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봄호에 실렸던 "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이라는 글입니다.

 

[황해문화] 이번 겨울호에 이 글의 후속편을 발표하게 되었고, 또 시간이 지났으니까 이제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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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메시아주의라는 이름의 욕망: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조르조 아감벤의 국내 수용에 대하여

 

    

 

 

이론에서는 혁명, 현실에서는 민주당?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필자가 오래 전부터 품고 있던 의문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 들어 국내에 크게 유행하고 있는 현대 사상의 국내 수용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현상에 관한 의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난 1990년대 이후 국내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또는 포스트 구조주의 및 포스트 식민주의 등과 같이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지닌 일련의 문화적ㆍ사상적 흐름이 급속히 수용된 바 있다.[필자는 이를 ‘포스트 담론’이라 부르면서 이러한 담론의 국내 수용의 양상과 문제점에 관해 다른 글에서 논의한 바 있다. 진태원, 「‘포스트’ 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 󰡔민족문화연구󰡕 57호, 2012 참조.]

 

 

 

실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자크 라캉,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장 보드리야르 등과 같이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또는 그렇다고 간주되는) 사상가들을 제외하고서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지적 담론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이 사상가들의 후배 세대에 해당하는 슬라보예 지젝, 안토니오 네그리ㆍ마이클 하트, 조르조 아감벤, 자크 랑시에르, 알랭 바디우 등과 같은 새로운 이론가들, 말하자면 ‘포스트-포스트 담론’의 대표자들이 국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8년 당시 국내에 이제 막 몇 권의 책이 번역ㆍ소개되고 있던(따라서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상가였던) 자크 랑시에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언론과 대중이 보여준 뜨거운 관심이나 2013년 가을 알랭 바디우와 슬라보예 지젝이 동반해서 방한했을 때 일어난 열광적인 반응은 이들이 국내에서 얼마나 큰 대중적인 명망을 얻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는 마치 유명한 외국의 팝스타나 이른바 아이돌 그룹에 대한, 또는 유명 운동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열광과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내가 궁금하게 생각했고, 또 지금도 여전히 궁금해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포스트 담론을 대표하는 사상가들도 그렇거니와, 그 이후에 각광받고 있는 이 후배 사상가들은 이전의 철학이나 인문학 담론에서 보기 어려운 새로운 주제를 다루고 급진적인 정치적 주장을 제시하는 사상가들이다. 특히 지젝과 바디우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과 북미의 주요 도시(파리, 베를린, 뉴욕 등)를 돌아다니면서 ‘공산주의라는 이념’(the Idea of Communism)이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학술회의를 조직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복원하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 학술회의의 결과는 몇 권의 책으로 묶여져 출판된 바 있다. Costas Douzinas and Slavoj Zizek eds., The Idea of Communism, Verso, 2010; Alain Badiou et al., L'idée du communisme, Nouvelles Editions Lignes, 2010; Alain Badiou et al., L'idée du communisme: volume 2, conférence de Berlin 2010, Nouvelles Editions Lignes, 2011; Slavoj Zizek ed., The Idea of Communism 2: The New York Conference, Verso, 2013 이 책들 중 일부는 그린비 출판사에서 조만간 번역ㆍ소개될 예정이다. ]

 

 

또한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과 󰡔다중󰡕, 󰡔공통체󰡕 같은 일련의 저작들에서 이를 테면 다중의 공산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이들과는 다소 상이한 지적ㆍ정치적 노선에 서 있는 조르조 아감벤 역시 매우 급진적인 메시아주의 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몫 없는 이들의 몫’이라는 개념 아래 민주주의를 다시 사고하려는 자크 랑시에르 역시 이들 못지않게 급진적인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과시하고, 전복적이며 때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한 주장을 서슴없이 제시하는 이 사상가들에 대해 이른바 ‘운동권’ 좌파나 아니면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급진적인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이런저런 비판적 반응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이 사상가들은 넓은 의미의 교양 대중을 포함하여 주로 문학이나 영화 및 기타 대중예술 관련 연구자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연구되기보다는) 수용되고 인용되고 있다. 지젝이나 바디우, 아감벤에게 관심을 보이는 교양 대중 및 인문학 연구자들이 아마 보수적인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치적인 의미에서 급진적인 것도 아니다. 이 사상가들을 열광적으로 수용하는 독자들은 대개 넓은 의미에서 자유주의적인 지향을 보이는 이들이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노무현 전(前) 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던 이들이 바로 이들이고, 2012년 대선에서는 ‘나꼼수’ 방송에 심취하면서 문재인(이나 잠재적으로는 안철수) 후보에게 성원을 보냈던 이들이기도 하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사상가들, 특히 이 글에서 주로 관심을 기울일 지젝이나 바디우, 아감벤 같은 사람들은 현대 사상가들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제시하고 있으며, 따라서 현대의 대표적인 정치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물론이거니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 등이 제안하는 급진 민주주의까지도 개량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反)자본주의적이고 반(反)자유주의적인 정치를 제창하는 이들이 어떻게 좌파들에게는 거의 반응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나 대중에게 호응을 받는 것일까? 더 이상한 것은, 이러한 기묘한 불일치 내지 괴리에 대해 거의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좌파 인문사회과학자들이나 단체들은 이들을 대개 무시하거나 경원하는 태도를 보이고, 이들에 호응하는 사람들은 이들의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주장에 열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선거 때가 되면(특히 대선 같은 중요한 선거일수록) 늘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하러 투표소로 간다.

 

이러한 괴리 현상을 역설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냈던 것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한겨레 신문에 실린 알랭 바디우와의 인터뷰 사건이다. 이 인터뷰에서 한국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는 가운데 바디우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알랭 바디우, 「정치란 더 많은 평등의 기회를 줄 방법을 찾는 것: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 인터뷰」, 󰡔한겨레󰡕 2012년 12월 18일.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566013.html. 2014년 1월 10일 접속.]

