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례를 통해 본 비정규직법의 정체
비정규직 ‘보호법’이냐 ‘노동유연화법’이냐
2년간 해고 자유 프랑스 ‘CPE’…2년 기간제한 비정규직법과 흡사
 
최근 프랑스에서는 우리와 유사한 비정규직법안을 두고 학생들과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마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법 철회와 재논의를 요구하는 것과 흡사해 관심을 끌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새 노동법은 사용자가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하면 첫 2년 동안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최초고용계약제(CPE) 도입이 핵심이다. 첫 2년 간은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고, 2년 이후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으로만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년+고용의제’를 담은 우리의 기간제법과 너무나 닮았다.

이에 대해 프랑스 학생들은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프랑스 학생들은 연일 대규모 시위와 동맹휴업을 벌이고 있다. 주요 노동단체들과 사회당도 23일까지 정부와 의회가 최초고용계약(CPE)를 철회하지 않으면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하는 등 새 노동법을 놓고 프랑스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 프랑스의 CPE와 비정규직법 = 지난 1월16일 빌팡 프랑스 총리는 “노동시장을 현대화시키고 청년들을 일자리로 향하게 하는” ‘긴급’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핵심이 CPE이다.

프랑스는 지난해 상시노동자 20인 이하 사업장에 한해 2년간 해고가 자유로운 고용계약제도를 도입했다. 이번에는 이를 20인 이상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업들에게 높은 해고 비용과 복잡한 해고 절차 등 해고에 따른 부담을 덜어줘 청년들을 더 쉽게 고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고안했다는 정책이다.

현재 프랑스 노동법은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 한해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한다.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용 사유제한’이 프랑스에서는 이미 시행중이다. 이번에 프랑스 정부가 도입하려는 CPE는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할 시에는 2년의 ‘기간제한’만 두겠다는 것이다. 즉 26세 미만에 한해서는 2년 동안 기간제 고용을 무제한으로 열어두겠다는 내용이다.

법안 내용만으로 보면 프랑스의 CPE는 지난달 27일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기간제법의 ‘2년 후 고용의제’와 거의 똑같다. 환노위를 통과한 법안은 계약 2년 이내에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고, 2년 후에도 계속 고용할 때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 오히려 프랑스는 26세 미만 고용으로 한정한 반면 우리는 연령제한이 없다. 그만큼 우리 법안이 프랑스 법안에 비해 노동유연성이 높은 편이다.

또 프랑스는 청년층의 고용확대를 위한 CPE뿐 아니라 57세 이상 고령층의 고용기회를 확대하는 ‘기간확정 노동계약(CDD)’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는 18개월 동안 사유제한 없이 고용하고 한번 더 계약기간을 갱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청년층에 해당하는 CPE와 마찬가지로 고령층의 비정규직 고용 시에도 ‘기간제한’만 둔 셈이다.

환노위를 통과한 비정규직법에도 고령자에 한해서는 사용기간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 프랑스가 CPE를 도입하려는 이유 = 프랑스 정부가 CPE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도모해 청년층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업을 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청년층과 고령자의 실업난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프랑스의 그것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공식통계에 따르면 지난 1월 프랑스의 실업률은 9.6%로 다소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청년 실업은 0.6% 정도 하락했지만 고용사정이 개선될 희망이 보이지 않고 있다.

25세~ 49세 실업률이 8.7%인데 비해 15세~25세 이하 청년층의 실업률은 22.8%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빈곤지역에 사는 청년들의 고용사정은 더욱 절망적이다. 이 집단의 실업률은 남성의 경우 36%에 이르며 여성의 경우 40%에 이른다.

실업률의 증가는 프랑스 우파 정권의 고용정책의 입지를 약화시켜,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프랑스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그간 고용보호법들의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유연성을 도입하는 쪽으로 정책들을 펴 왔다. 그럼에도 실업률은 증가했다. 특히 청년층의 실업난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우파 정권의 정책 실패로 인식될 수 있어 정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 같은 법, 다른 해석 = 프랑스는 이 법안을 노동유연성 강화법이라고 털어놓았다. 노동유연성(고용불안)을 높여서라도 기업들의 청년층 고용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똑같은 법안에 대한 해석이 정반대이다. 정부여당은 2년의 기간제한과 차별시정을 통해 무분별한 기간제 남용을 막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법안을 제·개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 정부와 우리 정부가 이처럼 다른 주장을 펴는 것은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현행 노동시장 규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현재 비정규직 사용 시 사유제한을 시행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따라서 프랑스는 사유제한 등으로 인해 경직된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CPE와 CDD를 도입하려는 반면, 우리는 이미 더이상 유연화 될 수도 없을 정도로까지 유연화된 무분별한 노동시장을 규제한다는 차원에서 ‘기간제한’을 도입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나라 정부 모두 비정규직의 고용을 통해서라도 실업률을 낮춰야 한다는 기본 인식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또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려는 ‘철학’도 유사하다.

사유제한을 하는 프랑스에서는 비정규직 고용이 ‘불법’인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법외’의 영역이다. 프랑스에서는 특정한 사유가 없는 한 비정규직 고용은 원천적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사유와 기간이 모두 무제한으로 열려 있다. 환노위를 통과한 법은 이 가운데 기간을 2년으로 묶은 대신, 사유는 제한하지 않았다. 현재 1년 단위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앞으로는 2년이라는 계약 기간 내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어도 계약기간 만료만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셈이다.

정부여당은 이 법안이 시행되면 차별시정조치가 적용되고 기업들의 교체 사용에 따른 비용을 감안하면, 2년 후에는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 정부도 2년 후에는 청년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2년 주기의 대량 실직과 교체 사용이 빈번해지고 상시업무의 정규직 자리도 비정규직으로 대체되는 등 고용불안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 학생들과 노동계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여당이 대량 실업을 이유로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사유제한’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논리나 파견업종을 확대 조정하겠다는 것, 고령자의 비정규직 무제한 사용을 허용하는 논리도 프랑스 정부의 인식과 너무나 유사하다.

비정규직 고용을 늘려서라도 실업난을 해소해야 한다는 프랑스 우파 정권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사회 일각으로부터 ‘좌파 정권’이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던 한국 정부의 정책과 꼭 빼 닮았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조상기 기자  westa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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