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만간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나올 에티엔 발리바르의 책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의  

맨 앞 장의 번역본입니다.  발리바르 책이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소개할 겸 올려봅니다.  

이 책은 이 장까지 포함해 총 13장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책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세계화 시대의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정치적 쟁점들을 인식하는 데, 또 실천적인 대안들을 모색하는 데 

이 책에 비견될 만한 책은 지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이 책 전체는 이 장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개괄하기에 유용하다고 생각해서 이 장을 올려봅니다.  

아직 교열이 끝난 원고가 아니니까 당연히 인용은 불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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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막. 유럽의 경계들에서   

[1999년 10월 4월 데살로니카 프랑스 연구소와 데살로니카 아리스토텔레스 대학 철학과 공동 초정으로 인문대학의 원형 대강의실에서 발표한 강연. 이 강연은 Transeuropéennes n° 17, Paris, 1999-2000에 실렸다.]


나는 전통적인 형세―강력한 신화들과 더불어 역사적인 사건들의 지속적인 발생을 반영하는 형세―에서 볼 때 유럽의 “주변부”에 위치한 나라들 중 하나인 그리스에서 “유럽의 경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데살로니카 자체가 이 경계의 나라의 경계선상bord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한편으로 외국인(숙적으로 전환된)과의 주기적인 대결과 다른 한편으로 문명들 사이의 소통(이러한 소통이 없다면 인류의 진보도 존재할 수 없다)의 변증법이 작용한 장소들 중 하나였다. 따라서 나는 내가 다룰 대상의 중심에―그것이 포함하는 모든 난점들과 더불어―들어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계frontière”라는 용어[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frontière”라고 할 수 있다. 불어에서 이 단어는 “국경”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좀더 일반적으로는 “경계”라는 뜻으로 쓰인다. 발리바르가 이 책에서 논증하려는 주요 테제 중 하나는 국가의 영토적 경계로서 “국경”이 국민국가의 위기 속에서 좀더 일반화된 “경계들”로, 곧 이주민들, 난민들, 외국인들, 소수자들에 대한 배타적인 경계들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frontière”라는 개념은 보통 사회과학에서 의미하는 “국경” 이외에 경제적ㆍ사회적ㆍ인종적 “경계”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이 후자의 뜻이 좀더 핵심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는 이 개념을 주로 “경계”라고 번역하되, 특별히 “국경”이라는 의미가 강조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경계/국경” 같은 식으로 번역하겠다.]는 극히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내 가설 중 하나는 이 용어의 의미가 심원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여전히 국가의 주권적 기능들을 보존하려고 시도하는 새로운 정치ㆍ경제적 실재의 경계들은 더는 영토들의 경계선 상에 모두 위치해 있지 않다. 이러한 경계들은 정보와 사람, 사물의 이동이 실행되고 통제되는 곳이면 어디든지(예컨대 세계화된 도시들) 얼마간 분산되어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테제들 중 하나는, 이른바 주변적인 지대들, 곧 세속 문화와 종교 문화가 충돌하고, 경제적 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심화되는 지대들은 인민peuple(demos)―인민이 없다면 고대 이래 민주주의 전통에서 전승되어온 의미에서 시민권citoyenneté(politeia)도 존재하지 않는다―이 형성되기 위한 도가니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계에 위치한 지대들과 나라들, 도시들은 공적 공간의 구성과 관련하여 주변적인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반대로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만약 우리에게 유럽이 무엇보다도 해결되지 않은 한 가지 정치적 문제의 이름이라면, 그리스는 그 문제의 중심들 중 하나다. 그리스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우리 문명의 신화적인 기원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에 집중돼 있는 문제들 때문에 그렇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중심이라는 통념은 우리를 한 가지 선택에 직면하게 한다. 이 통념은 권력의 집중 및 가상적이거나 현실적인 국가핵심기관의 지방 분권 같은 국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의 중심은 브뤼셀이나 스트라스부르 또는 런던 시티[“City of London”은 금융회사가 밀집한 런던 뱅크역(驛) 사방 1평방 마일의 지역을 가리킨다.]나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또는 오히려 유럽 건설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국가들의 수도인 베를린에 위치할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파리와 런던 등에 위치할 것이다. 하지만 이 통념은 또한 다른 의미, 좀더 본질적이면서도 좀더 파악하기 어려운 의미를 지니는데, 이 경우 이러한 통념은 시민civique 의식의 창출 및 인민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의 집합적인 해결을 통해 인민이 구성되는 장소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유럽적인 인민”, 그것도 생성 중에 있는 그러한 인민은 존재하는가? 이것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그리고 만약 유럽적인 인민, 아직 마땅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인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술관료적인 외양을 넘어서는 유럽적인 공론장이나 유럽적인 국가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몇 년 전에 “유럽에는 어떠한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Es gibt keinen Staat in Europa”는 헤겔의 유명한 정식을 모방하여 주장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이 책 9장 참조].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열려 있어야 하며, 경계의 지점들에서는 특히 “중심적인” 방식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난점은 더 있다. 우리는 코소보, 발칸 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직후인 지금 여기에 모여 있는데, 서구 열강들이 프리스티나Priština[코소보의 주도(州都)]에 설치한 보호령은 자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의심스러운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반면, 베오그라드에서는 현 체제의 장래를 둘러싼 책략들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가까운 시일 내에 벗어날 수 없는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 모두 동일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오히려 이 문제에 관해 우리들 사이에는 심각한 이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전쟁을 가리키기 위해 우리가 똑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점에 관한 명백한 징표일 것이다.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은 각자 상이한 이유에 따라 나토의 개입을 비난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또한 각자 상이한 이유에 따라 한 “깃발” 아래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아마 그럴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나토의 개입에서 미합중국이라는, 헤게모니를 쥔 외부 세력에게 유럽이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그러한 개입에서 유럽의 국가들이 대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의 무력을 용병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아마 그럴 것이다) 운운. 
 

나는 이러한 딜레마를 단칼에 해결하겠노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들이 유럽 건설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모순들을 무자비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나의 신념을 이 자리에서 밝혀보고 싶다. 유럽의 건설이 단일한 화폐의 설립과 그에 따른 사회ㆍ경제 정책을 위한 공동의 틀의 건설을 통해, 그리고 “유럽적 시민권”의 형식적 요소들의 실행을 통해 비가역적인 문턱을 넘어섰다고 간주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이 사건들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들에서 사람들은 곧바로 유럽적 시민권의 군사적ㆍ치안적 맞짝을 감지하게 된다. 
 