 

이것이 역설적인 현상인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정치 질서의 가장 대표적인 제도 중 하나인 대통령 선거에서 급진적이거나 진보적인 정당도 아니고 보수 야당의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의회주의에 대한 거부를 자신의 평생 정치적 모토 중 하나로 제시해온 바디우가 지지했기 때문이다. 반(反)의회주의 정치철학자의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그것도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이것은 그 괴리를 부인함으로써 입증하는 기묘한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 이후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서용순 교수가 이 인터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바디우의 진의를 밝히는 기고문을 실었지만,[서용순, 「알랭 바디우 인터뷰에 오해의 소지 있다」, 󰡔한겨레󰡕 2012년 12월 27일.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567270.html. 2014년 1월 10일 접속.]

 

필자가 보기에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더욱이 서 교수가 바디우의 진의를 밝히면서 옹호한 논리에 대해서도 여전히 또 다른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문제는 바디우의 진의가 어떤 것이었는가 여부가 아니라, 이러한 괴리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좀 더 따져 보기 위해서는 포스트 담론이라고 불리는 이론의 성격 및 그것의 국내 수용에서 나타난 문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어떤 유행들

    

 

성인으로서 1980년대를 경험했고 그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와 철학에 눈을 뜬 필자와 같은 사람에게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전개된 지적 변화의 흐름은 당혹스러운 경험의 연속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80년대는 한국 지성사에서 꽤 의미 있는 시기였다. 이 시기는 한편으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독자적인 민족사를 구성하는 것이 국문학, 국사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의 중심적인 학문적 과제로 제시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 독재에 대한 저항의 수단이자 한국 사회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변혁하기 위한 지적 원천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복권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하지만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부분적이고 매우 불완전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곧 군사 독재라는 명시적인 적대자가 사라지고(또는 좀 더 비가시적인 다른 대상들로 대체되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더불어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을 분석하고 실천을 조직하기 위한 이론적 중심으로서의 권위를 급격히 상실하게 되었다.

 

그 대신, 약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대신하여,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부터 포스트 담론이 한국 사회에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포스트 담론의 이러한 수용은 “가히 인식론적 단절 내지 절단이라고 부를 만한 변화였다. 이것이 충격적인 이유는 국내의 그 누구도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상, 담론, 용어들이 갑자기 시대의 주류 사상과 담론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진태원, 「‘포스트’ 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앞의 글, 11쪽. 강조는 원문.]

 

1980년대에 누가 데리다, 푸코, 들뢰즈 같은 사상가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을까? 또 해체, 기표, 시뮬라크르, 규율권력, 파놉티콘 또는 바로 ‘담론’과 같은 개념들을 누가 들어본 적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이 사상가들과 이 개념들은, 비판을 위해서든 찬양을 위해서든 또는 단순한 수사적 장식을 위해서든, 학술적 논의 및 저널리즘적 담론에서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아무도 알지 못했던 개념들과 이론들이 너무나 자명한 것들도 변신한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을 고수하던 이들 또는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1980년대의 지적ㆍ실천적 문제의식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던 이들이 포스트 담론을 집중적인 비판과 경원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포스트 담론은 급진적인 사회 변혁의 전망이 사라지고 그 대신 자유 민주주의의 제도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또는 ‘무겁고 심각한’ 정치에서 ‘가볍고 재미있는’ 문화로의 이동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과 같은 것이었지만, 이러한 상징은 동시에 철저하게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포스트 담론을 통해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 새로운 시대는 골치 아프고 힘겨운 정치와 투쟁의 시대가 아니라, 이제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심미적 쾌락과 문화적 향유의 시대라는 점을 선언한 이들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것은, 이들이 말하던 새로운 시대가, 얼마 못가서 밝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과 예속화의 시대였다는 점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은 갈등과 적대의 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명칭으로 집약되는, 새로운 갈등과 적대, 새로운 불평등과 예속의 시대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97년 IMF 외환 위기 이후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또는 국내 정치의 경우에는 2008년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포스트 담론을 주장하던 이들이 알리바이로 내세우던 새로운 (문화의) 시대는 허상에 불과했음이 뚜렷이 입증되었음에도, 포스트 담론은 여전히 한국 인문사회과학 및 저널리즘의 지배적인 담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잠재력은 거세된 가운데, 포스트 담론은 한편으로 이제 얼마간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학계의 신참자로서 등재지 논문들을 위한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교양을 과시하기 위한 지적 클리셰로서 저널리즘과 대중 담론에서 애호되고 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200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 담론은 때로는 그것을 계승하고 때로는 그것과 경쟁하며 대체하고자 하는 새로운 종류의 인문학 담론, 곧 포스트-포스트 담론이라는 형태로 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담론은 포스트 담론이 정치를 대체하는 문화적ㆍ미학적 담론으로 소개되고 소비되었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훨씬 더 정치적인 담론으로, 그것도 급진적 해방의 담론으로 자처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렇게 소개되고 또한 소비되고 있다

.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과 다중에 관한 저작,[안토니오 네그리ㆍ마이클 하트, 󰡔제국󰡕(2000),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다중󰡕(2004), 조정환 외 옮김, 세종서적, 2008 등 참조. 이하 국역본(이나 영역본) 저작명 다음의 괄호 속 숫자는 원서가 출판된 연도를 가리킨다.]

