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인간아 > 오, 늘 오늘

 

 

 

 

 

 

 

 

 

 

 

 

 

 

 

 

 

 

 

 

 

 

이제 곧 봄이네요. 새봄맞이 조촐한 책나눔을 하려 합니다. 그간 알라딘에 서재를 꾸리고 참 많이 배우고 웃고 서로서로 어울리며 행복했습니다. 제 책욕심 때문에 과도하고 지나치게 선물을 많이 받았는데 그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아볼까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책을 꼭 필요하신 분들께 드리려합니다.

제 서재를 둘러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위의 책들은 정가를 주고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 아니라 제가 헌책방을 다니며 발품을 팔아 모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책 한권 한권마다 나름대로 기억이 깃들어 있네요. 책이 손때가 뭍고 새책이 아니어도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정말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주시고 다른 분들에게 조금은 양보해주십사 하는 부탁을 드립니다.

물론 이벤트에는 조건이 있어야겠지요. 되도록이면 제가 드리고 싶은 분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저도 책에 눈이 어두워 마구 이벤트에 참여했던 과거가 있기에 기회는 알라디너 모든 분들께 드립니다. 조건은 제 서재 방문자 수가 1만이 되는 것을 캡쳐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캡쳐 이벤트의 해악(? - 시간을 너무 빼앗긴다!! -)을 알긴 하지만 막상 이벤트의 조건을 정하는 게 좀 까다롭네요. 온당한 참여 부탁드립니다. 책이 44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원하시는 책은 2-3권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대략 열다섯 분 정도가 책을 받으실 것이라 예상합니다. 원하시는 책이 중복될 경우에는 제 소견으로 조정하겠습니다. 제 서재에 들러주시고 인사주신 분들께 우선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절판본 구매 대행업>에 대해 늘 마음의 빚으로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늘 헌책방 다닐 때마다 찾겠습니다. 그러니 종종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밑질 것 없는, 기약 없는 먼 약속 정도로 여겨주시면 좋겠네요. 혹시 아나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만나는 첫사랑처럼 어느날, 좋은 소식이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의 탐구 - 이승하 시집 - 문학과 지성사

아, 인생찬란 유구무언 - 신현림 - 문학동네

촛대의 전설 - 슈테판 츠바이크 - 자작나무

와인 한 잔의 진실 - 무라카미 류 - 창해

아담이 눈 뜰 때 - 장정일 - 미학사

피지의 난쟁이 - 무라카미 류 - 예음

나를 반하게 하는 것은 ~~~ -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1권에 해당합니다.)

시간의 지배자 -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 문학동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 슈테판 츠바이크 - 하문사

옛 거장들 - 토마스 베른하르트 - 현암사 - 절판

리허설 - 무라카미 류 - 주변인의 길 - 절판

성채 - 크로닌 - 청목

나무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보통 여자로 살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 무라카미 류 - 친구 미디어

뉴욕 3부작 - 폴 오스터 - 열린책들

향수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야야툰 - 홍승우 만화 - 문학과 지성사

이사도라 던컨 자서전 - 민음사 - 절판

서양 미술 순례 - 서경식 - 창작과 비평사 - 구판

활동사진의 여자 - 아사다 지로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 구판

말뚝 - 서정인 - 작가 정신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 토마스 베른하르트 - 현암사

유령 - 한동림 - 문학동네

칼의 노래 - 김훈 - 생각의 나무

잠자는 숲속의 남자 - 신이현 - 이가서

사랑의 파괴 - 아멜리 노통 - 열린책들 - 구판

두려움과 떨림 - 아멜리 노통 - 열린책들 - 구판

릴라는 말한다 - 시모 - 민음사 - 절판

카지노 - 아사다 지로 - 이레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 김연수 - 세계사 - 절판

살아간다는 것 - 위화 - 푸른숲

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 - 돌베개

 달려라 메로스 - 다자이 오사무 - 숲 - 도서관 유출본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 이만교 - 민음사 - 도서관 유출본

세계문제시인선집 7권 -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 - 프랑시스 퐁주 - 청하 - 절판본

떠도는 그림자들 - 파스칼 키냐르 -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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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urblue, 넌 말이야!

말씀드린 대로 8000힛 기념 이벤트를 엽니다.