사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행정과 세력관계의 “공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인민들 사이의 소통과 협동의 “공적 공간”이기도 한 유럽 공간 내에서의 포함과 배제의 양상들에 대한 정의다. 결과적으로 이는 용어의 가장 강한 의미에서 유럽 건설의 가능성이냐 불가능성이냐가 달린 문제다. 코소보를 공동 보호령으로 설립한 것과, 간접적으로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통치하는 세르비아를 봉쇄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발칸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불가능성이 압도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 같다. 비록 사람들이―내가 그렇듯이―진행 중에 있는 “종족 청소” 과정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을 더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비록 사람들이―내가 그렇듯이―정치적 제도의 역사에서 인민의 자기결정권에 관해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불신한다 할지라도 그렇다. 그리고 이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 구유고슬라비아 전체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출구도 없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는 발칸반도(및 좀더 일반적으로는 동유럽)의 인민들에게 결사associations라는 정치적 해법을 제안하고 발전의 전망을 열어주며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침해에 맞선 효과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곳 어디에서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대해 “유럽 공동체”가 무기력하고 무능력할뿐더러 그 책임을 거부했던 결과였다. 따라서 그 이후에 발생한 재앙들 및 그로 인해 오늘날 생겨나게 된 결과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유럽, 특히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발칸 전쟁이 유럽 건설이 맞이한 곤경 및 그 불가능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정확히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유럽의 건설은 어떤 조건 하에서 다시 가능하게 될 수 있을지, 상이한 장래를 위한 잠재력들은 어디에 존재하는지, 과거 잘못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다시 그런 잘못을 반복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피함으로써 어떻게 그러한 잠재력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지 질문해보는 용기 또는 광기를 가져야 한다. 동일성에 대한 모든 신비화에서, 역사의 경로의 필연성에 대한 모든 환상에서, 그리고 특히 통치자들의 무오류성에 대한 모든 믿음에서 자유로운, 능동적인 유럽적 시민권에 대한 기획에 대해 유일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노력을 나는 촉구하고 싶고 또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 우리는 경계라는 특별한 문제를 중심으로 유럽적인 인민 및 유럽에서의 국가라는 질문을 논의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경계라는 문제는 정치ㆍ경제 권력의 쟁점들과 더불어 집합적 상상계 속에서 전개되는 상징적 쟁점들, 곧 한편으로는 세력관계 및 물질적 이해관계라는 쟁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성에 대한 재현/표상들이라는 쟁점을 응결하고cristallise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새로운 발칸 전쟁[발리바르는 여기서 1912-13년에 걸쳐 발칸 반도에서 벌어진 발칸 전쟁과 구별하기 위해 1990년대에 벌어진 발칸 전쟁을 “새로운 발칸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다.] 도중에 유럽이라는 이름이 서로 모순적인 두 가지 방식으로 기능했으며, 이는 내부와 외부라는 통념의 애매성을 잔혹하게 부각시켰다는 사실에서 나는 경계 문제의 중심성에 대한 충격적인 징표 중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유고슬라비아를, 하지만 또한 각자 상이한 정도로 발칸 반도 전체(따라서 여기에는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이 포함된다)를 [유럽에 대한―옮긴이] 외적 공간으로 간주해왔는데, 이러한 공간에서는 유럽이라는 이름이 붙은 어떤 실재가, 내가 여기서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유럽과 발칸 반도 사이의―옮긴이] 상호 외재성을 표현해주는 “개입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인류에 대한 범죄를 막기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자신의 막강한 동맹자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개입을 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칸 반도는 유럽의 바깥에 존재한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컨대 알바니아의 국민작가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é가 제안한 주제들[“Il faut européaniser les Balkans”, Le Monde, 17 avril 1999.]을 빌려 말하자면, 이러한 개입은 유럽의 영토 위에서, 유럽의 역사적 경계 내부에서, 유럽 문명의 원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돼 왔다. 따라서 이번에는 발칸 반도는 온전한 권리에 따라 유럽의 경계들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요컨대 유럽은 단지 도덕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특히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자기 자신의 영토 위에서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나는 결코 이것이 순전한 선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유럽의 공적 공간의 일부라고 지칭된 발칸 지역의 통합을 예상하거나 가속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수반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실패작이었던 “발칸 회의” 기획의 와해는 이를 웅변적으로 입증해준다. 관련 당사국들 전체와 유럽 공동체 그 자체가 관여하는 복구와 발전을 위한 경제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령 프랑스의 작가인 장 셰노Jean Chesneaux가 훌륭하게 제안했던 것처럼[“Quelle paix au Kosovo?”, Le Monde, 3 juin 1999.] 세르비아 군대 및 민병대에게 신분증을 빼앗긴 코소보 난민들에게 “유럽 주민증”을 부여함으로써 “유럽적 시민권”이라는 통념을 구현하려는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 연합”으로 진입하기 위한 단계 및 기준들에 대한 재정의도 없었다. 
 

그리하여 발칸 반도는 한편으로 유럽의 일부를 이루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일부를 이루지 못한다. 분명히 우리는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대륙의 동쪽편에는 터키를 필두로 러시아와 코카서스 지역과 같은, 이것과 등가적인 경계 영역이 존재하며, 이러한 경계 영역은 도처에서 점점 더 극적인 중요성을 띠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지극히 역설적인 상황에 이르게 된다. 첫째, 코소보의 식민화(현재 코소보의 체제를 레지 드브레Régis Debray가 제안했던 것처럼 이렇게 부르고자 한다면. 하지만 나는 그가 알제리 전쟁과 비교한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생각을 달리 한다)는 (일종의 미국의 용병의 도움을 받아 진행된) 유럽에 의한 유럽의 “내부 식민화”로 제시된다. 하지만 나는 또한 다른 상황들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가 자신이 유럽 주권 지역 내부에 속하는지 아니면 그 외부에 있는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인데, 그리스가 이런 질문을 제기한 것은 그리스 자신이 참여하려고 하지 않은 지상점령군의 진입지점으로 그리스 영토가 사용됐기 때문이다. 터키가 이 작전에 참여한 사실이 언급되었을 때 그리스의 어떤 “애국자들”은 [그리스와 터키라는] 두 “숙적” 중에서 정치적 유럽―군사적 유럽이 되어가고 있는―에 더 내재적인 쪽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했을 만도 했겠다고 능히 짐작이 간다. 
 

이 모든 것은 경계의 표상/재현의 토대를 이루는 내부와 외부라는 통념들이 정말이지 지진 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을 입증해준다. 이는 경계, 영토, 주권에 대한 표상/재현들 및 경계와 영토에 대한 표상/재현 가능성 자체가 비가역적인 역사적 “강압forçage”의 대상을 이룬다는 점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재현들은 정치적 공간을, 법의 부과이면서 동시에 육지의 분배로서의 주권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모종의 관점의 구성적 요소를 이룬다. 이러한 관점은 유럽 근대에서 탄생해서 나중에는 세계 전체로 수출되었다.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자신의 1950년의 대작 󰡔대지의 노모스Der Nomos der Erde󰡕에서 유럽의 공법Jus Publicum Europaeum이라고 불렀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또한 알고 있다시피 이러한 표상은 국가 제도에 본질적이기는 하지만, 유럽 역사를 구성하는 동일성들 사이의 복잡한 현실 및 그것들 사이의 상호 관계―때로는 평화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를 지탱하고 있는 위상학의 복잡성을 해명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이전에, 우리가 특히 중부 유럽에서, 좀더 일반적으로는 유럽 전체에서 관여하고 있는 것은, 단일한 블록들의 병치라기보다는―심지어 “소수자”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상호 모순적인 문명들 사이의 “삼중의 교차점” 내지 유동적인 “중첩 지대”라고 제안한 바 있다. 유럽은 모든 점에 있어서 다수적이다. 유럽은 항상 복수의 종교적ㆍ문화적ㆍ언어적ㆍ정치적 소속들 사이의 긴장의 본고장이자 역사에 대한 복수의 독해 및 나머지 다른 세계와의 복수의 관계 양상의 본고장이었다. 그것이 아메리카주의이든 오리엔탈리즘이든, “북유럽” 법체계의 소유적 개인주의이든 아니면 지중해 지역 가족 전통의 “부족주의”이든 간에 말이다. 이 때문에 나는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은 사실은 전혀 유별난 것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특징적인 마주침과 갈등 도식들의 국지적인 투사라고 제안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를 거리낌 없이 유럽적인 인종 관계라고 불렀는데[“Les frontières de l'Europe”, in 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Galilée, 1997; 「유럽의 경계들」,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7.], 물론 여기서 인종이라는 통념은 종교적ㆍ언어적ㆍ계보적인 동일성의 지시체들의 역사적 축적을 자신의 내용으로 삼고 있다. 

오늘날 나로 하여금 유럽의 동일성의 운명 전체는 유고슬라비아에, 좀더 일반적으로는 발칸 반도에 달려 있다(비록 이곳이 그 운명이 시험받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지만)고 주장하게 이끄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한편으로 유럽은 발칸의 상황을 자신의 가슴에 이식된 괴물로, 곧 저발전이나 공산주의의 병리적인 “잔재survivance”로 인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역사의 한 이미지나 효과로 인정하고, 정확히 이러한 사실과 대결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따라서 그것을 다시 문제 삼고 그것을 전환시키려고 시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유럽은 분명 다시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한편으로 유럽은 이렇게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을 거부할 것이고, 계속해서 이 문제를 외재적인 수단들(식민화라는 수단을 포함하여)을 사용하여 극복해야 할 외재적인 장애물로 취급하게 될 것이다. 곧 유럽은 미리 자신의 시민권에 대해 유럽 자신의 주민들이 넘어설 수 없는 내적인 경계선을 강제하며, 자신의 주민들을 거류 외국인의 상황으로 끝없이 몰아간다. 그리하여 유럽은 자신의 불가능성을 재생산하게 된다. 
 