 

지젝의 라캉주의 정치학,[슬라보예 지젝은 현대 사상가들 중에서 가장 다작의 저자로 꼽을 만한 사람이며, 국내에도 수많은 저작들이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저작을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며, 1990년대 후반 이후 그가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하게 된 몇몇 저작들만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1999),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 b, 2005; 󰡔지젝이 만난 레닌󰡕(2002), 정영목 옮김, 교양인, 2008; 󰡔시차적 관점󰡕(2006),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2008), 박정수 옮김, 그린비, 2009; 󰡔폭력이란 무엇인가󰡕(2008), 정일권ㆍ김희진ㆍ이현우 옮김, 난장이, 2011;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2009), 김성호 옮김, 창비, 2010.]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작[조르조 아감벤, 󰡔도래하는 공동체󰡕(1990), 이경진 옮김, 꾸리에, 2014; 󰡔호모 사케르󰡕(1995), 박진우 옮김, 새물결, 2008; 󰡔목적 없는 수단󰡕(1996), 김상운ㆍ앙창렬 옮김, 난장, 2011;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1998), 정문영 옮김, 새물결, 2012; 󰡔예외상태󰡕(2003), 김항 옮김, 새물결, 2009; 󰡔세속화 예찬󰡕(2005), 난장, 2011.],

 

바디우의 포스트 마오주의적 공산주의,[알랭 바디우, 󰡔존재와 사건󰡕(1988),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3; 󰡔철학을 위한 선언󰡕(1989), 서용순 옮김, 길, 2010;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1991), 박영기 옮김, 논밭출판사, 2013; 󰡔조건들󰡕(1992), 이종영 옮김, 새물결, 2006; 󰡔윤리학󰡕(1993), 이종영 옮김, 동문선, 2001; 󰡔사도 바울󰡕(1997), 현성환 옮김, 새물결, 2008; 󰡔투사를 위한 철학: 정치와 철학의 관계󰡕(2011), 서용순 옮김, 오월의책, 2013.]

 

랑시에르의 무정부주의적 민주주의론[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1985), 양창렬 옮김, 궁리, 2008;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1998), 양창렬 옮김, 길, 2013; 󰡔감성의 분할󰡕(2000), 오윤성 옮김, 도서출판 b, 2008;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2005), 허경 옮김, 인간사랑, 2011; 󰡔불화: 정치와 철학󰡕(1995), 진태원 옮김, 길, 근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새로운 담론들이 포스트 담론에 속하는 사상가들, 곧 데리다, 들뢰즈, 푸코, 리오타르, 라클라우ㆍ무페 등에 대해 꽤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더욱이 이들이 포스트 담론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포스트 담론과 같은 노선 위에 위치시키고, 말하자면 그 담론의 후예들로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부당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관점에 기초를 둘 경우에만 이 새로운 담론의 (언표적 내용이라기보다는) 언표행위적 위상을 적절히 평가할 수 있으며, 포스트 담론 및 포스트-포스트 담론의 국내 수용의 의미와 한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1990년대 이후 국내에 차례로 소개되고 있고 광범위한 지적ㆍ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있는 어떤 서양 인문학 담론들의 유행의 이유를 해명하는 것이다.

    

 

바깥의 정치

    

 

 

필자는 최근 한 논문에서 포스트 담론 이후 국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새로운 담론을 ‘바깥의 정치’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한 바 있다.[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29집, 2012 참조.]

 

다소의 중복을 무릅쓰고 그 대략적인 논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가 보기에 네그리와 하트, 지젝, 바디우, 아감벤, 랑시에르 같은 현대의 대표적인 좌파 사상가들은 그들의 다양한 사상적 원천과 이론적 문제설정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지적ㆍ정치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모두 각자 나름대로 급진적인 해방의 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치를 제도적인 정치 바깥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실로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대 정치의 대표적인 모델로 간주되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이상적인 정치체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는 지배의 체제로 간주한다. 따라서 인민의 권력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바깥에 존재하는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발견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이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의 입장은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간에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을 계승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마르크스주의가 자유민주주의 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허구성과 기만성에 대한 비판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초기 마르크스 저작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시민들의 평등과 자유는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익 추구를 은폐하는 형식적이고 기만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둘째는 경제적 착취에 근거를 둔 계급투쟁을 진정한 정치의 쟁점으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법과 정치는 경제적 생산관계에 기반을 둔 상부구조이며, 부르주아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하고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제도적인 정치의 영역은 진정한 정치의 장소와 무관한 허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의 사상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꽤 비판적인 거리를 두고 있다. 실제로 다중의 정치철학을 통해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스피노자의 정치적 존재론과 결합하려고 시도하는

네그리와 하트를 제외한다면,[물론 이들이 원용하는 스피노자주의가 실제의 스피노자 사상, 특히 그의 정치학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자유로운 창작의 산물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네그리와 하트의 스피노자주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진태원, 「대중의 정치란 무엇인가? 다중의 정치학에 대한 스피노자주의적 비판」,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19집, 2009 참조.] 아감벤이나 바디우, 지젝, 랑시에르 등은 자신들의 정치학을 정치경제학 비판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으며, 이들이 󰡔자본󰡕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해 상세히 논의를 전개하는 경우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의 정치학은 마르크스주의와 또 다른 유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특히 푸코(와 알튀세르)의 유산이다. 푸코가 현대의 바깥의 정치론에 미친 영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들 자신의 관점에 기초하여 근대 사회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관점의 기저 내지 바깥에 있는 역사적 전개 과정을 탐색하려고 했다. 하지만 푸코는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이러한 역사 과정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적 과정 또는 경제적 착취 관계의 형성 및 전개 과정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권력관계

(처음에는 규율권력이라 부르고, 유고작으로 출간된 강의록에서는 생명권력 및 통치성이라고 부른)의 전개 과정으로 제시했다.[규율권력론에 대해서는 특히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 나남, 2003(1975) 참조. 푸코는 󰡔감시와 처벌󰡕 및 󰡔성의 역사󰡕 1권(1976)을 출간한 뒤, 곧바로 규율권력론의 난점을 정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생명권력, 통치성 같은 새로운 문제설정을 발전시킨다. 이는 특히 최근 국내에 번역된, 1970년대 후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7;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2. 푸코의 국내 수용에 대한 비판적 평가로는 진태원, 「푸코에 대한 연구에서 푸코적인 연구로: 한국에서 푸코 저작의 번역과 연구 현황」, 󰡔역사비평󰡕 통권 99호, 2012년 여름호 참조.]

