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을까

고교등급제 파문에도 양심선언 하나 없어…소수 통제 가능한 교수들만 평가 참여

▣ 강성만 기자/ 한겨레 사회부 sungman@hani.co.kr

지난 3년여 동안 소문과 의혹으로만 떠돌던 고교등급제의 실체가 확인되자 서울 강북이나 지방의 학생·학부모·교사들은 경악했다. 믿고 싶지 않았던 일부 사립대와 강남 그리고 특목고의 ‘검은 유착’이 한순간 그 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교육부식 표현에 의하면 “고교등급제를 일부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화여대와 연세대, 고려대는 물론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출신 고교와 지역이 아니라 학생 개인의 학업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대학의 올 1학기 수시 합격생 수의 분포를 보면 항변은 설득력이 없다.


△ 전교조 등 교육단체와 학부모단체들은 이번 파문을 계기로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대해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사진 / 김진수 기자)

학교별 가이드라인 마련해 활용했다

교육부는 서초와 강남, 그리고 송파 등 서울의 3개 구 출신 합격생 비율과 강북·지방과 함께 비교한 자료를 내놓았다. 부동산업계쪽에서는 강동까지를 이른바 강남권역으로 치지만 대학쪽에서는 강동 지역 학교를 강남에서 제외한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3개 구의 일반계 고교 학생 수는 전국 대비 5% 정도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과 이에 따른 교육열을 감안할 때 합격생 비율이 전국 대비 2~3배 정도 높지 않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최대로 늘려 잡아도 20% 이상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실제 국감 자료를 보면 지난해 고려대의 수시 1학기 합격생의 9.5%가 서초와 강남 지역 학생이었다.

하지만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드러난 연세대와 이화여대의 올 수시 1학기 강남 학생 비율은 이런 상식을 여지없이 짓이겨버렸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입학생 가운데 36.1%와 35.3%가 전국 대비 5%에 불과한 강남 학생들이었다. 고교등급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들 대학의 반박의 허구성은 실태조사 대상에 오른 서강대와 성균관대, 한양대 등 다른 대학의 강남 학생 비율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세 대학은 각각 11.4%, 8.3%, 12.6%의 비율을 보였다. 이대·연대의 강남 학생 비율과 3~4배의 차이를 보인다.

이들 대학의 부인에도 교육부는 왜 이대 등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으로 보는 것일까. 평준화 체제에서 고교간 학력차가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각 고교들은 2000년 이후 각 고교의 수능성적과 당해 대학 입학생 수 등 학교의 특성을 보여주는 각종 자료들을 축적해놓고 있다. 실제 이번 조사로 등급제 적용 의혹을 털어버린 한양대의 최재훈 입학관리실장도 “고교별 특성을 분석해놓은 자료를 모으고 있으며 입학제도개선 연구팀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수시 전형의 서류평가 등에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화여대와 연세대는 고교별 학력차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는 이런 자료들을 교수 평가위원들에게 직접 전달해 평가자료로 활용하도록 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에서 고교 유형과 지역별로 서류 평가 때 각각 어느 정도의 점수 차이를 둘 것인지 명시하는 구체적인 지침 등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들 대학이 학교별 점수 차이를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활용했으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등급제 적용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것까지 까발릴 필요는 없겠다 싶어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화여대의 경우 자기소개서 평가에서 특목고와 강남, 강북 등 학교 유형과 지역별로 일정한 점수대가 형성되어 있고 같은 학교 출신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점수차가 나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는 학생별로 천차만별일 텐데 특정 특목고의 경우 지원자 모두 80점 이상을, 특정 비강남고 지원자는 모두 70점 이하였다는 것이다. 학교를 차별하라는 문서상의 지침이나 구두 지시가 없었다고 부인하더라도 실제 드러난 결과가 확증이 되는 셈이다.

