일부)과 미움은 기쁨과 슬픔을 제공해 주는 원인이 직접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기억이나 유사성 등의 표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쁨과 슬픔의 효과를 산출하기 때문에 가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3-3) 수동성과 능동성

스피노자 정서론의 독창성 중 하나는 능동적 정서의 존재와 역할 그리고 메커니즘을 설명한 데 있다. 스피노자의 정서론은 자연주의적 관점, 즉 어떤 정서는 그와 대립적이면서 그보다 더 강력한 정서에 의해서만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윤리학』 4부 정리 7). 따라서 『윤리학』의 목표인 윤리적 해방(이는 『윤리학』 4부의 제목이 [인간의 예속에 관하여]이며, 5부의 제목은 [인간의 자유에 관하여]인 데서 잘 드러난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동적 정서에서 생겨나는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스피노자 정서론에서 이는 능동적 정서의 작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스피노자는 능동을 “우리가 그것의 적합한 원인인 어떤 것이 우리 안에서 또는 우리 바깥에서 일어날 때, 즉 우리의 본성에 의해서만 명석판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우리 안에서 또는 우리 바깥에서 따라나올 때 우리는 능동적”(『윤리학』 3부 정의 2)이라고 정의한다. 반대로 수동은 “우리가 단지 부분적 원인에 불과한 어떤 것이 우리 안에서 일어날 때 또는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따라나올 때 우리가 수동적”(같은 곳)이라고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가 능동적인가 수동적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건의 적합한 원인인지 아니면 부적합한 또는 부분적인 원인인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우리가 사물에 대한 참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는지에 의존한다.

따라서 스피노자에서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의 이행의 문제는 부적합한 인식에서 적합한 인식으로의 이행의 문제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부적합한 제 1종의 인식에서 적합한 인식으로의 이행은 공통 개념의 형성에 의존한다. “부분과 전체에 공통적인”, 따라서 항상 참된 공통 개념은 보편적 인식을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특한 사물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정서의 문제에서도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의 이행은 내재적인 전환을 가능하게 해줄 일종의 보편적 매개를 요구한다. 신을 향한 사랑(amor erga Deum)이 바로 이러한 매개의 역할을 담당한다. 앞서 본 것처럼 사랑 자체는 외부 원인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정서다. 더 나아가 보통의 사랑은 쉽게 반대의 것, 즉 미움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상과 예속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을 향한 사랑은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지속적인 정서일 뿐 아니라, 이것의 반대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 역량의 증대라는 사랑의 정서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서다. 따라서 신을 향한 사랑은 수동적인 정서로서의 보통의 사랑이 능동적인 사랑, 즉 신의 지적 사랑(amor intellectualis Dei)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해주는 매개로 간주될 수 있다.

3-4) 신의 지적 사랑

사람들은 보통 신의 지적 사랑이라는 개념을 “인간이 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이를 “신에 대한 지적 사랑”으로 번역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 신의 지적 사랑은 보통의 사랑처럼 주체-객체 관계에 있는 외부 대상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외부 원인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3부 정리 13의 주석)이라는 사랑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사랑은 상상적이며, 따라서 지적 사랑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아울러 바로 이 점에서 신의 지적 사랑은 신을 향한 사랑과도 구분된다. 곧 신을 향한 사랑은 여전히 상상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사랑이지만, 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과 대립하는 정서로 전도될 수 없으며, 따라서 최대의 기쁨을 가져다 준다. 이에 비해 신의 지적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며, 이 때문에 항상 능동적이다.

둘째, 신의 지적 사랑은 신을 향한 인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을 뜻한다. 그리고 이는 좀더 근원적인 자기자신에 대한 신의 사랑의 두 측면을 이룬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한에서의 신은 인간들을 사랑하며, 따라서 인간들을 향한 신의 사랑과 신을 향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하나의 동일한 것이다.”(5부 정리 36의 주석) 이는 자기원인으로서의 신(1부 정의 1, 정리 11)이라는 정의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잘못은 세번째 측면에 있다. 스피노자에서 신의 지적 사랑은 제 3종의 인식, 곧 독특한 사물들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5부 정리 36에서 스피노자가 말하고 있듯이, “신을 향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인간정신의 본질에 따라 설명될/펼쳐질 수 있는 한에서의” 자기자신에 대한 신의 사랑이다. 스피노자가 바로 덧붙이듯이 이는 “곧 신을 향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신이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무한한 사랑의 일부”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각의 개별 정신의 신을 향한 사랑은 자기자신에 대한 신의 사랑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보편화의 운동이며, 반대로 자기자신에 대한 신의 사랑은 개별적인 영혼의 지적 사랑으로 표현되는 개별화의 운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처럼 각각의 영혼의 지적 사랑이 가장 보편적인 신의 사랑, 곧 능동화의 계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신의 지적 사랑은 보편적인 인식을 목표로 하는 두번째 종류의 인식을 넘어서, 합리적 인식과 능동적 정서가 결합되는 세번째 종류의 인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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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구조

 

정치에 관한 해체의 출발점, 또는 (해체는 항상 중간에서 출발하므로) 해체의 한 사례를 보여주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정치에 관한 데리다 사고의 원형적 구조를 보여주는, 짧지만 매우 심오한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의 한 문단에서 출발해 보자.

“체계 내에서 특유한 것을 사고하는 것, 이를 여기에 기입하는 것이 원-문자기록archi-écriture의 태도다. 원-폭력은 고유한 것, 절대적 친근성, 자기 현전의 상실이며, 실제로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던 것의 상실이다 ... <도덕>을 설립하고, 문자기록의 은폐를 지령하고, 이미 고유한 것을 분할하고 있던 소위 고유 명사의 삭제와 말소를 지령하는, 복원적이고 보호적인 두 번째 폭력에 의해 금지되고 따라서 확증되는 이 원-폭력으로부터 보통 악, 전쟁, 불의, 강간으로 불리는 것 안에서 세 번째 폭력이 생성되거나 생성되지 않을 수 있다(경험적 가능성). ... 이 마지막 폭력은 원-폭력의 두 하위 수준과 법에 동시에 준거하기 때문에 그 구조에서 훨씬 더 복잡하다. 사실 이 폭력은, 이미 비고유화/비전유expropriation였던 최초의 명명을 드러내며, 또한 그 이후부터 고유한 것으로, 지연된 고유한 것의 대체물로 기능해 온, 그리고 사회적, 도덕적 의식에 의해 고유한 것으로서, 자기 동일성과 비밀의 확실한 봉인으로서 지각돼 온 것을 폭로한다.”(De la grammatologie, Minuit, 1967, 164-65쪽―강조는 데리다)

