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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북리뷰를 리뷰한다

車美禮(세계일보 논설위원)

신문마다 북 섹션을 만들고 있다. ‘북리뷰’는 문화일보의 북섹션 제목으로 처음 선을 보였다가 본지와 합쇄된 제목이고, 다른 신문들도‘책마을’‘행복한 책읽기’‘책과 사람’‘책의 향기’‘Books’‘북월드’등 다양한 제목으로 북섹션을 내고 있다. 얼핏 보면 화려한 프런트 면에 새로 나온 책정보가 가득하고 무척 고급스러운 인상이다. 매주48면이나 되는 넉넉한 분량에 책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은 필수다. 그만큼 공들인 지면들이어서 참 잘도 만든다는 느낌도 준다. 깨알같은 신간정보를 가득 채운 페이지와 까다로운 주제의 무거운 책들을 200자 원고지 한두 장으로 요약 소개한 것들을 보면 기자들의 엄청난작업량의 무게와 그 정신적 노고에 마음이 안쓰러워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일간지의 북섹션이 독서나 출판관련 기사를 다루는 방식으로 과연 적절한가. 결국 문화면으로부터 분화돼 나온 북섹션들의 구성과 취재방식—한마디로 책을 소개하는 방법과 출판뉴스를 다루는 방식은 온당한가, 이런 스타일을 계속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점이 많다. 담당기자들은 업무량의 살인적 과부하(過負荷)로 크게 행복하지 않다.

출판계나 저자들도 책이 크게소개됐을 때 기분 좋아하긴 하지만 크게 행복하지는 않다.북섹션 전면에 크게 소개됐다고 해서 책이 꼭‘움직여’(서점에서 잘 팔려)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각적 편집을 중시하는 섹션표지의 특성상 글 반, 그림 반으로 컴퓨터 그래픽스 등을 이용해서 만든 첫 페이지에는‘화끈한’큰 제목이 달린다. 그렇게 소개된 책들은 시선은 끌지만 튀는 편집만큼은 독자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기사만 대충 훑어보고 책은 사지 않는다는 출판인들의 불평도 나올정도다.

북리뷰가 단순히 책에 관한 홍보 차원을 넘어‘그 책을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얘기도된다. 요약기사만 읽고 책을 다 읽은 척하는 인구를 양산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프런트 면이나 큰 기사로 다뤄지지 못한 책들을 낸 출판인과 저자들은좀더 불행하다. 자신들 책이 크게 소개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데 대한 불우의식, 신문지면이 형평성과 공정성을 잃었다고 여기는 데서 느끼는억울함 때문이다. 북섹션의 대상 독자층이라 할 수 있는 저술가와 독서가등 비교적 우호적인 독자들조차 그 면이 그 면 같다며‘차별화 부재=획일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개선책은 없는가. ‘북섹션’의 先史시대일간지 북섹션의 문제는 결국 섹션화 일반의 문제로, 더 위로 거슬러올라가면 문화면 출판뉴스 지면의 문제로 귀결된다. 일간신문 전체의 지면이 8면이었던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방송 프로그램 지면을 제외한 문화면은 1일 1면 정도였고 모든 장르의 문화뉴스와 생활·여성·가정·건강정보가 함께 실렸다. 매일 데스크와 67명의 기자들이 회의를 해서 각차미례서울대 영문학과 졸업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졸업중앙일보 문화부 기자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출판저널」편집주간문화일보 문화부장,‘북리뷰’편집장세계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저서:「미술 에세이」「강철군화」(역서) 외 부문의 정보를 교환한 다음 톱기사를 정하고 뉴스가치에 따라 지면을 배분할 때 곧잘 교육이 톱기사로 다뤄졌던 것도 그 때문이다.

봄나물 무치기, 육아기사와 교과서 문제, 음악연주회, 문학 인터뷰가 같은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엔 책에 관한 뉴스는 문화단신으로나 취급되었다. 비중 있는 작품을 낸 문인이나 원로학자들의 저술 소식이 가끔 톱이나 큰 기사로 다뤄졌을 뿐 여러 권의 책을 한 지면에 소개하는 것조차 보기 힘들었다. 우리나라 출판계와 출판물량이 그만큼 빈약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출판이 문화와 달리 띠제목을 달고 버젓이 한 면을 차지하게 된 것은신문의 증면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80년대부터였다. 신문이 증면되면독자서비스 차원에서, 그리고 인건비 부담없이 쉽게(?)지면을 채울 수있다는 발상에서 경영진이나 편집국장들은 간지(間紙)지면부터 늘려놓는다. 실제로 특집이나 외고(外稿)를 싣는 편이 정치·경제·사회 등 속보성 뉴스지면을 늘리는 것에 비하면 부담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한정된인원의 문화부 기자들이 매일 23면의 문화면을 제작하게 되면서 엄청난 기사량을 비교적 편리하게 소화하기 위해 요일별로 담당분야 기사를 몰아주는 문화면의‘일간주간지’시대가 시작되었다.