평가위원 교수의 수도 밝혀내지 못해


△ 고교등급제 파문은 교육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사진 / 김진수 기자)

지난 8월30일 <한겨레>의 ‘고려대 고교등급제 적용 시사 파문’ 기사가 나가면서 물 위에 드러난 ‘고교등급제’를 취재하면서 가장 큰 의문은 “왜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을까”였다. 대입 전문가들이나 교사들은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의 고교등급제 적용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 오래 종사했고 전문가일수록 그 확신의 강도는 셌다. 그런데도 연세대 교수사회 안에서는 어떤 양심선언이나 제보도 없었다. 서류 평가 등에 상당수 교수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항의하는 교수들이 몇명은 있지 않겠느냐는 상식적 판단이 배반당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쪽은 나름의 판단을 제시했다. 학교별 차이를 일사분란하게 적용한 이화여대의 경우 자기소개서 평가에 전·현직 입학처장이나 대학의 통제가 가능한 교수 몇명 등 핵심 소수만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연세대의 경우도 이화여대에 비해 다소 많지만 다른 대학들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은 교수만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게 교육부 판단이다. 이화여대에 비해 많을 것이라는 예측은, 같은 고교 지원자 가운데도 서류 평가 점수차가 나는 등 일부 평가위원들은 자료를 일률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재량을 발휘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쪽은 아울러 두 대학이 각기 축적해놓은 자료를 공유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에서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교수의 수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물론 구체적인 교수 명단도 확보하지 못했다. 대학쪽에서 대외비라는 이유로 접근을 막았기 때문이다.

실태조사 발표 뒤 뒷말이 가장 많이 나온 학교는 고려대다. 이 대학의 수시 1학기 강남 학생의 비율 18.2%가 말해주듯, 이화여대와 연세대에 비해 ‘학교 차별’의 정도는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연대·이대와 비슷한 수준의 제재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대학은 서류와 내신 석차 백분위 평가 때 최대 2점까지 학교에 따라 다르게 가산점을 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가산점의 규모가 크지 않아 실제 강남이나 특목고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학교에 따라 차등 배점한 증거는 세 대학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다. 이를 두고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고대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반면 자료를 주고 교수들 재량에 맡긴 연세대를 두고는 “지능적”, 빈틈없이 학교를 차별한 이화여대에 대해선 “단순하다”는 수식어를 달았다.

교육부는 애초 세 대학의 재정적 제재 수위를 거론하면서 ‘수도권 대학 특성화’ 지원금 20% 삭감안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년 전 한양대가 본고사형 지필고사를 치른 사실이 적발됐을 때 지원금의 15%를 삭감했다. 20%면 올해 이화여대의 특성화지원금 36억원 가운데 7억2천만원이 삭감되는 것이다. 사회를 뒤흔들어놓은 중대 사안이었음을 감안하면 왠지 액수가 초라해 보인다. 교육부는 실태조사 발표 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뒤 추후 결정하며 전액 삭감도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 이번 파문은 입시생과 학부모들의 줄소송으로 번질 전망이다. (사진 / 김진수 기자)

가장 큰 책임은 거짓말 방조한 교육부

이번에 적발된 세 대학은 교육부 발표 이후 “고교간 학력차가 엄존하는데 그 차이를 무시할 수 있겠느냐”는 판에 박은 항변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선 본고사 불가피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 주장의 정당성은 제쳐놓더라도 이번 조사 결과는 이른바 명문 사학이 수험생을 상대로 ‘앞과 뒤가 다른 행태’를 보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탄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연세대는 수시 전형 요소로 내신(60%)과 서류(20%) 그리고 면접(20%) 등 세 가지를 내세웠다. 내신은 지역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외형적인 요강만으로는 강북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연세대는 은밀히 고교별 자료를 활용해 학생들의 서류 평가를 왜곡함으로서 강북이나 지방 학생들을 차별한 것이다. 구체적인 전형 기준 등을 비공개로 했기 때문에 대학쪽에선 “거짓말한 적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강북·지방 수험생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실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시간과 돈을 탕진하는” 피해를 입었다. 아울러 고려대는 명시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한겨레>가 이 대학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고교간 학력차 자료를 수시 전형에 활용해왔다고 보도하자 며칠 뒤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자료만 축적했을 뿐이라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에 있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기여입학제를 금한다고 말만 했을 뿐 이를 강제하기 위한 어떤 실효적인 노력도 해오지 않았다. 언론과 전교조 등의 문제제기로 쟁점화하자 뒤늦게 칼을 빼든 교육부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려대의 등급제 시행 의혹이 제기되자 교육부는 고려대쪽에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함에도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부인하는 해명 자료를 내놓도록 재촉했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유도한 셈이다. 학수고대하던 해명 자료가 나오자 흡족한 미소를 지었던 교육부 당국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의 사회적 신뢰를 땅으로 내팽개쳐버린 고교등급제 파문은 그동안 ‘사회적 합의’로 간주해온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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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아마존에서 책주문하려면