이 압축적인 문단에서 데리다는 폭력의 세 가지 수준을 구분하고 있다. 첫번째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던” 고유한 것, 절대적 친근성, 자기-현전을 성립시키면서 동시에 이것들을 분할하는 원-폭력이고, 두 번째는 이 분할의 흔적을 지우는 법의 설립이라는 폭력이며, 마지막 세 번째는 기존의 법을 침탈함으로써, 법이라는 두 번째 폭력이 지닌 폭력적 성격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첫번째 원-폭력을 드러내는 폭력이다. 따라서 이 구절에 따르면, 법은 미리 실존하는 고유성, 기원, 정의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설립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고유성이나 기원, 정의는 본래 현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또는 고유성이나 기원, 정의는 차이(différance)라는 원-폭력으로의 기입에 의해 사후에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

 

법이라는 힘: 폭력의 환원불가능성

 

폭력의 구조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이러한 분석은 기원, 법, 동일성의 파생적 성격을 보여 준다. 데리다가 많은 철학자들에게 불신받고 비난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기원과 법, 동일성, 즉 로고스를 파생적인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데리다는 합리성의 근거, 즉 서양 철학의 기초 자체를 위험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허무주의와 상대주의라는 비난이 제기되는데, 로고스가 파생적인 것이라면, 로고스의 기원은 폭력, 광기, 정념, 신비 등과 같은 이성의 타자일 수밖에 없고, 이는 정당성(legitimacy) 또는 정당화(justification)의 문제를 배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보기에 해체는 로고스 중심주의보다 더 철학적인데, 왜냐하면 해체는 로고스 중심주의 철학이 독단적으로 전제하는 기원, 법, 동일성 자체의 근거에 관한 질문을, 비판적으로(칸트적 의미에서), 또는 의사-초월론적으로 제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원, 법, 동일성을 무비판적으로 전제하는 로고스 중심주의 철학이야말로 원-폭력을 은폐하는 2차적 폭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폭력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둘째, 위의 분석은 우리가 보통 설정하는 법과 폭력의 대립 구도가 그릇된 것이며, 사실은 법과 폭력 모두 동일한 원-폭력의 뿌리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는 이중적 결과를 낳는다. 한편으로 이는 자신으로부터 일체의 폭력성을 제외시킴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법의 관심(interest)은 사실은 어떤 폭력의 이해관계(interest)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법이 지니고 있는 위선과 불의를 폭로함으로써 자기자신을 새로운 법, 새로운 정의로 제시하려는 대항 폭력의 주장 역시, 기존의 법을 주재하고 있는 폭력의 변증법, 즉 궁극적인 비폭력의 불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런 결론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정의란 불가능한가? 법의 역사, 정의의 역사란 서로 전적으로 정당하지도 않고 전적으로 부당하지도 않은 폭력과 대항 폭력, 권력과 대항 권력 사이의 상대주의적인 갈등의 역사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데리다에게는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정당한 저항의 가능성, 또는 더 나아가 폭력과 대항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의로운 폭력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는 결국 허무주의, 또는 적어도 상대주의적 입장에 불과한 것 아닌가?

『법이라는 힘』(Force de loi)에서 데리다가 답변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질문인 것으로 보인다. 법과 정의의 구분, 신화적인 폭력과 신의 폭력의 구분, “해체불가능한 것으로서의 정의”라는 데리다의 테제 등은 결국 법과 폭력의 역사적 상대성을 넘어 해방적인 힘, 궁극적인 정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선 이 책의 제목에 주목해 보자. 데리다 자신의 주해에 따르면 법이라는 힘, 법이 법으로서 지니는 힘은, 법이 봉사하는 외부의 권력을 의미하지 않으며, 법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폭력에 불과하다는 상대주의적인 함의를 갖지도 않는다. 오히려 법이라는 힘은 새로운 것을 창설하는 힘, 즉 이전에 아무것도 전제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어떤 것,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수행적 힘을 가리킨다. 따라서 법은, 어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벤야민이 말하는 <법보존적 폭력>)의 경우에도 항상 어떤 새로운 것을 창설하는 힘(<법정초적 폭력>)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반대로 법으로서의 자기 동일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법은 최초의 창설적 순간―이런 것이 존재한다면―에도 항상 이미 보존 가능성, 즉 되풀이 (불)가능성(itérabilité)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법이라는 힘은 앞서 말한 원초적 폭력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무엇을 의미할까?

 

혁명을 일반화하기

 

데리다에게 원초적 폭력, 또는 법이 지니고 있는 수행적 힘은 혁명의 필연성을 의미한다. 즉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의 돌발은 필연적이라는 점에서 혁명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필연성, 또는―데리다의 핵심적인 양상론에 따르면―필연적 가능성은 합리적 이유 이전의, 합리적 이유의 비합리적(반(反)합리적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점에서 비이성적이며 비규범적이다. 혁명은 항상 필연적이지만, 또한 혁명은 항상 자체 내에 도착적 수행성(perverformativit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데리다의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첫째, 이 도착적 수행성을 열어 두는 것, 이것이 바로 정의의 가능성, 해방의 가능성을 보존하는 길이다. 데리다에게 혁명의 역사는 목적론적 희망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이 희망이 대항 폭력, 즉 또 하나의 합법적 폭력으로 전락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항상 혁명은, 또는 적어도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했던 혁명은, 기존의 법의 위선을 고발하고 그것이 은폐하는 폭력성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단순히 이 법의 위선을 바로잡거나 이 법의 이념과 실제 사이의 균열을 메우는 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균열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약속, 이러한 구조에서 곧 불의와 착취, 지배가 생겨나기 때문에 바로 이 원인을 소멸시키겠다는 약속, 그리고 이를 통해 불의와 착취, 지배를 근원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약속을 자신의 본질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목적론적 희망은 항상 대항 폭력, 즉 또 하나의 합법적 폭력으로 전락한다는 점인데, 이는 무엇보다 이것이 스스로를 역사의 완성으로 간주함으로써 원초적 폭력을 봉쇄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원초적 폭력은 창설의 힘 자체이고, 쇄신의 가능성의 근거이기 때문에, 역사의 완성을 추구하면 할수록, 폭력은, 창설의 힘은 보존적 폭력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곧 폭력을 일소하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폭력의 일소라는 의미에서, 도착 가능성의 소멸이라는 의미에서 궁극적 정의, 궁극적 해방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따라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도착적 수행성 내부에서 이 도착의 가능성과 맞서 싸우는 것, “폭력 내부에서 폭력을 반대하는 것”([폭력과 형이상학])이며, 데리다에게는 이것이 해체라는 정치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룬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정치인가? 이러한 정치는 종말론/목적론 대 허무주의/상대주의라는 그릇된 양자택일을 넘어서 정치적인 것의 보존을 정치의, 더 나아가 인간 실존의 고유한 과제로 제시하기 때문이다(이런 측면에서 데리다는 한나 아렌트와, 차이 속에서 유사하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혁명의 일반화인가? 이전까지의 혁명이 추구하던 불의의 시정, 착취의 폐지라는 목표와 함께, 그 실현의 조건으로서, 이러한 혁명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들던, 혁명에 본질적인 도착가능성을 제어하고 축소하는 것을 혁명의 핵심 과제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오늘날 정치를 사고하는 사람들 모두가 유념해야 할 본질적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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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ienne Balibar, “Avant-propos pour la réédition de 1996”, in Pour Marx, La Découverte, 1996.