방법은, 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시는 겁니다. urblue, 넌 말이야, 너무 예쁘잖아, 라든가 (돌 던지지 마세요. ^^;) 나이 서른 넘어 그렇게 계속 살래, 라든가 뭐 하여간. 로드무비님 이벤트처럼 엽서를 보내주시는 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니면 바람구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에게 어울리는 이미지를 올려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 카테고리에 페이퍼를 써주시면 되구요, 보시는 분들은 추천 팍팍 눌러주세요. 추천수와 제 마음에 얼마나 드는지 여부에 따라 5분을 선정해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좋은 말만 써주시는 분들을 고르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공감'이 중요하겠죠. ^^; 8000힛이 되는 날까지 받겠습니다. 일주일쯤 걸리겠네요.

에, 설마 참가하시는 분들이 5분이 안되면? 뭐, 선물값 굳으니, 불쌍한 urblue, 하면서 저한테 선물하렵니다. ㅠ.ㅜ

또 한가지는 8000힛 캡쳐입니다. 8000을 세번째로 캡쳐하신 분께 마찬가지로 선물드리겠습니다. 왜 세번째냐구요? 캡쳐 느린 사람의 비애를 제가 알기 때문이죠. ㅎㅎ

그럼, 많이 참가해주시기를...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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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애도의 슬픔 때문에 이 영화의 중요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잊어먹을 뻔했다.

피노체트 기소를 처음 생각해낸 카스트레사나 검사는 자신에게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떠맡으려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독재를 피해 50만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무려 50만명의

사람들이. 그 때 주스페인 칠레  영사가 배를 한 척 내주면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습니다. 그는 연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사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칠레 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죠. 그 때 칠레의 보건장관이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였습니다.

내가 피노체트를 기소하려고 하는 건 바로 연대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칠레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고 실각했다.

피노체트와 그의 무리, 미국은 아옌데가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연대의 정신은 살아남아

30년뒤 피노체트를 기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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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2-2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대의 정신...저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urblue 2005-02-2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어느 분일까 둘러 봤는데, 음..잘 모르겠던걸요. ^^

balmas 2005-02-2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도 오셨었군요. 저는 조금 늦게 가서 맨 뒤에서 봤어요. :)
블루님과 산책님을 못뵈서 저도 좀 섭섭한데요.^^;
따우님,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보세요. 가끔 고통받아보는 것도 정서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ㅋ
카슬레이님, 예전에도 한번 했었군요. 증언자들의 증언은 정말 인상적이죠 ...

krinein 2005-02-28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의 소개 덕분에 영화도 잘 보았습니다.
30여년 이상을 싸워오는 구즈만의 의지에도 새삼 감탄했지요.

balmas 2005-02-28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네인님도 오셨었군요. 이런 ...
듣기로는 제가 아는 후배 하나도 왔었다는데
저는 만나지 못했어요.
그러고보니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제가 아는 분들이 여럿 계셨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만 셈이네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꼭 만나서 인사드려야지 ... ㅋㅋ
 

오늘 오후 3시에 일민미술관 5층에서 있었던 2월 반딧불 인권영화제 [피노체트 재판]을 보고 왔다.

원래는 영화가 끝난 뒤 과거사 청산에 관한 강연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까 여러 생각들로

심란하고 착잡해져서 영화가 끝난 뒤 바로 빠져나왔다.

 

  영화는 먼저 피노체트 정권 당시 살해된 사람들의 시신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가족들 몇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찰과, 인류학자, 발굴조사단이 피해자의 유골을 조심스럽게 발굴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몇개의 뼛조각 이외에는 거의 흔적을 찾지 못해 낙담한 가족들의 한탄이 터져나온다.

노랫구절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한 아버지의 눈물젖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너의 심장으로부터 봄이 온다네.

 너의 시신으로부터 꽃과 풀이 자라나

 너는 그 속에 있으리라." (대충 기억에 의존한 것이어서 부정확하다 ...) 

 

  그리고 나서 영화는 스페인으로 옮겨간다. 그 이유는 피노체트를 기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던  스페인의

카스트레사나라는 젊은 검사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 헌법 체계를 검토하여 피노체트를 스페인 법정에 기소

수 있음을 알아낸다. 카스트레사나는 아옌데의 변호사였던 ****(이름을 까먹었음 ... -_-a)와 함께 피노

체트 당시 고문 피해자 및 실종자 가족들을 면담하면서 피노체트의 범죄사실에 대한 기록들을 확보한다.