이제 “경계의 시민권” 내지 접경의 시민권으로서 유럽적 시민권이라는 질문을 좀더 확장해보고 싶다. 우리는, 장기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거리를 둔 가운데 사태를 다시 고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불가능성과 가상성들virtualités의 응축물인 이러한 시민권을 다시 작동시켜야 한다. 
 

고전주의 시기 이래 20세기 중엽 제국주의의 위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주권이라는 질문이, 정치적이면서 또한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서 경계/국경이라는 질문―“진영들”의 붕괴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이러한 유산을 물려받아왔다―과 역사적으로 한데 결부되어 왔는지 환기해보기로 하자. 유럽이라는 이름이 지닌 정치적 의미의 기원들 중 하나,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7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당대에는 대부분 군주적 주권 체제로 조직되어 있던 국민국가들 사이에서 “유럽적인 균형” 체계가 구성되었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종종 역사 교과서에서 읽는 것과는 달리 이는 “투르크의 위협”이라는 배경 아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가톨릭 세력이 맞붙어 유럽을 폐허로 만들었던 30년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체결되었던 “베스트팔렌 조약”(1648)과 정확히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조금 늦게 이러한 유럽적 질서에 대한 두 가지 관점, 프랑스 군주정이 대표하는 헤게모니적인 관점과, 국가들 사이의 형식적 평등 체제라는 의미에서의 공화주의적 관점―이러한 관점은 국내 질서에서 몇몇 시민권들을 인정하는 것에 상응했으며, 이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체결한 동맹에 의해 구현되었다―이 서로 대결하게 된 순간에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빌렘 드 오라녜의 명령에 따라 작성된 선전문에서는 주권적인 국민들 내지 국가들 사이의 세력 관계와 교류 관계 전체―이 국가들 사이의 균형은 협상을 통한 국경의 확정에 따라 실현되었다―를 지칭하기 위해 당시까지 외교적으로 사용되던 “기독교 세계”라는 명칭을 유럽이라는 용어가 대체했다. 우리는 또한 이 통념이 때로는 민주주의적이고 세계시민적인 이상(칸트가 이론화한)을 향해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강력한 국가들에 의한 인민들과 문화적 소수자들의 움직임에 대한 감시(이는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비인 회의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를 향해 나아가기로 하는 등 계속해서 동요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현재 시기에 근접할수록 점점 더 심원하게 이 체계에 영향을 미치게 될 두 개의 진화 운동에 좀더 주목하고 있다. 
 

첫 번째 운동은 유럽적인 균형과 그에 상응하는 국민적인 인민 주권이, 17세기에서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세계에서 유럽의 헤게모니적인 지위, 좀더 분명히 말하자면 유럽의 식민 열강들―여기에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작은 국민들”을 비롯하여 러시아(이후에는 소련) 같은 주변적인 국민들도 포함된다―에 의한 세계의 제국주의적 분점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나 칼 슈미트 같은 비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각자 자신의 용어법에 따라 강조했던 것이 바로 이점인데, 슈미트는 여기에서 “유럽 공법”이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또 그 뒤에는 한나 아렌트 역시 이 점을 강조했으며, 우리 시대에 좀더 가까운 인물들로는 역사가인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과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 있다. 
 

자기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하고 또 스스로 그렇게 구성되려고 시도했던 유럽의 공간 내에서 “정치적” 경계선을 긋는다는 것은, 원래는 그리고 중심적으로는 대지를 분할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따라서 대지에 대한 수탈을 조직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세계 전체를 유럽의 확장으로, 좀더 나중에는 동일한 정치 모델 위에 구축된 “또 다른 유럽”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주변부에 “경계/국경 형태”를 수출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운동은 탈식민화에 이르기까지, 따라서 현재의 국제 질서의 구축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운동은 결코 완수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곧 독립적이고 주권적이면서 통일적이거나 동질적인 국민 국가들을 형성하는 일은 세계의 아주 많은 지역에서 실패로 돌아갔다. 또는 이는 단지 유럽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유럽 그 자체의 일부 지역에서도 의문시되었다. 
 

이는 분명히 매우 심원한 이유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며, 이 점에 대해 좀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적인 “절대적” 국가 주권 형태가 보편화 불가능한 것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들의 세계”, 심지어 통일된 국민들nations unies[“nations unies”는 또한 “국제연합”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이라는 표현이 용어 모순이기 때문일 수 있다. 특히 한편으로 유럽 국민들의 구성과 그것들 간의 안정되거나 불안정한 “균형”, 그것들 간의 내적ㆍ외적 갈등과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의 세계사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연관성이 국경 갈등의 영속화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오늘날 유럽 인민들에 전형적인 인구학적ㆍ문화적 구조도 낳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유럽 인민들은 모두 포스트식민적인 공동체이거나,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더 낫다면, 유럽의 공간 내부에 세계의 상이성이 투사된 것이다. 여기에는 이민이라는 원인도 존재하지만 또한 난민들의 본국송환 같은 다른 원인들도 존재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두 번째 운동은 정확히 말하면 인민이라는 통념의 진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앞의 운동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로부터 때로는 매우 폭력적일 수도 있는 강한 긴장이 생겨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국가들의 체계 및 그것들 간의 영속적인 경쟁 관계 속으로 주민들과 인민들이 역사적으로 삽입된 것이 이러한 인민들에 대한 표상 및 그들이 자신들의 “동일성”에 대해 지니는 의식을 내부로부터 변형시키는 방식이다. 
 

내가 월러스틴과 함께 1988년에 출간했던 󰡔인종, 국민, 계급. 애매한 동일성들󰡕이라는 저작에서 나는 사회들과 인민들, 따라서 문화들과 언어들, 계보들의 경향적인 국민화를 지칭하기 위해 “허구적 종족성의 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은 인민에 대한 두 가지 통념이 대결하는 장소이지만 또한 상호 함축적이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두 가지 통념이란 그리스 언어 및 그 이후의 정치철학 전통 전체가 에트노스ethnos와 데모스demos라고 지칭해온 것인데, 전자가 소속과 혈통의 상상적 공동체로서의 “인민”을 가리킨다면, 후자는 대표와 결정, 권리들의 집합적 주체로서의 “인민”을 가리킨다. 이중적인 측면을 지닌 이러한 구성물의 위력, 또한 이를테면 그것의 역사적 필연성, 그리고 일정한 조건들 아래에서 그것의 우연성과 상대성을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개인들이 속하는 집단들 사이에 서로 삼투되지 않는 방수된 경계선들을 상상적으로 그림으로써, 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든 아니든 간에 위로부터 개인들에게 지정된 경계들을 서로 주관적으로 전유함으로써, 다시 말하면 문화적이거나 정신적인 민족주의(간혹 “애국주의”나 “시민종교”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를 발전시킴으로써 경계라는 관념을 주관적으로 내면화하는 것, 곧 개인들이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서로 표상하는/재현하는 방식―아렌트를 따라서 개인들이 세계에 존재할 권리라고 말해두자―을 낳은 것이 바로 이러한 구성물이다. 
 

하지만 시민의 권리들―여기에는 교육권과 정치적ㆍ조합적 표현의 권리, 안전한 삶과 적어도 상대적인 사회보장의 권리가 포함된다―의 민주주의적인 보편성을 특수한 국민적 소속과 긴밀하게 연결하는 것 역시 바로 이러한 구성물이다. 이 때문에 국민이라는 형태 속에서 인민의 민주주의적 구성은 불가피하게 배제의 체계들을 산출하게 된다. “다수자”와 “소수자” 사이의 균열 및 좀더 심층적으로는 원주민으로 간주되는 인구들과 외래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들로 간주되고 인종적이거나 문화적으로 차별받는 인구들 사이의 균열이 그 사례들이다. 
 

