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용어사전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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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서양사학회에서 내는 학술지 [서양사론]에 실릴 {역사용어사전}에 대한 서평입니다.


아직 교열이 다 끝나지 않은 글인 만큼, 이 글에 대해 토론하거나 이 글을 인용하실 분들은 


[서양사론]에 실린 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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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과 탈근대성의 교차로에서-{역사용어사전}에 관하여




I. 머리말


  역사학 전공자도 아닌 일개 철학도가 한국 역사학계의 일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용어사전󰡕의 서평을 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처음 서평을 부탁받은 이후 내내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난 몇 년 간 󰡔역사비평󰡕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역사학계의 동향을 어깨 너머로 관찰한 것 말고는 역사학에 관해 이렇다 할 식견이 없고 사전 제작에 직접 참가한 경험도 없으니, 이중의 의미에서 문외한이라고 할 만한 필자가 이 대작에 대해 평가를 한다는 게 여러 모로 걸맞지 않은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글을 써나가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역사학계에서 필자 같은 철학도에게 이런 서평의 기회를 준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수백 명의 역사학 전공자들의 힘을 모아 일궈낸 이 성과에 대하여 자기만족이나 자화자찬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엄정한 자기 평가를 통해 앞으로 더욱 좋은 사전들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다른 전공 분야 연구자(필자가 적임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의 비평적 시각을 통해 더 객관적인(또는 적어도 더 다양한) 시각을 확보하려는 생각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역사학계에서 더욱 값진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는 것이 동료 인문학자로서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또한 철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언젠가는 한국 철학계도 이런 작업에 버금가는 철학 사전을 만드는 일을 시도해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다짐도 이 서평을 쓰게 된 또 하나의 동기였다. 철학이 역사학만큼 국민국가의 문화적 기획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은 아니고 따라서 근대 이후 여러 나라의 역사학이 배출해온 만큼의 풍부한 사전들을 만들어오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철학이 개념들을 토대로 삼는 만큼 여러 종류의 사전은 철학 연구의 중요한 자원이자 조건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한국 철학계는 오늘 역사학계가 먼저 성취한 이 역저에서 배울 만한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이 서평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 있다. 그것은 탈근대적인 사전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또는 사전에서 탈근대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주지하다시피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과 같이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붙은 일련의 담론들은 지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이해 국내 학계에 급속하게 수용되어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담론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상당히 세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주제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필자는 탈근대성이 비가역적인 지적ㆍ문화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 주제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포스트’ 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 󰡔민족문화연구󰡕 57호, 2012 및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황해문화󰡕 2014년 봄호,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란 무엇인가?」, 󰡔황해문화󰡕 2014년 겨울호를 각각 참조하라.] 이 책의 「간행사」에서 잘 밝히고 있듯이 근대 이전에도 이미 여러 종류의 사전이 존재해왔으나, 오늘날과 같은 사전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국민국가 체계가 성립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범박하게 말해서 국민국가 체계가 이제 역사적으로 쇠퇴 과정에 접어들었다면, 더욱이 국민국가체계와 연동되어 있는 문화적 근대성(역사학, 철학, 문학 같은 인문학들을 포함하는)의 헤게모니가 와해되어 가고 있다면, 그것을 대체하게 될 새로운 문화적 양식에 대한 모색이 당연히 요구될 것이다. 이것을 역시 범박하게 문화적 탈근대성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사전이라는 것이 근대 국민국가의 문화적 기획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왔다면, 탈근대적 성격의 사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는 근대성과 탈근대성이 교차하는 역사적 시기에 사전을 만들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문제에 관한 주목할 만한 토론은 Theory, Culture & Society, vol. 23, nos. 2~3, 2006을 참조. 이 학술지는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와 관련된 특집호 및 논문들을 싣고 있다. 가령 초학제성(transdisciplinarity)의 방법론을 특집으로 다루는 2015년 vol. 32, nos. 5~6호 참조.