 

따라서 푸코는 자유주의 제도 바깥에 놓인 진정한 정치의 장소를 추구하되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바깥의 정치의 한 전범을 제시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푸코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예속화(assujet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라는 문제를 진정한 정치의 쟁점으로 제기한다. 이것은 고전 마르크스주의와 현대 사상을 가르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루카치나 프랑크푸르트 학파 1세대의 학자들이 󰡔자본󰡕의 물신숭배론 및 막스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원용한 사물화(Verdinglichung) 이론이나 도구적 이성 이론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사회에 고유한 인간학적 소외 상태를 분석한 반면, 푸코는 예속화의 메커니즘을 경제적 착취관계나 상품관계에서 찾지 않고, 대신 규율권력이나 통치성의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권력론의 기반 위에서 예속화의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주체화 양식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푸코가 보기에 고전적인 해방의 문제설정(노동해방 투쟁 및 성해방 투쟁, 반(反)식민 해방 투쟁 등을 포함하는)은 계급 지배나 성적 지배 또는 식민 지배를 통해 억압된 보편적 인간 본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주체들 사이의 자유로운 관계 형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Michel Foucault, “L'éthique du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 in Dits et écrits, vol. II, Gallimard, 2001; 「자유의 실천으로서 자기에의 배려」, 정일준 엮음, 󰡔미셸 푸코의 권력이론󰡕, 새물결, 1994 참조.]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권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체화에 관한 독자적인 문제설정이 요구된다는 것이 푸코, 특히 후기 푸코의 관점이다.

 

 

푸코의 문제제기는 바깥의 정치를 주장하는 사상가들에 의해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랑시에르는 주체화의 문제를 자신의 민주주의론의 핵심 요소로 삼고 있으며,[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앞의 책; 󰡔불화󰡕, 앞의 책 등.]

 

아감벤의 경우는 푸코의 장치(dispositif) 개념을 원용하여 통치와 주체화의 문제를 탐색하고 있다.[조르조 아감벤, 󰡔장치란 무엇인가?/장치학을 위한 서론󰡕, 앙창렬 옮김, 난장, 2011.]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 철학에 기반을 두고 (무의식적) 주체의 문제를 현대 사상의 근본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앞의 책 참조.]

 

또한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에 기반을 둔 정치학을 추구하고 있다.[안토니오 네그리ㆍ마이클 하트, 󰡔제국󰡕, 앞의 책; 󰡔다중󰡕, 앞의 책.]

 

따라서 푸코는 현대 사상가들, 특히 바깥의 정치를 추구하는 사상가들의 주요한 이론적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 메시아주의

    

 

그런데 이러한 바깥의 정치의 사상가들 중에서도 지젝, 바디우, 아감벤은 또 다른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세 사람이 다른 바깥의 정치의 사상가들과 달리 일종의 메시아주의적인 관점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 명의 사상가는 말하자면 좌파 메시아주의의 사상가들로 분류해볼 만하다. 이들을 좌파 메시아주의로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자본주의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와의 급진적이고 전면적인 단절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이를 기독교 전통, 특히 바울의 정치 신학 전통에 대한 재독해에 기반하여 혁명적 사건성의 관점에서 해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현대 철학의 메시아주의적 경향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비판적 고찰로는 진태원, 「시간과 정의: 벤야민, 하이데거, 데리다」,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34집, 2013 참조.]

 

 

 

가장 좌파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사상가들이 기독교 신학의 문제설정에 기반을 두고 급진적인 정치 사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언뜻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 이들의 입장은 현재의 이론적ㆍ정치적 정세의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자유주의 정치의 위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하면서 유일하게 보편적인 정치체 또는 정치 원리로 자부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보편적인 정치적 가치가 퇴조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주 및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과 인종주의, 민족 갈등이 확대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자유 민주주의 정체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실효성 있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위기의 뿌리로 지목되면서, 자유 민주주의적인 정체 자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근본적인 정치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곧 자본주의의 종언을 어떻게 사고하고 또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 자본의 시간성을 어떻게 종결시킬 것인가 같은 질문이 메시아주의 정치를 불러온 핵심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가 2008년 위기 이후 붕괴하거나 약화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됨에 따라, 신자유주의의 종말, 자본주의의 종말을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좀 더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왜 이것이 메시아주의로 나타날까? 그것은 ‘종말’, ‘단절’, ‘사건’, ‘예외’ 같은 범주들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적 시간성이 압도적인 질서로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그것과의 단절의 사건이 이루어지는 시간성,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성을 사유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종말과 단절, 새로운 시작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전통적인 메시아주의 사상, 특히 정치신학 사상에 대한 재고찰이 필요할 수 있다. 더욱이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철학의 기초를 이루는 보편적인 해방의 계급, 곧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주체성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단절과 새로운 시작의 사건을 사유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메시아주의, 또는 종말론은 종교 내지 신학으로의 퇴보를 뜻한다기보다는 종말론의 종교, 메시아주의 신학에 담겨 있는 깊은 철학적 통찰과 그 실천적 함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그런데 발리바르가 지적하듯이, 사실 이미 마르크스의 저작 자체 내에 이미 이러한 쟁점이 담겨 있다. “한편으로 역사적 생성의 경향들과 결과들의 분석을 지향하는 시간의 정치철학(즉 ‘목적론’)과 다른 한편으로 ‘극단적’이거나 ‘묵시록적’이라고 여겨지는 상황 —착취 세력과 해방 세력이 서로를 상쇄(相殺)하는 상황 —의 의미와 결말의 발본적 불확실성을 지향하는 시간의 정치철학 사이의 딜레마란, 마르크스의 작업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독해들이 외부에서 마르크스에게 투사한 딜레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발전과 반자본주의적 혁명에 관한 마르크스의 구상 전체를 가로지르고 갈라놓는 딜레마다.” 에티엔 발리바르, 「종말론 대 목적론: 데리다와 알튀세르의 유예된 대화」,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145쪽. 강조는 발리바르.]