 “맑스를 위하여”―하나의 호소, 거의 구호에 가까운 이 제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또는 아마도 새롭게, 30년 전과 마찬가지로 높고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다른 이유들 때문에, 그리고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렇다. 알튀세르의 책은 이제 새로운 독자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예전의 독자들의 경우는 사람 자신만이 아니라 텍스트를 수용하는 방식까지도 크게 변화했다.

1965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되었을 때는 자신의 고유한 논리 및 윤리를 지닌 특정한 방법에 따라 맑스를 읽자는 선언과 동시에 맑스주의, 좀더 정확히 말하면 진정한 맑스주의(한 운동, 한 “당파”와 분리할 수 없는, 그리고 이를 공개적으로 내세우는 이론, 철학으로서)를 위한 선언이 중요한 문제였다. 오늘날의 경우는, 아마도 이 책에서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또는 심지어 상상적으로 이를 재개하려고 하는 향수에 젖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맑스주의의 종언 이후, 맑스주의를 넘어서, 맑스를 읽고 연구하고 토론하고 활용하고 변혁하자는 호소가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 세기 이상 동안 맑스주의로 존재해 온 것에 대한, 이를 우리의 사고 및 우리의 역사와 결부시키는 복합적인 연계들에 대한 놀랄 만한 무지나 또는 보수주의적인 경멸을 용인하면서 그렇게 하자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배제(foreclusion)는 늘 그렇듯이, 때로는 상반된 색조를 띠기도 하는 가상과 오류의 반복만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호소는 맑스 자신이 맑스주의와 맺고 있는 심층적으로 모순적인 관계, 이를 입증해 주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분석하려는 집요한 노력에 대한 호소다.

사실 이 책에는 맑스주의에 이론적인 실체와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저물어가는 20세기에 이루어진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웅변적인 그리고 또한 가장 설득력 있는 논거를 지닌 시도들 중 하나가 담겨 있다. 맑스에 대한 해석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이 시도는 분명 맑스의 작업 및 그 계승자들의 “작업들”들에 대한 인식과 동시에 몰인식을 표현해 주었다(tradusait). 하지만 이 책에는 또한―적어도 나는 어느 때보다도 이를 더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맑스의 사고 양식, 또는 알튀세르가 제안한 표현에 따르면 그의 “이론적 실천”에 고유한 어떤 것이 다시 출현했는데, 이는 어떤 “맑스주의”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방식에 따라 맑스주의의 한계들을 드러내 주는 데 기여했다. 이는 이 사고양식에 구성적인 명제들 및 아포리아들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부에서 이 작업을 수행했기 때문에 더욱 더 강력한 기여였다.

이 때문에 1965년 『맑스를 위하여』의 출간(및 몇 주 뒤에는 『자본을 읽자』라는 집단 저작의 출간)이 곧바로 점화하고, 앙리 르페브르 같은 위대한 맑스주의자들 및 레몽 아롱 같은 맑스주의의 위대한 적수가 참여한 “상상적 맑스주의”와 “현실적 맑스주의” 사이의 논쟁은 오늘날 더 이상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모든 맑스주의는 상상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들 중 일부, 서로 매우 다르고 사실은 매우 적은 또는 소수의 텍스트들이 대표하고 있는 몇 가지 맑스주의는 여전히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따라서 현실적 효과들을 생산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맑스를 위하여』의 “맑스주의”가 능히 이것들에 포함된다고 믿는다. ...

하지만 꼭 필요한 몇가지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정보들을 제시하기에 앞서, 이 기록과 그 독자들 사이에 여러 개의 가리개―여러 가지 설명틀―을 만들어 놓을지도 모를 “낡아빠진” 독해의 시도를 예방하고 싶다.

『맑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텍스트들은 1961년에서 1965년 사이에 출간되었다가 한 권에 묶였다는 점을 잘 알아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는 한편으로는 스탈린의 범죄에 대한 “흐루시초프의 보고”(1956)와 부다페스트 봉기 및 수에즈 파병(둘 모두 1956에 벌어졌다), 쿠바 혁명의 성공(1959), 알제리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고 알제리 무장 봉기 이후 드골 장군의 권력으로의 복귀(1958-1962), OECD의 창립(1960), 베를린 장벽 축조(1961) 같은 프랑스사 및 세계사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1965), 중국의 문화 혁명(1966에 시작), 프랑스와 다른 나라(멕시코, 독일, 미국, 폴란드 ...)에서 68년 5월에 일어난 사건들, “프라하의 봄” 및 체코슬로바키아 침공(마찬가지로 1968년), 사회당과 공산당 사이의 “좌파 연합에 따른 공동 강령”(1972), 70년대 “유로 공산주의” 탄생, 아옌데 정권의 몰락 및 아옌데 피살(1973),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1974) ... 등과 관련되어 있었다.