  

그리고 오늘 필자가 서평을 해보려는 이 책 역시 그러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사전의 위상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관해 여러 차례 숙고하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 사전은 근대와 탈근대의 교차로에 놓인 사전이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지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II. 역사 용어 개념의 독창성


  우선 이 사전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를 이루는 역사 용어라는 개념에 대해 몇 마디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처음 이 사전을 접할 때부터 사전의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왜 ‘역사학 사전’이 아니라 ‘역사용어사전’일까? 또는 역사학에서 쓰이는 주요 용어들에 대한 사전이 목적이라면, ‘역사 개념 사전’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굳이 ‘역사용어사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의 실마리는 사전 편찬자들을 대표하여 최갑수 교수가 간략하게 제시한 「간행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해명만으로는 이 사전의 구상 및 편제의 토대 구실을 하는 ‘용어’ 개념과 그에 입각한 편제의 원칙, 특히 대표제어, 중표제어, 소표제어의 분류 원칙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사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역사용어사전’(영어로 하면 Dictionary of the Historical Terms)은 역사학 분야에서 쓰이는 여러 용어들의 간략한 낱말 뜻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가령 日本史用語辭典編集委員會 編, {日本史用語辭典}, 東京: 柏書店, 1979 또는 Chris Cook, Dictionary of Historical Terms, Macmillan Press, 1983이나 J. P. Michaux, Elsevier's Dictionary of Art History Terms/ Elsevier's Dictionnaire des Termes d'Histoire de L'Art: French/English-English/French, Elsevier Science Ltd, 2002 등에 그에 해당하며, 인터넷 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개 언어의 역사용어사전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사전의 경우 내용을 보면 낱말의 뜻풀이를 제시하는 사전(辭典)의 성격도 지니고 있으나, 특히 중표제어나 대표제어의 경우는 어떤 사실이나 주제에 대한 포괄적 설명을 제시하는 사전(事典)의 성격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 사전의 기획 및 편집 주체들이 ‘용어’라는 개념에 대하여 상당히 세심하면서 특수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다행히 이 사전의 편찬 주체들이 이 사전에서 설정한 ‘용어’ 개념과 편찬 방법을 상세하게 해명하는 논문을 통해 필자는 이 의문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다.[최갑수 외, 「역사용어의 범주와 {역사용어사전}의 편찬방법」, {한국사전학} 제26호, 2015. 출판되기 이전에 이 논문을 제공해준 이동기 교수와 양희영 교수께 감사드린다.] 논문에 따르면 이 사전에서 역사용어 개념은 “역사서술에 자주 등장하는 어휘”라는 일반적인 뜻을 지니되, 문장구조에 입각하여 세 가지 부류로 세분되고 있다. 역사적 설명의 두 가지 부분을 구성하는 주어부와 술어부 가운데 주어부에서는 “인명, 지명, 국명, 민족명, 사료나 저술의 이름, 조약명, 연호, 도량형의 명칭, 특정 제도의 이름, 사건, 풍속, 사상, 집단심성, 특정의 용어”[같은 글, 71쪽] 중, “제도명의 일부 ... 일부 특출한 사건(예컨대 동학농민전쟁이나 프랑스혁명 등)과 특정의 학설(독일의 특수한 길, 동양적 전제주의, 아날학파, 아세아적 생산양식, 가산제국가론 등)”[같은 글, 72쪽]이 표제어로 선정되었다. 술어부 중에서는 “시민혁명, 부르주아지, 근대국가, 절대주의, 봉건제, 시대구분, 노예제, 자본주의, 민족주의, 유럽중심주의, 파시즘 등 보다 특정한 형태의 개념들”이 포함되며, 여기에 더하여 “국민, 문명, 혁명, 국가, 자유, 평등, 법, 계급, 평화, 인권, 화폐, 도시 등 사회과학이나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개념들 ... 에 속하나 과거의 사상(事象)의 이해에 긴요하다고 판단되는 용어들, 예컨대 혁명, 토지제도, 화폐, 도량형, 인구, 계급, 귀족, 도시, 문명, 문화 등”[같은 곳]도 표제어로 포함되었다.