대개 문학이나 학술기사와 맞물려 지면 한쪽을 갈라 책소개를 하거나‘출판화제’등 컷과 함께 간단히 소개되던 출판뉴스가 별도의 지면을 차지하게 된 것은 당시의 이런 언론환경 탓도 컸다. 더구나 80년대엔 언론탄압에 이어 출판탄압도 가장 극심해서 해직 언론인들이 내는 출판물이나‘이념서적’으로 분류된 사회과학서 소개는 어떤 신문에도 한 줄도 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감시권 밖에 놓여 있던 경제신문에서 일하던 필자는 과도하게 여러 면을 혼자서 채워야 하는 업무량을 쉽게 해결할 겸, 끊임없이새책을 들고 오는 언론계 선배들을 도울 겸 양쪽 페이지에 걸친 널따란출판 페이지를 만들어서 그런 책들을 마음껏 소개하기 시작했다. 문화면과 경제면에서 모두‘왕따’당하는 경제학 이론서들을 비롯, 주로 신문에소개된 적이 없는 비대중적인 학술서와 인문교양서들을‘독서 다이제스트’란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비전공 분야 책을 며칠씩 밤을 새워 읽으며 요약해야 하는 작업과 엄청난 신간소개 기사 작성은 모두 나의 몫이었으니 자승자박 꼴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벌레가 아니었던들 살아남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일을 5년이나 계속했던 것은 암울했던 시대에 언론의 침묵을대신해서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진보적 세계관을 다룬 좋은 책들을 펴낸언론계 선배들 때문이었다. 특히 문학·인문과학·사회과학 분야에서 뛰어난 기획력과 사명감을 가지고 꼭 필요하지만 아직 없었던 책, 남들이생각조차 못했던 창조적 기획물을 내놓던 단행본 출판인들의 열정 덕분에 나 스스로 출판면 제작을 마치 언론자유운동인 것처럼 착각했던 측면도 있다 .80년대 중반엔 314종의 책들이‘이념서적’이란 꼬리표를 달고 금서(禁書)가 됐다가 127종이 해금되는 등 엎치락뒤치락 난리가 났다. 출판인 수십 명의 구속도 잇따랐다. 에리히 프롬의「마르크스의 인간관」, 다렌돌프의「산업사회의 계급과 갈등」, 모리스돕의「자본주의 이행론」같은 마르크스주의 비판서나 오랜 대학교재들까지 금서로 찍혀 해방 이후 최대의책의 수난시대를 기록했던 시기다.

원로출판인 정진숙씨(을유문화사)등 출판계 원로들이‘출판의 자유는어떤 여건과 어려움 속에서도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의‘출판인 17인 선언’을 발표할 정도로 탄압이 심했지만 신문의‘차별화’간판이 돼버린 독서 페이지는 계속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몇년 뒤 모든 중앙 일간지들이 12면, 16면, 24면으로 증면경쟁을 계속하면서 두 페이지짜리 독서·출판 페이지는 일간지 문화면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학술이나 문학면과 일부 중복되기는 했지만 책소개에 대한 제한이 풀리면서 출판뉴스는 문화면의 필수적인 띠제목이 되었다. 주간지나잡지에 문외한이었던 필자는 신문사를 떠나 출판인들의 권유로‘국내 최초의 서평지’「출판저널」창간을 준비했고‘책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소개하는 온갖 요리법’을 위해 머리를 싸맸다. 민주화와 함께 사회과학출판사 대표들의 구속사태도 진정되었고 다시 언론사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 생각하면 출판탄압이 극에 달한 그 당시가 한국 출판계의 한 전기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서의 책의 보편적 가치뿐만아니라 한 사회에 있어서 책이 던지는 메시지와 지식인들의 출판활동 자체의 의미가 극대화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출판담당 기자들은 출판인들과 동지적 관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그런 전통은 일부 남아 있다. ‘대중성’과‘차별성’의 자가당착노트북 컴퓨터와 인터넷의 정착으로 문화환경이 가히 혁명적 변화를 겪고 난 90년대 들어‘대중성’은 언론매체의 절박한 화두가 되었다. 세계화와 개방의 영향으로 폭발적인 문화 증대, 정보의 홍수시대를 맞은 언론계는 광고의 호황으로 무한대 증면경쟁을 시작했다. 대중의 취향에 맞추어상업적 번영을 구가해보려는 대중화 경쟁도 치열해졌다. 섹션화도 그 하나다.

