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찰머스 존슨 - 미제국주의 비판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

1931년 피닉스에서 태어나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해군으로 복무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전후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버클리 중국학연구소 소장과 일본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였고, 1974년 이래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농민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권력》(1963), 《혁명과 사회체계》(1964), 《혁명의 미래: 정치와 사회변동》(1966), 《현대 중국의 이데올로기와 정치》(1973), 《'인민의 전쟁' 대해부》(1973), 《공산주의 체제의 지식인 계급 정책》(1973), 《통산성과 일본의 기적》(1983), 《일본, 누가 통치하는가?: 발전국가의 등장》(1996), 《오키나와:냉전의 섬》(1999), 《아시아는 어떻게 부유해졌는가: 일본과 아시아의 기적》(2002) 등이 대표적이다.


*미제국주의 비판 삼부작

《블로우 백Blowback》(삼인, 2000)

《제국의 슬픔들-군사주의, 비민주주의, 그리고 공화국의 증발The Sorrows of Empire》(삼우반, 2004)

《네메시스nemesis》(근간) 

 


1.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군수경제만으로 경제를 지탱하는 군사주의 제국’이다. 전형적인 미국인인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베트남전쟁을 찬성했으며, 소련이 미국의 주적임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는 후학들의 요구에 의해 학문적 주제로는 금기시되고 있는 '미제국주의' 연구에 몰입하였고, 이후 "그때(1968) 반전데모를 했던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그들의 모든 유치함과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옳았고 미국의 정책은 틀렸다"고 회고한다.

냉전의 종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간단한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냉전의 전사cold warrior'다. 소련이 진짜 위협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소련이 이상주의 영감을 불어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공산당의 만행에 실망하고 현실사회주의와 결별했음에도 '인터내셔널가'만 울리면 벌떡 일어서는 사람들을 그는 경계한다. 그는 이러한 소비에트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그는 울리히 벡이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에서 말한 이항대립에 대한 거부, 개념적 질서화에 대한 부정, 민족국가의 경계선에 귀속하고 그 구속을 허무는‘이방인’개념 따위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는 군사기구들, 군산복합체의 등장과 성장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소련'이라고 보았으며, 이러한 근거의 기저에는 미국에 대적할 만한 것으로 소련의 영향력, 그들의 의지를 간과할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파헤쳐 보면 이러한 냉전의식 속에는 정작 대립 대상으로서의 소련의 약점을 간과하게 되었다는 치명적인 약점(넓게는 앞으로 그가 비판하게 될 ‘미국사회 관료’의 맹점이 되고 구체적으로는 미제국주의의 내용 없는 막강권력쯤이 되겠다)이 있다. 그는 ‘누구도 그것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누구도’는 대표적으로 “한 해 320억 달러의 예산이 투여되는 중앙정보국(CIA)조차 1980년대 소련경제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겠는가”라는 (제국의) 거대조직의 미스터리가 숨어 있다. 소련은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가난한 동유럽 위성국가들보다 독일, 프랑스와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를 막지 않았다. 그는 소련은 “내부적으로 붕괴했다(imploded)”고 본다. 그리고 “이런 소련의 붕괴는 미국의 장례를 예고하는 예언적인 사태”라고 말한다. 냉전은 끝났고, 미국은 승리배당금, 평화배당금을 챙겼다. 그리고 잠시 군비를 감축하는가 하다가 1947년 이후 다시 신속하게 군비를 증강하고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뛰어든다(맛보기로만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데에는 세계대전 이후 벌어진 이 두 전쟁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는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벌인 전쟁을 주요축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냉전은 종식되었다고 전제하는데(노암 촘스키도 그렇지 않나?) 그렇다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더 이상 미군기지가 있어야 할 명분이 사라졌음에도 미국은 즉각, 조건반사적으로 또 다른 적을 찾아나선” 이러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미국의 지도자들은 냉전의 종식 이후에도 냉전시대 군사기구 철폐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 더군다나 “국민들 또한 이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까가 그가 밝히고 있는 미제국주의 비판의 첫 번째 문제이다.