  

논문은 또한 유형에 따라 용어 개념을 분류하고 있는데, 이 경우 역사용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유형으로 구별된다. 첫째, 과거의 사료에 등장하는 사료용어가 있으며, 둘째, 역사가들이 과거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연구용어가 있고, 셋째, 근현대사 영역에서 주로 서구 용어를 번역한 번역용어들이 있고, 마지막으로 인접학문의 용어들과 접해 있는 인접 학문용어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

  

표제어 선정의 경우 이 사전에서는 주어부에 속한 제도명은 소표제어에 위치시키고, 술어부에 속하는 용어들은 중표제어와 대표제어에 위치시켰다. 이 중에서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에 모두 해당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대표제어에 편성되었고, 그렇지 못한 것은 중표제어나 소표제어에 편성하되, 그 용어가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 중 어디에 속하는지 역시 고려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 표제어의 후보가 되는 ‘근대국가, 근대화, 문명, 민주주의, 민족주의, 봉건제, 사회주의, 신분제, 자본주의, 제국주의, 파시즘’ 등은 거의 근대 이후의 역사에 해당하며 사실상 유럽의 역사적 경험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자칫 “유럽중심주의를 여과없이 재생산하거나 후대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시대착오를 범하는 것”[같은 글, 80쪽]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 논문을 통해 이 사전의 편찬 주체들이 역사용어라는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아울러 이 개념에 입각하여 표제어를 선정하고 적절한 집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무척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거니와 ‘역사 용어’라는 개념을 이처럼 세심하게 범주화하고 그에 입각하여 이 정도 규모의 사전을 제작한 것은 여러 모로 볼 때 매우 독창적인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역사 용어는 간단한 뜻풀이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으나, 이 사전에서는 역사적 설명의 구조에서 그 논리적 근거를 찾고 있을 뿐더러 분야별ㆍ시대별 구별에 입각해 표제어로서의 경중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 역사학에서 사용되는 주요 용어들이 어떤 것인지 총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용어들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의 이해 방식과 수준이 어떠한지 역시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전은, 편찬자와 평자가 언급하듯이 해방 이후 60여 년 간 축적된 한국 역사학계의 지적 노력과 성과의 응축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면, 이 사전이 지니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과 한계 역시 용어들의 차원에서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점은 이 사전의 근대성과 탈근대성에 대해 논의하면서 함께 이야기해보겠다.


III. {역사용어사전}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필자가 보기에 이 사전은 기본적으로 근대성을 지향하는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사전이 국민국가 체계를 현재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근대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질서(또는 문명의 단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로 이해하고 있으며, 사전의 궁극적인 의의를 근대적인 국민국가의 문화적 주체성의 표현에서 찾는다는 사실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 편, {역사용어사전},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5 중 「간행사」 참조. 이하 논의의 편의를 위해 이 사전의 쪽수는 본문 중에 숫자로 표시하겠다.] 곧 사전은 단순히 자모의 체계에 따라 구성된 지식의 집적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자격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격상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근대 지향적 성격이 다소 과도하게 표현되는 대목도 있으나, 이 사전에 300여명에 이르는 국내 학계의 주요 역사 연구자들이 참여한 점을 미뤄볼 때, 사전다운 사전을 만드는 것을 한국 역사학계의 중요한 과제이자 소임으로 받아들이고, 한국 역사학의 자립성과 성숙성을 측정하는 근본적인 척도로 이해하는 것에 많은 한국 역사학자들이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이 사전의 편찬 주체들은 물론이거니와 한 서평자 역시 이 사전 자체를 궁극적인 목표로 간주하지 않고 ‘역사학 대사전’이라는 더 커다란 근대적 프로젝트를 달성하기 위한 한 단계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사전의 근본적인 지향이 근대적이라는 점이 명시적으로 나타난다.[이성규, 「소개와 간평: {역사용어사전}」, {역사학보} 제 226호, 2015 참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 사전의 근대성 지향은 다음과 같은 특색을 지니고 있다.     


