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올 [마르크스의 유령들] 2판 역자 서문입니다.
오랫동안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려온 분들께는 감사의 뜻과 동시에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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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유령들 2판 역자 서문
지난 2004년 자크 데리다가 사망함으로써, 1960년대에 시작된 이른바 ‘구조주의 운동’(여기에는 좁은 의미의 구조주의만이 아니라 이른바 ‘포스트 구조주의’ 역시 포함된다)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20세기 후반의 철학 및 인문사회과학, 그리고 예술의 향방을 규정했던 이 거대한 사상 운동은 앞으로 사상사가 및 지성사가들을 무척 바쁘게 만들 것이다.
구조주의 운동은 기호학, 정신분석, 마르크스주의라는 세 가지의 ‘이단적 과학’을 때로는 숙주로 삼고, 때로는 표적으로 삼아 전개되었다. 그런데 약 50여년의 시간적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이 운동에서 진정한 쉬볼렛으로 기능했던 것은 바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이상한 종류의 쉬볼렛이었다. 다소 단순화하자면, 그 운동의 초기에 마르크스주의는 이 운동의 가담자들과 그 적수를 가늠하는 암호였다. 이들 중 상당수가 프랑스 공산당을 경멸했던 이유는 그것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정당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마르크스주의는 이 운동이 거리를 두어야 하는, 그리고 필경 떨쳐버리고 지워버려야 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와 경쟁하거나 그것을 대체하는, 또는 그것을 일부로 포함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 대표자들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쇄신을 화두(중 하나)로 삼던 운동이, 결국 ‘반(反)마르크스주의’로 또는 ‘마르크스주의-이후’로 귀착된 것이다. 그런 만큼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구조주의 운동 또는 그 영미식 판본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 담론’을 증오하거나 경원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매우 단순하게 축약되긴 했지만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지난 1993년에 출간된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여러 모로 이례적인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책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직후에 출간되었으며, 또한 구조주의 운동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무렵에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작별을 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을 상속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스로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때맞지 않는’ 또는 ‘시대에 거스르는’ 저작이라고 불렀을 때 데리다 자신도 염두에 두고 있었겠지만, 역자로서는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여전히 우회하기 어려운 저작으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현재성을 지닌 저작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 운동 양자를 모두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 두 가지 유산 및 그것들 사이의 갈등과 차이를 오늘날 정치를 새롭게 사고하기 위한 공동의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아무쪼록 국내에서 의미 있는 흔적들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미 1996년에 국내에 출간된 바 있는 이 책을 역자가 2007년에 다시 번역해서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도서출판 이제이북스 전응주 사장의 후의 덕분이었다. 그 뒤 초판 번역에서 드러났던 몇 가지 오역을 수정하고 문장들을 새로 다듬어 이렇게 다시 2판 번역을 낼 수 있게 된 것은 그린비 출판사 여러분들의 우정 덕분이다. 유재건 전(前) 사장과 김현경 전(前) 주간, 그리고 박순기 현 대표 및 편집부 여러분들의 애정에 힘입어 이 번역이 다시 한 번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분들 모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초판 번역이 절판된 이후 많은 독자분들이 재출간 일정을 문의해 준 바 있다. 그때마다 곧 출간될 것이라고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해왔는데, 이제야 마음의 짐을 덜게 되었다.
2014년 7월 안암동 연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