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님의 "한겨레 기획연재-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늘 제 글에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뜻깊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답글을 거의 달지 않아도 달아주신 댓글은 매번 읽고 있습니다.^^ 

사실 댓글이 조금 더 제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었다면

제가 더 열심히 답글을 달았을 텐데, 별로 그렇지 못한 점은 좀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ㅎㅎ 

알라딘 블로그를 10년 넘게 하는 동안,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비평에 대해 일일이 반응해야 하는 것도 적지 않게 피곤한 일이더군요.

앞으로 좀 더 날카로운 비평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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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마 스님 2016-02-1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마 스님 미모 찬양합니다...

너희가 살고 싶은 나라 2016-03-0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유럽을 지방화하기>가 굳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참고나 자극이 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다르게 생각하기>라고 할 수 있다.

1) 몸뚱이는 非유럽인이지만 사회를 바로보는 역사를 상상하는 <그 눈>은 <유럽중심주의의 시선>이라는 것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조차도 따지고 보면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이라는 것,

(실재는 언어에 의해 구성된다.)

<복수의 시간성>을 상상하자는 것,

(운전 면허도 없고 컴퓨터도 사용 못하는 사람은 <전근대적>인 것이 아니며 <열등한 시간>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는 근대라는 유럽중심주의의 주장과 다르게 하나가 아닌 다른 <시간들>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2) ˝近代˝를 이행의 서사가 아닌 <충돌>의 과정으로 보는 것,

숭례문 복원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는 것,
(과거의 강조를 통해 근대를 정당화하는)

˝근대˝에 대한 상상 그 자체가 이미 식민성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
(가령 근대 국민-국가나 시민 사회에 대한 상상이나 담론 자체가 이미 식민성을 내재한 것)

노동자가 퇴근 후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는 것,

근대란 결국 유럽의 근대이며 그 근대는 타자를 주변화하고 배제하는

물리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폭력(가공할만한)의 과정이라는 것,

근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곧 식민성을 극복하는 것,



3) 이른바 민중을 대변한다는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인식론적으로

철저한 근대주의자들이며 그것은 그들이 식민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등등***



너희 나라 2016-03-07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흥미로운 것은 발마스 님이 평소에 근대 국가를 담론화하고 논의하고 상상하는 행위가 이 책에 의하면

<식민적>이라는 것인데


2) 발마스 님은 차크라바티를 이론적으로 <단순>하다고 말하지도 않고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동조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3) 그런데 그 동조는 근대성과 식민성의 불가분의 관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보편>이나 <비교>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지나가다가) 한마디 툭 던지는 형태다.


4) 발마스 님은 이 책으로 강의를 한 적도 있으니 아마도 (이론적인 사유를 할 줄 하는,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사고가

가능한) 학생들 앞에서 이 책을 비판했을 거라고 <믿는다.>


5) 그렇다고 해도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그 정도 주장이라면 굳이 이 책을 근거로 들지 않고 그냥 발마스 님 본인이 그렇게 주장해도 상관 없지 않나?

6) 물론 나는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