미국서만 책을 주문하고 신용카드로 지불해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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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eapesttextbooks.com/index.cgi?store=cheapesttextbooks

출처 : 숱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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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유용한 정보라서 냉큼 퍼오긴 했는데,
이걸 보니 또 책사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는 ... -_-;;;

2004-10-26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4-10-2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다시 좋은 정보를 주신 님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볼 수 있게 하시지 그러셨어요.

싸이런스 2004-10-26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존보다 엄청나게 싼 값에 인문, 사회, 자연 과학등 각종 책을 미국에서 살 수 있는 싸이트
http://www.labyrinthbooks.com/
책을 받는데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신 분은 선박으로 배송 주문하면 정말 싸게 살 수 있답니다.
함 둘러 보세요.

balmas 2004-10-2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여기저기서 좋은 정보들이 많이 들어오는군요.
조금 있으면 공짜로 책 얻는 곳도 알아낼 수 있을 듯.
ㅋㅋ

릴케 현상 2004-10-27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몇 군데 순방하면서 안 쓰는 외서들을 슬쩍해 오면 공짜 책이 가득^^
 
 전출처 : 노부후사 >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 이해영

[시론]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경향신문 2004-10-25 17:42] 

 

〈이해영 한신대 국제평화인권대학원장〉

 

자신의 안전을 타인에게 의탁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말한 이는 마키아벨리다. 그래서 스스로의 안전을 스스로가 책임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위험’하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되새김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 대선의 결과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 때문이다.

 

부시와 케리 중 누가 우리에게 더 나은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조건이 계속된다면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하는 데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조건 가운데 역시 본질적인 것은 우리의 안전을 타인, 곧 미국에 의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는 현실, 바로 그것이 ‘위험한 사회’ 한국의 존재조건이다.

 

부시=전쟁’ ‘케리=평화’식의 사고 역시, 너무 단순한 현실인식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북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간 ‘대화’를 시작한 것은 아버지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었고, 이 문제로 북폭을 계획한 것은 우습게도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었다. 더군다나 1999년 북한 대포동미사일을 놓고 벌어진 위기상황에서 재차 북폭론이 제기되었을 때, 여기에 반대한 사람은 미 네오콘의 우두머리 울포위츠였다. 그가 보기에도 북폭은 한반도의 전면전을 불러올 것이고, 그것은 완전한 파멸을 의미할 뿐이다.

 

- ‘부시냐, 케리냐’ 무의미 -

 

9·11 이후 미국 외교노선을 네오콘이 쥐락펴락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오래전부터 이라크전쟁을 디자인해 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 민주당내 계파 중 이른바 ‘리버럴 매파’는 사실상 네오콘과 별 차이가 없다. 또 민주당 케리와 에드워즈 모두 이라크전쟁을 지지하고 있고, 심지어 케리는 이스라엘의 극우 리쿠드당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해 네오콘의 전략은 전쟁이라기보다 소위 ‘공격적 봉쇄’이다. 쉽게 말해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에는 ‘때려 죽이기’를 택했다면, 북의 김정일 정권에는 ‘굶겨 죽이기’ 전략을 펴겠다는 말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의 어린이들이 플루토늄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전법은 최근 ‘북한인권법’으로 구체화되었고, 그 기본발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네오콘이 주장해 온 그대로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이 전쟁쪽으로 기울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북한의 결사적 버티기와 남한의 부전(不戰)의지가 확고하다면 그 가능성은 실상 높지 않다. 더군다나 갈수록 인플레되고 있는 북의 핵무기는 우습게도 그 자체가 전쟁억지 요인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물론 과장되기는 했지만 북이 ‘정말’ 핵을 갖고 있고, 유사시 그것을 사용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인간에게 알려진, 최대로 효과적인 권력자원은 바로 공포이다. 우리가 이라크에 파병한 것도 실은 그 깊숙한 데에 미국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고, 북의 핵도 사실은 대미 공포의 결과물이다. 부시건 케리건 남과 북 모두에 대해 공포의 국제정치를 구사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가 그 뚜렷한 실체를 증명하기 어려운 전쟁 공포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미국은 아마 곶감 빼먹듯 ‘실리’를 챙길 것이다.