 

 

바로 여기에서 현재 전개되는 좌파 메시아주의의 또 다른 특징이 나온다. 그것은 이러한 메시아주의 정치가 매우 사변적인 정치학이라는 점이다. 바디우, 지젝, 아감벤과 같은 대표적인 좌파 메시아주의 이론가들 중에서 누구도 (막연하고 일반적인 정식들을 제외한다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하지 않으며, 그것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이나 조직에 관한 구체적인 성찰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수행하는 것은 철학에서, 신학에서, 이론 내에서의 작업이다. 더욱이 이들의 이론적 작업은 경험적인 현실 구조를 다루는 사회과학과의 연계 속에서, 그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사변적인 역사철학이나 정치신학, 문화이론적 차원의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상당히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항상 혁명과 봉기, 사건, 단절을 주장하고 자본주의의 종말을 외치며 메시아적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변적인 차원에서의 성찰이고 호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수행할 만한 혁명적 주체와 그 조직 형성에 관한 고민이 없을뿐더러, 이들이 단절을 외치는 자본주의 질서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관한 면밀한 분석도 수반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알랭 바디우(1937~)는 세 명 가운데 가장 일찍부터 일관되게 반(反)자본주의, 반(反)의회주의를 주장해온 사상가다. 그는 1968년 프랑스 68 혁명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스승이었던 알튀세르와 단절하고 프랑스의 마오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그 후 마오주의 운동이 퇴조한 뒤 철학 연구에 몰두하여 1982년에 출간된 󰡔주체 이론󰡕과 1988년에 나온 󰡔존재와 사건󰡕, 그리고 2005년 출간된 󰡔세계들의 논리󰡕 같은 대작들을 발표함으로써,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계의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A. Badiou, La théorie du sujet, Seuil, 1982; L'être et l'événement, Seuil, 1988; Logique des mondes, Seuil, 2005. 이 세 권의 저작 가운데 국내에 번역된 것은 󰡔존재와 사건󰡕뿐인데, 그나마 비전공자의 번역으로 인해 번역 시비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인 이 저작들을 이 자리에서 제대로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국내에서는 주로 서용순 교수가 여러 글을 통해 바디우 사상을 소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바디우 사상에 대한 외국어 연구 문헌으로는 특히 Peter Hallward, Badiou: A Subject to Truth,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3 및 Bruno Bosteels, Badiou and Politics, Duke University Press, 2011을 참조. 그런데 바디우 사상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서는 사실은 바디우가 쓴 여러 소책자들이다. Alain Badiou, L'éthique, Hatier, 1993; 󰡔윤리학󰡕, 앞의 책; 󰡔철학을 위한 선언󰡕, 앞의 책; Saint Paul: La fondation de l'universalisme, PUF, 1997󰡔사도 바울󰡕, 앞의 책. 하지만 󰡔윤리학󰡕과 󰡔사도 바울󰡕은 번역에 다소 문제가 있어서 원서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이 저작들을 관통하는 바디우의 정치적 관점의 핵심은 해방의 정치와 국가의 대립이며, 또한 이른바 대상 없는 주체, 곧 대상성과 결별한 주체성에 대한 확고한 태도라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바디우가 말하는 대상 없는 주체란, 객관적 세계에 대한 과학적 규정을 통해 주체를 규정하려고 했던 과거의 철학들과 단절하려는 시도를 함축하고 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의 경우 프롤레타리아라는 정치적 주체는 자본주의의 경제 구조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주체는 주어진 객관적 질서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사건적 주체라고 할 수 없으며,[바디우에게 사건은 기존의 사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백과사전적인 지식의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기존의 지식의 질서에서는 식별 불가능한 새로운 어떤 것의 발생, 또는 기존의 지식 체계에 구멍을 내는 어떤 것의 출현을 뜻한다. 따라서 사건은 오직 주체의 개입과 충실성을 통해서만 사건으로서 인정받고 통용될 수 있다. 역으로 주체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을 통해 주체로서 성립하게 된다.]

 

 

 

더 나아가 해방의 정치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주체가 처음부터 객관적 조건에 따라 규정되었으며, 이러한 주체는 혁명적 주체를 표방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러한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프롤레타리아(또는 그것을 대표하는 공산당)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행한다. 이러한 독재의 목표는 부르주아 국가장치를 파괴하고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을 확고히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가 자체의 소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 소멸은 국가 권력의 강화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원래의 목표와는 달리 새로운 국가 정치를 산출하는 데로 귀결하고 만다. 바디우에 따르면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한계는 바로 여기에서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이 점에 관해서는 Alain Badou, Abrégé de métapolitique, Seuil, 1998 및 Circonstances 5: L'hypothèse communiste, Nouvelles Editions Lignes, 2009를 각각 참조. ]

 

 