이러한 균열들이 식민화와 탈식민화의 역사를 통해 강화되어 왔으며, 세계화의 시기에는 폭력적인 긴장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각각의 민족체 내부에서 이미 극적이게 된 이러한 균열들은 유럽 연합이 지향하고자 하는 포스트국민적이거나 초국민적인supranationale 공동체의 수준에서 재생산되고 배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는 프랑스 및 유럽에서 이민자들과 “미등록 체류자들sans-papiers”[“상 파피에sans-papiers”는 말 그대로 하면 “서류 없는 이들” 또는 “체류증 없는 이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3개월 이상 장기 체류를 위해 필요한 체류증을 갖지 못한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이 책에서는 “미등록 체류자들”이라고 옮기겠다.]의 상황에 관한 끝없는 토론 도중에, 유럽적 시민권 그 자체와 동시에 형성되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유령을 불러내게 되었다. 은폐하기 어려운 이러한 아파르트헤이트는 “동쪽”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남쪽” 주민들과도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가능하면서 불가능한 장래의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 실재로서의 유럽은 허구적 종족성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유럽은 이러한 유형의 건설을 통해 자기 자신의 시민권에 대해, 곧 자신이 포함하는 개인들 및 집단들에게 유럽이 부여한다고 간주되는 새로운 권리들의 체계에 의미와 실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제도들과 동시에 개인들의 상상계 속에 기입될 수 있는 유럽 자신의 “동일성”에 대한 표상을 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국민적 동일성 또는 내가 조금 전에 그 발생에 관해 환기한 바 있는 허구적 종족성에 특징적인 폐쇄성은 세계화의 사회적ㆍ경제적ㆍ기술적ㆍ통신적 현실만이 아니라 “유럽에서의 정치체의 권리droit de cité en Europe”라는 의미로 이해된 “유럽적인 정치체의 권리”라는 관념, 곧 유럽의 건설을 통한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관념과 양립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아포리아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곧 인민의 새로운 형상,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역사적 공동체들에 대한 소속(ethnos)과, 다른 한편으로는 집합적 행동, 생존과 노동, 표현에 대한 기본권과 동시에 시민적 평등, 언어들과 계급들, 성(性)들의 동등한 존엄성을 획득함으로써 시민권을 연속적으로 재창조하는 것(demos)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형상을 집합적으로 발명해야 할 필연성에, 하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그 불가능성에 바로 아포리아의 핵심이 존재한다. 오늘날 유럽적인 인민이라는 관념에 대해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민주주의적인 유럽 국가라는 기획에 대해 내용을 부여할 수 있는 일체의 가능성이 맞닥뜨린 두 가지 장애물―모든 유럽적인 사회 정책과 모든 유럽적인 사회 운동에 대한 부정, 유럽에 대한 소속을 규정하는 배타적인 경계선의 권위주의적인 확정―과 동시에 대결하고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하지 않는 한 인민의 새로운 형상을 발명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이름들의 존속은 모든 “동일성”의 조건이다. 우리는 어떤 이름들을 위해, 또 그 이름들을 전유하기 위해 다른 이름들에 맞서 투쟁한다(유럽, 유고슬라비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 하지만 또한 프랑스, 영국, 독일 같은 이름들). 이 모든 투쟁은 향수와 국경 또는 유토피아와 변혁 프로그램의 형태 아래 흔적들을 남긴다. 그리하여 유럽이라는 이름(이는 아주 먼 고대 시기에서 유래한 것이며, 처음에는 아시아나 소아시아의 작은 지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은 세계정치적인 기획들과 결부되어 왔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들 또는 그러한 시도들이 야기한 저항과도 결부되어 왔으며, 또한 세계 분점 및 “문명” 확산 프로그램―식민지 열강들은 스스로 문명의 수호자로 자처했었다―과도, 세계에 대한 적법한 소유권을 둘러싼 “진영들” 사이의 경쟁과도, 지중해 북부의 “번영 지대”와 “21세기의 열강”을 창조하려는 기획 등과도 결부되어 왔다. 
 

민주주의 정치가 직면한 어려움은, 역사적으로 해방의 기획들 및 시민권을 위한 투쟁들과 결합되어 왔으며, 나중에는 이러한 기획들과 투쟁들을 재개하고 영속적으로 발명하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되었던 표상들 속으로 폐쇄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동일화는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구조들과 이데올로기(문화적ㆍ정치적 통일체에 대한 소속 감정들)라는 이중의 제약에 종속되어 있다. 현재의 쟁점은 유럽적인 동일성 그 자체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의 투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공산주의” 및 진영 분할의 종언 이후에 쟁점은 오히려 유럽의 경계들을 민주화할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유럽의 내적 분열들을 극복하고 세계 속에서 유럽 국민들의 역할을 완전히 재사고할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시민권을 발명하는 과제를 중심으로 선회하고 있다. 중심적인 문제는 유럽 연합이 “지역적인 질서”의 보장을 감당할 만한, 또는 인도주의적이거나 신식민주의적인 개입들을 통해 대외적으로 자신을 “투사할” 만한 군사적인 역량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지중해 지역의 동쪽과 서쪽 및 남쪽과 북쪽에 공통적인 민주화와 경제 구성의 기획이 입안되고 인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불가능한 유럽, 가능한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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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9-04-13 01:21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 고맙다. 나오면 해줄게.^^

balmas 2009-04-13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님/예, 그러시군요. 그런데 어떤 걸 보시고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nation을 국민으로 번역하면, nationalism도 국민주의라고 옮겨야 적절할 때가 있는 듯합니다. "국가주의"야 발리바르가 "etatisme"이라는 용어를 따로 쓰니까 혼동될 염려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NA 2009-04-15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출간이 될 모양이군요. 축하합니다. 빨리 번역본을 사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장의 한 구절을 보니 진태원 선배님이 nation을 국민으로 옮기고자 하는 이유가 조금 보이는군요. 전 여전히 nation을 민족이라고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이미 전에 충분히 말씀드렸으니 더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오늘은 droit de cite를 '정치체의 권리'로 옮기신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어 질문을 드립니다. 우선 '정치체의 권리'라는 번역은 언뜻 보기에는 '정치체가 갖는 권리'라는 뜻으로 읽히는데, droit de cite는 오히려 cite에 대한 권리 또는 cite에 들어가고 머물고 떠날 권리를 말한다는 점에서 de를 -에 대한으로 옮기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cite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에 있어서 그것을 정치체로 옮긴 것은 일면 수긍이 가지만(왜냐하면 정치체로서의 도시/국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조금 부적절한 면이 느껴집니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cite는 장소의 의미를 여전히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곧 도시/국가에 들어가고 머무는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추상적인 정치체라는 말이 자칫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발리바르는 droit de cite를 한나 아렌트의 the right to have rights에 대한 비판적 가공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렌트의 개념이야말로 정치체를 가질 권리, 정치공동체에 속할 권리를 의미한다면, 발리바르의 droit de cite의 경우는 그 정치체에 속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 그 장소에 권리들을 가지고 머물 권리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 cite를 정치체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는 그냥 씨테라고 놔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사람들이 cite, city라는 말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balmas 2009-04-15 02:43   좋아요 0 | URL
예, 사실 droit de cite를 어떻게 옮길까 하는 것도 좀 고민거리 중 하난데, 최원 형 제안이 여러 가지로 유익한 것 같네요. 좀더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PD수첩 탄압은 진실에 대한 탄압" - 전문가 단체들의 입장

시의적절한 좋은 성명서네요. 요즘 다들 조금씩 무기력해지고 시니컬해지는 것 같던데, 이 성명서가  

조금이라도 힘을 북돋아주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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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1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3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balmas님의 "Marx & sons 역자 해제 "