미정보기관이 사용하는 용어로 미국의 비밀공작이 초래한 예기치 못한 역작용을 지칭하는 ‘블로우백blowback’은 구체적으로 9.11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가 말하는 '냉전'이란 “전체주의적 가치와 민주주의적 가치의 경계선이 분명한 대결(다시 말해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대립)”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 그는 “세계적 맥락, 중국/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벌였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고려해서 넣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전쟁을 통해 강력한 민주주의를 등에 업은 전쟁국이 된 '제국'이란, 식민지를 갖고 있는 나라라는 (소박한) 의미에서 “외부로부터 헤게모니를 투사해 다른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익이 어떻게 되는냐와 상관없이 우리들의(제국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만드는 것”(앞서 ‘소박한’이라고 말한 것은 침략과 침탈이 확실히 구분된다는 의미에서의 내 나름의 강조이며, 직접적인 침탈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이익에 봉사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보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알아서 기고 있는-적극적으로 제국의 이익에 봉사하려는-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을 지칭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2. 미국은 지금 나치의 길을 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제국의 단위는 ‘식민지’에서 ‘군사기지’로 변모되었다(한 국가를 통째로 먹는 것보다 여러 국가를 자기 편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보호와 방어라는 명분을 내세운 최소한의 통제기반을 각국에 설치하고 다국을 식민화하는 전략)고 볼 수 있다. “로마제국이 중동지역에 갖고 있었던 군사기지가 현재 필요한/들어선 미군사기지 38개로 일치한다”는 것만 봐도 그들의 ‘전쟁기지’전략은 식민화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전 세계에 700개 이상의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미제국이 ‘앞세우는 (대외용) 논리’는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소련군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에도 5년 동안 중동을 떠나지 않았던 것만 봐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막강한 군사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제국을 떠나서) 제국의 일반적(역사적)인 속성(특징)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제국이 우리 사회에 어떠한 방식으로 파고드느냐”라는 제국에 의존하는 방식을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 세계 국방예산의 절반에 육박한다. 여기에 이라크 GDP, 아프간 전쟁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에서 국방예산은 산업 보조금으로 작동하고, 무기는 효율적으로 생산되는 거의 유일한 공산품이다. 이러한 무기산업은 수출에 의존하며 이는 민간기업에 의한 것이 아니라 펜타곤에서 진행한다. 다시 말해 외국 정부에 대외군사판매를 하는 것이다. 미국 경제는 '4개 거대 방위산업체가 단 하나의 고객'을 위해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말하면 ‘국가사회주의가 아닌가’라고 그는 묻는다. “미국 대학 경제학 강의 어디에도 없는 방식으로(자유무역/시장경제에 전면 대치되는) 미국 경제가 운용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들이 가르치고(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겠지) 행하고 있는 것(아이러니하게도 국가사회주의 통제경제가 된다. 용어는 잘 모르겠지만)의 反논리적인 상황을 보면 나도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미국은 더 이상 군대 없이 살아갈 수가 없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군대 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미국시민들은 그들의 경제적 버팀목이 되고 있는 군사기지가 폐쇄되는 것에 따른 신경증을 앓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에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압도적인 숫자가 “그래도 원전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선에 있다. 원전은 그들을 먹여살리는 생활토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중독이 아니다. 정치가 아니다. 군대가 없으면 미국경제는 지탱하기 못한다는 현실 상황이다. (나는 이것이 땅을 믿고 살아가는 대추리 주민들이 그곳을 떠날 수 없듯이 미국적인 시민의식의 부재를 지탄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라고 본다. 그들 또한 농사를 짓는 것처럼 군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지독한 군사주의 문화의 식민이자 자국 제국주의의 인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미국적 상황의 역사적 전례로 군사 케인즈주의의 전례가 되고 있는 1933년 이후 5년 동안 시행된 나치당과 독일산업과의 동맹을 끄집어낸다. 당시 히틀러의 방식은 노동자의 계급성을 말살하는 본보기가 되었다(실제 부르주아들의 지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봉사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철학/문학/과학을 헐값에 팔아넘기지 않았는가. 이는 국가 지배층이 가장 좋아하는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군대를 동원해 강경 군진압작전을 펼친 노무현 정부도 그런 의미에서 ‘파시즘 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즉 “정부 재정지출을 늘려 수요를 자극하고 공장을 세운다는 것은 노동조합과 이후 노동계급을 강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대추리 주민들과 대화하고 그들에게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들의 계급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돌려치기 할 수 있다.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면서도 그들을 철저히 억누를 수 있는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파시즘이 등장하고 지지를 얻은 것처럼 미국의 군사주의는 그들의 가장 강력한 경제적인 기반이며(그러나 이것은 ‘생산력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는 기반이다’라는 전제하에서) 그것에 종사하는 시민들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대전 이후 20년 만에(1966) 안보국가National security state를 채결했으나 당시에만 32,000개의 핵탄투를 보유하였고 현재도 여전히 9,9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 없이는 그들의 제국이 유지되지도 힘을 발휘할 수도 없다는 것의 반증 아닌가. 군사력으로 위협하려는 협박의 도구를 스스로 철회할 의지도 없을 뿐더러(그것 없이는 제국이 유지되지 않으므로) 그들이 말하는 보호, 방어라는 이름의 평화는 전쟁의 다른 이름인 페이스오프Face Off임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3.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바로 우리였다