하지만 만약 진정한 정치의 주체가 대상 없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정치인지 알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정치를 진정한 정치, 해방의 정치로 규정하고, 따라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또는 적어도 객관성 여부를 따질 수 있게) 해주는 객관적 조건이나 규정 같은 것은 대상 없는 주체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주체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진리이고 해방이라는 것은 오직 믿음의 문제로 남는다. 그것이 어떤 지표나 지시체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바디우가 사용하는 프랑스어 문법의 시제 표현을 빌려 말하면) 전미래(前未來)의 시제, 곧 미래의 어떤 완료 시점일 뿐이며, 더욱이 이러한 전미래 시제의 존재 역시 현재 주체의 충실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디우가 주장하는 공산주의란, 네그리가 지적했다시피 마르크스주의 없는 공산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1949~)의 경우에도, 개괄적이고 막연한 논평이나 상황적인 분석을 제외한다면,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라든가 혁명(내지 진정한 정치)을 수행할 정치 조직이나 방법에 관한 논의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는 세 명의 사상가 가운데 국내에 가장 널리 소개되고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라캉 정신분석에 입각하여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문화이론가로 국내에 알려진 지젝[슬라보예 지젝, 󰡔삐딱하게 보기: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 이해󰡕(1991), 김소연ㆍ유재희 옮김, 시각과언어, 1995;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할리우드의 정신분석󰡕(1992), 주은우 옮김, 한나래, 1997; 󰡔향락의 전이: 여성과 인과성에 대한 여섯 편의 에세이󰡕(1994), 이만우 옮김, 인간사랑, 2001;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김소연 옮김, 새물결, 2001; 󰡔환상의 돌림병: 문화 현상을 라깡식으로 읽기󰡕(1997), 김종주 옮김, 인간사랑, 2003;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김재영 옮김, 인간사랑, 2004.이 중에서 󰡔향락의 전이󰡕, 󰡔무너지기 쉬운 절대성?󰡕, 󰡔환상의 돌림병󰡕 등은 지젝의 번역본 가운데 최악의 오역본들로 꼽힐 만한 것들이며, 모두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은 그의 최초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비롯한 주요 이론 저작들이 도서출판 b를 중심으로 출간되면서 독자적인 사상가로서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슬라보예 지젝,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 이수련 옮김, 인간사랑, 2001;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2001), 박정수 옮김, 인간사랑, 2004; 󰡔까다로운 주체: 정치적 존재론의 부재하는 중심󰡕(1999),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 b, 2005; 󰡔신체 없는 기관: 들뢰즈와 결과들󰡕(2003), 김지훈 외 옮김, 도서출판 b, 2005;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칸트, 헤겔 그리고 이데올로기 비판󰡕(1993),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 b, 2007. 이 중에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은 제목을 바꿔서 다시 출간되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이수련 옮김, 새물결, 2013.]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나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또는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같은 초기의 이론 저작에서는 헤겔 철학과 라캉 정신분석을 결합하여 이데올로기 이론을 쇄신하려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 당시 지젝의 정치적 입장은 라클라우와 무페가 제창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내지 급진 민주주의와 상당히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젝의 정치적 관점은 극적으로 변모한다. 그는 더 이상 급진 민주주의라는 관점을 옹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급진 민주주의를 포함한 민주주의 일반을 글로벌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중핵으로 간주하게 된다. 2000년대 초에 발표된 몇몇 저작에서 지젝은 자신의 이론적ㆍ정치적 전회를 명시적으로 표현한다. “오늘날 헐리우드의 ‘사회비평적인’ 음모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반자본주의적’이게 되었을 때, ... ‘반자본주의’라는 기표는 자신의 전복적 독침을 상실하게 된다. 오히려 우리가 토론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반자본주의’의 자명한 대립물, 곧 정직한 미국인들의 민주주의적 실체가 음모를 분쇄할 수 있으리라는 신뢰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의 중핵이며, 그것의 진정한 주인 기표다.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Slavoy Zizek, Revolution at the Gates, Verso, 2002, p. 273; 󰡔지젝이 만난 레닌󰡕, 앞의 책]

 

 

 

 

 

 

따라서 이제 지젝에게는 민주주의의 텅 빈 중심을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 또는 더 나아가 민주주의라는 상징계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잃어버린 대의를 찾아서󰡕나 󰡔폭력이란 무엇인가?󰡕 같은 저작들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방적 테러’ 내지 발터 벤야민의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를 원용한 신적 폭력이라는 개념에 의거하여 종말론적인 정치학을 표방하고 있다. “이 책은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보편적 해방을 위한 투쟁이라는 ‘메시아적’ 관점에 선다.”[슬라보예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15쪽.]

 

“급진 좌파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최소한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폭력적인 과거에 대해 비록 그것이 비판적으로 거부될지라도―혹은, 바로 그 때문에―우리는 그것을 우리 자신

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우리는 또한 우리의 반대자들이 투쟁의 기준과 주제를 결정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무자비한 자기비판은, ... 자코뱅 테러의 ‘합리적 핵심’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의 과감한 수용을 동반해야 함을 의미한다.”[같은 책, 242쪽. 강조는 지젝.]

 

 

 

이것은 물론 스탈린적인 테러를 옹호하거나 유혈 폭력을 낭만적으로 찬양하자는 뜻이라기보다는 “너무나 손쉽게 제출된 자유-민주주의적 대안을 문제 삼”[같은 책, 15쪽.]

 

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해방적 테러 내지 신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젝은 몇 가지 사례를 든다. 1792~94년 자코뱅의 혁명적 폭력이나 파리 코뮌 당시의 폭력, 또는 “10여 년 전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들이 도시의 부자 동네로 몰려가 슈퍼마켓을 약탈하고 불태웠을 때 이것이 바로

‘신적 폭력’이다.”[같은 책, 245쪽. 강조는 지젝.]