특히 90년대 중반부터 일간신문의 섹션화·잡지화 경향은 더욱 심화된반면, 신문마다 질적인 차별화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대중화의 기치아래 그 어느 때보다도 비슷비슷한 지면의 획일화를 가져온 것이 현실이다. 고급문화와 저급한 대중문화의 이분법도 효력을 잃었다. 양자를 혼합한‘열린 음악회’류의 TV 프로그램과 대중적 뮤지컬, 팝아트 상품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탈장르 크로스오버적인 문화양태가 중심을 이루게되었다. 이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일간주간지’형태의 문화면들은 한때 48면까지 늘어났던 비대한 신문의 몸집에 걸맞게 진짜 주간지(섹션)로 변하기시작했다. ‘대중화’에 대한 해석도 사주와 경영간부, 편집국장, 데스크,기자마다 다르게 마련이었다. 80년대 도입된 비판 커뮤니케이션 연구의패러다임은 대중문화를 단순한 미학적 관점이 아니라 좀더 구조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시각들을 소개했고 대중 자체에 대한 연구도 심도 있게 진행되었지만, 학계에 비해 신문 종사자들은 지적 수준이 낮은 다수를통칭하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에게 대중은 ▶되도록 많은 사람 ▶영어와 대중스타를 매우 좋아하는 1020대 젊은 독자층 ▶쉽고 재미있는 기사를 원하고 글의 내용보다는 시각 이미지에 끌리는 하향평준화된 다수였다. 이에 따라 섹션이든분리되지 않은 간지 타이틀이든 영어의 범람은 90년대 신문섹션의 가장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특히 프런트 면은 뉴스나 정보와 별 관련이 없는 젊은 스타들의 사진이나 10대가 선호할 만한 합성 이미지들로 채워졌다. 대중화로 손님을 끌려는 상업주의가 결국은 획일화를 낳은 것이다. 내용도 본지의 단신을 확대하거나 한번 보도된 뉴스를 다양하게 재구성한 리바이벌 기사로 소재발굴의 어려움 때문에 모두가 비슷한 내용을 중복 게재하는 획일화를 낳았다. 문화행사를 소개하는‘문화마당’, 여행정보를 실은‘Travel’, 재테크로 독자를 끌기 위한‘Money’섹션을 비롯,어느 신문에서 특이한 아이디어를 내놓기가 무섭게 일제히 뒤따라가는바람에 모든 신문이 똑같아져 버리는 행태는 여전했다. 지금은 핑크빛 종이로 일간지 중‘유일하고 가장 확실하게’차별화를이룬 문화일보의‘북리뷰’는 그런 배경에서 1996년 최초로 탄생했다.

후발 신문기업으로서‘고급지’를 표방하다 보니 거기에 걸맞는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고, 본격적인 서평 지면을 원하는 출판계와 고급스럽고 색다른지면을 원하는 경영진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북리뷰’는 타지에도북섹션이 줄줄이 생길 것을 염두에 두고 보통명사를 선점한 것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북리뷰는 아니다. 그것은 이 글이 모든 출판섹션을 다 읽고 통계적으로 비교분석한 리뷰가 아니어서 미안한 것과 마찬가지다. 「출판저널」이 그랬듯이 전문 서평가가 없고 전문 독서가나 애서가층도매우 얇은 우리네 풍토에서는 본격적인 서평지나 서평 지면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북섹션의 태생적 한계였다. 필자가 북리뷰 섹션 편집장을 맡게 된 이유도「출판저널」창간의 노하우로 단 1주일만에 섹션을 창간할수 있었다는 점과 출판계의 희망이 반영된 것일 뿐이다. 다양한 책소개를 통해 독서층을 넓히고 책 선택에 도움을 주는 역할에그친다는 점에서 모든 신문이 북섹션을 발행한 것은 문화적으로는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다른‘차별화’전략과 마찬가지로 북섹션 역시 똑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게 현실이다.