보호, 방어라는 이름의 ‘전쟁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평화’를 왜 나는 반대할 수 없는가, 혹은 반대할 수 없게 되었는가. “2007년 펜타곤의 국방예산은 4,393억 달러, 물론 이것도 이라크, 아프간 전쟁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 예산에는 미국방 역사상 최대치의 계약액을 기록한 F-22(스텔스 전투기)가 포함되며 우습게도 이는 쓸모없는 신무기다. 또한 예산은 해군 제독들의 장난감에 불과한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데 쓰여질 것”이라고 그는 밝힌다. 전 세계 가장 강력한 군사국가에서 공개된 국방 예산이 고작 세계 전쟁 기지 주변 200여 개의 골프장 관리나 군인들의 여흥을 위한 스키장, 장관을 위한 전용기(제트기) 등에 투여될 것이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일례로 미국은 1990년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도 2003년 한미간 합의에도 없었던 대추리 주변 100여 평을 미군부대 골프장 부지로 추가 요구하였고 이것도 토지수용이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5월 2일 국방장관의 브리핑에서처럼 “총 확장면적 362만 평-캠스 험프리스 기존 151+확장 258=436만 평, 오산 에어베이스 기존 218+확장 64=282만 평, 기존 면적 369만 평, 확장 면적 322만 평(골프장 부지 포함하면 422여 평이지만 장관 브리핑에서는 362만 평이라고 명시), 평택 군사기지 총 면적 806만 8천 평-을 신규제공하고 전국에 산재해 있는 35개 기지, 7개 훈련장 등 총 5,167만 평을 돌려받아 순수하게 4,805만 평을 되돌려 받는 것”이니 수치상으로는 남는 장사다. 국방부의 계산대로라면 골프장 추가 100여 평은 거저 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실제 국방부는 그렇게 했다. 그런데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이러한 브리핑에 “돌려받는 땅이 훨씬 더 많네”라고 끄덕였다면 당신은 ‘전쟁과 평화’가 같은 것임을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기지 이전 비용은? 기지 이전 후 시설 투자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설마 미국민의 세금이 여기에 투여된다고(그들의 예산집행) 믿는다면 당신은 ‘전쟁비용=평화비용’임을 용인하는 것이 된다. 물론 골프장 추가는 한국 정부의 돈으로 매입 건설하는 것이며 그들의 예산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전 세계 미군기지는 700여 개나 산재해 있다고 하는데 그럼 그 중 500여 나라의 정부는 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알아서 기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

다시 돌아가서 미국의 국방예산이 저렇게 엉터리로 집행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미국은 제국이지 않은가, 제국이라면 뭔가 그럴싸한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세계정복프로젝트 같은. 그런데 그는 이러한 예들을 통해 “미국방 예산에는 전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언론 또한 이러한 예산낭비에 대해 완전히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숨겨진 예산까지 포함하면 1년 미국방 예산은 대략 7,500억(공식 예산 4,400억+이라크전쟁 등 전쟁비용 1,200억+퇴역군인 관련 예산)에 달한다. 한 달에 대략 68억을 지출한다는 소리다. 거기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미국의 신무기 개발 중독증은 2006년에만 핵무기 개발을 위해 185억 달러를 쏟아부었다”고 한다(한 해 예산의 세 달치 액수다). 이것은 공개된 자료만을 가지고 풀어본 것이다. 그것도 실소를 자아내게 할 만큼 제국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런 제국보다 더 웃기는 것은 한국 정부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한국측 비용 전액부담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였고, 100퍼센트 이전한다는 미군의 강력한 용산기지 이전협상조차 한국의 일방적인 비용부담으로 결론을 냈다. 이걸 두고 2004년 미 국무부는 ‘목표를 초과 달성한 협상’이라고 평가했다지 않는가. 이 정도면 협상이 뭔지도 모르는 무능한 정부에 대해 분노할 건더기도 없다고 말을 섞기도 싫어지는 것이다. 정당한 분노마저 바람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바람 빠진 협상은 미국의 세계전략의 재편 따위를 살펴볼 의지마저 꺾어버린다(단지 미군기지 확장 문제만이 아니지 않는가. 작년 11월에 있었던 쌀협상안 국회비준이나 올 초 한미FTA를 보면 더 가관이다). 때문에 찰머스 존슨은 이러한 상황을 월트 켈리의 말을 빌어 이렇게 지적한다.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바로 우리였다.”