ㅎㅎ 예 고맙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는 그렇게 바꿔놓았더군요.^^ 신문사에서 나름대로 쓰는 용어법이 있는가봅니다. 여기가 nation에 관해 논의하기에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최원 형이 코멘트를 하셨으니 몇 마디 덧붙여보자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이라는 말의 용법에 citizen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또 반대로 '민족'이라는 말은 배타적으로 종족적인 함의를 띄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최원 형이 "외제적 종족체로서의 nation"이라고 말한 것에는 좀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nation에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nation=ethnicity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굳이 nation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겠죠. nation이라는 말의 서구적 용법에는 오히려 citizenship과의 연관성이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nation-state는 근대의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 공동체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말에서 '국민'이라는 말의 용법에 함축된 citizen과의 연관성은 생각만큼 꼭 특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최원 형이 nation은 의제적 종족체이기 때문에 nation은 민족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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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2009-03-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감사합니다.^^ 하지만 nation이 fictive ethnicity라고 할 수 없다는 말씀은 저로서는 조금 의아하군요. 데리다에게선 아니라는 말씀이시라면 그건 제가 데리다 공부가 짧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저도 더 공부를 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선배님이야 이미 잘 아시겠지만, 관심있는 다른 분들을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발리바르는 "민족형태"(이론 6호, 121쪽)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nation state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를 지칭하기 위해 의제적 종족체라는 용어를 쓴다."

balmas 2009-03-11 01:28   좋아요 0 | URL
제 말은 nation이 fictive ethnicity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양자를 같은 걸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다시 말하면 nation은 "fictive ethnicity"의 성격도 지니고 있지만,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 공동체라는 성격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건 데리다 이야기라기보다는 발리바르 자신의 설명이구요. 어쨌든 제가 해석하기에는 그렇습니다.^^

NA 2009-03-1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님께서 nation이란 fictive ethnicity의 성격도 가지고 있지만,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공동체라는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 선배님은 fictive ethnicity를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공동체와 적어도 잠정적으로 대립시키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fictive ethnicity은 정치적 보편성을 갖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발리바르가 fictive universality를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fictive ethnicity는 그 자체로 정치적 보편성을 갖습니다. 국민이라는 말은 여전히 그러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보편성을 갖는 공동체(nation state에 의해 형성되는 공동체)로서의 의제적 종족체를 표현하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다는 말이지요.^^

NA 2009-03-1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제 뜻을 잘 전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민족이라는 것도 보편성을 갖는데(한민족의 보편성), 민족이라는 말은 그 보편성이 또한 의제적 종족체의 보편성임을 잘 표현하고 있는 반면, 국민이라는 말은 그것이 갖는 보편성이 종별적으로 어떤 허구적/의제적 보편성에 연결된 것인지를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국의 국민도 국민이고, 도시국가의 국민도 국민이라면, nation form을 지칭하는 말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지요. 국민이라는 말은 한국어에서는 거의 citizen의 번역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좀 무차별적인 면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어쨌든 제 생각은 그런데, 뭐 번역어의 선택 문제는 항상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도 90% 제가 맞다고 믿는 것이지요. 저도 더 생각을 해보지요. 전에도 notion가지고 선배님과 토론을 꽤 했었는데, 나중에 그 용어에 대해서만큼은 전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통념으로 가기로. ㅎㅎ

balmas 2009-03-12 02:45   좋아요 0 | URL
예, 최원 형 논지는 잘 알겠습니다. "허구적 보편성"에 관한 해석에서 좀 의견이 다른 것 같군요.
 

 조만간 도서출판 길에서 나올 {Marx & sons}의 "역자 해제"를 올립니다. 올해 출간될 여러 번역서 중 

첫번째 책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보니 홀가분하면서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어서  

솔직히 끔찍하기도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고 논평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직 번역본 제목이 결정되지 않아서 그냥 Marx & sons라고 했는데, 곧 작명이 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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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의 불가능한 만남?


I

해체론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간에 해체론이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의 인문사회과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해체론 비판가들에게는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퇴행성의 증상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또한 해체론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비판하는 사람이든 간에 해체론에게 제기된, 또 여전히 제기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제기될 질문들 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 중 하나가 해체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라는 질문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데리다 자신이 지난 1993년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출간하면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한 가지 답변을 제시했지만[데리다의 답변은 사실은 통상적인 의미에서 ‘학문적인’ 또는 ‘이론적인’ 답변이라고 하기 어렵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이론 이상이면서 동시에 이론 이하인 답변이다. 이론 이상인 이유는 데리다의 답변이 학문적인 성격을 띤 주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학문적인 답변이 군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철학적ㆍ문헌학적 회귀가 군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체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라는 명령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7, 79쪽―강조는 데리다) 이론 이하인 이유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마르크스에 대한 철학적 주석 및 이론적 논의를 장래의 계획으로 남겨 두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것은 아마 결코 현존하지 않을, 장래의 계획일 것이다). 데리다의 답변으로서 유령론의 철학적 특성은 이처럼 이론 이상이면서 동시에 이론 이하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질문은 계속해서 많은 연구자, 비판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데리다의 답변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데리다의 답변이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독특한 답변이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데리다 답변의 진의를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쨌든 여전히 질문 자체는 남아 있고 그 질문에 대해 가장 책임 있는 답변을 해줄 이는 이제는 문자 그대로 유령이 되어 질문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II

여기 우리가 펴내는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해체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사고하고 또 그 질문에 대한 독자적인 답변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디딤돌이 되는 것 이상을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거나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동조하는 이들과, 해체론을 옹호하고 더 나아가 해체론을 실행하는 이들 사이의 ‘극적인’ 화해나 ‘아름다운’ 연대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불편함과 긴장, 괴리와 엇갈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한 갈등과 불화를 확인하고 인식할 때에만 둘 사이의 관계를 하나의 문제로, 질문으로 제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책은 원래 미국의 문학이론가였던 마이클 스프린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 출간을 기회로 삼아 영미권과 유럽의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데리다 간의 대화의 장으로서 출간했던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라는 책[Michael Sprinker ed., Ghostly Demarcations: A Symposium on Jacques Derrida's Specters of Marx, Verso, 1999.]에 수록된 글들을 선별해서 묶은 것이다. 이 책 1부에 수록된 3편의 글은 원래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에 수록된 9편의 글 중에서 역자들이 선정한 것이며[9편의 글은 다음과 같다. 1. Antonio Negri, “The Specter's Smile” 2. Pierre Macherey, “Marx Dematerialized or the Spirit of Derrida” 3. Fredric Jameson, “Marx's Purloined Letter” 4. Warren Montag, “Spirits Armed and Unarmed: Derrida's Specters of Marx” 5. Terry Eagleton, “Marxism without Marxism” 6. Aijaz Ahmad, “Reconciling Derrida: 'Specters of Marx' and Deconstructive Politics” 7. Rastko Močnik, “After the Fall: Through the Fogs of the 18th Brumaire” 8. Tom Lewis, “The Politics of Hauntology in Derrida's Specters of Marx” 9. Werner Hamacher, “Lingua Amissa: The Messianism of Commodity Language and Derrida’s Specters of Marx.”], 2부에 수록된 「마르크스와 자식들」은 9편의 글에 대한 데리다의 총괄적인 답변으로서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에 실렸다가 나중에 프랑스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책을 번역한 것이다[J. Derrida, Marx & sons, PUF/Galilée, 2002.]. 「마르크스와 자식들」에서 데리다가 이 글들 모두에 대해 답변하고 있기 때문에, 데리다의 답변을 좀더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9편의 글을 전부 수록하는 것이 옳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그 중 일부를 수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 3편을 선정해서 수록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기준은 대표성이다. 9편의 글 중 영미권(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어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글은 5편이며, 나머지 4편은 이탈리아 이론가인 안토니오 네그리, 프랑스의 피에르 마슈레, 독일의 베르너 하마허, 슬로베니아의 라스트코 모츠니크의 글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영미권과 유럽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의 다양한 답변과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데리다가 답변에서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는 글인가 여부도 선별의 또 다른 기준으로 작용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데리다는 자신의 답변에서 9편의 글에 대해 동등한 비중을 두고 있지 않으며, 몇몇 글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는 데리다 자신도 지적하다시피 다소 역설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지면이 할애된 글들이 (데리다가 보기에, 그리고 역자들이 보기에도) 반드시 가장 뛰어난 글들은 아니며, 또 데리다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글들이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론적 엄밀함이나 데리다 작업에 대한 이해의 수준, 문제제기의 독창성이라는 기준으로 세 편의 글을 고른다면, 마땅히 베르너 하마허와 프레드릭 제임슨, 라스트코 모츠니크의 글이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제임슨과 모츠니크의 글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데리다의 문제제기에―반동적ㆍ조건 반사적으로가 아니라―능동적ㆍ주체적으로 대응하려는 빼어난 시도들이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라기보다는 해체론의 대표적 이론가 중 한 사람인 베르너 하마허는 데리다가 제시한 유령론의 문제설정을 자신의 고유한 수행문 이론과 결부시켜, 상품-물신에 포함되어 있는 해방적 유령성에 관한 논의로 탁월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글들을 이 책에 수록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 세 글은 이론적으로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는 만큼 매우 난해한 수사법과 논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데리다 자신의 답변보다 훨씬 더 난해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내의 지적 환경에서 이런 글들이 수용될 여지는 매우 적을뿐더러 이론적 절실함도 적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었다[이 글들을 소화할 수 있는 독자들이라면 영어판을 직접 참고하면 될 것이다.].  

