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라주미힌 > 비정규직 눈물에 ‘못다 핀 KTX의 꽃’

주인 기다리는 ‘먼지 구두’ 오랫동안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승무원들의 물건이 있는 서울 용산 고속열차 승무사업소 캐비넷 위에 주인을 잃은 구두가 먼지에 뒤덮여 있다.
“오히려 고마운 구석도 있어요. 세상물정 모르고 살던 순진한 우리 눈을 뜨게 만들어 줬으니까요.”

60여일째 290여명의 승무원들을 이끌고 농성 중인 서울 KTX 열차승무지부 민세원 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상의 스튜어디스’ ‘KTX의 꽃’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2004년 4월 업무를 시작한 KTX 여승무원들은 현재 열차가 아니라 철도공사 서울지부에서 생활하고 있다. 변변한 잠자리도 없이 침낭에 몸을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철도공사 정규직화다.

“채용홍보 영상에서는 자막으로, 교육을 받으러 간 자리에서도 공사 간부까지 나와 정규직화시켜 준다고 했어요. ‘처음부터 비정규직인 거 알고 들어갔으면서 이제 와서 정규직으로 바꿔 달라는 건 도둑 심보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달라요.”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입사한 사회 초년생 KTX 여승무원들은 빡빡한 근무일정과 박봉에도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유럽까지 가는 미래를 꿈꾸며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올해 4월 그들이 공사로부터 받은 것은 상여금 10만원과 해고 예고서다.

KTX 여승무원과 철도공사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2004년 채용 당시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철도유통공사(당시 홍익회)는 남자 승무원들의 경우 경험과 자격이 있다며 철도공사 소속 정규직으로 고용했으나 350명의 여승무원들을 쉽게 외부 조달이 가능하며 단시일에 양성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그러던 중 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과 마찰이 생기자 승무 사업을 또다른 자회사인 KTX 관광레저에 떠넘겼다. 하지만 KTX 관광레저는 감사원으로부터 부실기업으로 판정받은 곳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KTX 열차로 돌아갈 날만을 꿈꾸는 비정규직 승무원들과, 정규직화 약속은 한 적 없다는 철도공사는 나란히 달리는 레일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꿈의 열차’를 약속하며 시속 300㎞의 속도로 달리는 KTX는 오늘도 ‘290개’의 부품이 빠진 채 씁쓸한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사진·글/남호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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