4. 지속되지 않을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의회는 정부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예산을 집행하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라고 그는 그 막강한 제국에 묻는다. 그는 2005년 12월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부패사건인 랜디 커닝행 하원의원 부패사건을 꺼낸다. 커닝햄은 세출위 군사소위 위원이라는 직위를 이용 방위계약을 성사시켜준 대가로 240만 달러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성사된 방위계약은 무려 1억 7,500만 달러. 이것만을 봐도 “미군부는 이제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그는 말한다. 펜타곤은 방어defense의 의미가 없음에도  '전쟁부department of war'에서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로 명칭이 바뀌었고, 그가 말한 '군산인간military-industrial man'의  대표적인 예로 끌려나온 커밍햄 사건은 “커닝햄이 자기 구의 지역구 의원이었으면 좋겠다”며 "일자리만 창출된다면 미사일방어기지의 미사일이 발사되든 말든 관계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또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이는 첨단 허수아비에 불과한 미사일방어망에 1,000억 달러나 퍼부으며 미 공군력을 우주에까지 확대하겠다는 ‘우주의 전면적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를 추구하는 제국의 허울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는 집중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당파적 편견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분석과 이해의 대상은 야수beast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아주 중요한, 그러나 너무 쉬운 이런 말을 한다. "정보를 얻을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를 가능케 하는 권리이다."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면 권리장전bill of rights도 소용없는 것 아니겠나. 한 사회의 비밀주의의 정도에 따라 진실의 몫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정보공개법에 의한 정보 접근을 최대한 어렵게 만들라"는 행정명령을 내린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의 예처럼 펜타곤의 눈 먼 돈black budget의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언론은 대통령의 사병인 정보기관에 대해 속수무책이며, 정보기관의 원칙인 비밀엄수로 인해 그들의 예산이 투명하게 공개된 예는 ‘없다’. 예산뿐 아니라 정부 집행 권한은 비밀에 의해, 비밀주의에 의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 아닌가. 전두환도 노태우도 그들을 질타했던 노무현도 그들의 강력한 무기로 최후까지 그들을 지켜주는 것은 “모른다. 말할 수 없다” 아니겠는가. 군부는 이미 대통령의 사병으로 변질되었으며 시민을 지켜주는 방위 임무를 저버렸다.

“위기의 순간에 조국을 지키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지만 징병제는 쉽게 조작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한국은 이러한 조작도 할 수 없는 의무병 아닌가. “베트남전쟁처럼 정부의 거짓말에 속아서 전쟁에 참여하게 됐다고 믿게 된다면 미군대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미국 사회 군부의 치부와 맹점을 앞서 국방부(펜타곤)의 허울을 밝히며 공격한다(우리 돈 들고 명분 없는 이라크전쟁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의 허울은 한국군대의 해체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적용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한국군대의 허울에 대해 밝혀진 것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기도 하고 한국군이 직접적인 전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고 군의 해체를 불러올 수 있는 직접적인 타겟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전쟁에 참여하였고 장차 동북아 국가들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의 전초기지가 바로 평택이라면 한국군은 전쟁수행을 위해 재무장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전쟁에 4등급 장정(정식적으로 심각한 장애가 있는)까지 징발하려 하고 있는 극에 몰린 상황이다. 여기서 미국의 군사체제는 그들의 경제체제임을 누누이 강조했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부자가 아니다.” 2005년 미국 무역적자는 7,258억 달러로 이는 1년 만에 25% 증가한 적자폭을 기록한다. 백악관 경제수석 보좌관 허버트 스타인이 고백했듯 미국은 "지속되지 않을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상황인 것이다. 