『맑스를 위하여』의 테제들을 맑스주의 및 맑스에 대한 논쟁의 역사만이 아니라 20세기 철학사―이 테제들은 이 역사 안에 아주 가시적인 흔적을 남겨 놓았다―안에 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이 책이 1960년이라는 아주 놀라운 해 바로 다음부터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게 유익할 뿐 아니라, 아마도 필수불가결할 것 같다. 1960년 이 해에는 메를로-퐁티의 『기호들』([모스에서 레비-스트로스까지] 및 [마키아벨리에 대한 노트]가 수록된)과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레비-스트로스는 1962년 『야생의 사고』에서 이 책에 답변할 것이다), 질-가스통 그랑제(Gilles-Gaston Granger)의 위대한 인식론 저서 『형식적 사고와 인간 과학』 및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 앙리 에(Henry Ey)가 조직한, 라캉을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에 관한 본느발 회의, 마지막으로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 의식』의 불어 번역(저자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이 출간되었다. 앙리 르페브르의 『일상 생활 비판』(1958, 1961)과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1961), 자크 데리다의 『후설 『기하학의 기원』 서론』 및 레비나스의 『총체성과 무한』, 하이데거의 『니체』 강의 출간은 『맑스를 위하여』의 시작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계획적으로가 아니라 “개입”이라는 우연적 기회들에 따라 『맑스를 위하여』가 쓰여지고 있는 동안, 장-피에르 베르낭의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사상』(1965),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1963),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 변동』(1962),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1963), 르루아-구랑의 『행동과 말』 및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론』 1권(1964), 칼 포퍼의 『추측과 논박』과 비유멩의 『대수의 철학』(1962), 그리고 또한 코이레의 『뉴턴 연구』(1965)가 잇따라 출간됐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출간된 후 곧바로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1차원 인간』, 피에르 쉐퍼의 『음악대상론』, 장켈레비치의 『죽음』, 바르트의 『비평과 진리』, 벤베니스트의 『일반 언어학의 문제들』, 푸코의 『말과 사물』, 라캉의 『에크리』, 캉길렘의 [개념과 생명][1968년 『과학사 및 과학 철학 연구』에 재수록] 등이 뒤따랐는데, 이 모두는 또 하나의 놀라운 해인 1966년에 출간되었다 ...

요컨대 프랑스 대학의 심장부에 거주하는 프랑스 공산당의 “기층”의 투사[평당원, militant “de base”]인 한 철학자의 『맑스를 위하여』의 저술 및 출간은, 점령 기간 중에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냉전이 “평화 공존”으로 역전(또는 연장)되었을 때, 탈식민화가 불가피하게―하지만 항상 힘겨운 투쟁 끝에―일반화된 반제국주의와 사회주의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들의 경제적 성장과 문화적 변동이 부와 권력의 분배에 대한 반대를 확대하는 데까지 이르렀을 때, 서유럽에서 (여전히) 민족적이고 (얼마간) 사회적인 국가가 세계화로의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는 반면, 동쪽에서는 스탈린 이후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공연하거나 잠재적인 위기가 여러 가지 형태로 “혁명 속의 혁명”(레지스 드브레)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처럼 보였을 때인 전후의 긴박한 정세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두는 것이 유익하다.

그리고 이 책은 전쟁 직후와 관련하여 철학 논쟁이 자신의 대상 및 스타일을 바꾸고 있던 시기에 출현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유익하다. 단지 “의심의 철학들”―그 위대한 스승은 니체이고, 부차적으로는 프로이트 내지는 “구조주의들”이다―, 즉 사회적 실천과 의미작용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들(disciplines)에게 그것들에 본래적인 과학성을 부여하려는 야심을 지닌 철학들이 주장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푸코가 자신의 천재적인 종합적 정식화의 능력으로 곧바로 말하게 될 것처럼 “지식과 권력의” 질문들이 오랫동안 도덕과 심리학(여기에는 현상학적 심리학도 포함된다)의 질문들을 압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또한, 그리고 아마도 무엇보다도 이 시기 전체 동안 역사와 인류학, 정신분석과 정치를 관통하면서 철학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신의 타자, 자신의 무의식, 비철학에 직면하고, 이것들과 대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철학이 당시에 추구하던 것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판과 자신의 재구성의 수단들을 발견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분명히 바로 이것이, 모든 믿음들 및 소속들과 관련된 문제는 제쳐 둔다면, 철학이 맑스와 치열한 논쟁을 벌인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다, 이 모두는 유용하고 필수적이다. 하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맑스를 위하여』는 기록 문헌(document)이 아니다. 이는 책이며, 여기에는 두 가지의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데, 이제부터 가능한 한 간명하게 그 이유들을 환기해 보고 싶다.

첫째로 『맑스를 위하여』는 용어의 강한 의미에서 쓰여진 것이다. 이 책은 알튀세르의 철학 스타일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해 주는 것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다수의 미간행 원고들―이중 어떤 것들은 매우 이른 시기의 원고들이고 또 어떤 것들은 말년의 원고들이다―의 출간 덕분에 우리는 이제 이 스타일이, 고전들의 취향으로 가득차 있고 영성과 역사에 대한 관심에 푹 젖어 있는, 매우 논쟁적인 한 사춘기 소년의 펜으로부터, 그 이후에는 우수한 대학 논문을 쓴 젊은 필자로부터 쓰여진 몽상들과 에세이들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추구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중에 가면 이 스타일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 유물론”을 그 고유한 지반 위에 체계화하는 데 기여하려는(concurrence) 이론적 투사의 시도 속에서, 그리고 허구적인 법정에 제출하기 위해 쓰여진 검사의 구형논고이자 동시에 변론인 자서전의 고백(나는 이 주장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 속에서 사라지고, 예외적으로 번득이는 자취 속에서 엿보일 뿐이다. 하지만 『맑스를 위하여』에서―이미 저 비범한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PUF, 1959; 1992년 Quadrige 총서로 재출간]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마키아벨리와 우리』[L. Althusser, É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ome II, ed. François Matheron, Stock/IMEC, 1995, pp. 42-168]라는 “책”(왜냐하면 이는 한 권의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책이 그의 책상서랍에서 그에게는 유일하게 “이론”의 영예를 얻을 만한 것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에서―이 스타일은 가장 훌륭하게 표현되고 있어서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는 과학의 엄밀함에 대해 말하고, 그 수사법적, 개념적 경제성을 통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주는 스타일이면서 또한 매우 예외적으로 정열적인 스타일이기도 하다. 즉 알아내기 힘든 원천들에서 체험된 그 모든 정열이 일종의 추상의 서정주의(언젠가 알튀세르가 크레모니니에 대해 “추상 회화”가 아니라 “추상적인 것에 대한 회화”라고 말하게 될 의미에서)로 표현되는 스타일인 것이다. “결과들의 힘”([아미엥에서의 주장])이 공언되는 이 스타일은, 원하는 모든 것을 파스칼과 루소에게, 페귀와 사르트르(이는 분명한 사실이다)에게, 맑스와 니체에게 빚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절대적으로 독특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공적인 어조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이는 우리에게 글쓰기의 발명 없이는, 이 글쓰기가 “편”드는(prend le “parti”) 개념에 의한, 이 개념을 위한 글쓰기의 발명 없이는 철학―추론적이든 반성적이든, 아포리즘적이든 논증적이든 간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해 준다.