둘째, 이 글들은 이 책을 엮은 역자들의 기본 목적과 제대로 부합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해두지만 이 책의 목적은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 사이의 엇갈림과 괴리, 불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있다. 사실 데리다 역시 하마허나 모츠니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제임슨의 글에 대해서도 대부분 공감을 표시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 이는 데리다의 주요한 목적이 자신의 주장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오해와 왜곡을 바로잡고 전통적인 (또는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와 자신의 차이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데 있음을 잘 보여준다.  

3) 따라서 우리가 설정한 마지막 기준,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 사이의 괴리, 엇갈림, 불화를 잘 드러내주는 글들을 싣는 것이다.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에 수록된 글들 중에서 루이스의 글과 이글턴의 글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해 극명하게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두 사람의 글은 해체론에 대한 적대감에 기초를 두고 해체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본질적인 모순, 극복할 수 없는 대립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고 있다. 특히 톰 루이스의 글은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마르크스의 유령들} 및 데리다의 다른 글들에 대한 논리적인 반론을 제시하기보다는 트로츠키주의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가운데 다소 자의적인 비판(및 때로는 왜곡)을 제시하고 있다. 반면 몬탁과 하마허의 글은 데리다의 작업에 대한 훌륭한 감식안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하마허의 글은 데리다의 문제설정을 탁월하게 확장하고 있어서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에 실린 글들 중에서도 단연 빼어난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가 설정한 세 번째 기준에 부합하는 글들이 아마드와 네그리, 마슈레의 글이다. 아마드의 글은 아마도 전형적으로 마르크스주의적인 반응, 그것도 얼마간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드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핵심적인 수사법적 장치인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애도라는 모티프를,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의 관계를 평가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마르크스주의와 화해하려는 데리다의 시도로 간주하며, 때가 늦긴 했지만 환영할 만한 태도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러한 화해의 몸짓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범주들 중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고, 그 대신 유령론, 메시아적인 것, 새로운 인터내셔널 같은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새로운 개념들을 대안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리다의 책은 마르크스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자격, 진정한 아들의 자격을 해체 및 데리다 자신에게 부여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그렇다면 해체는 우파 이론은 아니지만 또한 마르크스주의도 아닌 어떤 것, 곧 제 3의 길을 옹호한다고 볼 수 있다[스타일과 논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캘리니코스의 입장도 아마드와 비슷하다. Alex Callinicos, “Messianic Ruminations: Derrida, Stirner and Marx”, Radical Philosophy 75, Jan/Feb, 1996.].  

네그리의 글은 아마드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해체론, 특히 데리다가 주장하는 유령론의 혁신적인 측면을 긍정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 그에 못지않게 완강한 비판적 태도를 보여준다. 네그리에 따르면 유령론은 포스트모던 시기에 접어든 새로운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적절한 개념화이며, 따라서 데리다가 유령론적 관점에서 마르크스 자신을 포함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 것은 타당한 것이다. 하지만 데리다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현실을 놀랄 만큼 집약적으로 포착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실천적인 길을 모색하지는 않으며, 타자에 대한 환대라는 윤리적 관점을 옹호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 왜 이러한 한계가 생겨날까? 그것은 데리다가 전통적인 존재론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존재론 그 자체를 폐기하고, 포스트모던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새로운 주체성의 역량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하트와 공동으로 저술한 일련의 저작들에서 알 수 있듯이[특히 국내에도 번역된 다음 두 권의 저작을 참조할 수 있다. 마이클 하트ㆍ안토니오 네그리, {제국}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다중} 서창현ㆍ정남영ㆍ조정환 옮김, 세종서적, 2008.] 네그리에게 이는 곧 다중(multitude)이라는 새로운 존재론적 역량과 정치적 주체에 대해 데리다가 맹목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네그리가 ‘존재론’, 특히 탈해체적인 생산과 협동의 존재론이라는 이름으로 데리다를 비판하고 있다면, 마슈레는 이데올로기라는 쟁점에서 마르크스주의(특히 발리바르가 재구성한)와 데리다의 기본적인 차이점을 보여주려고 시도한다. 마슈레가 보기에 양자 사이의 쟁점은 재물질화 대 탈물질화 사이의 차이로, 또는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스피노자주의와 데카르트주의 사이의 차이로 집약된다. 곧 발리바르가 스피노자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데올로기, 가상, 외양의 실재성을 긍정하면서도 유물론적 관점을 고수하는 반면, 데리다는 유령론이라는 이름 아래 마르크스를 환영 내지 유령으로 환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환영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유사한 초월론적 기초(“해체 불가능한 것”)에 근거를 둔, 데리다 자신의 “환영” 내지 “유령”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마슈레는 1999년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데리다에 관한 글을 발표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정정하고 있다[이 글들 모두는 인터넷 문서로 공개되어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다음 텍스트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En marge d'un livre possible: lectures incidentes”, http://stl.recherche.univ-lille3.fr/seminaires/philosophie/macherey/Macherey20012002/Macherey29052002.html; “séance d’hommage à Derrida - Intervention de P. Macherey”, http://stl.recherche.univ-lille3.fr/sitespersonnels/macherey/machereyderridacadreprincipal.html; “Le Marx intempestif de Derrida”, http://stl.recherche.univ-lille3.fr/seminaires/philosophie/macherey/macherey20052006/macherey02112005cadreprincipal.html; “Derrida et la psychanalyse: la question de l’archive”, http://stl.recherche.univ-lille3.fr/seminaires/philosophie/macherey/macherey20072008/macherey14112007.html]. 특히 데리다 사후 1년 뒤인 2005년 10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열린 데리다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데리다의 비동시대적인 마르크스Le Marx intempestif de Derrida」라는 글에서 그는 데리다의 “해체 불가능한 것”과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유사한 것으로 제시한 자신의 생각이 조급하고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시인하고 있다[Marc Crépon & Frédéric Worms eds., Derrida, la tradition de la philosophie, Galiléé, 2008, pp. 152 이하 참조.].  

따라서 이 세 사람의 글은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적어도 그것을 하나의 유의미한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발전시키는 데 유용한 디딤돌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III

데리다는 이 책의 2부에서 이러한 문제제기들에 대해, 놀랄 만큼 논쟁적인,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호전적인 태도로, 하지만 또한 매우 냉정하고 치밀하게 답변을 하고 있다. 데리다의 어떤 글, 어떤 책에서도 이런 격렬한 반응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데리다의 태도는,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관심과 헌신의 정도를 입증해주며 동시에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독해 및 반응에 대한 그의 실망감의 깊이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 

긴 답변에서 데리다가 제시한 논점을 하나하나 요약하기보다는, 세 편의 글과 데리다의 답변에서 엿볼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사이의 쟁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1. 데리다가 제창하는 유령론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어떠한 이론적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세계화된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이데올로기적 현상들에 대한 탐구에서 유령론은 유용한 이론적 틀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유령론은 자본주의 분석과 특히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의 확장에서 모두 핵심 준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 바 있고, 네그리 역시 유령론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개과정을 탐색하는 데 유용함을 긍정하고 있다. 하지만 충분한 이론적 잠재력이 있다 하더라도 해체론자들이 (또는 마르크스주의적인 해체론의 분석이)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기여한 것이 너무 적은 것도 사실이다[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해체론적 작업은 무엇보다 베르나르 스티글러의 연구를 꼽을 수 있다. Bernard Stielger, De la misère symbolique, vol. 1-2, Galilée, 2004-2005; Mécréance et Discrédit, vol. 1-3, Galilée, 2004-2006; Economie de l'hypermatériel et psychopouvoir, Mille et une nuits, 2008.]. 해체론이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위한 철학,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와 동행하는 철학으로서 자처하기 위해서는 이 주제에 관해 좀더 구체적인 분석들이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이 분야야말로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  