5. 미국의 장래? 파산 아니면 구데타


“부시행정부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루고자 원했던 것을 모두 이뤄냈다. 군사주의 진전이 그것이다.” 대다수 미국인의 마음속에는 군부는 미국사회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작동되는 '조직'이 되었다. 이러한 군사주의는 지배계급의 배를 불렸고 권력분립의 원칙을 파괴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활성화가 시급하며 이는 시민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또 다른 방법으로 “미국이 파산한다면” 어떻게 될까? 2001년 아르헨티나의 국가 도산사태처럼? 그렇지만 그 규모가 다르다. 이번에는 초강대국의 파산이다. 도와줄 누군가가 있을까? “미국이 파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사태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의미한다. 미국 무역적자는 연간 7,250억 달러이고 이는 재정적자로도 최대치다. 그러면서도 미국방 예산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이라크전쟁에만 5,0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돈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온 것이다. “그들이 더 이상 돈을 빌려주지 말자고 결정한다면, 미국 금리는 치솟고 주가는 폭락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1930년대 대공항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달러의 가치 하락. 이는 국제기축통화의 지위 하락을 의미하며 실제 이란은 국제 통화 결제 통화로 달러를 유로로 변환하려 하고 있다(국제석유거래소 제안). 올 초부터 국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란의 핵개발로 미국은 이란에 대해 중대경고를 퍼붓고 있으며, 이를 막지 못하면 미국의 달러 가치 하락은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만약 “미재무부 발행 국채 증서를 상당히 갖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에서 달러의 가치가 하락한다면 달러가 있는 사람은 파산하고 먼저 달러를 팔기 위해 패닉 현상이 유발될 것”이다. 실제 2000년 한국은행 총재의 "외환 보유고 중에 달러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발언으로 사람들은 달러를 마구 내다 팔았고 곧 패닉이 시작됐다. 부시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들 뭐 하자는 거야?"며 항의했고 한국은 한 발 물러선 예도 있다.

만약 올 여름 태평양에서 4개 항공모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보내 미국이 중국을 위협한다면(그럴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미국방부의 머리 나쁜 애들에 의해 진행될 수도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 있는 전망이다) “중국은 최대한 혼란을 줄이는 방식으로 달러를 버리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가 미국의 파산을 점치는 예상 경로다. 부시행정부 관리들을 과격파/또라이들crazies이라고 하는 데에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왜 대통령은 헌법을 위배하는 것인가"를 반문하게 만들며, 이는 구데타를 간절히 바라는 상황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대추리에 군부대를 투입한 한국정부를 질타하는 성명서의 내용을 보자. 혼란을 막기 위해 군부는 일사천리로 언론을 길들이고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나마 촛불시위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개인은 자신의 알리바이를 대기에 바쁘다. 그리고 침묵한다. 못 본 것으로, 안 본 것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가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한 사람의 영웅’을 고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소위 제국인 미국 상황을 기반으로 한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넘치는 정보를 규합해보면 아찔해진다. 어쩌면 찰머스 존슨이 인용한 것처럼 “로마공화국처럼 그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았고, 관리할 수도 없었던 제국을 우연히,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갖게 된 탓에 그들은(미국은) 항상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빠져든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한국은 과격파, 또라이들crazies의 시나리오에 따라 평택에 군사기지를 내줌으로써 당장 이란과 미국의 전쟁으로 피로 물들 수 있는 2006년의 작전기지, 미사일 발사 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동북아 최대 군사기지인 오키나와는 이미 군대 이전을 합의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내는 세금이 그 군사기지를 지원하고 건설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이 내 목을 죈다. 더 이상 감성에 호소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널려 있는 정보만을 가지고도 이렇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작성할 수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 글은 지난달 〈프레시안〉에 기고된 찰머스 존슨의 '미 제국주의 비판1~6'을 정리하면서 지금 상황을 내 나름으로 들여다본 것이다. 나는“정보를 얻을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를 가능케 하는 권리이다”에 무조건 동의하며, ‘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말하자면 내부 고발자의 양심고백과 같은 그의 정보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의 책은 읽은 것이 없고 때문에 학자로서의 그의 견해를 비판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무장해제하고 그의 견해를 받아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추리에 군부가 투입되고 일사천리의 군진압작전을 보며 “우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막나가는 공권력 행사를 세금을 내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겠는가 고민되었다. 분노보다 울화가 치밀었고 대추리 초등학교가 무너질 때보다 방패에 몸을 숨기고 키득이며 웃고 있는 군인(무관심한 개인과 길들여진 개인이라는 의미에서 얼마든지 내가 될 수도 있다)에게 달려들어 울부짖는 대추리 할아버지의 심정이 전달되어 몸이 떨렸다. 그리고 일상은 나를 묶어놓았다.

 

지난 달 다녀온 대추리의 풍경은 이제 아수라가 되었다. 때문에 다시 갈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주문을 걸던 내 심정도 허황된 것이 되었다. 조금만 비껴서 있으면 세상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참 좋은 동네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2006년 5월 3일 새벽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보았다.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이것은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고백하건대 지금 내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그대로 하던 일을 계속 하는 일상과 이 폭력적인 야만의 계절을 저울질하는‘내 안의 적’이며 그러했을 때 나는 계속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용기 없음이다. 그렇더라도 “정보를 얻을 권리는 다른 모든 권리를 가능케 하는 권리”라는 것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공포를 느껴야만 하는 정부의 인질이 되어버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꿈꿀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싶지 않다! 이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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