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반딧불 후기
삶이 계속되는 한 싸움도 계속된다.
- 6월 반딧불 <원자폭탄> 상영회 후기
우공
나는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다. 두 번의 전쟁을 보기는 했다. 걸프 전과 이라크 전. 하지만 그것은 ‘시뮬레이션 게임’ 같았다. 우리에게 항상 새로운 것만을 보여준다는 ‘뉴스’는 마치 신제품 게임을 내놓듯이 전쟁을 보여줬다. 텔레비전 속 포탄이 떨어지는 마을의 사람들은 나완 상관없는 ‘게임 속’ 사람들이었다. 그래, 게임이었다. 하지만 모든 영상들이 전쟁을 이렇게 다루지는 않는다.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의 풍경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기차역에서 사람들은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시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아이들은 동무들과 골목을 뛰어다녔고 할아버지는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6월 반딧불 상영작 <원자폭탄>은 이런 장면과 함께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영화는 일상의 풍경 사이사이로 원자폭탄을 떨어트리기 위해 군대가 준비하는 장면들을 하나씩 집어넣는다. 그리고 곧 화면은 하얗게 변한다. 기차역의 사람들, 골목의 아이들, 담배 피시는 할아버지의 손. 이 모든 것이 하얗게 되어버렸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영화는 계속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피해자들의 참상을 사실감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한 아이와 말 같이 생긴 동물이 장면과 장면들을 옮겨 다닌다. 아이의 표정은 웃는 듯 하지만 울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알 수 없다. 영화는 점점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나는 점점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사실 특별히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나 였다. 머리 속에서 질문들이 마구 솟아났고,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전쟁이란, 원자폭탄이란,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렵고 거대한 생각들이 몰려들었다. 더 이상 그들은 게임 속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전쟁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었다. 아니 전쟁은 게임이 될 수 없다.
영화가 끝난 후 난 강연자로부터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분명 나와 같이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 속에는 몸속에는 전쟁이 살아 있었다. 원폭 피해 2세. 그들은 폭탄을 맞은 당사가 아니었지만 원자폭탄의 피해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유전은 2세에 이어서 3세에게도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원폭 피해가 유전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피해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그들은 ‘차별’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숨겨야만 했다. 하지만 최근 원폭 피해 2세의 인권은 원폭 피해 2세인 김형률 님의 죽음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들의 전쟁 피해의 소수자로, 역사 속의 소수자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 보상과 치유는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벌써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상황을 알면서도 시간을 끌고 있다. 원자폭탄 사용을 ‘국익’이라는 이유로 주장했던 미국의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부인하고 침묵 할 뿐이다. 하지만 원자폭탄이 떨어진지 60년인 올해 원폭 피해 2세들은 부인과 침묵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들의 삶이 계속되기 위해 그들의 싸움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