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향한 한국의 ‘오만과 편견’
교수논평

2006년 05월 27일   고명철 광운대 이메일 보내기

지난 5월 20일 한낮, 서울의 대학로에서는 한 집회가 열렸다. 베트남에서 온 유학생, 노동자, 여성들이 모여 베트남 여성을 국제결혼이라는 미명 아래 상품화하는 반인권적 실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우리 정부와 사회를 향해 각성을 촉구하였다. 그 집회에 참석한 한 베트남 여성의 격앙된 육성이 이명(耳鳴)으로 남아 있다:

“한국인 여러분! 만일 일본이나 미국 구석구석에 ‘한국 처녀랑 결혼하세요. 장애인, 재혼, 노총각…’ 같은 광고가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사람은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상품화하지 마세요. 국제결혼 중계업체들은 베트남 여성들을 상품처럼 묘사하며 베트남의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아내가 집안 일을 시키거나 성적 욕구만 충족시키는 도구인가요? 우리는 팔려온 노예가 아니랍니다. 더 이상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지 마세요.”


국제결혼 중계업체들이 베트남 여성을 ‘성의 상품화’하고 심지어 ‘성의 노예화’하고 있다는 문제를 우리는 그동안 두루뭉실히 지나쳐왔다. 도심의 외곽 지역이나 시골에서 흔히 목도하게 되는, 국제결혼 중계업체들의 무분별한 상식 이하의 반인권적 상업 문구를 그저 또다른 상품 광고의 하나로만 지나쳐왔다. 자본주의의 숱한 상품이 사고팔리는 시장의 한 풍경으로만 심드렁히 지나쳐왔다. 무서운 일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시장 만능주의에 붙잡혀 있어, ‘돈’이면 시장에서 무엇이든지 거래할 수 있다는, ‘돈’을 향한 숭배를 넘어, ‘돈’의 노예화를 스스로 자처하고 있다. 게다가 ‘돈’의 권력화가 풍기는 마력에 합리적 이성이 마비돼 있다.


사실, 이번 집회의 발단은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2006년 4월 21일자 호치민발 ‘조선일보’의 기사로 촉발된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이른바 ‘4 · 21 조선일보 사태’로 규정하면서 ‘조선일보’의 기사가 베트남 여성들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 모두에게 심한 굴욕감을 안겨다준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 기사는 국제결혼 중계업체들의 베트남 여성에 대해 갖는 배타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는바, 아무리 사실 위주의 서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기사의 밑자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베트남 여성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간과할 수 없다.

그 기사는 베트남 여성을 베트남의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고자 코리아 드림에 매달리는, 속물화된 여성으로 읽히기를 은연중 유도한다. 베트남 여성에 대한 ‘조선일보’의 인권적 시각은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국제결혼 중계업체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시각 역시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보여지고 있는 것은 베트남 여성을 상대로 한 국제결혼 중계업체들의 상행위의 선정적 풍경일 뿐이다. 과연,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버젓이 게재함으로써 어떠한 보도 효과를 노렸던 것일까. 아직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결혼 생활에 실패한 한국 남자들에게 실망하지 말고 국제결혼 중계업체의 도움을 받아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베트남 여성과 손쉽게 결혼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베트남에서 국제결혼 중계업체들의 활약상(?)을 고취하기 위해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리아 드림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은 ‘조선일보’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에게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선, ‘돈’이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천박한 인식에 대해 다시 한 번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아시아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겉으로 볼 때, 베트남 여성에 대한 국제결혼 중계업체의 반인권적 작태에 대한 각성을 한국 정부에게 직접적으로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듯, 경제적 약자라고 판단되는 아시아의 존재를 깔보는, 한국의 ‘오만과 편견’을 향한 아시아의 준엄한 비판이 놓여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아시아의 존재와 가치가 중요하게 인식되는 시기다. 베트남만 하더라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세계 초강국인 미국과의 전쟁에서 베트남은 승리한 저력을 갖고 있다. 비록 우리보다 경제적 약자의 입장에 있지만, 베트남은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한, 우리가 존중해야 할 아시아의 소중한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해서 안 된다.


이번 ‘조선일보’의 보도 파문을 계기로, 우리는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를 향해 좀더 성숙한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아시아는 우리와 함께 아시아의 가치를 공유해야 할 이웃이자 친구다. 여기서 베트남어의 ‘떰 로옴’, 즉 ‘마음가짐’의 참뜻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뭐 별것 아냐. 친구를 만나면, 먼저 어떻게 하면 이 친구와 즐겁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마음가짐, 함께 지낼 때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헤어질 때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뭐 그런 마음가짐…….”(방현석의 단편소설 ‘존재의 형식’ 중에서)

고명철/광운대·문학비평


©2006 Kyosu.net
Updated: 2006-05-2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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