두 번째로, 『맑스를 위하여』는 아무런 고유한 교의도 제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는 주어져 있는 한 교의(또는 이론), 즉 맑스의 교의를 위해 “봉사한다.” 하지만 이 교의는 실존하지 않는다는, 적어도 체계적 서술의 형태로는 실존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론화는 분명히 이 교의의 희화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는 기묘한 특수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설명하듯이 구상[ébauches]과 응용, “전제 없는 결론들” 내지는 “맑스주의의 이론적 작업들” 및 “실천적 작업들”에서 그 자체로 정식화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답변들의 형태로 이를 발견함과 동시에 진정으로 이를 생산해야 한다.

즉 개념들을 명명하고 분절하고, 개념들이 그 속에 놓여 있는 테제들(사실은 물론 가설들)을 언표해야 한다. 알튀세르가 『맑스를 위하여』에서 맑스로 하여금 그가 실제로 말했던 것 이상을, 그리고 그와는 다른 것을 말하게 하면서, 하지만 또한 인식론과 정치, 형이상학의 모든 영역으로 맑스에서 유래한 질문들과 통념들을 수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 놀랄 만한 개념적 도구들의 배형(constellation)을 생산함으로써 끊임없이 수행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알튀세르는 [서문]([오늘], II, p. 24)에서 자신이 제시한 맑스 독해의 가설들을 “문제설정”(그는 이를 1963년에 죽은, 그리고 이 책이 헌정된 자크 마르탱(Jacques Martin)에게 빌려 왔다고 말한다)과 “인식론적 절단”(그는 이를 자신의 선생이었던 가스통 바슐라르에게 빌려 왔다고 말한다)이라는 주요한 두 가지 이론적 개념과 결부시켰다. 사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두 개념―이 개념들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함께―은 “알튀세르주의”의, 또는 오히려 그가 인식론 담론에 남긴 흔적의 서명 표시로 표상/대표된다. 『맑스를 위하여』의 기획에 본질적인 이 개념들은 하지만 분명히 『맑스를 위하여』의 이론적 내용 전체를 소진시키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이러한 단순화된 소개―여기서는 토론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논쟁의 소재를 지적해 두는 게 문제다―가 지닐 수 있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면서, 상호 독립적인 통념들과 질문들의 세 가지 배형을 확인해 두고 싶다.

한 가지 배형은 “인식론적 절단”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사실 이 개념에는 이론적 실천, 과학성, 그리고 관념들이나 사고들 자체가 아니라 이것의 물질적 가능성의 체계적 통일성으로 사고된 문제설정(이 개념은 아마도 하이데거의 프로블렘슈텔룽(Problemstellung)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유래한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들뢰즈와 푸코의 “문제화”(problématisation) 개념과 이를 비교해 보면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같은 개념들이 속할 만한 충분한 권리를 갖고 있다.

여기가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지점인데, 이는 과학이라는 관념이 품고 있는 정서들 및 이 관념이 포함하고 있는 난점들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이 점에 관해서는 두 가지 관찰만 제시해 두겠다. 알튀세르는 상이한 자기비판들(특히 “변증법적 유물론” 또는 “이론적 실천의 이론”이 과학 담론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철학 담론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을 전개할 때에도 (『자본』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맑스의 이론이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인 중핵을 포함하고 있다는 관념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은 반면, 맑스 이론의 과학성에 대한 관점에서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전혀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연구인 [알튀세르의 대상](국역: [철학의 대상: ‘절단’과 ‘토픽’],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맑스주의의 전화』(이론, 1993) 참조].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는 (이데올로기적 가상들을 넘어) “현실적인 것으로 회귀”한다는 관념으로부터 “이론적 전유”―이는 동시에 과학이 대립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학”이자 이데올로기에 고유한 가상적 권력에 대한 과학이기도 하다―라는 좀더 스피노자적인 관념으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맑스를 위하여』 및 후속 논문들이, 실존하는 과학성의 모델을 맑스주의적 논쟁 안으로 “수입”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또는 어쨌든 동시에) 역사유물론 (및 정신분석)이 구성하는 (갈등적이면서 엄밀한) 독특한 인식의 실천으로부터 출발해서 “과학” 개념을 개조하려고 한 것인지 질문해 볼 수 있다(또한 마땅히 질문해 봐야 한다). 이 경우 “과학”이 우리에게 절단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맑스의 절단에 고유한 명증성(흄식의 감각론적 형태뿐만 아니라 헤겔식의 사변적인 형태까지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경험론 및 직접성에 대한 비판으로서)이야말로 과학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우리가 다시 질문해 보도록 촉구한다. 다시 말해 과학이 포함하는, 하지만 과학이 필연적으로 그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는 않은, 인식과 진리 효과들 자체에 관해 질문해 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공된 두 번째 배형은 구조라는 통념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이 통념은 분명 체계적 통일성 내지는 “총체성”라는 관념에 준거하지만, 이 후자는 완전히 내재적인 방식으로, 또는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효과들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부재하는 원인”의 양식으로 자신의 효과들 안에서 주어질 뿐이다(알튀세르는 나중에 이를 자신의 다양한 양태들 안에 내속하는 스피노자의 실체와 비교하게 된다). 문제는 맑스 및, 그와 그 이후의 다른 맑스주의자들(특히 정세,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할 때의 레닌)이 역사 안에서 발견하고 싶어 하는 인과성의 유형 자체이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다양성이 실천들의 다양성이라는 점이다. 실천들의 총화를 구조화하는 것은 실천들이 서로에 대해 작용하는 방식을 가지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알튀세르는 실천들은 오직 본질적이고 환원불가능한 과잉결정의 양식으로 서로에게 작용한다고 말하는데, 어떤 “복잡성의 감축”도 이 과잉결정 너머에서 선형적 결정 관계의 단순성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한다. 그와는 반대로 여러 실천들 중 하나에 의한 “최종 심급에서의 결정”이 주장되면 될수록, 이와 상관적으로 이질적인 “지배”(domination), 또는 “지배작용”(dominance)의 필연성이 생겨 나고, 따라서 “순수한” 경제적 경향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의 다양화가 생겨 난다. 그리고 이 장애물들이야말로,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유일하고 진정한 “역사의 동력”을 이루는 계급투쟁의 소재 전체를 구성하는 것들이다.

