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금요일부터 시작될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라는 제목의 한겨레 기획연재 서문입니다. 


이번 기획연재는 제가 근무하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고세훈, 장하성, 손호철, 정일준, 서동진, 김동춘, 조성택 교수 등과 같은 한국 사회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격주로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심각한 위기를 진단하고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기획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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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질서 없는 이 시대, 길을 찾아서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재의 세계를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로 규정한 바 있다. 로마법에서 이 용어는 원래 지금까지 통치하던 왕이 사망했는데 아직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이전의 기간을 의미했다. 일종의 정권 이행기라는 뜻이다. 이 용어에 단순한 정권 이행기라는 뜻을 넘어 포괄적인 사회정치적 격변기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였다.


  바우만 자신은 세계화 시대를 인터레그넘의 시대로 규정한다. 세계화는 영토·국민(또는 인구)·주권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중심의 질서를 해체했는데, 우리는 아직 그 대안적 질서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시장과 자본의 권력이 오늘날 사회적·개인적인 삶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 및 그것이 대표하는 국민의 주권적 힘은 이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우만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한국인들 역시 인터레그넘의 시기, 곧 역사의 거대한 분수령을 맞고 있다. 1945년 해방될 무렵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고, 전쟁의 폐허와 빈곤의 공포에 시달리던 나라가 지난 70여 년 동안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니, 지난 한국 현대사는 참으로 기적과 같은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에서 크게 보도된 바 있듯이, 이러한 현대사의 성취가 무색하게도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헬조선, 망한민국, 금수저, 흙수저 같은 혐오담론이 유행하고 있다. 이것은 집권당 대표가 일축하듯이, 일부 철없는 젊은이들이 그릇된 역사관으로 인해 갖게 된 잘못된 생각에 불과한 것인가?


 사실 이러한 혐오담론은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절망의 표현이다. 다음과 같은 지표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1년 연속 자살율 1위, 노인빈곤율 1위, 의료비 증가율 1위, 저임금 근로자 비율 2위, 임금 불평등 비율 3위, 삶의 만족도 36개국 중 29위, 국민총생산(GDP) 대비 복지비율 최하위, 출산율 최하위…. 이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 국민행복정부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박근혜 정부 하의 대한민국의 이야기다. 이러한 지표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역사가 이제는 모두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처해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감을 자아낸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이는 바로 지난 70년 역사의 이면이 아닌가? 곧 잘 먹고 잘 사는 것 하나만을 유일한 가치로 숭앙해온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필연적 결과가 아닌가? 실로 정치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에는 먹고 사는 것 하나 말고는 공동의 가치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다. 오직 나 하나, 우리 가족, 우리 집단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섬겨 왔을 뿐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러한 각자도생의 논리를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고 있다.


 더욱이 점차 증대하는 빈부격차, 인권과 시민권의 축소, 남북 관계의 악화에 더하여 점점 노골화되는 공안통치로 인해 우리는 이제 유신 시대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와 평등, 평화와 생명의 가치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적 공동체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 직면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원장 조성택)은 지난해부터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라는 주제 아래 기획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화두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의 가치는 어떤 것이며, 이러한 가치에 기반을 둔 공공의 것(res publica)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이다. 우리 사회의 다른 시민들과 더불어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탐색하기 위해 민족문화연구원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포럼’이라는 일련의 학술 강연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워크숍, 학술대회, 시민 강좌 등을 통해 이 기획을 계속 진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 행사에서 이뤄진 논의를 바탕으로 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 지면 연재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정치, 경제, 복지, 사회, 한미 관계, 교육, 사법, 인권 같은 분야에서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심각한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첫 번째 필자인 고세훈 고려대 교수의 설명을 보면, 복지의 확충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는 우파 세력의 주장과 달리 한국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되어가지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의 재정지출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전체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제의 올바른 성장을 이끌기 위해서도 복지를 확대하고 민주주의적 대표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5포세대’, ‘금수저, 흙수저’ 같은 담론이 잘 대변해준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소득 불평등 문제야말로 오늘날 한국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장 교수는 풍부한 자료와 이론적 논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면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줄 것이다.


 정치 분야는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맡았다. 손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계급적 균열 이외에 지역 균열과 세대 간 균열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노동자·농민·빈민 같은 민중 계급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함으로써 계급적 균열이 적절히 표현되지 못한 채 지역 균열과 세대 간 균열이 확장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손 교수는 제도와 운동의 차원에서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해줄 것이다.


 한국 현대사는 한미 관계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사회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은 강력하다. 하지만 한미 관계의 구조적인 불평등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한미 관계를 연구해온 정일준 고려대 교수는 거시적 시각과 미시적 시각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좀 더 자주적이고 평등한 한미 관계의 가능성을 진단할 것이다.


