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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다
할머니들이 여생을 뜻대로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영민 기자 , 2006-03-15 오전 9:24:31  
 


팔레스타인에 다녀오느라 한동안 가지 못하다가 어제(3월14일) 오랜만에 평택에 갔었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는 대추리에 처음 들어가는 길이라 기사님께 대추리에 도착을 하면 말씀을 좀 해 주십사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그렇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강제수용 결사반대’라는 깃발이 여기저기서 나부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란색 깃발을 보면 몇 해 전 부안에서 핵폐기장 건설 반대 투쟁을 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도 고속버스를 타고 부안으로 가는데 나들목을 지나면서부터 노란색 깃발이 곳곳에서 휘날리는 것이 무슨 혁명이라도 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한동안 저는 부안 지역 주민들이 부당한 국가 폭력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주민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지를 지켜봤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는 또 노란색 깃발이 휘날리는 한 마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손주도 거의 알아보시지 못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아이고, 미니 니가 우얀 일이고, 장가는 안 가나?’ 하며 저를 반겨 주시던 저희 할머니 같은 분들이 계신 곳으로.......

아이고, 추운데 고생이 많소

대책위 상황실이 있는 대추 초등학교에 가니 정문은 여러 가지 깃발과 구호 그리고 쇠사슬로 잠겨 있었습니다. 정문 안쪽으로는 몇 대의 트랙터가 대어져 있구요.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서 저는 학교를 돌아 뒷문으로 들어갔습니다.

학교 관사에 잠깐 앉아 있는데 대책위 분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경찰들이 마을 주변 이곳저곳에 나타나서는 이리저리 둘러보고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곧 학교에 들이닥칠 계획이어서 현장 상황이 어떤지를 정탐하고 다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대책위 활동가 한분을 따라 학교 정문 앞에 있는 초소(?)로 갔습니다.
 


초소라고 해야 사방에 스티로폼 판으로 바람을 얼마만큼 막고 그 가운데 드럼통을 이용해 불을 지피고, 주변에 의자 두 어 개가 있어서 사람들이 보초를 서는 곳이었습니다. 낮 시간인데도 날씨가 꽤 차가워 불을 크게 지피는데 밤 시간에 보초를 섰던 사람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가시던 주민 분이 한 마디 던지셨습니다.

“아이고, 추운데 고생이 많소.”

정든 땅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고생인지, 미국과 한국 정부의 폭력으로부터 땅과 주민들을 지키려고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더욱 고생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서로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젊은 사람들이 이 정도 가지고 뭘요.’하면서 웃음을 건네는 순간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그리고 할머니들의 여생

대추 초등학교 정문은 미군 기지의 작은 출입문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문과 그 너머에 펼쳐진 넓은 땅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만들어 둔 체크 포인트(검문소)와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평택에서 한국 정부가 농민들의 땅을 빼앗을 때도 ‘법’을 들먹이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땅을 빼앗을 때도 ‘법’을 이야기 합니다. 그 가운데는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을 국가가 가져간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농사를 짓는지 아닌지를 누가, 어떻게 판단 하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토지 조사를 겨울에 하고서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땅을 빼앗는 것입니다. 겨울에 농사를 짓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도 말입니다.

또 다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이 들판 한 가운데를 가르는 철조망 장벽을 치고, 체크 포인트를 만들어 놓고서는 일부 농민에게만 체크 포인트를 통과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합니다. 그러면 허가증이 없는 농민들은 장벽 너머 땅으로 갈 수가 없고, 그러면 자연히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어 그 땅은 또다시 이스라엘 정부의 차지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팔레스타인에 있으면서 팔레스타인 농민연대 사무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만났던 한분에게 평택 상황을 이야기 하니깐 한국도 그러냐면서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팔레스타인 농민들의 땅을 이스라엘이 빼앗으면 빼앗았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한국, 이스라엘 정부의 공통점은 합법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 전문만 읽어봐도 그들의 행위가 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저는 지금의 미국과 한국 정부가 하루아침에 헌법 정신에 따라 정치를 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이제 막 정년퇴직한 아들과 함께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면 상정리에서 여생을 보내시고 계시는 저희 할머니처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들도 그분들의 뜻대로 여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2006-03-15 오전 9:24:31   © CoreaF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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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3-16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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