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盧에서 反盧로, 그 애증의 심리학
사회쟁점: 노무현을 떠난 사람들

2006년 05월 30일   박수진 기자 이메일 보내기

노무현 정부는 ‘3김 정치 청산’, ‘시민의 자발적 선거 참여를 통한 선택의 승리’ 등 정치사적 의미를 띠고 출범했다. 게다가 ‘지연, 학연, 정치적 계파로부터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 개혁’을 이루리라는 기대도 받았다. 그러나 디딤돌로 작용하기를 바랐던 ‘연고 없음’이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 듯하다. 현재 노무현 정권의 점수를 매기자면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많다. 5·31 지방 선거 이후에는 ‘레임덕’이 바로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최근에는 옹호자였던 이들이 앞장서 ’노통‘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들이 왜 돌아섰는지를 통해 참여정부 남은 임기의 과제를 살피고자 한다. /편집자주

지난 3월,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인하대 교수)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권의 무능에 “이젠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친노’에서 ‘반노’로 돌아선 것. ‘킹메이커’라고 불리며 지면을 통해 백방으로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역시 작년부터 “선거 승기에만 주된 의미를 두는 선거의 선거에 의한 선거를 위한 정부”라며 ‘반노’로 돌아섰다.

“민주당 배신”으로 초반 이탈자 생겨


노동계도 진작에 돌아섰다. 2003년, 정권 초반 파업이 잇따르면서 노 대통령이 “민주노총 활동은 정당성이 없다”는 등의 강경발언을 하면서 ‘선무당이 노동자 잡는다’는 비판을 받은 것. 참여정부는 ‘친노동자 정부’가 될 거라는 예상을 깨고 “반노동자성을 만천하에 드리우는 정권”이 됐다. 정태인 前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경우도 청와대를 나와 전면에서 정부 失政을 비판하고 있다.


왜 친했던 이들이 노 대통령 혹은 참여정부를 떠나는 것일까. 여전히 “대통령 자체의 개혁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민주당 분당, 대연정 제안, 한미 FTA 추진, 평택 사태 등을 접하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기대지수를 낮췄다.


김욱 서남대 교수(헌법)가 ‘반노’로 돌아선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남 패권주의적 인식” 때문이다. 민주당 분당을 통해 ‘호남 지역성’을 거부하고 대연정 제안을 통해 ‘한나라당이 일상적 정권 교체를 담당해도 된다’는 역사적 정당성을 스스로 인정해줬다는 것. 이 일련의 과정을 보면 “‘평생을 걸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거짓임을 알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한신대 윤상철 교수 역시 “정치적 신념이야 옳다고 하더라도 ‘신뢰’를 무너뜨린 사람은 실패하기 마련인데 그런 ‘신뢰’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분당을 평가했다. 또한 이후 “문재인-이광재로 이어지는 라인은 호남지역과 화해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며, 지역주의 완화의 대기회를 스스로 상실했다”고 평했다.

‘철학’은 있지만 ‘실력’이 없다


‘개혁의 실종’ 역시 후보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이 대통령 노무현을 비판하는 이유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원래 크게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도 적다고 볼 수 있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을 이렇게 맹신적으로 추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실망스럽다”고 말한다. 손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정치 사회적인 ‘민주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혁 두 가지를 섞어가면서 개혁을 하고, 게다가 신자유주의 개혁은 강하게 하고 정작 해야 할 개혁에는 손도 못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4대 개혁법안 좌절, 그로 인한 국가보안법의 존속 등은 열린우리당이나 참여정부가 탄핵 이후 여대야소의 유리한 의회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손 교수는 “적어도 인권 확대 같은 것들은 잘 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다고 폼만 잡고 한게 뭐냐”고 반문했다. 결국 이런 개혁의 실종은 ‘무능함’으로 귀결된다. “전략과 실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했다는 것”이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노 대통령, 사람 자체로 보면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꽤 괜찮은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그 철학이 실현될 정책이 없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애초의 ‘우호적 비판’에서 기대를 접어버리게 된 원인이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길을 잃은 듯 보인다”고 진단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 문제나, 한미 FTA 추진 방식 등을 살펴보면 ‘동북아 균형자’역할을 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애초 구상을 잃고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말려들었다는 의심이 든다는 것.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  ‘올인 방식’을 택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병행정책을 시행하겠다는 애초 공약과 달리 북핵 문제가 대북 관계 개선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는 생각 하에, 미국 쪽에 지나치게 양보하고, 서민 삶의 개선 문제도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부동산이 최우선’이라고 올인하면서 국가 역량 안배가 잘 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전략 있는 참모진 부족이 원인”


‘정책 부재’, ‘정체성 상실’ 등은 결국 모두 ‘사람’과 연결된다. 주변 참모진들의 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정대화 교수는 “신진세력 및 운동세력들이 신념은 있으나 정책에 있어서 구체성이 떨어지고, 관료,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 기업 등에 정책적으로 밀려버렸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노무현 정권이 통합을 이뤄내지 못한 첫 번째 계기인 노정갈등 역시 ‘제대로 된 노동 전문가의 부재’ 때문으로 보인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는 “조금이라도 감각있는 분이 초반에 교섭구조나 틀을 만드는 일을 3년간 했다면, 그래서 그 틀 안에서 대화가 오고갔더라면 이렇게 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강 교수는 “정권 초기에 진보적 입장을 지닌 노동전문가가 포함됐지만 경제쪽 정책 결정가들이 노동 문제에 대한 우호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없어 양자가 상충되면서 ‘경제 우위’ 정책 설정이 지속된 점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아직 반노는 아니다”라는 최원식 인하대 교수는 이렇게 학자들이 지지를 철회하는 것을 보면 결국 노 정부가 “애초 말했던 ‘개혁’과 ‘통합’을 함께 가져가지 못했음이 드러난다”며 “그것이 노 정권 실패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같은 진보세력조차 통합해서 끌고나갈 정치력이 부족했다는 것. 최 교수는 “대언론 전쟁 등 작은 싸움에 너무 힘을 들이면서, 똑같이 소수정권으로 출발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과 카터 대통령 중, 4년 내내 ‘소수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재선에도 실패한 ‘카터 式’이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노 정권의 ‘무능’이 노 대통령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인식도 많다. 김대래 신라대 교수(경제학)는 “노 정부가 한나라당, 기업, 기득권 세력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균형 발전이나 지역 구도 타파를 방해하는 힘들이 너무 강한 탓도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노통만의 잘못은 아니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한국사) 역시 “개혁을 한꺼번에 모두를 다 바꾸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수십년간 유지되어 왔던 사회제도가 3년 만에 바뀔 수 없는 법인데 당장 결과를 바라는 것은 문제 아닌가”라고 말한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2006 Kyosu.net
Updated: 2006-05-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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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의견 (1개)
... 언제 친노였나? 11:16
비판은 학자의 역할이긴 하지만, 언제 "친노"였다가 반노로 돌아섰단 말씀들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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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3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6-05-31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뭐, 그렇게까지야 되겠습니까 ...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