 

- 美에 의탁 한국상황이 문제 -

 

물론 여기에는 영어가 국교(國敎)가 되고, 친미는 정책을 넘어 중독이 되어버린 바로 그 국내적 조건이 중요하다. 한·미간 경제현안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빼먹을 실리의 리스트는 이미 공개되어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투자협정(BIT), 농산물, 자동차, 스크린쿼터, 반도체, 지적재산권 등. 공포를 바탕에 깔고 한손에 북핵, 다른 손에 실리, 여기에 우리 외교관료의 무능함이 가미된다면 나는 그것을 ‘망할 쾌’라고 본다.

 

어떤 현명한 이가 말하길, 미국은 우리의 팔을 비틀더라도 아주 부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팔이 비틀리더라도 견뎌낼 맷집을 키우면서, 여태껏 미국이 대신해준 그런 국제정치가 아니라 진정한 우리의 국제 ‘정치’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큰집 제사상만 바라보다가는 죽거나 혹은 망하거나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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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에릭 로메르 회고전

에릭 로메르 회고전
(Eric Romher Retrospective)
감독 : Eric Romher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
공연시간 및 요금
일정 : 2004/10/22 ~ 2004/11/04         1회 11:20 2회 1:40 3회 4:00 4회 6:20 5회 8:40 (11월 1,2일 4회,5회 상영없음)

작품소개
동숭아트센터"하이퍼텍 나다"와 시네마테크 부산, 광주극장은 현존하는 누벨바그의 거장이자 성찰적인 심미주의자 에릭 로메르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영화제를 개최합니다.1959년 장편영화 <사자자리 Signe du lion>로 감독 데뷔 후 2004년 <삼중 스파이 Triple Agent>에 이르기까지 약 45년에 이르는 활동 기간 동안 총 51편(단편·TV 제작물 포함)의 작품을 발표한 로메르는 프랑스 영화의 질적인 변화와 새로운 영화의 도래를 이끌었던 누벨바그의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영화세계를 창조해냈고, 20세기 최후의 대가 감독이자 최후의 누벨바그라고 알려질 만큼 현재까지 가장 지속적으로 누벨바그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감독입니다.

"마음의 풍경을 사려 깊게 담아낸 영화철학자"

이번 에릭 로메르 회고전에서는 감독으로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매김 시킨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포함해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도덕이야기’ 연작 6편과 80년대부터 일상의 낯익은 격언을 토대로 삶의 교훈을 전하는 ‘희극과 격언’ 시리즈,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생을 반추하며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계절 이야기’ 연작, 2001년과 2004년에 발표한 최근작 <영국여인과 공작>과 <삼중 스파이> 등 로메르의 대표작 총 17편이 소개됩니다. 발자크, 스탕달, 헨리 제임스 등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에릭 로메르의 작품을 통해 오랜 프랑스 영화의 전통과 품격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에릭 로메르 회고전] 10월 22일~11월 4일
일반 7,000원/회원 3,500원/연장회원만 동반 1인 1,000원 할인
작품: 총17편 - 몽소 빵집의 소녀(26분),수잔느의 경력(52분),수집가(90분),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10분),여름 이야기(113분),오후의 연정(95분),해변의 폴린느(94분),아름다운 결혼(97분)녹색 광선(90분),봄 이야기(112분),겨울 이야기(114분),클레르의 무릎(105분),가을 이야기(110분),영국 여인과 공작(125분),보름달이 뜨는 밤(102분),내 친구의 남자친구(102분),삼중 스파이(115분)
*** 에릭 로메르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7편 중 16mm는 2편으로, <녹색광선>과 <해변의 폴린느>입니다.
*** 수잔느의 경력,녹색광선,보름달이 뜨는 밤,영국 여인과 공작,여름 이야기,가을 이야기 - 6편의 영화는 영어 자막이 있습니다.