 과연 사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마거릿 대처 전(前) 영국총리는 사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갈하면서 신자유주의의 포문을 열었다.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에 의하면 문제는 사회적인 것의 차원을 복원하는 것이다. 대문자 사회의 시대, 사회과학의 시대, 사회주의의 시대는 물론 사라졌다. 하지만 계급적인 적대와 갈등이 편재하는 사회에서 이를 조정하거나 억압하려는 시도는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계급적인 적대에 기반을 둔 정치의 전망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서 교수는 냉철하면서 명쾌한 분석을 제안해줄 예정이다.


 이러한 문제 이외에도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쟁점이 존재한다. 다시 한 번 거대한 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현실에서 남북 간의 긴장과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 공존과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 수많은 갑들의 횡포 속에 짓밟히고 외면당하는 소수자들의 인권과 시민권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길은 어떤 것인가? 또한 생태계 파괴와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 이상 기후 현실에 처하여 우리는 어떤 가치와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가?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젠더 불평등과 학벌 중심의 교육 현실을 개혁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다. 이에 대해서도 10여 명의 필자들이 분석과 답변을 제시할 것이다. 


 이제 다시 한 번 총선과 대선을 눈앞에 둔 정치의 격동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 시기는 단순한 정권 교체의 시기가 아니라, 유신 시대로의 회귀냐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의 건설이냐의 양자택일 속에 70년 한국 현대사의 무게가 실린 인터레그넘의 시기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시민 주체들 스스로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가 어떤 것인지 질문하고 그 실현 방안을 사고하고 요구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장래는 가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느 길로 가야 하며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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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和 2016-02-12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두환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시공사가 전 전 대통령 일가의 미납 추징금을 대신 내라는 법원 결정이 나왔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정은영 부장판사)는 검찰이 시공사를 상대로 낸 미납 추징금 환수 소송에

서 “시공사가 6년간 56억9천300여만원을 국가에 지급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한겨레> 기사에서 발췌(나는 순한글 정책에 반대한다.)


不和 2016-02-1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마스 님을 비롯한 지식생산자들이 시공사 책을 추천하는 것은 추징금에 보태라는 속뜻이 있다.

不和 2016-02-12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식생산자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성찰하고 비판하고 진단하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통찰력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지식생산자는 혁명가도 아니고 행정 관료도 아니다.

성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무슨 대안인가?

不和 2016-02-12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살고 싶은 국가가 없다.

살고 싶은 나라도 없다.

나는 오히려 이른바 ˝국민˝이라는 소위 ˝정치공동체˝에서 탈퇴하고 싶다.

발마스 님이 말하는 인권과 시민사회의 나라 또는 국가 프랑스에서는 국적박탈법을 만든다는데

한국에서 도입했으면 좋겠다.

(나는 국가를 이른바 ˝공동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다양한 사회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시민사회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본다.

시민사회를 강화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강화하고 국민국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국가를 강조하는 것은 수많은 인간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는다.)

불화 2016-02-12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럽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글로 쓰여진 모든 역사 서술은 유럽의 역사적 경험과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라틴아메리카를 서술하든 아프리카를 서술하든 이미 그 서술은 유럽을 중심으로 비교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교사는 허깨비인 것이다.

역사 서술을 구성하는 역사의 개념, 그 자체를 어떻게 사유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그 개념들을 물고 늘어져야 하는데

비교를 한다고 뭐가 해결되는가?

비교하기 전에 이미 비교되어 있다.


불和 2016-02-12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그문트 바우만?

내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인다.

그리고 더 큰 과오를 범한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와 다르게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에 항복한 사람이 김대중 아닌가?

삼성경제연구소의 말에 따라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누구인가?

제주 강정 마을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폭력을 행사한 것이 누구인가? 노무현이다.

보시라! 성찰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바람직한 시선으로 보는 것은

그 성장이 이른바 ˝제3세계˝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역사적 과정 또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지배효과˝

또는 자본의 논리 아닌가?

자본주의는 체제에 적합한 인간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기계나 다를 바 없다.

성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balmas 2016-02-1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늘 제 글에 열심히 댓글을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뜻깊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답글을 거의 달지 않아도 달아주신 댓글은 매번 읽고 있습니다.^^

사실 댓글이 조금 더 제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었다면

제가 더 열심히 답글을 달았을 텐데, 별로 그렇지 못한 점은 좀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ㅎㅎ

알라딘 블로그를 10년 넘게 하는 동안,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비평에 대해 일일이 반응해야 하는 것도 적지 않게 피곤한 일이더군요.

앞으로 좀 더 날카로운 비평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