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호 2006년 1월 20일(금)


참여와 타협의 주술에서 벗어나자!
-2006년 연대운동의 확장을 위한 민중운동의 과제


 

폭력의 확산과 저항의 확산

IMF 구제금융협약 이후 한국의 자유주의 정권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금융화된 초민족적 자본의 이해에 완전히 종속된 새로운 축적 체계(이는 동시에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관리체계이기도 하다)는 경기 안정과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동시에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집행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 DJ의 정권교체와 노무현 정권의 출범은 이런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IMF와 세계은행, WTO 각료회의 같은 무역·금융투자기구의 위상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또 국가들 사이의 체계를 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 지배세력들은 WEF, APEC 같은 회의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공공연히 드러내며 조율했고, 이런 것들을 축제화하면서 대중들을 선동해나갔다.

노무현 정권은 번영과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약속했다. 금융화된 초민족적 자본의 투자처를 확대하는 것만이 평화번영의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이것이 거짓말임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도 안 걸렸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따른 경제적 궁핍과 가족을 유지할 수 없는 데에 따른 공동체의 해체의 위기를 겪으면서 대중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폭력(착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평화와 번영은커녕 한반도의 위기상태는 지속할 뿐이었고, 테러와의 전쟁(인간안보)이라는 미명아래 이라크 전쟁은 오히려 확산일로의 길을 걷고 있었다.

대중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려고 했다. 2003년 열사들의 분신·자결을 시작으로 김선일 피살 사건에 분노해서, 핵폐기장에 건설에 맞서서, 미군기지 확장에 맞서서, 노동의 불안정화와 농업말살에 맞서서 노동자 농민, 여성들은 투쟁했다. 그리고 나아가 오늘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향한 지배세력들의 공론장인 WTO각료회의와 APEC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나갔다. 자본이 세계화되는 만큼 이에 맞서는 투쟁도 조금씩 세계화되고 있다.

 

대중운동의 정치적 후퇴

하지만 이러한 투쟁이 민중의 정치적 단결과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위계화된 노동자의 현실에서 알 수 있듯) 구체적인 현실에서 노동자, 농민, 여성은 개개인으로 분리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에서 민중은 자신의 혹은 서로의 문제를 정치쟁점화 하는데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대중조작적인 인민주의적 경향이 정치지형을 지배하고 있는 데다, 대중의 정치적 권리를 몇몇 정치스타에 대한 정념적 지지로 이해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운동이 자기 개발을 담보할 수 있는 이념과 결합하는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가속하는 지배세력들의 정치공세 속에서 기존에 있던 대중조직의 운동이 마땅한 대응 방법을 못 찾을 때 대중의 통념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 들거나 이미 운동에 내재해 있는 이념으로 현실을 해석하려 드는데 이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저해하고 대중운동이 운동의 미래를 구성하기 위한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데 장애가 된다. 대중운동에서 종종 드러나는 (민족주의적 틀에 갇혀있는) 코퍼러티즘적 경향은 가장 전형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지극히 수동적이며 폐쇄적인 형태로 변모한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한 민족국가의 발전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이런 상황에서 민족의 보존(통합)이 다른 문제를 압도하게 되면 민족주의 이념은 자신의 보편성을 탈각하고 고립주의적인 경향을 띠며 급격히 우경화된다. 한편 경제위기상황에서는 지배세력들의 공세만이 강화될 뿐 타협의 여지는 크게 줄어드는데 이런 상황에서 기존 대중조직의 운동은 타협을 통한 탈출구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 최종목표를 대중조직으로서 자신만이라도 온전하게 하는 것으로 조정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중조직은 노동자/농민 일반이 아니라 오로지 조합원만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는 비즈니스 노선이 강화된다.

불행히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한국사회의 대중운동에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더 지배적인 경향이 되고 있다. 농민운동은 ‘식량주권’을 제기할 때 농민의 생존권, 농업에 대한 민중의 민주적 결정권보다는 민족국가의 안녕(식량안보)이라는 차원에서 제기하는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이 문제조차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지배세력들에게서 농업회생의 방안을 찾을 수 없었던 농민운동은 투쟁의 응집력을 통해서 이것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도 노무현의 배신 속에서 조직력과 투쟁력을 급격히 상실하게 된다. 2005년 두 농민 열사의 죽음에서 농민운동은 노무현 정권과 지배세력들의 농업말살정책에 치를 떨어야 했지만, 응집력을 보여주는 것에서조차 어려움을 겪고 만다.

노동조합운동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맞서는 조합원의 투쟁을 응집력 있게 전개하는데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몇 번의 총파업 선언은 불발로 끝나거나 몇몇 사업장의 응집력에 기댄 채로 미약하게 전개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층 사업장, 연맹에서는 투쟁의 한계라는 이유로 몇 가지는 양보하고 쟁취하는 식의 교섭전략을 추구하게 된다. 이런 교섭은 종종 미조직노동자의 요구가 외면된 채로 진행되지만 ‘현실’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 이 같은 노동조합의 비즈니스 노선(자기중심적인 실리주의) 위에서 민주노총은 ‘사회적 합의’를 수립하는데, 이런 코퍼러티즘 전략은 사실, 조합원 중심의 실리주의 노선을 방어하기 위한 제도적 표현에 불과하다. 2005년 비정규직 관련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에서도 이 같은 교섭전략(기간제 사유제한 예외를 인정한 단병호 의원의 수정안)이 문제가 된다. 단위사업장의 교섭전략이 당과 총연맹의 교섭무대에 그대로 등장한 셈이다. 2006년 국회 투쟁을 기약하는 것으로 2005년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을 마무리해야 하는 현실은 결국 오늘 노동조합운동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문제의식만 앙상해진 공동투쟁, 그리고 민중운동의 분열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화한다는 목표아래 민중운동은 공동투쟁을 조직해 왔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로 전국민중연대 운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조직 출범 3년 동안 공동투쟁이 제기했던 본래의 문제의식은 (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 운동의 외연 확대) 점점 축소되고, 대중운동들이 자체로 추진할 수 없는 투쟁들(시민운동과의 연계-외연 확장, 일정조율, 반전-반세계화운동)을 대리하는 양상이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실용주의적 경향이 난무하고, 정치토론은 실종된 채로 기존 운동의 이념(민족주의)이 복원되면서 패권적 경향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오늘 노농연대 투쟁이 안 되는 이유는 (강력한 정치조직/연대체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대중운동 내에 자기중심적 실리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해야 하지만, 공동투쟁은 계속 이런 경향아래 갇혀져 있었고(기존 대중조직 운동의 외연 확대 - 시민단체를 끌어들이기 위한 각종 대책위 남발), 위기에 대한 공동의 인식에 근거해 민중들의 유대와 공통관념(반신자유주의 문제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으며, 실용주의적 경향(투쟁의 이합집산, 일정조정)만이 강화되어 왔다.