구조에 대한 이러한 관점 ... 은 인문과학들의 인식론을 분할하고 있는 방법론적 “개체론”과 방법론적 “유기체론” 내지는 “전체론”에 대한 이중적 거부에 의해 부정적으로 표시된다. 따라서 이 관점은, 적어도 형태상으로는, 근원적으로 관개체적인(transindividuelles) “관계들”(“rapports” ou “relations”)의 결합으로서의 사회적인 것을 이론화하는 데서 철학적인 표현을 제공해 준다. 맑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에서 고전적인 관념론 및 유물론에 직면하여 이러한 이론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뒤, 계속 이에 관한 작업을 시도했다. 구조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피콜로 극단: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유물론적 연극에 관한 노트)]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주관적 시간들의 분리 내지는 거리두기의 구조라는 관점에서 비범하게 소묘되고 있는 “의식”이라는 인간학적 범주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대응물로 지니고 있다. 이 논문은 책 전체의 이론적이고 기하학적인 중심이지만, 이 책에서 이 논문은 “도둑맞은 편지”로 나타나는데, 이는 누구도 이를 그 자체로[즉 이 책의 중심으로] 읽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이 논문이 미학에 관한, 연극에 관한 논문이라는 암묵적인 이유(raison honteuse)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렇다면 다시 한번, 알튀세르가 여기서, 궁극적으로는 역사나 역사성이 아니라,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 안에서 우연의 필연성을 사고하기 위해―단지 맑스 이론의 “시작들” 및 진화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구조”라는 관념을 활용하는 방식에 내재하는 난점이 드러나게 된다. 한편으로 과잉결정이라는 관념은 사건이 포함하는 예견불가능성과 비가역성의 역설적 결합과 함께 사건의 가지성에 응용되었다( ... “정세” ... ). 다른 한편으로 이는 생산양식들의 범역사적 비교에, 따라서 계급투쟁 및 사회구성체의 역사적 경향에 응용되었는데, 여기서 문제는 이것들을 진보의 이데올로기들 및 경제주의적 진화주의와 “역사의 종말”이라는 종말론에서 떼어내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한다면 한편으로는 공산주의 혁명들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적 이행들에 응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이 양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연속적인 것으로 제시되는 [모순과 과잉결정], [유물변증법에 대하여]라는 위대한 두 논문을 읽거나 다시 읽어본다면, 내 생각으로는, 첫번째 논문은 사건에 대한 사고쪽에서 과잉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비해, 두 번째 논문은 경향 및 시기 구분쪽에서 이 개념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분명 하나의 관점을 다른 관점과 대립적으로 선택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해결책은 『맑스를 위하여』에서, 그리고 여기에 나타난 구조에 대한 관념에서 이 두 관념 사이의 긴장, 또는 상호성으로서의 역사성이라는 질문에 대한, 결론은 아니겠지만, 매우 밀도있는 논의를 확인하는 데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데올로기라는 통념 및 질문 주위에서 조직되는 배형이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이면서 철학적인 이유들 때문에) “이데올로기(들)”에 대해 말하기를 중단하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 통념에서 해석학이나 역사에 대한 담론의 계보학의 주요 장애물을 발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이 문제에 대한 30여년 간의 토론―이 역시 하나의 주기를 이루고 있다―이후에, 아마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르의” 관점에 대해 간단히 몇 마디를 결론적으로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통념은 그의 철학적 기획 및, 담론으로서, 학문으로서 철학과 그가 맺고 있는 관계의 핵심 자체를 구성한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라는 통념은 철학이 자신의 “자기의식”―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간에―을 통과해서, 그 자신을, 그 자신이 아닌 것, 즉 사회적 실천들의 장 안에, 자신의 물질적 가능성의 조건들과 관련하여 위치시킬 수 있게 해주기(또는 가설상으로는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그 자신을 제거해 버리거나 “반영물”로 환원시키지는 않고서. 바로 이 점에서 이 통념은 알튀세르의 이론을 그의 철학적 모델들, 즉 스피노자 및 어떤 프로이트와 결합시키는 능동적인 혈통 노선을 구성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철학 담론의 자율성과 자족성의 이론가가 아니라 타율성의 이론가들이다. “토픽”, 즉 사고가 분석하는 갈등의 장 안에서 사고의 위치에 관한, 따라서 사고의 현실적이지만 유한한 역량에 관한 이론가들인 것이다.

알튀세르는 이후에도 이데올로기 일반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결코 변화하지 않았다. ... 이데올로기는 역사적 존재(Sein)에 대한 의식(Bewusstsein), “물질적인 실존 조건들”을 반영하고 “현실적인 것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져 있는”(즉 추상적, 관념적인) 담론들로 표현되는 “사회적인 의식의 형태”가 아니다. 이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실존 조건과 맺고 있는 관계를 상상적으로 영위하는 의식 및 무의식의(재/인지 및 몰인식의) 형태다. 바로 여기에 적어도 모든 이데올로기적 구축물의, 특히 계급 투쟁의 연속적인 형성체들 속에서 역사적 이데올로기들(“중세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또한 “프롤레타리아적”인)이 담당하는 기능의 기본적인 수준, 근본 층위가 존재한다.