(1) 이 사전 기획의 출발점에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로 분리되어 있는 한국 사학계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왜 이러한 분리가 문제가 될까? 그것은 우선 용어상의 통일성의 부재 및 외국 학계(특히 일본)의 특수한 용어들의 범람, 부적절한 용어 번역 때문이다. 동일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연구자나 분야별 전공에 따라 상이하게 표현하는 데서 생기는 불편함은 연구의 차원만이 아니라 교육 및 대중적 소통의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고 한국 역사학의 주요 용어들에 대한 통일적인 개념화 및 표준화를 시도하려는 것이 이 사전의 목표 중 하나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단지 용어상의 혼동 및 거기에서 생겨나는 불편함에 있다면 그것은 그리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더 심층적인 이유는 용어상의 통일성의 부재가 사실은 역사에 대한 인식,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적 시각의 이질성,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파편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사전 편찬자들이나 앞서 언급한 서평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러한 이질성 내지 파편성이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및 역사교육)로 분리된 한국 역사학계의 제도적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제도적 분화를 통해 각 분야별로 더 전문적이고 밀도 있는 연구를 이룩하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분과 체제에서는 상호 연계와 융합을 통한 역사학이 점차 해체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성규, 같은 글, 512쪽] 또는 “분과학문체계로 나뉘어져 발전해온 현재 역사학이 각 분과의 전문성 확보로 말미암아 역사학의 정체성 자체가 상실된 데 대한 반성”[최갑수 외, 앞의 글, 78쪽]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 사전의 편찬자들을 비롯한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이 이러한 제도적 분과 체제 및 거기에서 비롯된 파편적인 역사 이해를 극복하는 것을 한국 역사학의 기본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이 사전이 한국 역사학의 자립성과 통일성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자 그것을 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상되고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1)의 특성은 사실 탈식민성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사ㆍ동양사ㆍ서양사의 구별 자체가 일본 사학계의 관행에서 유래한 것이고, 한국 역사학계에서 사용하는 많은 용어들 역시 일본 학계에서 쓰는 용어들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능한 한 일본식 용어의 범람을 막아보고, 한국인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역사용어를 한국사 안에서 발굴”하려고 노력했다는 편찬자들의 견해를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노력은 좀 더 자연스러운 한국어 역사 용어의 확립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대안적 역사상을 모색”[최갑수 외, 같은 글, 같은 곳]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3) 가장 중요한 점이겠지만, {역사용어사전}의 편찬 방식 및 체제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이래 근대적인 사전들은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여기에서 사전은 주로 사전(事典), 또는 움베르토 에코의 구별법을 원용한다면, 자모사전dictionary이 아니라 백과사전encyclopedia을 가리킨다. Umberto Eco, Kant and the Platypus, Secker and Warburg, 1999; 움베르토 에코, {칸트와 오리너구리}, 박여성 옮김, 열린책들, 2009 참조.] 첫째, 관련 학계의 대표적인 권위자 중 한 사람이 전체적인 책임을 맡아 사전 편찬 작업을 지휘한다. 이 책임자는 또한 분야별로 적절한 전문가를 선택하여 그에게 부분적인 감수의 책임을 부여한다. 그리고 사전의 각 표제어의 집필자는 그 표제어와 관련된 학계의 권위자 또는 적어도 전공자가 맡는다. 아울러 사전의 권위와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검증과 교열의 과정을 거친다. 둘째, 근대적인 사전은 기본적으로 일국적인(또는 한 언어 내적인) 기획으로 고안되고 진행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거니와 그 이후 제작된 각 국의 여러 사전들, 예컨대 프랑스, 독일 등과 같은 서유럽 나라들의 여러 사전들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 성립 이후 제작된 소비에트 백과사전, 중화인민공화국 백과사전, 탈식민지 이후 인도에서 제작된 110권짜리 백과사전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이점에 관해서는 Mike Featherstone and Couze Venn, “Problematizing Global Knowledge and the New Encyclopaedia Project: An Introduction”, Theory, Culture & Society, Vol. 23, nos. 2~3, p. 7 이하 참조.] 따라서 사전 집필은 해당 국가 출신의 전문가들이 해당 국의 언어로 작성함으로써 이루어지며, 분야가 어떻든 그 사전은 해당 국가의 학문적 자립성 및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지표 구실을 한다. 셋째, 따라서 근대적인 사전은 정의상 각각의 네이션을 독립적인 문화적 단위로 설정한다. 경험상으로는 다른 나라 및 문화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지만, 원칙적으로 각각의 네이션은 다른 네이션과 구별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문화적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며, 백과사전을 비롯한 각각의 사전(事典)은 이러한 문화적 통일성을 각 분야의 수준에서 표현하는 것을 과제로 삼는다. 따라서 다른 네이션 및 문화와의 교류 및 상호 영향은 이러한 선행하는 통일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간주된다. {역사용어사전}은 이러한 근대적인 사전 편찬의 원칙에 전형적으로 부합하는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처럼 원칙적으로 전형적인 근대적 사전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역사용어사전}은 탈근대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측면도 보여주고 있다. 또는 적어도 전형적인 근대적 측면을 넘어서거나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이 사전이 {민족대백과사전}이나 그 이전의 다른 한국사 사전과 달리 한국사의 차원을 넘어서는 역사학 전체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이 사전은 한국의 시각에서 동양사와 서양사를 포함한 역사 전체를 이해하려는 기본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좁은 의미의 한국사의 시각 또는 민족주의 사관의 시각과 구별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전의 민족주의 사관이 (식민사관에 맞서) 한국사의 차원에서 독자적인 역사적 발전의 경로와 법칙을 밝히려는 데 주력한 것이었다면, 이 사전은 한편으로 역사의 외연을 한국사 내지 민족사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세계사의 범위로 확장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내포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인의 시각에서 역사 전체를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는 전망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학적 근대성의 핵심을 민족 사관 내지 내재적 발전론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이 사전은 이미 그러한 근대성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이 사전이 비교사적 시각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 사전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동일한 표제어에 대하여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시각에서 각각 설명하는 내용을 나란히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무정부주의에 관하여 동양사의 시각에서 설명한 “무정부주의”와 각각 서양사와 한국사의 시각에서 설명한 “아나키즘”(서) 및 “아나키즘”(한)을 제시한 것이나,[그런데 “무정부주의”와 “아나키즘”(한), “아나키즘”(서)의 경우 anarchism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한 설명에 차이가 있고, 상충하는 대목도 존재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나키즘”(서)의 설명이 제일 정확하다.] “과거제”에 대한 설명에서 한국, 동양, 베트남의 경우를 비교한 것, “상속제”나 “역법”에 대한 설명에서 서양과 동양, 한국의 역사를 비교사적으로 배열한 것 등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다. “농민봉기”나 “혁명”의 경우에는 동양사와 서양사에서의 논의를 독립적인 표제어로 제시하고 있고, “근대화”, “농업혁명”, “사회진화론” 등에서는 한국사와 서양사의 경우를 비교하고 있다. 또한 이렇게 독립적인 표제어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특히 대표제어에 대한 설명에서는 서양사나 동양사 또는 한국사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세 개의 역사적 시각을 함께 포함하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가령 대표제어인 “개화”에서는 중국, 일본, 조선의 상황을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고, “관료제”나 “시대구분” 등도 서양과 동양, 조선(한국)의 경우를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다. 