기존 대중조직의 운동들 사이에서 조직 방어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실리주의적 경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노농연대는 구호수준에만 머무를 뿐이다. 공동투쟁은 더더욱 형해화하고 그 자리에는 특정 조직의 단일사안 단일요구의 투쟁만이 남았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이 이루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정치쟁점화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폭은 오히려 좁아졌다. 수세적인 국면에서 이루어진 의회진출은 민중운동의 국회 의존성(대정부 의존성)을 도리어 더 높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민중운동의 역량은 국회 앞으로 집중하게 되고, 결국 가을 정기국회를 전후로 각종 요구들이 나부끼는 농성투쟁이 모든 민중운동의 투쟁을 대신하게 된다. 국회 앞 투쟁은 자신의 요구도 중요하다는 식의 알리바이를 제공했고, 현 단계 정치 투쟁의 방향, 민중운동의 과제를 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자기 조직 확장을 위한 기본목표(의식화, 조직화)마저 사라지고, 소속된 조합원들로부터 책임을 면하기 위한 요구안의 달성여부가 투쟁의 기본목표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반신자유주의 전선 강화는 고사하고 조합원의 확보조차도 쉽지 않게 된다. 지배세력들과의 타협이 어려운 상황에서 투쟁목표는 현실화라는 미명아래 낮게 조정되고, 이렇게 낮게 조정된 투쟁목표는 지배세력들의 목표지점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결국에는 기존 조합원의 요구를 방어하는 것도 실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반발하는 운동이 이제는 국회 앞에서 관리 받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2006년 민중운동진영의 연대운동이 나아가야 할 것

오늘날 한국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중운동의 발본적인 인식과 노선의 변화 없이는 이런 상황의 타개가 매우 어렵다. 경제위기상황에서 코퍼러티즘적인 운동노선이 불가능해진데도 기존 노선을 고집하려 들고, NGO 운동에 의해 관리 받고 끝내는 배신당하는 상황(2005년 12월 1일 7개 시민단체의 노동법 개악안 지지 사태)에서도 민중운동의 정치적 단결보다도 시민단체와의 연대에 최우선적인 가치를 둔다면, 민중운동은 자신의 존립기반조차 상실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로 돌려야 한다. 정세인식을 위한 토론을 강화하고, 운동 내에서 어떤 요소들을 강화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인민의 권리를 자율적으로 실현하고, 사회적·경제적인 변혁을 추구하며, 사회운동과 공동체 사이의 교통과 연대를 확장하려는 운동’ 우리는 이를 대안세계화운동이라고 부른다. 공동투쟁이 무조건 만능이 아니다. 이 같은 요소들을 강화하기 위한 연대운동을 조직하면서 그 내에 다양한 물질적 장치(조직 이념, 조직 운영 원리)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연대운동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중운동은 지배세력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이에 근거하여 정치적인 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민중운동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의 이념으로서 대중의 공통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조직 혁신으로 되지 않는다. 급진적이며 변혁적인 대중 운동이 일어나면서 새롭게 주체가 형성되고 이것이 대중조직의 운동과 교통할 때 혁신의 기운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배세력들과의 정치적 단절(반신자유주의)을 강조하는 것은 이 같은 운동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최소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늘 국가(및 사회체제)가 대중에게 가하는 폭력(착취, 배제)의 현주소에 대한 면밀한 인식과 이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한 정치폭로가 필요하다. 자유주의들과 NGO운동이 심어놓은 ‘민주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경계를 확장하고, 현존하는 사회관계의 변혁을 위한 머나먼 길에 나서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다양한 운동과 더 많은 운동이다. 대중을 분열시키려는 지배세력들의 책략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우리는 이를 격려해야 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에 여러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운동에 노동자, 농민,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하며 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시기에는 이런 다양한 운동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여러 조건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다.

이렇게 등장한 다양한 운동들 사이에서 수평적인 토론이 확산되어야 한다. 공동투쟁에 참여하는 여러 운동 주체들이 자신의 경험, 자신의 이념, 자신의 전망을 놓고 평등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운동들 사이의 교통을 통해서 대중들이 직접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확장하면서 운동 전망에 대한 공동의 관념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들이 연대운동체/공동투쟁체의 조직운영원리(의사결정기구의 민주화)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지금 만일 우리가 민중운동의 연대운동에 대해 새롭게 토론하고자 한다면, 바로 오늘 대중운동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연대운동과 공동투쟁은 공동의 인식을 전제로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운동이지만, 동시에 대중운동의 혁신을 위한 운동이며 변혁적인 운동 주체의 형성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연대운동에서 노력과 고민을 집중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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