10월 22일(금)
11:2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1:40 수집가/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여름 이야기/ 8:40 오후의 연정

10월 23일(토)
11:20 해변의 폴린느/1:40 아름다운 결혼/4:00 녹색 광선/6:20 봄 이야기/
8:40 겨울이야기

10월 24일(일)
11:20 클레르의 무릎/1:40 가을 이야기/4:00 영국 여인과 공작 /
6:20 보름달이 뜨는 밤/8:40 내 친구의 남자친구

10월 25일(월)
11:20 삼중 스파이/1:4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4:00 해변의 폴린느/
6:20 여름 이야기/8:40 수집가

10월 26일(화)
11:20 아름다운 결혼/1:4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4:00 가을 이야기/6:20 녹색광선
8:40 영국여인과 공작

10월 27일(수)
11:20 클레르의 무릎/1:40 봄 이야기/4:00 보름달이 뜨는 밤/6:20 오후의 연정
8:40 삼중 스파이

10월 28일(목)
11:20 겨울이야기/1:40 내 친구의 남자친구/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8:40 아름다운 결혼

10월 29일(금)
11:20 봄 이야기/1:40 해변의 폴린느/4:00 수집가/6:20 영국 여인과 공작
8:40 여름 이야기

10월 30일(토)
11:20 클레르의 무릎/1:40 보름달이 뜨는 밤/4:00 겨울 이야기/
6:40 내 친구의 남자친구/ 8:40 녹색광선

10월 31일(일)
11:20 오후의 연정/1:40 삼중 스파이/4:0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6:20 아름다운 결혼 /8:40 봄 이야기

11월 1일(월)
11:20 가을 이야기/1:40 영국 여인과 공작/4:00 몽소 빵집의 소녀,수잔느의 경력
6:20 봄 이야기 /8:40 오후의 연정

11월 2일(화)
11:20 수집가/1:40 녹색 광선
6:20 해변의 폴린느 /8:40 여름 이야기

11월 3일(수)
11:20 삼중스파이/1:40 내 친구의 남자친구/4:00 클레르의 무릎/
6:20 보름달이 뜨는 밤 /8:40 겨울 이야기

11월 4일(목)
11:20 여름 이야기/1:40 오후의 연정/4:00 가을 이야기/6:20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8:40 클레르의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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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20세기, 야만의 얼굴을 한 평화 - 국지전

20세기 세계의 국지전 그 뿌리와 결과
-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중심으로
 
글쓴이 :  바람구두

*이 글은 제가 지난 2002년 계간 황해문화 봄호(통권34호) 특집 "전쟁없는 21세기를 위하여"에 총론 성격의 글로 쓴 글입니다. 책을 보시면 실명을 확인하실 수 있겠지만... 구태여 이곳에 실명으로 올릴 필요는 없을 듯 해서요. 6-7회 정도로 나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세기, 야만의 얼굴을 한 평화 - 국지전
 
  전쟁을 기술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정된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이라는 국지전의 사전적 정의에 맞게 지역별로 대표적인 국지전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동아시아에서의 국지전 -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 베트남전

  추축국 동맹의 일원이었던 일본의 패망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확고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은 중국에서 장개석을 지원함으로써 공산당의 정권 장악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막대한 물량 지원에도 불구하고 제2차 국·공 내전에서 승리한 공산당이 1949년 중국 본토를 장악하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고 패전국 일본을 재건해 아시아의 군사·경제적 거점으로 삼고자 한다. 미국은 한국전쟁(1950-1953)이 발발하자 1951년 서둘러 일본과 안보조약을 맺고 승전국으로서의 배상 취득을 포기하고, 일본의 반성 없는 주권 회복을 인정한다.