  필자가 이를 탈근대적 측면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이러한 시도가 역사를 이해하는 근대의 지배적인 관점, 곧 유럽중심적 역사학에 대한 탈구축의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식민주의 역사가들이 잘 보여준 바와 같이 근대 역사학은 서양, 특히 유럽을 중심에 두고 구성된 유럽중심적인 역사학이었다.[이점에 관해 필자는 다음 책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유럽을 지방화하기}, 김택현ㆍ안준범 옮김, 그린비, 2014. 이 책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토론은 역사학도만이 아니라 철학도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에서 유럽중심주의는 첫째,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이분법, 둘째, 단일한 보편사로서의 세계사, 셋째, “먼저 유럽에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시각에 입각하면 근대는 단순히 여러 시대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전근대(경제적 전근대이든 아니면 정치적 또는 문화적 전근대이든 간에)가 넘어서야 할 규범적인 문턱으로 나타난다. 근대의 문턱을 넘어서야 보편사(또는 보편적 문명사)로서의 세계사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세계사의 과정을 먼저 개시한 유럽의 모델을 따라 각자 경쟁적으로 근대화의 역사를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중심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역사는 유럽이 보편적인 틀과 규범을 제시한 단일한 역사적 과정으로 제시된다. 반면 이 사전에서 채택하고 있는 비교사적인 전망은 이러한 유럽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역사를 복수적인 과정들이 상호 연계를 맺고 갈등하며 분화하는 복잡성과 다양성의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탈유럽중심주의적인 역사학을 위한 흥미로운 실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두에서 필자가 이 사전이 근대성과 탈근대성의 교차로에 놓여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점은 이 사전의 편찬자들 역시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최갑수 등이 발표한 논문에서 필자들은 “현재의 우리들 또한 역사적 변화의 끝자락에 있기에”[]라는 시대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역사적 변화의 끝자락’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 편찬자들과 다른 역사학자들, 그리고 필자 사이에 당연히 이런저런 의견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필자는 이것을 탈근대성이라는 개념에 입각하여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처럼 실증성을 중시하는 학문에서는 탈근대성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들도 있을 테고, 특히 탈근대적 사전이라는 표현 자체를 어불성설이나 용어모순처럼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사전과 관련하여 탈근대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려는 것은, 개방성상호 연계성, 다수성이라는 개념이다. 필자가 볼 때 이 세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탈근대성은 이미 {역사용어사전}에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사전이 한국 역사학의 범위를 좁은 의미의 한국사에서 동양사, 서양사를 아우르는 더 커다란 역사학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또한 인접 학문들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종합 학문으로서 역사학의 성격을 잘 드러낸 점도 평가할 수 있다. 같은 표제어의 경우에도 한국사와 동양사, 서양사 각각의 시각에 따라 집필하거나 동일한 표제어 내에서도 서양과 동양, 한국의 역사적 사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려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상호 연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다수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사전에는 아쉬운 점이 있는데, 이점에 관해서는 5절에서 후술하겠다. 따라서 필자가 말하는 탈근대적 사전 또는 사전의 탈근대성이라는 것은 기존의 다른 사전들이나 {역사용어사전}과 전혀 무관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사전에서도 어느 정도 구현되고 있는 특색을 조금 더 진취적으로 살려보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IV. 몇몇 표제어에 대한 비평