2. 해체론은 사회계급, 착취, 혁명,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등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개념들과 양립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가운데서도 해체와 마르크스주의는 서로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에서 가장 많이 제기되었고, 또 이런저런 다른 논평들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비판은 해체론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하고 있으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운 철학이라는 것이다. 매우 민감한 쟁점이고 설득력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충분한 분석과 논증이 필요한 문제이지만, 한 가지만 지적해두자. 데리다를 비롯한 해체론자들의 저작에서 이 개념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마르크스의 유령들} 및 이 책 2부의 답변에서 데리다는 또한 분명히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곧 데리다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계급투쟁과 계급적인 갈등의 현실, 착취의 현실이 아니라 변화된 세계에서 그러한 현실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문제는 이 개념들을 쇄신하는 데서 해체론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에티엔 발리바르의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1995;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6; E. Balibar & I.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e: Les identités ambiguës, La Découverte, 1988 참조. 어떤 의미에서 발리바르의 작업은 마르크스주의적 해체론 또는 해체론적 마르크스주의의 탁월한 전범이라고 할 수도 있다.].  

3. 역사적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쇄신하는 데 서양 형이상학(존재론) 및 신학적 유산에 대한 해체는 필수적인 전제인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한계(“필수불가결하면서 구조적으로 불충분한”) 중 하나로 “예루살렘의 전유”를 둘러싼 전쟁, 곧 성서에 기초를 둔 세 개의 종말론이 벌이는 전쟁을 분석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지적한 바 있다[{마르크스의 유령들}, 129쪽.]. 이는 사회경제적 분석만이 아니라, 기술경제적 인과성과 종교적 환영들 사이의 새로운 접합 양상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는 과제다. 데리다에 따르면 유령론만이 이를 감당할 수 있으며, 유령론은 필연적으로 서양 형이상학 및 신학적 유산에 대한 해체적인 작업을 전제한다.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개념들(사회계급, 혁명,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사용가치/교환가치, 공산주의 등)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 내지 해체의 핵심이 마르크스(주의)의 존재론적 한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면, 이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와 해체가 가장 첨예하게 대결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대결(confrontation 또는 Auseinandersetzung)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곧 상호 배제의 문제로 간주하는 태도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무익한 태도일 것이다[이러한 태도가 단순한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동일한 지위를 갖지도 않고 동일한 지반 위에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것이 무익한 이유는 상호 배타적인 관점을 취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자기만족을 제외한다면) 과연 무엇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대결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인가 데리다의 유령들인가’를 의미할 수도 있고, ‘마르크스의 유령들, 곧 데리다의 유령들’을 뜻할 수도 있으며,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나 데리다의 유령들’을 뜻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 또는 메시아성이라는 범주는 데리다 자신이 주장하듯이 혁명 및 사건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사고하기 위해 필수적인 개념인가?  

「마르크스와 자식들」의 의의 중 하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 대한 오독과 오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매우 상세하게 해명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개념이 처음 사용된 이래 여러 비판가들은, 데리다가 마르크스주의를 (발터 벤야민이 역사유물론을 해석하기 위해 유대 신비주의에 의지했던 것처럼) 기독교 신학 내지 종말론으로 환원한다고 비판한 바 있으며, 또한 이 개념을 유토피아의 다른 표현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도 종종 이런 식의 주장이 제기되곤 한다). 

하지만 데리다가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이 개념은 마르크스주의를 기독교나 성서의 종교(들)로 환원하자는 뜻도 아니고 유토피아를 새로운 용어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 개념의 의미는 마르크스주의 이론, 특히 혁명 및 공산주의 이론에 함축되어 있는 서양의 유대ㆍ기독교 문명의 뿌리를 드러내고, 더 나아가 현재의 세계화가 단순히 경제적ㆍ기술적인 현상이 아니라 종교적ㆍ이데올로기적 갈등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종교적 ‘신앙’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믿음’의 차원이 정치적 현상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해명하려는 것도 이 개념의 중심 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개념은 결국, 데리다가 강조하고 베르너 하마허가 빼어나게 밝혀주고 있듯이, 모든 이데올로기 현상(종교 현상 및 물신숭배를 포함하는)에 함축된 원초적인 해방에 대한 열망과 긍정의 차원을 드러내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장래의 마르크스주의가 감당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는, 종교 및 종교적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과 약속의 인간학적 차원을 단순한 ‘인민의 아편’으로 환원하지 않고, 그 풍부하고 복잡한 구조와 작용을 충실히 해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 해체론은 중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5. 데리다가 중시하는 타자에 대한 환대는 윤리적 원칙인가 아니면 정치적 개념인가? 또는 양자 모두인가? 그것이 현대 사회의 분석에서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환대는 1990년대 이후 데리다 작업의 근간 개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는 환대를 주제로 한 책들을 저술했을 뿐만 아니라[Adieu à Emmanuel Levinas, Galilée, 1997; De l'hospitalité, Calmann-Lévy, 1997; {환대에 대하여} 남수인 옮김, 동문선, 2004 참조.], 여러 곳에서 환대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이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책은 Mohammed Seffahi ed., Manifeste pour l'hospitalité―Autour Jacques Derrida, Éditions de l'Aube, 1999이다. 이 책에는 데리다의 글과 대담이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환대 개념을 국민국가 개념 및 종교와 문명, 윤리와 법, 정치 등에 대한 분석으로 확장하려는 여러 필자들의 글도 수록돼 있다.]. 이 책에서 네그리나 아마드 등은 환대 개념을 단순한 윤리적 개념[물론 여기서 ‘단순한’이라는 말은 윤리의 문제가 부차적이거나 사소한 문제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환대 개념을 비판하는 이론가들의 주요한 태도 중 하나를 부각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이들은 예외 없이 정치에 비해 윤리를 사소하거나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환대를 윤리의 문제로 환원하고 또 얼마간 폄하하려는 태도는 자크 랑시에르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J. Rancière, “Does Democracy Mean Something?”, in Costas Douzinas ed., Adieu Derrida, Palgrave Macmillan, 2007. 이러한 쟁점은 랑시에르 정치철학의 한계를 측정할 수 있는 한 가지 시금석으로 삼을 만하다.]으로 치부하면서, 이 개념에서 정치를 윤리로 환원하려는 데리다의 은밀한 속내(또는 명백한 한계)를 발견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비판가들의 태도가 얼마간 단순한 것이 아닌지 질문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출간된 여러 저작과 글, 인터뷰 등에서 환대의 문제가 함축하는 정치적ㆍ윤리적 차원을 분명히 해명한 바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이 환대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 정치적 배경까지 해명한 바 있기 때문이다[이 후자의 문제에 관해서는, 국내에 번역ㆍ출간된 저작 중에서 {에코그라피} 김재희ㆍ진태원 옮김, 민음사, 2002 중 1부 「인공적 현재성」 참조. 이러한 배경은 물론 1990년대 이후 유럽 정치의 핵심 쟁점으로 부각된 이민자ㆍ이주자ㆍ난민 문제다.].  

데리다에게 환대라는 개념은 외국인이나 이주자, 이민자, 난민 등에 대해 인도주의 차원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 호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정치적인 차원에서 의미하는 바는, 국민국가의 핵심에 존재하는 식민주의적 유산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적인 세계 질서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국제주의적인 정치를 설립할”[Mohammed Seffahi ed., Manifeste pour l'hospitalité―Autour Jacques Derrida, 앞의 책, p. 146.]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다. 하지만 환대는 ‘단순히’ 이러한 정치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환대는 매우 시사적인 정치적 함의를 띠고 있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 속에서 정치를 재개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정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 자체를 정치적 쟁점으로 만드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있다. 데리다가 “환대의 원리 없이는 문화도 사회적 유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J. Derrida, “Il n’y a pas de culture ni de lien social sans un principe d’hospitalité”, Le Monde, mardi 2 décembre 1997.]. 따라서 환대가 함축하는 정치의 새로운 차원, 새로운 원리에 대한 탐구는 비단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라 정치 일반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주제가 될 수 있다.  