  이후 미국의 일본을 이용한 중국 봉쇄 정책은 현재 일본의 재무장화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의 전략적 패배와 1949년 소련의 핵폭탄 실험 성공은 미국의 냉전적 사고에 더욱 불을 당겨 50년대 초에는 미국 전역을 매카시즘이라는 마녀사냥에 휩싸이게 한다. 이런 와중에 프랑스는 베트남 지역을 전후에도 지속적으로 통치하고자 한다. 앞서 베트남 민족지도자 호치민의 편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베트남의 민족지도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통해 그들의 독립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기대를 품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의 반제민족해방 세력은 프랑스 식민정부와 연합하여 일본에 대항했다.
 
  1945년 3월 9일 일본은 베트남에서 불편한 공존관계를 지속하던 프랑스 식민정부와의 관계를 끊고 무력으로 이들을 굴복시켰다. 80년간 계속되던 프랑스의 식민통치가 잠시나마 종결되었으나 일본은 베트남에서 자신들을 대리할 세력으로 이미 오래 전에 무력화된 우옌 왕조의 바오다이 황제를 즉위시킨다.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일본의 베트남 왕정 복원이 결코 베트남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간파하고, 연합군과 협력하여 베트남에서 일본군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한다. 8월 6일 일본에 핵공격이 가해지자 일본의 패망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깨달은 베트남독립동맹(Viet Nam Doc Lap Dong Minh, 越盟)은 즉각적인 총궐기를 선언하고, 8월 19일에는 하노이, 같은 달 25일엔 사이공을 장악하고, 9월 2일 호치민은 하노이에서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후 연합군은 베트남의 독립 열망을 저버린 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북위16도선을 경계로 영국과 중국의 군대를 진주시키고, 뒤이어 프랑스가 식민정부를 복원시키면서 독립은 깨졌다.
 
  베트남 전쟁은 크게 3개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1945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와의 전쟁, 제2기는 1954년부터 1973년까지 미국, 제3기는 미군 철수 후인 1973년부터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기이다. 미국이 완전한 자주 독립을 원한 베트남보다 프랑스를 지원한 까닭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불확실한 민족주의 세력보다는 유럽에서 점증되는 냉전 체제의 확고한 우방인 프랑스를 지지하고, 이들에게 전비를 지원8)함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이 확실해질 때까지 그들로 하여금 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대만, 필리핀, 일본, 남한을 연결하는 태평양 연안의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고, 인도차이나의 풍부한 자원을 지배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의 패권 장악을 노렸다.

  이와 같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민족해방 세력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프랑스의 패전으로 독립을 쟁취할 듯이 보였던 베트남은 1954년 프랑스와 제네바 협정을 맺어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임시 분할되고 협정에 의거하여 남북베트남간에 총선거를 실시하도록 했다. 예상되는 선거 결과는 호치민 정부의 승리9)였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이 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CIA를 통해 베트남에서 여러 비밀 공작들을 수행하여 조약을 파기하고, 고딘 디엠 정권이 수립되도록 했다. 고딘 디엠 정권은 태생적 한계와 실정, 부패로 인해 국민의 신임을 잃었고, 결국 1963년 CIA의 공작에 의한 쿠데타로 제거된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행한 일련의 정책들은 미국이 다른 제3세계 국가에서 수행한 일련의 정책들 중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한편으로 댐과 병원, 학교를 건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전역에서 소모한 폭탄의 2배 이상을 남·북베트남 구분없이 골고루 투하했다.(참고로 남베트남은 미국이 지원하는 정부가 통치했고, 북베트남은 국제법상 독립국가였다.) 이 시기에 에이전트 오렌지를 비롯한 다이옥신 등 각종 화학무기를 실험한 것은 물론 CIA의 피닉스 공작을 통해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닉슨 대통령 시절에는 북베트남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와 시간을 벌기 위해 남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공급기지를 파괴한다는 명분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침공했다. 그러나 미국이 대외에 선전한 것은 낙후되고, 식민지 경험을 가진 제3세계의 빈민국가에 문명의 혜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이런 미국의 교만한 정책은 결국 밀라이(My Lai)10)에서 347명의 민간인을 학살한다. 이런 미국의 군사전략은  피해당사자였던 제3세계 민중은 전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967년 버트란드 러셀, 장 폴 사르트르, 아이작 도이처 등과 같은 세계의 지식인들이  '베트남전쟁범죄에 관한 국제재판소'를 조직해 베트남에서 미국의 행위가 민간인들에 대한 광범위한 무차별 대량 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side)라는 전쟁범죄를 포함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이 재판소에서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들의 증언을 청취했고, 베트남 민간인들의 증언을 들었다. 사르트르는 최종적인 평결문에서 당시 국무장관 딘 러스크(Dean Rusk)가 "(베트남에서)우리는 우리를 방위하고 있다"고 한 말에 주목하며 베트남에서 미국의 전쟁 목적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런 군사적 목적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허명을 내세워 베트남 민간인들에 대한 제노사이드라는 의도적인 무차별 살상 즉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만장일치로 결론지었다.11)