  표제어의 내용과 관련하여 필자가 가장 놀랍게 생각한 것은 마르크스주의라는 표제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전에서는 마르크스주의 대신 원고지 3매 분량의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제시되어 있고, 대표제어 중 하나인 “사회주의” 내에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1830년대 이래 등장한 사회주의 사상 중의 하나였고, 20세기 실현된 사회주의 정치 체제는 사실은 “국가사회주의 체제”(885쪽)였으며, “1989년 동유럽 체제의 몰락으로 역사에서 그 힘을 잃었다”(884쪽)는 평가에 따른 편성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정치 체제로서 국가사회주의 체제는 몰락했지만, 이념 또는 사상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여전히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 “사회주의” 집필자의 의도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사전에는 마르크스주의라는 독립적인 표제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부재하는 표제어에 준거한다고 할 수 있는 다수의 표제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산주의”(한), “공산주의”(동), “마르크스-레닌주의”, “소비에트”, “에르푸르트 강령”, “역사적 유물론”, “유럽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전시공산주의”, “코민테른”, “페레스트로이카”,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이 그것들이다. 이 중에서 “공산주의”, “소비에트”, “페레스트로이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중표제어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마르크스주의라는 부재하는 중심 없이 이 표제어들 간의 역사적 연관성이 이해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사회주의”라는 표제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연관성일 것이고 아마도 “국가사회주의”나 “현실사회주의”로도 포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역사용어사전󰡕은 편찬자나 “사회주의” 집필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의미에서 역사는 승리자들의 기록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듯 보인다.


  이 사전에는 메타역사적인 용어라고 할 만한 것이 두 개가 수록되어 있는데, “시대구분”과 “역사”라는 표제어가 그것이다. 이 두 표제어는 역사학 자체의 성격 및 그 존립 근거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로운 항목들이다. 이러한 표제어들을 역사용어의 범주 내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역사학이 상당히 성숙해 있다는 증거로 간주될 수 있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그 밖의 다른 표제어들도 좀 더 포함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가령 이 사전에는 “근대화”라는 표제어는 존재하지만 “근대성”이라는 표제어는 빠져 있다. 하지만 동일한 어근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양자 사이에는 내용상의 상당한 차이가 존재할뿐더러, 앞서 지적했다시피 근대라는 것은 단순히 여러 시대 중 하나를 가리키기보다는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단일한 보편사라는 관념의 개념적(ㆍ이데올로기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메타역사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유럽중심적인 메타역사 개념일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근대성이라는 대표제어를 설정하고 그것을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의 시각에서 비교사적으로 설명해본다면, 이 세 가지 역사적 시각 사이의 갈등과 차이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고, 한국 역사학 내에서 유럽중심주의 및 그 대안에 관한 쟁점이 훨씬 선명하게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면 근대를 단순히 여러 시대 중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유럽중심적 역사관을 정상적인 것으로 수용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다.