 

 

 

반면 2005년 프랑스 방리유에서 소외된 이민자 계층이 벌였던 시위와 폭력은 신적 폭력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1968년 5월 혁명과 비교해봤을 때, “시위하는 군중에게 긍정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전망이 전혀 없다는 점”[󰡔폭력이란 무엇인가?󰡕, 117쪽.]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다만 꼭 집어 표현할 수 없는 막연한 원한에 근거하여 자기들을 인정해 달라고 주장했을 뿐이다.”[같은 곳]

또한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신적 폭력이라고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문화대혁명의 “최종 결과가 현재 중국에서 아무도 못 말릴 정도로 활발하게 진행되는 자본주의화라는 사실은 일종의 자업자득이다. 마오쩌둥이 주장했던 항구적인 자기-혁명, 경화된 국가, 구조에 대한 항구적 투쟁과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동성이라는 특징 사이에는 깊은 구조적 상동성이 존재한다.”[같은 책, 287~88쪽.]

 

 

그런데 흥미롭게도 지젝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폭력이 신적 폭력인지 식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같은 행위를 두고 외부의 관찰자는 그걸 단순히 폭력이 분출되는 행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직접 참여한 자들에게는 신적 폭력이 될 수 있다. 그 신적 성격을 보증해주는 대타자는 없으며, 그것을 신적 폭력으로 읽고 떠맡는 위험은 순전히 주체의 몫이다.”[같은 책, 275쪽] 이 주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만약 여기에 따른다면, 2005년 방리유 소요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심지어 스탈린의 테러까지 신적 폭력이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폭력의 참여자가 그것을 신적 폭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화된 사회적 공간 바깥에 있는 자들이 ‘맹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즉각적인 정의/복수를 요구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바로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같은 책, 277쪽]라는 지젝의 주장조차, 앞의 기준에 따르면 너무 ‘대타자’에 입각한 것이고, 너무 외부 관찰자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런 기준에 입각해서 진정한 해방의 정치가 가능할까?

 

조르조 아감벤(1942~)의 경우에는 또 다른 측면이 드러난다. 바디우와 지젝에 비해 아감벤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 투쟁 경험을 지니고 있지 않고, 그의 여러 저작에서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아감벤은 두 사람에 비해 훨씬 더 급진적인 메시아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로마대학의 법학도였던 아감벤은 1966년 프랑스의 르 토르(Le Thor)에서 있었던 하이데거의 철학 세미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철학 공부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저명한 발터 벤야민 연구로 전문가 집단에게 명성을 얻은 아감벤이 세계적인 철학자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1995년 이탈리아어로 출간된 󰡔호모 사케르󰡕 덕분이다.[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앞의 책.]

 

 

 

󰡔호모 사케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테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첫째, 원초적인 정치적 관계는 추방(ban)(곧 외부와 내부, 배제와 포함이 구분되지 않는 지대로서의 예외상태)이다. 둘째, 주권의 근본 활동은, 원초적인 정치적 요소이자 자연과 문화, 조에(zoē)와 비오스(bios)의 접합의 임계(臨界)로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의 생산에 있다. 셋째, 서구의 근본적인 생명정치의 패러다임은 도시가 아니라 강제수용소에 있다. 아감벤은 이러한 세 가지 테제를 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고대 로마법에 등장하는 법적 인물에 입각해서 풀어나간다. 호모 사케르는 희생물로 삼을 수는 없지만, 그를 죽인다고 해서 살인죄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을 가리킨다. 이때 희생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은 호모 사케르에서 사케르라는 표현이 종교적 의미에서 “성스러움”을 가리키지 않음을 의미하고(말하자면 신의 법에서 배제되어 있는 뜻이다), 그를 죽이는 게 살인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호모 사케르가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가리킨다(따라서 그는 인간의 법에서도 제외가 된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모 사케르는 벌거벗은 생명의 최초의 사례를 나타낸다.

 

그런데 아감벤에게 중요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 바로 이 호모 사케르가 법적, 정치적으로 보편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점이며, 근대에서야 비로소 호모 사케르의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아감벤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9장에 나오는 인권의 역설에 대한 분석과 󰡔성의 역사 1권󰡕 마지막 장에서 다루어진 푸코의 생명권력론을 결합하여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발표된 「인권선언」의 생명정치적 함의를 부각시킨다. 그에 따르면 「인권선언」에 등장하는 ‘인간’과 ‘시민’이라는 개념, 특히 ‘인간’은 근대 인간주의적인 전통이 해석해온 것처럼 천부인권의 담지자가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을 가리킨다. 곧 「인권선언」은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양도 불가능한 기본권을 천명한 문헌이라기보다는 아무런 특질도 지니지 않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간, 곧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대상이 되었음을, 곧 주권적 권력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생명정치적 예속이 시작되었음을 공표한 선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이 누리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권리들은 우선 그들 각자가 ‘인간=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주권자의 통치의 대상으로 포섭된 이후에 얻게 되는 특질들의 표현이 된다.

 

아감벤에게 나치의 유대인 강제수용소는 근대성의 문턱에서 선언된 이러한 생명정치적 예속화의 논리적 연속이지 돌연변이적인 현상이 아니다. 더 나아가 ‘수용소’는 벌거벗은 생명이 정치의 대상으로 출현하는 장소들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나 소련의 정치범수용소 같은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훨씬 보편적인 현상을 가리킨다. 가령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난민 신청자들을 임시 수용하는 장소 역시 일종의 수용소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공식적인 법적 기관(경찰이나 외무부 직원들)에 넘겨지기 전까지 이 사람들은 ‘예외상태’ 속에서 아무런 법적 지위나 권리도 지니고 있지 않은 가운데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감벤의 관점에서 보면 나치스 독일과 오늘날의 유럽이나 미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 사이에는 생각만큼 그렇게 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종의 유사 파시즘적인 정치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감벤에게 이런 식의 질문은 아마도 잘못 제기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자유주의적 정치체를 그와 다른 정치체 내지 사회 구조로 대체하는 것을 정치의 주요 과제로 상정하고 있으며, 그러한 과제를 수행할 어떤 주체(및 조직)의 형성을 연관된 과제로 제기하고 있는 데 반해, 아감벤에게 이러한 관점은 엄밀한 의미의 메시아주의