그리고 가르손이라는 판사의 호응을 얻어낸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8년 신병치료차 피노체트가 영국을 방문한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가르손 판사는 

영국과 스페인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 협정과 유럽 테러 협약에 의거해 피노체트를 18명의 스페인

시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하고 신병을 인도해 줄 것을 영국 검찰에 요청한다.  가르손의 생각은 적중

하여 피노체트는 영국경찰에 체포된다. 곧바로 피노체트 변호인들은 피노체트가 종신 상원의원이자

 칠레의 전직 국가수반으로서 면책특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체포는 불법이라고 항소하고

영국 고등법원은 이를 수용하여 피노체트 체포가 불법이라고 판결한다. 하지만 다시 영국 검찰이

항소하여 사건은 영국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영국 대법원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다름아닌 피노체트의 생일날 3 : 2로 피노체트의 스페인 인도를 결정한다.  그 이후 대법관의 구

성에 이의를 제기한 피노체트 변호인단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새로 투표가 이루어지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피노체트 인도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법원 바깥에서는 피노체트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칠레인들의 

환호성이 터지고 피노체트는 곧 스페인으로 인도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가 질병 때문에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측에

피노체트를 본국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한다.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영국 정부의 결정으로 결국

피노체트는 칠레 공군기 편으로 칠레로 되돌아온다. 피노체트의 기소를 확신하던 시위대들의 낙담

한 표정과, 칠레 공항에 피노체트를 마중나온 군인들과 귀부인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대비된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피노체트 재판과 유럽 각국의 피노체트 기소 이후 칠레의 여론도 변화하여 칠

레 법원은 피노체트의 면책 특권을 박탈하여 피노체트가 집권 시기에 자행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기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하나의 승리에 관한 기록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한 고통

과 시련, 인내와 저항 끝에 얻어진, 아주 작은 승리의 기록이다. 사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피노체트 통치

아래 실종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 그들의 어머니와 아내의 인터뷰, 그리고 저항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

어 가혹한 고문을 당해야 했던 여성 운동가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그러고 보니 인터뷰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여자들인 것 같다(한 사람만 빼고?). 그만큼 많은 남자들이 죽었다는 뜻이리라 ... ).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나즈막히 분노를 담아, 또 때로는 행복하게(젊어서 남편을 빼앗긴 한 여인은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그토록 가혹한 시련 이후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로서는(그리고 그 여인 자신도) 믿기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자신은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그 행복은,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이야기를 마침내

털어놓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다는 데서 나오는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에

깊은 슬픔을 바탕에 깔고서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건,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을 몇 가지 말들이 생각난다.

고문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가에 관한 이야기:

"그들의 고문은 특정한 자백을 받으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문당하는 나의 인간성을 파괴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는 사물이나 다름없는 존재

였다." 

동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가장 가슴아픈 일은 동료가,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옆방에서 고문을 하면서 그들은

 크게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고문받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렇게 당한다

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용서에 관한 이야기:

"내가 고문을 당한 것보다 더 가슴아프고 괴로운 건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나더러 그들을 용서

하라고 충고하는 말이다.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지 않았나, 그들을 이제 그만 용서해라. 잊는 게 낫지 않은

가 ...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고문을 당하는 것을 겪어봐야 한다. 용서는, 용서받을 사

람이 용서를 구할 때에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칠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피노체트가 잘

못한 건 빨갱이들을 모조리 없애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더 슬퍼진다."

희망에 관한 이야기: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말아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믿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는 다를 것이라고. 그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왜 죽임을 당하

고 실종되었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속 마음이 착잡하고 심란했던 건, 결국 이들의 희생과

 고통, 싸움이 아직도 지구상 곳곳에서 계속, 어쩌면 더욱 더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또 분명히 자각하고 있어야 할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들이 아닌가? 그렇게 되기를 조장받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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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 2005-02-2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움, 전해 듣기만 해도 끔찍하고, 착잡해지네요.

balmas 2005-02-2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럴 줄 알고 감상기 2를 써놨지. ^^v

릴케 현상 2005-02-2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놀라운 기억력...

balmas 2005-02-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뭘요,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적은 걸요 ...
 