  또 하나 내용과 관련하여 지적하고 싶은 것은 표제어들의 내용 수준에 꽤 편차가 있다는 점이다. 특정 표제어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몇몇 표제어들의 내용은 과연 충분한 검토와 검증이 이루어졌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만큼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비문이나 오식이 눈에 띄는 곳도 더러 있었다. 반면 필자가 이해하는 한에서는 “근대국가”나 “대공황”, “대의제”, “봉건제”, “시대구분”, “제국주의”, “젠더”, “혁명”(서) 같은 표제어들은 내용도 풍부할뿐더러 집필 기준에 잘 부합하는 뛰어난 항목들이라고 보인다. 필자가 무지로 인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여러 표제어들, 특히 동양사와 관련한 표제어들 중에도 탁월한 성과들이 많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유토피아”라는 표제어의 경우에는 제목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본문에서 설명하듯이 ‘유토피아’라는 용어 자체가 16세기에 토머스 모어가 처음 만들어낸 말인데, 이것을 기준으로 서양의 각종 이상사회론은 물론이거니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이상사회론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는가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상사회” 같은 용어가 오히려 조금 더 중립적이고 포괄적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이나 “문화” 같은 항목의 경우도 유럽중심주의 비판이나 포스트식민주의적인 성찰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V. 몇 가지 제언


  끝으로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이면서 글을 맺기로 하겠다. 