이로부터,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의 종언 역시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종언 또는 사회적 관계들의 투명성으로의 회귀의 다른 이름인 한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파괴적인 사실의 확인이 직접 따라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알튀세르는 단지 “자신의 진영에 맞서” 집요하게 작업(그는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본질적 기능들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철학자는 진영을 가져야 한다)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명백한 형태상의 모순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는 계속해서―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맑스를 위하여』는 오직 이를 주장하기 위해 쓰여졌다―이데올로기에 대한 이 정의는 유일하게 인식가능한 맑스주의적 정의, 어쨌든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맑스의 이론화와 일관된 유일한 정의이며, 이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론을 보완할 수 있게 해준다. 분명 (다시 한번 내 주장에 대해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이러한 정의는 맑스 자신(엥겔스의 경우는 제쳐 두고)이 정식화할 수 있었던 정의들(특히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정반대일 뿐만 아니라, 알튀세르의 집요한 적용은 사실은 맑스주의 이론 및 그 공언된 완결성에 대한 “해체”로 인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알튀세르가 그러한 정의야말로 “유물론적”이라고 주장하면 할수록, 아무런 어긋남 없이 “유물론적”이면서 동시에 “맑스주의적”인 철학의 지평은 점점 더 그 앞에서 멀어져 갔다.

분명 이 지점에서 알튀세르의 자기비판들에 대해 한 마디 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간략하게, 그저 독자들이 가장 특징적인 텍스트들을 참조하게 하는 정도로 그치고 싶다.

이제 우리는, 이름 그대로 지칭되든 아니든 간에, 다수의 “자기 비판들”을 보게 된다. 이 자기 비판들은,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자신을 정당화하고, 자신을 정정하거나 와해시키고(심지어 자신을 파괴하고), 아마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에게 복귀하려는 양가적인 성향을 표현하는데, 이는 전혀 알튀세르에게 (심지어 철학자들에게) 고유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의 경우에 자기 비판은 그의 실존 및 그가 이론과 맺고 있는 관계의 독특성을 비가역적으로 표시할 만큼 통상적인 비율을 넘어서는데, 이는 그의 사상의 내적인 성향 때문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주위의 끔찍한 압력 때문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정정들이 반복되고, 또 이처럼 반복되면서 전환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또한 알튀세르 자신이 제시한 몇 가지 “길 안내”를 갖고 있지만, 이는 같은 길을 지시해 주지 않고 있으며, 이는 심지어 『맑스를 위하여』를 독해하는 데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여기서 제안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주해들―이것들은 때로는 그 자체로 매우 흥미있으며, 또는 문제를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한다―을 사상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이를 텍스트의 문자에 체계적으로 투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앞에서 우리는 『맑스를 위하여』를 그 시대와 그 환경 속에서 읽어야 하지만, 이를 기록 문서로 전환시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재발간에서 편집자는 매우 정당하면서 신중하게도, 알튀세르가 『맑스를 위하여』의 외국어 번역본들을 위해 1967년에 작성한, 그리고 거기에서 제시된 해명들 및 평가들은 프랑스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가치를 지니는 [독자들에게]라는 서문을 [후기]라는 이름으로 포함시키고 싶어했다. 이 [서문]에 반영되어 있는 입장들(“이론주의”에 대한 자기 비판, “구조주의”에 대해 거리두기, 과학과 철학의 차이에 대한, 그리고 철학과 정치, 특히 혁명적 정치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강조)은 『레닌과 철학』(1968) 및 『자기 비판의 요소들』(1974)에서는 이론의 시각에서, 『입장들』(1976)이라는 논문 모음집 안의 몇몇 텍스트들(특히 [혁명의 무기로서의 철학] 및 마르타 아르네케르의 저서에 대한 서문으로 쓴 [맑스주의와 계급투쟁])에서는 정치의 시각에서 다시 제시되고 가공된 자기 비판들과 같은 것들이다. 이 자기 비판들은 알튀세르 자신이 선택했던 투쟁 동지들이지만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던, 하지만 또한 이론의 고상한 시선을 위해 “계급 투쟁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환기시키려고 했던 양쪽 편(프랑스 공산당(PCF)의 공산주의자들과 맑스-레닌주의 청년 동맹(UJCML)의 마오주의자들)에서 동시에 가해졌던 폭력적인 압박을 반영하고 있다. 좀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 자기 비판들은 자신의 이론적 수단들을 통해 확장된 맑스주의 이론의 장―여기서는 착취 및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조건들이 “최종 심급에서 결정적이다”―안으로 당대의 68년 5월 및 다른 사건들을 끌고 들어가 해명하려고 했던 알튀세르의 시도를 반영한다.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이 자기 비판들은 하나의 “실천”으로서 이론을 끝까지 사고하는 데―이 시도가 사활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해도―는 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무런 회고적인 진리도 지니고 있지 않지만, 이 문제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고 있다.

상이한 시기에, 상이한 목적에 따라 생산되었고 상이한 측면들에 집중하고 있는 두 개의 또다른 “자기 비판”을 지적해 두고 싶다. 하나는 [아미엥에서의 주장](1975년에 쓰였고, 1976년 에디시옹 소시알에서 출간된 논문 모음집 『입장들』에 재수록)에서부터 1980년의 파국 이전이나 이후에 쓰인 매우 암시적인 또는 매우 밀도높은 몇 개의 텍스트들(1984년 페르난다 나바로와의 『대담』[『철학에 대하여』, 서관모,백승욱 옮김(동문선, 1995)]에서 나타나는, 근대의 변증론자들보다는 에피쿠로스에서 영감을 받은 “불확실성의 유물론”을 인식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암시 같은 것들)에까지 진행된다. 과소결정이라는 단어가 이전의 저작들에서 단 한 차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튀세르는 1975년 국가 박사학위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한 [아미엥에서의 주장]이라는 텍스트에서 모순과 그에 고유한 “불균등성”에 관해 수수께끼처럼, 과잉결정은, 이것 못지 않게 본질적인 과소결정이 없이는 결코 작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양자가 교대로 작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과적 결정 자체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동일한 구조에 양자 모두가 구성적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여기서 주석 및 보충이라는 은폐된 형태로 이루어진 자기 비판을 읽어내야 할까?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자기 비판은 다른 것들보다 더 구성적이라는 점에서 훨씬 흥미로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비판이 제공하는 암시―우연의 필연성을 “구조적으로” 해명한 이후,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이러한 우연의 우연성, 동일한 사건의 내부에서 공존하는 가능태들 내지는 경향들의 “과소결정된”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이다―는 하나의 테제나 심지어 하나의 가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철학적 프로그램이라는 점 역시 확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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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론>을 <학문>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좀 막연하고, 더 나아가 애매성이 있습니다. <이론>은 분명 science는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론>의 특징은 하나의 특정한 분과학문에 따라 정향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이론>의 이런 비분과적인 성격은 단지 그 소재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작업방식과 스타일에도 담겨 있습니다. <이론>과 관련해서 그 독특성을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고 또 스스로의 작업을 자각적으로 <이론>이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꽤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도 꽤 잘 알려져 있는 프레드릭 제임슨 같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우리나라에는 주로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로 알려져 있지만, 본인 자신은 자신의 작업을 <이론>이라 지칭합니다. 그에게는 <이론>이 전통적인 철학을 대체하고 포괄하는(헤겔의 의미에서 <지양하는>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매우 중요한 학문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곧 <이론>은 전통적인 철학처럼 보편학이라는 과도한 야심을 갖지 않지만, 또 철학처럼 하나의 특정한 분과학문으로 경직되어 있지도 않고, 더 나아가 이론과 실천, 학문과 현실의 관계를 자체 내에 품고 있다는 의미지요.

