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에서 말씀드렸듯
이 사람은 네그리의 동료라고 하는데
이번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견을 제시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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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 스칼쪼네 : 유럽 헌법안에 대한 프랑스의 국민 투표

꼬리에 드 라 세라가 인터뷰함, 2005년 5월 15일
칼과 로자가 이탈리아어에서 불어로 번역함.

원문 : https://lists.resist.ca/pipermail/aut-op-sy/2005-May/001698.html


유럽 헌법안에 대한 프랑스의 국민 투표는 초국가적인(transnational) 첫 번째 주요 논쟁이 되고 있다. 국가의 수반에서부터 당 지도자들을 거쳐 지식인들에 이르는, 외부의 행위자들이 선거 운동에 점점 더 많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리베라시옹>의 지면에서, 노동자의 힘(Potere Operaio)의 설립자인 토니 네그리 교수 - 최근에 프랑스 비평가들에 의해 '새로운 맑스'라고 평가받는 - 는 놀랍게도 [유럽 헌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 '현실주의적 혁명가'로 자임하면서, 교수[네그리]는 유럽 헌법이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그리고 미 제국의 초자유주의에 대한 대륙적인 대안 모델로 향해갈 수 있는 통로라고 주장한다. 만일 우리가 기본적인 인권과 사회적 유럽의 원리들을 긍정하는 연방주의적 모델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대안세계화론자라거나 반자본주의자라고 스스로 내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환상을 품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토니 네그리에게, 그의 옛 제자이자, '엄청난 해' 동안 [네그리와] 길을 함께 걸었던 동지인 오레스트 스칼쪼네가 답한다. 그는 엄청났을 뿐 아니라, 납과도 같았던 이 기간 동안에 투옥되었던 사람들의 사면을 요청하는 단식 투쟁을 막 끝내고 온 참이었다.

O.S. : 전제는 이렇습니다. 찬성은 미국에 반대하는 투표이고, 반대는 르 펜을 위한 투표라고 말하는 식의 단순화 -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어떤 대가를 치뤄서라도 불화와 대조를 보고자 원한다 - 는 내게 부조리한 것 같습니다. 반대에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모자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이것은 이성적으로 추론하는 것을 가로막는 추론 방식입니다. 이것은 또한 찬성과 반대 사이에 [또 다른] 진정한 대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어쨌든 지속될 것이고, 그 체계는 자본주의적인 채로 남아있을 것이며, 때에 따라서는 우리가 이미 들었듯이, 두 번 투표를 하는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투표를 해야한다면, 당신은 프랑스의 극좌파 혹은 전 총리인 로랑 파비우스를 인정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분파처럼 [반대에] 투표를 할 것인가요?

O.S.: 나는 파비우스에 대해 어떤 동감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감정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인 이력상, 나는 반대에 투표하는 사람들이나 운동과 더 가깝습니다. 저는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를 공유하기도 하구요. 마찬가지로 저는 선(善)의 근거들이 찬성의 편에 있다고 설명하는 기관의 거만한 간섭주의(paternalisme)도 거부합니다. 네그리같은 맑스주의자이자 스피노자 전문가가 헌법안을 혼동된 규칙과 개념의 잡탕으로 간주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헤겔은 법(권리)이 어떤 한계를 넘어 경주의 리스트가 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유럽 헌법안이 사회적, 시민적 권리들의 수준에서 커다란 전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단 네그리 뿐만이 아닌데요.

O.S.: 많은 이들이 그 텍스트를 읽지 않았죠. 헌법안은 국민국가적 법률에 대한 오싹할 정도의 위반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전체주의적인 민주주의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국경 통제, 이민자들, 공권력의 사용, 일탈자들에 대한 처벌에 대해 행해지고 있는 각종 제안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법의 이름으로, 사宕湧?또한 안보와 처벌이라는 고민거리에 대한 답변을 찾고 있는 중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가인 네그리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시라크조차도 유럽 모델이 미 '제국'(imperium)에 맞서, 전행성적인 통치성에 재평형을 가져오는 요인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람들은 보다 강하고, 보다 연합된 유럽은 미국의 공격 속에 있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O.S.: 사람들은 이 헌법을 통해서 유럽이 보다 강력해지리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합니다. 저처럼 맑스를 참조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미국적이지도,중국적이지도, 유럽적이지도 않음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자본주의는 도처에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모델이죠. 자본주의를 변혁하고, 그것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도처에 있는 메카니즘들을 토론에 부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적어도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의 삶이 소위 진보, 내일 항상 보다 나아진 세계가 되라는 약속에 다양하게 의존한 채로 남아있는한, 다소 자유주의적인 유럽이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반대로 현재는 사회적 획득물들에 대한 축소와 해고로 이뤄집니다.

토니 네그리는 연방주의에 의해 국민-국가들이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데요.

O.S.: 그것이 바램인 한에서, 저는 그 점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국민-국가들은 연방 유럽이나 초 국가의 창설을 통해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보다 강하고, 보다 연합된 유럽이, 석유를 위한 이라크에서의 십자군이라고 네그리가 정의한 것에 대립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당신에게는 매혹적이지 않은가요?

O.S.: 그것이 현실적이었더라면, 매혹적이었겠죠. 유럽은 NATO에 남아있습니다. 유럽의 일부는 전쟁에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파괴로 향하는 휴머니티 경주를 멈추지 않는한, 맑스주의자들이 그래야하는 것처럼, 우리가 현실에 대해 진정으로 성찰하기를 멈추지 않는한, 저는 평화적인 지평의 메시아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늘 그렇듯, 사람들은 제가 몽상가라고 말합니다만, 유럽 헌법안에 대한 찬성이냐 반대냐의 질문은 저에게 부시냐 사담 후세인이냐같은 선택지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것은 불일치를 죄악시하고, 혐의를 들이밀고, 비판을 공박하는 것에로 이르는 변형적인 마니교입니다. 그것이 과연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일까요?

(양창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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