6.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만큼 더 의미심장한 여성 및 성차라는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와 자식들」이라는 데리다의 답변글 제목이 시사하듯이,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에 참여한 9명의 비판가들 모두는 공교롭게도 남성 필자들이다. 더욱이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연극적ㆍ수사법적 모티프의 핵심을 이루는 유령이 된 아버지에 대한 애도의 주체 역시 공교롭게도 ‘남성’이다. 그리고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및 자신의 답변)의 기저에는 줄곧 여성의 문제, 성차의 문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하지만, 󰡔유령의 모습을 그리기󰡕에 참여한 9명의 비판가들 거의 모두는 이처럼 남성들만이 대화에 참여하고 애도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중심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것이 과연 공교로운 일인가? 이것이 과연 우연적인 일인가? 아마도 바로 여기에 마르크스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또 다른 유령이 존재할 것이다.  

이밖에도 훨씬 더 많은 논점들이 존재하겠지만, 아무튼 이러한 6가지 쟁점들은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의 관계라는 주제를 위해서도, 마르크스주의와 해체 각자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화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IV

이 책의 번역을 의뢰 받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생각만큼 작업이 빨리 진척되지 못해 오랫동안 기다려준 도서출판 박우정 대표와 이승우 실장, 그리고 여러 독자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한다. 아무쪼록 이 책이 마르크스주의와 해체의 관계라는 질문에 대해 숙고하고 토론하고 또 더 나아가 독창적인 답변들을 제시하기 위한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의 1부의 번역은 한형식이 2부는 진태원이 맡아 했으며, 전체적인 교열은 진태원이 맡아서 했다. 따라서 번역 및 역주와 관련된 문제점은 진태원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야말로 거칠고 난삽한 번역을 맡아 꼼꼼하게 문장을 다듬고 문제점을 지적해준 편집자 *** 선생님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역자들로서는 오역의 책임을 상당히 덜게 됐고 독자들은 좀더 편안한 독서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2009.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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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9-03-09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젠장, 오늘 할 일 이제 다 끝났다 ㅠ.ㅠ ;;;;;;;;;;

balmas 2009-03-10 01:41   좋아요 0 | URL
지나가다님/ "타자에 대한 환대"는 "민족국가"라는 틀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조의 필요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데리다는 민족국가의 긍정적인 함의(시민권의 보편성)도 인정하고 있긴 합니다.

nation-state를 "국민국가"나 "민족국가" 중 어떤 것으로 번역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어려운 문제죠. 제 생각에는 둘 중 하나를 특별히 선호할 근거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두 용어로 번역할 만한 이유들이 꽤 있는 반면, 다른 용어를 결정적으로 배제할 만한 근거는 없는 것이죠.^^ 제가 볼 때는 알제리나 베트남의 사례가 반드시 "민족 국가"라는 번역어를 정당화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국민국가"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잠정적인 선택에 불과합니다.

스피박도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할 거라고 봅니다. 다만 Marx & sons 본문에 나오듯이, 스피박과 데리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와 긴장도 존재합니다. :-)

람혼 2009-03-09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소식이네요, 어서 번역본을 구해 일별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역자 해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덧붙여ㅡ이론 '이상'으로나 '이하'로ㅡ이미 많이 논의되었던 마르크스주의와 해체론 사이의 여러 쟁점들에 대한 언급과 정리도 감사히 잘 읽었지만, 마지막 여섯 번째로 제기된ㅡ혹은 '아직' 제기되지 않은ㅡ문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끕니다. 여러 철학자들 중에서도 책이나 글의 제목 선정에 있어 가장 민감하고 예민한 감수성과 전략을 보여주는 데리다이기에, 'Marx & Sons'라는 제목은ㅡ이 제목은 부자(父子) 관계는 물론이지만 데리다의 다른 책 제목 'Limited Inc.'와 맺고 있는 모종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의도 또한 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요ㅡ특히나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상념들을 갖게 합니다. 더불어 데리다의 저 'Geschlecht' 연작에 대한 번역이나 소개 계획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기도 하고요.

balmas 2009-03-10 01:42   좋아요 0 | URL
'Geschlecht' 연작에 대한 번역이나 소개는 지금으로서는 계획이 없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이 알아서 하시면 되겠죠.

가을산 2009-03-0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2009년도 출판계 동향에 님의 이름 보고 기웃거렸었는데...
축하드립니다.

balmas 2009-03-10 01:43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오셨네요. 요즘 서재활동도 뜸하셔서 좀 궁금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축하받기에는 갈 길이 멀어서 쑥스럽네요.^^;

NA 2009-03-10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번역 출간 축하드립니다.^^ 얼마전에 한겨레 편집진이 제가 쓴 "민족"을 죄다 "국민"과 "국가"로 바꿔놔서 블로그에 불만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진태원 선배님께 불똥이 튈까봐 나름 조심하면서 말했지만, 저 위에 '지나가다'라는 분이 쓰신 것 보니, 혹시 다른 분들이 오해를 하실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약간 우려가 되는군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한국어의 '국민'이라는 말은 사실 citoyen, citizen이라는 말의 번역어로 사용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학술적으로는 아니지만, 오히려 대중들의 언어 속에서 국민이라는 말은 '시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온 것 같습니다. 이는 시민이라는 말이 한국어에서 매우 협소하게 (사실상 도시민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사람들은 농민을 시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불어의 citoyen이나 영어의 citizen의 '가치'가 한국어의 '국민'으로 많이 이전되어 있는 셈인데, 그래서 우파 뿐만 아니라 좌파도 공히, 다른 나라 같으면 시민을 호명해야 할 부분에서, 국민을 호명하지요. 다른 나라에서는 citizen에 기입된 모호함(국가주권과 인민주권)이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이라는 말에 각인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게 놓고 보면 '국민'이라는 말은 그 안에 근대 역사를 반영하는 '민족'의 뉘앙스가 좀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사실 'nation'이나, 특히 '의제적 종족체'로서의 nation의 번역어로 사용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군요.^^

balmas 2009-03-10 03:21   좋아요 0 | URL
ㅎㅎ 예 고맙습니다. 한겨레신문에서는 그렇게 바꿔놓았더군요.^^ 신문사에서 나름대로 쓰는 용어법이 있는가봅니다.
여기가 nation에 관해 논의하기에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최원 형이 코멘트를 하셨으니 몇 마디 덧붙여보자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이라는 말의 용법에 citizen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또 반대로 '민족'이라는 말은 배타적으로 종족적인 함의를 띄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최원 형이 "외제적 종족체로서의 nation"이라고 말한 것에는 좀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nation에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nation=ethnicity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굳이 nation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겠죠. nation이라는 말의 서구적 용법에는 오히려 citizenship과의 연관성이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nation-state는 근대의 정치적 보편성을 담지하는 정치 공동체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말에서 '국민'이라는 말의 용법에 함축된 citizen과의 연관성은 생각만큼 꼭 특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최원 형이 nation은 의제적 종족체이기 때문에 nation은 민족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저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군요.^^

[해이] 2009-03-1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할책이 하나더 늘었군요........ 서산때 뵙겠습니다 크

2009-03-10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간만에 인터넷 신문을 살펴보니까 좋은 기사가 많네요. ^^;  

마찬가지로 [오마이뉴스]의 기사입니다.  

  

"형법, 국민의 방패 아닌 공격무기 되고있다"

출처 :
"형법, 국민의 방패 아닌 공격무기 되고있다" - 오마이뉴스
한인섭 서울대 법학과 교수 "비판의 자유 있는 게 민주주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82719&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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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9-03-0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들어오는 순간 처음에 제 눈에 읽힌 건 ^^

"형
간만에"

balmas 2009-03-09 03:0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정말 그렇게도 보이겠네요.^^

ed hardy bags 2010-07-2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그렇게도 보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