  이 사전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 중 하나는 종이사전의 한계 내에서 하이퍼텍스트성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선 이 사전에 전체 표제어들의 목차를 실었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나다 순으로 배열하고 책 옆구리에 ‘ㄱ’에서 ‘ㅎ’까지 구별을 해놓았지만, 책 앞부분에 전체 목차를 제시했다면, 독자들이 이 사전에 어떤 표제어들이 수록되었는지 일람하기에 훨씬 편리했을 것이다. 아울러 각 표제어 마지막에 관련 표제어들을 함께 표시해놓았다면, 표제어들 간의 상호연관성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을 것이다. 가령 이 사전에서 “여성사”와 “젠더”, “페미니즘”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지금의 편제 방식처럼 각 표제어가 서로 독립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이 사전에 여성과 관련된 어떤 표제어들이 존재하고 그것들 사이에 어떤 내용상의 연관성과 상위성(相違性)이 존재하는지 독자들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위에서 지적한 바 있는 마르크스주의와 연관된 표제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것들 각각의 내용 마지막에 연관된 표제어들을 표시해놓았다면, 전체적인 연관 관계를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이처럼 표제어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좀 더 분명히 해놓는다면, 사전에 대한 훨씬 다양한 독서를 가능하게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사전의 장단점을 더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전에서는 앞서 지적했듯이 다수성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말하는 다수성이란 일차적으로 다수의 견해, 다수의 필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대표제어는 원고지 100매 이상이 되는 방대한 분량의 항목이며, 그것이 다루는 범위도 매우 포괄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포괄적인 외연을 가진 주제인 만큼 당연히 그 세부적인 논의를 둘러싼 여러 논쟁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사전의 경우 어떤 특정한 입장을 택하기보다 가급적 중도적인 관점에서 주제와 관련된 주요 논쟁들을 소개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전의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데 중도적인 관점을 취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중립적인 입장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가령 앞에서 지적했듯이 마르크스주의를 “사회주의”라는 대표제어 내의 하위 항목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적절한지, 또는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을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 일인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이런 경우 한 사람의 필자에게 대표제어 전체의 집필을 맡기는 것보다 상이한 관점을 가진 두 명의 필자에게 집필을 맡기는 것은 어떨까? 또는 그것이 사전으로서는 너무 논쟁적인 해법이라면, 한 명의 필자가 대표제어의 주요 내용을 집필하되, 그와 상이한 견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일종의 “보론”이나 “부록”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약 50여 년 전에 프랑스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1967)라는 저작에서 장-자크 루소의 저작에 대한 탈구축적인 독서를 바탕으로 ‘보충’(supplément)[사실 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대리보충”이나 “대체보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이라는 아주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 바 있는데, 데리다의 원래 논조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표제어에 보론이나 부록을 덧붙임으로써 단일 필자가 집필하는 경우에 얻을 수 없는 논의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획득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사례들이 존재하는데, 가령 2004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유럽철학어휘사전󰡕의 경우가 그렇다. 이 사전은 여러 모로 혁신적인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Barbara Cassin ed., Vocabulaire européen des philosophies, Seuil/Le Robert, 2004.] 우선 이 사전은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네이션이라는 문화적 단위에 기반을 둔 사전이 아니라, 포스트네이션(post-nation) 내지 트랜스네이션(trans-nation)으로서의 ‘유럽’이라는 단위에 기반을 둔 사전이다. 더욱이 이 사전은 “번역 불가능한 것들의 사전”(dictionnaire des intraduisibles)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대개의 사전들과 달리 “번역 불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사전이다. 여기서 번역 불가능성이라는 관념은 사실은 탁월한 역사적 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전에서 번역 불가능한 것들이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또는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의) 이행 과정에서 생겨나는 소통과 혼란, 단절과 전환, 쇄신과 발명의 측면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어 “Âme”라는 개념의 경우 보통의 철학사전은 이 개념에 관해, 그리스어의 “프쉬케psykhē”(또는 “누스nous”)에서 유래하고 라틴어의 “아니마anima”나 “멘스mens”를 거쳐 오늘날의 “암므âme”나 “가이스트Geist”, “마인드mind”에 이르게 된 경로를, 대표적인 철학자들(가령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로크, 흄, 칸트, 헤겔, 비트겐슈타인 등)의 몇몇 저작들의 발췌문들을 검토하면서 제시해준다. 그리고 우리말로는 간단하게 “정신”이나 “마음”으로 번역될 수 있다. 반면 이 사전은 고대 그리스에서 고전 로마 시대, 중세 스콜라 시대를 거쳐 근대 초기 유럽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이 여러 단어들이 모두 동일한 지시체를 가리킨다는 전제, 따라서 이 용어들이 모두 선행적인 개념적 통일성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포기하고, 그 대신 그리스어 프쉬케에서 라틴어 아니마와 멘스로 번역이 될 때, 그리고 라틴어가 근대 초기에 암므나 가이스트, 마인드로 번역이 될 때 어떻게 정신이나 마음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달라지는지, 따라서 각각의 시대마다 어떻게 각자의 고유한 마음과 정신을 발명해내는지 해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수많은 단어들 사이에는 연속성만이 아니라 불연속성, 번역 불가능성이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프랑스어 “âme”나 독일어 “Geist”, 영어의 “mind” 또는 우리말의 “정신”이나 “마음”이 지닌 역사성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필자가 보기에 이 사전의 또 다른 혁신적인 면모는 이러한 번역 불가능성, 개념의 다의성에 충실하기 위해 하나의 표제어를 설명하는 데 적어도 2~3명, 때로는 그 이상의 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주체”(sujet)라는 표제어의 경우 고대철학 전문가인 바르바라 카생(Barbara Cassin)과 중세철학의 대가인 알랭 드 리베라(Alain de Libera), 대표적인 현대 프랑스철학자 중 한 사람인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가 공동 집필을 하고, 여기에 더하여 또 다른 고대철학 전문가와 근대 초기 철학 전문가가 일종의 “보론”들을 덧붙이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보통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어 칸트와 헤겔 같은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완성되었다고 간주되어온 주체 개념이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며, 이는 서양 근대철학 전체를 새롭게 조명해주는 놀라운 탈구축 효과를 산출한다. 이런 혁신적인 면모 덕분에 이 사전은 철학사전으로서는 드물게도 영어와 아랍어로 번역이 됐다.[Barbara Cassin ed., Dictionary of Untranslatables: A Philosophical Lexicon, trans., Emily Apter et al.,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4 참조. 영역본에는 영어권 필자들이 추가한 항목들도 존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역사학과 철학이 다르고 프랑스와 한국의 지적 상황 역시 다르기 때문에 이 사전이 무조건적인 기준이나 모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사전에 대해 갖고 있는 근대적인 통념을 탈구축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주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흔히 탈근대적 사전의 대표적인 사례로 위키피디아를 꼽지만, 위키피디아는 여러 가지 혁신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사전의 분류 방식 및 체제에서는 전형적인 근대적 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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