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위해 미군기지 이전 참으라고? 천만에"

 

[해외리포트] '일본의 대추리' 이와쿠니시를 가다

 

 

텍스트만보기   박철현(tetsu) 기자   
▲ 이와쿠니 미군기지 정문 입구. 미 해병대 제1항공단과 해상자위대 제31항공군이 같이 기지를 쓰고 있다.
ⓒ 박철현
지난 3월 12일 일본 혼슈섬 야마구치현의 작은 도시 이와쿠니에서는 역사에 남을 사건이 일어났다. 미군기지 확장 이전 찬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주민들이 반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주민투표 결과는 투표율 58.68%(총유권자 8만4659명 중 4만9682명 참가)에 미군기지 확장이전 반대가 89%(4만3433명)으로 나왔다. 이 결과를 토대로 이와쿠니의 이하라 가츠스케 시장은 중앙정부에 "더이상 이와쿠니 시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미군기지의 확장이전을 반대한다"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했고, 지금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기자가 이와쿠니시의 기지대책과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6개월간의 급박했던 일정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었다. 기지대책과의 무라야스 과장은 "일본 및 해외의 매스미디어들은 3월 12일의 투표결과를 알리기에 바빴지만, 실제로는 그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와쿠니 시의회의 다무라 쥰겐씨 역시 투표 이전의 과정에 대해 "시민들과 지방정부의 의견보다 미일안보조약을 더 중요시하는 일 중앙정부의 횡포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투표결과만을 대서특필하는 매스컴에 환멸을 느꼈다"고 말한다. 6개월간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 이와쿠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항공모함 탑재기의 이착륙 훈련. 빛줄기들이 모두 전투기들이다. 무려 100여대의 전투기가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쉴새없이 이착륙을 반복하는데, 이 훈련이 시작되면 시민들은 모두들 신경이 곤두선다고 한다. (사진제공:이와쿠니 지역신문 츄고쿠신문사)
어느날 날아든 <주일미군재편 중간보고>... 급박했던 6개월

미 해병대 기지가 지난 51년 처음으로 이와쿠니에 들어선 이후 이와쿠니 시민들은 55년간 기지와 동고동락해왔다. 미군범죄, 항공기소음, 전투기 추락 등 이와쿠니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체념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50년의 긴 세월동안 적응해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1일 도쿄 인근의 아쓰기 비행장으로부터 새롭게 항공모함 탑재기 57대가 이와쿠니 미군기지로 이전되어 온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와쿠니 시민들은 들고 일어났다.

▲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의 이하라 카쓰스케 시장. 전 노동성 관료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와 줄다리기 하고 있다.
ⓒ 박철현
그리고 11월 4일 방위시설청 장관은 <주일미군재편 중간보고>를 통해 이 사실을 정부차원에서 공식발표했다. 발표를 접한 이하라 시장은 야마구치현 지사와 미군기지가 있는 유우쵸의 대표 3인과 함께 도쿄로 올라가 "더 이상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번 중간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 이후 11월 16일 방위청의 누카가 후쿠시로 장관이 직접 이와쿠니로 내려와 이와쿠니 시민과 지자체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할 것을 약속했다. 이 회담에서 이하라 시장은 "나 역시 국방협력에 충실히 할 것이며, 기존의 미군기지를 철수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확장이전에 시민의 희생이 2배 이상 강요되니까 지금의 이전계획을 철폐해 달라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작년 12월 21일과 올 1월 16일 연이어 가진 회담에서도 양자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특히, 1월 16일 회담에는 아소 타로 외무상이 직접 내려와 ‘미일 안보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장시간 설파하면서 이와쿠니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입장을 밝히자, 이하라 시장은 "2004년 통과된 시의 조례안에 명시된 주민투표법에 따라 이번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쳐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실시된 주민투표. 주민투표 운동에 대해 시민단체 <이와쿠니 주민투표를 힘으로 하는 모임>의 요시오카 미쓰노리 대표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기지이전 찬성파인 시의원들과 보상금을 노리는 지역유지들은 그때 주민들에게 투표하러 가지 말라고 독려(?)했어요. 가만 있으면 보상금 받고 좋지 않냐는 식이었지요. 반면, 우리들은 필사적으로 투표하러 가자는 운동을 했습니다. 조례안에 50% 이상의 투표율이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 기지대책과로부터 받은 4월 28일자 <최종보고서 설명회> 자료. 이 자료에는 이와쿠니의 "협조"를 바라는 방위청의 입장이 자세히 개진되어 있었다.
ⓒ 박철현
주민투표를 묵살한 중앙정부, 분노한 이와쿠니

89%의 반대결과를 가지고 이하라 시장은 당당하게 '이전계획 철폐'를 요구했다.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이하라 시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진보도 보수도 아니예요. 다만 주민들의 의지가 이러하니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장으로서 당연한 요구를 한 것이지요."