 제임슨과 다른 의미로 <이론>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론>은 미국의 철학계가 유럽철학을 수용하는 한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류 철학 제도 내에 편입시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도 바깥으로 완전히 몰아내는 것도 아니죠. 반면 문학부 쪽에서 보면 <이론>은 비평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고 형성하는 한 방식, 그 결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론>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제도적인 <의도>나 <목적>을 훨씬 넘어서는 또는 일탈하는 결과가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이론>이 도입되고 형성되는 시점은 제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편의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일단 시작된 과정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실 <이론>은 이미 어떤 정형적이고 완성된 틀을 갖고 있는 학문이라기보다는 계속 변모 중에 있고 진화과정 중에 있는 것이어서, 이게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모할지 정확히 예견하기는 좀 어려울 듯한데요.

어쨌든 <이론>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초기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이제는 상당히 자신들의 작업의 성격에 대해 자각적인 것 같다는 인상입니다. 앞에서 말한 프레드릭 제임슨도 그렇고, 에드워드 사이드나 가야트리 스피박 같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대학 수사학과에 있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같은 사람, 버클리 대학 인류학과의 폴 레비나우(Paul Rabinow) 같은 사람, 노스웨스턴 대학 인문학부에 있는 새뮤얼 웨버(Samuel Weber) 같은 사람, 뉴욕 주립대 비교문학과에 있는 로돌프 가쉐(Rodolphe Gasche) 같은 사람, 존스 홉킨스 대학 정치학과의 윌리엄 코널리(William Connolly) 같은 사람, 영국 서섹스 대학에 있다 얼마전 미국 에모리 대학으로 옮김 제프리 베닝턴(Geoffrey Bennington) 같은 사람, 얼마전 국내에도 다녀간 지젝(Zizek), 또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제국』을 공저한 듀크 대학의 마이클 하트나 미국의 대표적인 알튀세르 연구자인 워렌 몬탁(Warren Montag) 같은 사람은 영미권에서 대표적인 <이론가>로 불리는 사람들이고, 또 이를 잘 자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유럽 같으면 철학자로 불릴 만한 사람들이고, 사실 유럽에서는 이 사람들을 모두 <철학자>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소속도 그렇거니와 굳이 자신을 철학자로 부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사람들은 철학을 자신들의 작업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고, 또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철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버틀러 같은 사람들은 독일에서 가다머나 토이니센 밑에서 헤겔을 공부한 사람이고, 새뮤얼 웨버도 독일에서 아도르노 밑에서 공부한 적이 있고, 제임슨은 독일 철학과 프랑스 철학에 무불통지인 사람이고, 가쉐 역시 독일 관념론 철학에 정통한 사람이죠.

하지만 철학은 이들 작업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철학을 자신들의 각각의 작업의 분야에서 직접 활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컨대 버틀러는 페미니즘과 퀴어이론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고, 이 영역의 문제들을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에서 철학을 활용합니다. 제임슨은 초기에는 변증법 문학이론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나중에는 좀더 일반적인 문화이론의 영역의 문제들을 고찰하는 데 철학을 동원하지요. 이는 다른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들이 관심을 가진 영역이 문학이론인지, 인류학인지, 사회학인지, 정신분석학인지, 탈식민주의인지 등이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들은 엄밀한 철학적 능력을 갖추고 각 분과학문에서 활동하는 전문학자들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들의 작업을 <이론>이라는 일반 명칭으로 묶기에는 이들의 관심사라든가 작업 내용, 스타일들이 너무 다양하고 이질적이기 때문이지요. 이 점에 관해서는 저도 뭐라고 딱부러지게 드릴 말씀이 없는데, 제가 미국에서 공부한 적도 없고, 멀리 떨어진 외부관찰자로서 이것저것 단편적인 면모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론>이라는 공통의 명칭으로 묶이고 있고, 또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작업이 갖는 <이론>으로서의 독특한 성격을 얼마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이들의 작업을 <이론>이라는 새로운 범주로 분류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또 너무 글이 길어졌는데요. 어쨌든 제가 볼 때 중요한 것은, 초창기에는 제도적인 우연이나 편의성에서 출발했던 것이 이처럼 새로운 학문 영역, 또는 이론적 작업 영역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사람들이 이런 걸 만들어냈을까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이 사람들의 문화적 수준이 높다든가, 풍부한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다든가,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든가 하는, 특수한 환경적 요인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요인들, 다시 말해 우리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요인들도 있었다는 거지요. 이런 의미에서 앞의 글에서 몇 가지 측면(학문적 태도, 총서, 학술지, 출판제도 등)을 제 나름대로 한 번 말씀드린 겁니다.

변변치 않은 생각에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시고, 긴 답변까지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 경험을 말씀드리면, 저는 이렇게 번역이 엉망으로 된 책들을 읽으려면 짜증이 나고 답답하기도 해서 도무지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인공지능 연구에서 60%의 정확성만으로도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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