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佛 청년들 투쟁] ‘평등가치’ 앞세워 길거리시위 주도
입력: 2006년 03월 29일 18:08:16 : 0 : 0
 
‘왜 프랑스인들은 걸핏하면 거리로 뛰쳐나와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는가.’

최초고용계약(CPE)에 반대해 프랑스 청년과 노동자 3백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온 28일 총파업을 전후해 제기된 의문 가운데 하나다. 사실 세계화의 부수적인 피해로 발생한 청년실업이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제는 아니다. 인근 유럽 국가들은 물론 세계경제에 편입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논객 필립 스티븐은 ‘프랑스는 변화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두려움에 휩싸여 계속 살아야 할 것’이라는 제하의 칼럼(24일자)에서 “폭력시위의 전통은 프랑스적 유전자의 일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자크 마르세유 파리1대학 역사학부 교수는 “프랑스에서는 의회의 자리를 거리가 대신하고 있다”며 “프랑스인들의 절반은 ‘길거리 시위’ 형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다”고 분석했다.


의문의 핵심에 프랑스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튜던트(학생) 파워’가 있는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더라도 프랑스 공화국이 거리에서 탄생했다는 역사적 전통 역시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좌파건, 우파건 정치적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고 노동조합은 강력한 추동력을 상실한 상태여서 청년들은 거리에 호소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그런데 여론의 3분의 2가 CPE 철폐를 지지하면서 청년 시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는 청년들의 시위가 프랑스 국민 대다수에게 공감되고 있는 ‘공화국의 가치’라는 중요한 동력원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층에 실업피해가 집중되는 것은 자유, 박애와 함께 공화국의 가치를 구성하는 ‘평등’의 잣대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국의 가치에 반할 경우 학생들이 선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에는 2002년 5월 대통령선거에서 극우파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 후보가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공화국의 가치’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결국 1백30만명이 거리로 나서 르펜을 낙선시켰다. 이번엔 자신들의 문제인 만큼 더 절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인 동기에서 시작한 청년들의 반란은 사회적인 운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급속히 정치화하고 있다. 지난 주말 악상프로방스에서 열린 전국대학생협의회에서 처음으로 우파의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 퇴진 요구가 불거진 것은 이번 시위가 1968년 학생시위와 달리 정치적 지향점이 없다는 기성세대의 분석을 여지없이 빗나가게 했다. 68학생혁명 당시 소르본대학에 적기(사회주의)와 흑기(무정부주의)를 내걸었다면 이번엔 반 세계화와 반 우파정부라는 두개의 깃발을 내건 셈이다.

청년들의 좌절이 깊다는 것을 반영하듯 과격화 조짐도 보인다. 이는 28일 시위 도중 파리 이탈리 광장 등지에서 벌어진 모슬렘 이민자 청년들의 폭력소요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파괴자들(casseurs)’이라는 기사 표현에 항의하기 위해 파리 AFP통신 본사를 방문한 파리10대학 학생들은 “불필요한 폭력이 아니다”라면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두둔했다. 학생 카미유(21)는 “솔직히 말해 우리 역시 조만간 그들과 같은 수준의 절망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시위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반역의 성격을 띠게 된 데는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작용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20~25세 프랑스 청년들은 ‘세계화가 당신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48%가 ‘두려움’이라고 답했고, 27%만이 ‘희망’이라고 답했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세계화로 인해 생겨난 소외계층에 대해서는 아직 적응 모델을 만들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르몽드는 28일 시위의 규모가 ‘역사적인 기록’이라면서 “최근 20여년간 일어난 시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위의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최대 학생단체 뤼네프(l’UNEF)의 브루노 줄리야르 회장은 ‘해일’이라고 표현했다. 공무원을 포함, 공공부문 종사자의 30%가 동참했다. 프랑스에도 ‘혁명의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심각한 ‘혼돈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CPE를 법제화하면서 아무런 대화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드빌팽 총리는 시위가 확산되자 뒤늦게 대화를 촉구하고 있다. 우파정부는 설득력을 잃고 있어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총파업이 좌파와 우파, 사용자와 노동자를 포함해 프랑스 사회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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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3-30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희 팀의 프랑스애가 프랑스에 대한 여행 주의보가 내렸다면서 전체 메일을 돌렸더군요. (영국이랑 독일 일부도 파업중이라면서요..) 굉장한가봐요.
걔는 자기 나라를 싫어하는 애라서;;;
"...Old Europe.."이라고 비꼬는 투로 메일을 보냈지만서두요..
(하긴 자기 나라를 싫어하니까 두달씩 되는 휴가를 걷어차고
미국에 와서 일하겠지요? 전 아닙니다만 ^^;;; 대한민국 만세- ^^)

balmas 2006-03-30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키티님은 어찌 그렇게 귀엽게 말씀하삼?? ^^;;

balmas 2006-03-30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 지금 유럽이 아래와 같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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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지금 '파업中'… 프랑스 총파업, 영국ㆍ독일ㆍ그리스도 몸살
[한국경제 2006-03-29 17:57]
유럽이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에서 지난 28일 최초고용계약(CPE,26세 미만 근로자는 채용후 2년내 자유해고)에 반대하는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진데 이어 영국 독일 그리스 등에서도 연금개혁과 임금협상을 둘러싼 노동계의 파업이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세계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한 기득권의 반발로 해석되고 있어 유럽대륙을 뒤흔들고 있는 대규모 파업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나머지 기사는 요기로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15&article_id=0000883754§ion_id=101&menu_id=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