프런트 면의 선정성(?), 획일화와 공정성에 관련된 문제가 그것이다. ‘출판뉴스’와‘비평적 서평’의 공유를획일성과 공정성은 북섹션 편집에 있어서는 같은 얘기다. 지난해 한국언론재단이 제기한‘보도비평—신문의 북리뷰,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북리뷰 섹션이‘신간’위주의 속보경쟁에 매몰된 나머지 매체간 차별성이없고 획일적으로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참으로 옳다. 3개월간 4대중앙지 북리뷰 지면을 분석한 결과‘서평’으로 다뤄진 352종의 책 가운데74종이 2개 이상 신문사에서 중복 취급되었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당연히독자 입장에서는‘수상하게’볼 수 있다. 특히 인문교양서 중에서 똑같은출판사의 번역신간이 34개의 프런트 페이지를 차지할 경우는 출판계나독자들이 모두‘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뉴욕타임스 북리뷰’처럼 본격적인 서평도, 프랑스의 전설적 독서프로 진행자인 베르나르 피보처럼 26년간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철저한 책읽기도 지금 같은 북섹션 제작여건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북리뷰는 그 성격상 애초부터 속보경쟁 대상이 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지면의 권위를 담보할 수 있는 공정성과, 진지하고‘느린’지성적 성찰이 없는 북리뷰는 독자의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12명의 담당기자가 코피 나게 꾸려가고 있는 우리 북섹션의 내부사정에 가장 크게기인한다. 매주 46면의 북섹션을 꾸려간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가장나쁜 것이 프런트 면을 새로 나온 책으로 넣으려는 속보경쟁임은 물론이다. 격주간 서평전문지「출판저널」창간작업과 기자에게 전권이 주어졌던‘북리뷰’초기의 창간체험을 비교, 고백하면 프런트 면에 대한 욕심이 북리뷰 섹션 전체를 비틀어버린 경우가 많았다. 특히 출판인들과의 친소관계, 신문사 내외와 위로부터의 청탁, 다른 면에 대한 눈치보기가 작용하면 책 고르기는 기본부터 허물어진다. 한국사회의 특성상 그런 일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그래도 기본은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공정성을 우선하다 보면 책의 가치우위가 비틀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중심은 그렇게 가야 한다. 스스로 시행착오를거듭하며 20년 가까이 터득한 몇 가지 요령(?)을 소개하면 이렇다.

①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프런트에서 끝 페이지까지의 균형, 한 페이지 안에서도 톱에서 한 줄짜리까지의 균형, 저자와 책의 무게의 균형(특히 전문학자가 오랜 세월 저술한역저를 아마추어가 쓴 같은 종류의 편집물보다 우대해서는 안됨). 시선을 끌기위한 연성(軟性)기사가 너무 많거나 별난 책, 특이한 책 위주로 프런트가제작되면 안된다. 통시적 균형도 중요하다. 지난주와 이번주 북리뷰 사이에도 가치의 어떤 일관성이 보여야 한다.

② 서평의 활성화기자가 쓰지 말고 그 책을 진정 평할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원고료와 시간을 충분히 주어 시킨다. 그 자격(전공, 학위, 그 방면 저술과 논문)은 지면에 명기한다. 부실한 책의 서평게재 청탁이나 압력을 확실하게막을 수 있는 장치다.

③ 출판사의 보도자료에 되도록 의존하지 않는다.허위나 과장된 내용의 보도자료가 나오는 것은 기자들이 폭주하는 작업량 때문에 보도자료를 베끼기 시작한 이후의 현상이다. 여러 번 중판된책이나 표지갈이를 한 책을‘최초’로 대서특필하는 실수는 출판사 책임도있지만 기자들의 책임도 크다. 원제목이나 책의 제원과 내용을 정확히 양심적으로 밝히는 출판풍토를 만들도록 언론과 출판계가 함께 노력해야한다.

④ 서평이나 기고문이 부실할 때는 필자의 명성과 관계없이 끈질기게 수정보완을 요구한다.내 기억으로는 서평 내용에 이런저런 논급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을 때화를 내거나 개고(改稿)를 거절한 분은 없었다. 고치면 서평이 한결 서평다워지고 지면의 품위도 생긴다. 북리뷰 편집자의 신뢰와 권위도 함께 자란다.

⑤ 내가 모르는 것은 남도 모르고, 내가 아는 것은 나만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기자의 속성이다.이를 탈피하지 못하고 수필 같은 기사나 서평을 마구 쓰는 기자는 장기적으로 지식인 사회의 신뢰를 잃게 된다. 자신의 독서량과 학식의 한계를드러내는 부적절한 개념어의 낭비와 논리의 비약을 자제해야 한다. 지면이나 책 고르기에 대한 변명조의 상자글도 지면낭비다. 담당기자가지면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북리뷰가 아니다. 책소개와 독후감 청탁에 치중하다 보니 출판계 뉴스나 본격적인 서평이 점점 실종돼가는 것도 문제다. 정보의 정확성와 출판계 움직임의 현장성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기대해본다.

관훈저널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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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7-2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 서평란을 몇 번이나마 읽어본 사람들은 대개 공감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잘 지적해놓은 글이다. 문제의 해법도 설득력이 있다. 오히려 상식에 가까운 해법
들이다. 그런데 이게 실현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