  1975년 4월 29일. 베트남 전쟁은 미군 58,000명의 전사자, 153,000명의 부상자를 내며 끝났지만 베트남 민중의 인적·물적 손실은 계량화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미국이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의 교사'를 자청하며 일으킨 결과였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하게 된 원류는 메이플라워호가 신대륙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신대륙에서 발견한 원주민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인디언들을 몰살시키는 방법을 택했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인디언들이 가꾸고 생육하지 못한 땅을 자신들이 문명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그와 똑같은 논리로 1848년엔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멕시코로부터 캘리포니아, 텍사스, 유타 등 서부 지역을 빼앗았다. 신의 축복을 받은 미국은 세계를 미국식 민주주의로 문명화시키기 위해 계속 팽창해야 하고, 그것은 미국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12)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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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50년까지 미국은 인도차이나 전체의 프랑스군을 무장시킬 수 있을 만한 분량인 약 30만 정의 소형무기와 기관총, 10억 달러의 군사비를 프랑스에 지원했다. 미국은 프랑스의 전쟁 비용 중 약 80%를 부담했다.

하워드 진, 조선혜 옮김, 「베트남전쟁」, 『미국민중저항사2』, 일월서각, 1986, 220쪽

9) CIA의 전신인 OSS의 윌리엄 도노반 국장은 소련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는 유럽에서 소련은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철학이라는 대단히 강력한 카드를 제시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과 영국은 소련만큼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정치적, 사회적 철학이 없다." 10여 년 뒤 아이젠하워와 덜레스도 이와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았으며, 인도차이나 사태가 악화됐을 당시에도 미 정부 당국자들은 같은 심정을 토로하곤 했다. 노암 촘스키, 오애리, 「남-북, 그리고 동-서」,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2000, 이후, 121쪽에서 재인용. 그리고 이런 불안은 과테말라 아르벤즈 정권의 토지개혁 과정과 쿠바 혁명의 성공이 제3세계 민중들 사이에서 하나의 가능성있는 시도로 보이는 것 자체를 불안 요소로 여기고 미리 차단하려는 반혁명, 예방혁명 시도로 이어진다.

10)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국내 TV뉴스에서는 영국 BBC방송의 한 프로듀서가 미 국방부 문서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서 노근리를 포함한 전지역에서 미군에 의한 조직적 민간인 살상에 대한 명령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이 소개되고 있었다.

11) 이삼성, 「미국의 세기와 베트남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한길사, 1998, 211~212쪽에서 발췌 인용

12)) 이 말은 1837년 멕시코와의 전쟁에 즈음해서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존 어 설리반(John L. O'Sullivan)이 쓴 신문 사설에서 멕시코는 "앵글로 색슨족의 월등한 기력에 융합되거나 굴복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패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긴 말이다.  최웅, 김봉중, 「해외팽창」, 『미국의 역사』, 1997, 조합공동체 소나무,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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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25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아직 [법의 힘]을 안 사셨단 말씀입니까? 이런, 섭섭해라 ... ^^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는 당연히 독어본을 번역했지요. 물론 불역본에서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영역본은 오역이 더러 있는데, 데리다가 [법의 힘]에서 준거로 삼고 있는 불역본은 아주 번역이 정확하더군요)^^.
그런데 수업에서 좋은 글들을 많이 다루네요. 좀 너무 많은 걸 다룬다 싶기도 하지만 ...
인세에 보탬을 주신다면, 언제든 환영이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