와 무관하며, 따라서 진정한 정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감벤은 사도 바울에 관한 저작인 󰡔남겨진 시간󰡕에서 종말론적 시간과 메시아적 시간을 구별하고 있다. “메시아적 시간은 시간의 끝이 아니라, 끝의 시간이다. 사도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최후의 날, 시간이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수축하고 끝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낫다면, 시간과 그 끝 사이에 남아 있는 시간이다.”[Giorgio Agamben, The Time that Remains: A Commentary on the Letter to the Romans, trans. Patricia Dailey,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5, p. 62.]

 

이러한 메시아적 시간에서 수행되는 일은 바디우가 주장하듯이 법적인 정체성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정초하는 일이 아니라,[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앞의 책.]

 

오히려 모든 정체성을 깨뜨리고 그러한 각각의 정체성들(유대인, 그리스인 등)이 자기 자신과 불일치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감벤은 󰡔세속화 예찬󰡕의 한 대목에서 계급 없는 사회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계급 없는 사회란 계급적 차이의 모든 기억을 폐지하고 잃어버린 사회가 아니라 새로운 사용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장치들을 비활성화해 그 차이 자체를 순수한 수단으로 변형하는 법을 배운 사회이다.”[조르조 아감벤, [세속화 예찬], 126쪽] 따라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새로운 주체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또 주권적 권력이 만들어 놓은 구별과 분리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별과 분리를 “새로운 사용에 집어넣는 것을 배운다는 것, 분리를 가지고 노는 법을 배운다는 것”[같은 곳]이다. 매우 독창적이고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처럼 새로운 사용을 만드는 일, 분리를 가지고 노는 법을 배우는 일은 누가 하는 것인가? 모든 사람이? 지금 여기서? 이것이 진정한 해방인가? 해방의 정치 없이, 또는 그 이전에 대항 폭력 없이 이루어지는?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

    

 

지금까지 좌파 메시아주의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인 논평을 제시했지만, 우리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이것이 주된 목적이 아니다. 만약 이것이 목적이었다면, 아마 이 글 대신 좀 더 정교한 분석을 담은 다른 논문들을 썼을 것이다. 이 글의 초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사상가들 및 다른 바깥의 정치의 이론가들 자체보다는 이들을 수용하는 한국의 맥락, 담론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에 놓여 있다.

 

지난 1990년대 이래 포스트 담론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서양 인문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이 세 사람의 저작을 외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마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는 물론 이들의 저작이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매우 깊이 있고 독창적인 주장과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 한국 인문학에 고유한 또 다른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포스트 담론의 수입과 동시에 이루어진 현상으로서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라는 현상이다. 내가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라고 부르는 것은, 오늘날 한국 인문학에서 회자되는 많은 담론들이 미국을 통해 가공되고 변형되고 수입된 담론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오늘날 한국에서 비판적 사유의 전거로 작용하는 여러 사상가들은, 그가 프랑스 사상가든, 이탈리아 사상가든, 독일 사상가든 간에, 미국이라는 생산과 유통의 회로를 거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게 되었다. 가령 왜 지금 이 글에서 이 세 명의 사상가를 비롯한 바깥의 정치의 이론가들을 논의하고 있는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들이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가 초래하는 몇 가지 맹점이다. 우선 이는 미국 학계의 특정한 일부분이 생산해낸 담론을 전 세계적인 담론으로, 서구 담론 전체

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는 미국에서 변형되고 가공되고 재조립된 ‘미국제 담론’을 ‘프랑스제 담론’, ‘이탈리아제 담론’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만든다. 한 가지 사례를 든다면, 들뢰즈, 데리다, 푸코, 라캉, 리오타르 등과 같은 여러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 한국에서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로, ‘포스트구조주의자들’로 지칭되는 현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에서는, 리오타르를 제외한다면, 누구도 이런 명칭으로 분류되거나 지칭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따라서 이 현상은 비판적 사유의 미국화라는 경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이 문제에 관한 좀 더 상세한 논의는 진태원, 「‘포스트’ 담론의 유령들」, 앞의 글 참조.]

 

 

더 나아가 이러한 경향은 인문학을 고립화하는 효과를 수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의 고립화는 두 가지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는 인문학이 다른 학문 분과, 특히 사회과학들과의 연계를 점점 더 상실해가고 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비판적 인문학을 자처하는 경우에도 사회적 실천, 특히 조직적인 실천과의 연계를 맺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이론과 실천의 융합을 강조하고 항상 조직된 운동, 특히 노동운동과의 연계 속에서 이론적 논의를 전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비판적 인문학은 그와 비견될 만한 아무런 실천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말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 내 말은, 이 모든 문제점(이것들을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면)이 미국 학계의 결함이나 오늘날 한국에서 논의되는 외국의 주요 사상가들의 한계에서 비롯한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수용된 포스트 담론이 별로 실천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주의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면, 이제 그들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내세우면서 등장하고 있는 포스트-포스트 담론들이 포스트 담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보여줄 수 있는가 여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 글에서 거론된 서구 인문 담론들은 아마도 오래지 않아 포스트 담론의 아류들로 전락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담론들을 지지하고 그 사상적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무엇보다도 어떻게 이 사상가들을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신자유주의적인 기표에서 떼어낼 수 있을지, 어떻게 그들을 조금 더 위험하고 급진적인 사유의 모험 속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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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2019-04-26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