 전출처 : 조선인 > 서울역 노숙자 대 회현역 노숙자

지금은 회사가 목동으로 이사왔지만, 그 전 4년간은 서울역과 회현역 딱 가운데 있었던 터라 노숙자 곁을 오가며 출퇴근했다. 그런데 노숙자의 수는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추석이 지나면 추위를 피해 지하철역에 급증하기 시작하고, 식목일을 전후로 하여 한산해지곤 한다. 한여름에야 열대야를 피해 일부러라도 공원에서 잠을 청한다지만, 일교차가 큰 봄가을에 노숙도 아닌 야숙을 자청할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단속 때문이다. 아무리 노숙자라도 동사자를 만들 수 없어 겨울에는 내버려두지만, 꽃피는 춘삼월만 되면 단속과 물청소를 강화해 내쫓는 것이다. 마태우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한여름에도 한뎃잠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데, 노숙자들은 어디서 봄가을을 보낼까 마음이 쓰이곤 했다.

어쨌든 서울역이고 회현역이고 일년 열두달 노숙자들이 끊이지 않는데, 나를 비롯한 대개의 여직원들은 서울역보다는 회현역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선호했다.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서울역 지하도의 악취는 락스청소를 하고 노숙자 몸에 대고 소독약을 뿌려대도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반면 회현역은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노숙자들의 외양도 멀끔한 편이다.

또 서울역에는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깡소주나 환각제에 취한 노숙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이들은 만만하다 싶은 행인이 지나면 불쑥 길을 가로막거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구걸을 하곤 해 공포의 대상이었다. 자기들끼리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일쑤이고, 아무데나 용변을 보거나 토악질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고성방가와 술주정이라니.

하루종일 거지꼴로 지하도를 뒹구는 서울역 노숙자들과 달리 회현역에는 대개 저녁 8시 정도부터 노숙자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일단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은 뒤, 짊어지고 온 배낭과 종이상자를 풀어 잠잘 채비를 한다. 수건 겸 걸레로 구석구석 상자의 흙과 먼지를 닦아내는 모습이 꽤나 정성스럽다. 그나마 말짱하고 깨끗한 면을 골라 이리저리 상자를 끼워 맞춰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관 모양을 만드는 재주도 가히 경이롭다. 사람크기만한 배낭에선 침낭이 나오고 여벌 옷이 나오고 베개까지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다른 노숙자와 거의 말도 안 하며 잠자리 준비만 끝나면 바로 가지런히 누워 잠을 청한다. 가끔 추위를 다스리려고 소주와 꼬마김치를 나눠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쩌다 술주정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워있던 사람들에게서 고함이 터져나온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잠 좀 자자."

철야를 하고 새벽에 퇴근할 때면 회현역 노숙자의 대부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하철을 타고 언 몸을 녹이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서울 곳곳의 새벽 인력시장으로 흩어진 것이다. 하루 일당으로 벌집에 들어가 잘 수도 있지만,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 친척집에, 혹은 고아원에 맡긴 아이를 찾을 수 있기에 그들은 손가락질을 받는 노숙자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에게 왜 이분들이 노숙자 쉼터에 안 들어가냐고 여쭤봤더니 햇살보금자리처럼 새벽출근이 가능한 곳은 얼마 없고, 다른 기관은 일과(훈련)프로그램에 따라 운영되거나 아예 지방에 있어 일 다니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또 대부분의 기관이 종교단체에서 운영되는 것이라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언젠가 회현역에서 노숙자가 지하철 역무원의 부인을 철로에 떨어뜨려 죽게 한 사건이 난 적 있었는데, 이로 인해 회현역 노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 할 수 없이 이들은 서울역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잘 수가 없고 그 바람에 다음날 일거리까지 놓쳤다며 회현역 역무실에 하소연을 하는 걸 보았다. 사고를 낸 노숙자는 회현역 노숙자가 아니라 뜨내기였다며 비분강개하는 모습을 보니 서글펐다. 그들은 일거리가 끊어져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슬픈 광경은? 하루 3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노숙을 자청하며 돈을 아끼면서도 매일같이 500원짜리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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