그러나 약 1개월 후인 4월 15일 이와쿠니에 전해진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명 '2+2'라고 알려진 정부의 최종보고서는 "아쓰기 비행장의 항공모함 탑재기 57대에 수송기 2대를 추가한 총 59대의 비행기와 후텐마 기지에 있는 미해병대 공중급유기(KC-130) 12대를 이와쿠니로 이전하고, 이와쿠니에 있던 해상자위대 소속의 비행기 17대를 아쓰기 비행장으로, 미해병대 헬리콥터 8대를 괌으로 이전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하라 시장은 "그 보고서가 전해졌을 때는 아찔했다"며 "6개월간 해온게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어 버린 셈"이라고 말한다.

즉, 몇차례 있었던 회담이 최종보고서에 반영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된 것이다. 게다가 이번 기지확장은 항공모함 이착륙 훈련에 중점을 둔 것으로 기존의 소음문제, 비행제한으로 인한 산업피해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 최종보고서의 반향이 만만치 않자 4월 28일 키타하라 방위시설청 장관이 이와쿠니로 내려와 따로 상세한 설명회를 가졌다. 그안에 특히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미군의 수.

이와쿠니에서 괌과 아쓰기 비행장으로 이전하는 미군과 자위대는 1080명(자위대 900명, 미군 180명)인데 반해, 새롭게 이와쿠니로 들어오는 미군과 그 가족은 무려 4140명에 달한다. 안 그래도 문제가 되고 있는 미군범죄가 늘어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하라 시장은 "이번 최종보고서에 대해 우리는 질문서를 보내었고, 다시 정부가 5월 중순에 설명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정부는, 그러니까 협의가 아닌 '설명'을 다시 할 생각인 셈이다"며 "그렇지만, 시장으로서 주민들의 요구를 계속 밀고나갈 생각이고, 주민들의 요구는 확장이전 반대니까 이전계획을 철폐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 미군기지의 출입금지 팻말.
ⓒ 박철현
지금 이와쿠니는 해안 매립지에 활주로를 건설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활주로 건설의 목적은 시가지와 공장지대에 인접해 있는 기존 활주로가 주민들에게 주는 불편(소음, 추락위험)을 해소하기 위해 짓고 있는 것으로 확장이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와쿠니 미군기지반대 시민단체의 사무국장도 겸임하고 있는 다무라 쥰겐 시의원은 "정부는 어차피 새롭게 활주로도 지어지니 증강해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고 말한다.

그는 나고와 기노완의 사례를 들면서 "오키나와에서도 들고 일어나고 우리도 지금 시장을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미군기지 이전에 대해 이렇게 들고 일어나면 결국 미군은 자기나라 말고는 갈데가 없어진다"며 "다 돌려보내는 것이 나의 목표"라며 웃는다.

한편, 한국의 대규모 투쟁장면을 TV화면으로 보았다는 이하라 시장은 "저렇게 반대하는데 강행처리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도리어 기자에게 "왜 시민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해야 하지요?"라고 되물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미 오래전에 결정난 사항이기 때문에 정부가 집행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들려주자 "그럼, 주민이 안 사는 곳에 기지를 세우는 것이 낫지 않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미군기지 이전 막아내는 주민투표의 힘

일본에는 이미 주민들의 힘으로 주일미군기지 이전을 막아낸 적이 있다.

1997년 오키나와 기노완시(宜野灣市) 한복판에 있던 후텐마 비행장을 오키나와 나고시(名護市)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때 나고시는 일본역사상 최초로 중앙정부의 시책에 대해 지자체 자체의 주민투표를 한 적이 있다.

같은해 12월 22일 <후텐마 비행장 이전에 따른 해상항공기지 건설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라는 긴 이름의 주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찬성과 반대 뿐만 아니라, 조건부 찬성, 조건부 반대라는 항목도 들어가 있었다.

결과는 기지이전 찬성이 45.33%(찬성 2,562표, 조건부 찬성 11,705표)이고 기지이전 반대가 52.68%(반대 16,254표, 조건부 반대 385표) 무효표가 2.89%(565표)로 나왔다. 조건부 찬성의 조건이 해상기지 개발에 있어 절대 성립될 수 없는 산호초와 바다환경의 보전이었으니, 결국 반대표가 거의 90%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투표는 당시 결국 나고시의 시장이 이전 반대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투표결과를 묵살해 법적인 근거를 가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고시의 시민들은 지난 10여년간 싸워 결국 정부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노완시의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나가기로 해놓고 왜 안나가느냐는 것. 재미있는 것은 이 투쟁이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고와 기노완의 시민들은 현재도 연대투쟁을 하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지금도 후텐마 비행장의 미군병력을 이전시킬 곳을 찾고 있다. 결국 나온 것이 분산안이며, 그중 일부가 이번 최종보고서에 명시된 것처럼 이와쿠니로의 분산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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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6 11:00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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