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람/경탄admiratio; admiration


“admiration”은 일상 어법에서는 보통 “경탄”이나 “찬양”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철학, 특히 그들의 정념 이론(따라서 인간학 및 정치학)에서는 고유한 개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데카르트는 정념passion을 여섯 가지 기초 정념들passions primitives로 분류하는데, 이 중 첫 번째 기초정념이 바로 admiration이다. 그러나 이 때의 admiration은 경탄이나 찬양 등을 의미하지 않으며, “놀람”을 뜻한다. 곧 알려지지 않은 외부 실재와 처음으로 마주쳤을 때 마음이 느끼는 놀라움의 감정이 바로 admiration이다. 따라서 이는 이로움과 해로움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나는 정념 또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반대항을 갖지 않는 정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순성을 정념분류의 기준으로 삼는 데카르트에게 admiration은 제일 첫 번째 정념이 된다.

  반대로 정확히 같은 이유, 곧 아직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고, 따라서 우리의 역량의 증대나 감소와 무관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admiration은 스피노자에게는 정념으로 분류되지 않고 상상의 한 종류로 간주된다. 스피노자에게 정서는 바로 역량의 증대나 감소를 낳는 것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데카르트와는 달리 스피노자에게 admiration은 알려지지 않는 외부 실재와의 마주침을 함축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을 더욱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부적합할수록 사람들의 수동성은 더욱 강화되는데, admiration은 새로운 어떤 것과의 마주침을 뜻하기 때문에 다른 관념들과 연결되기 어려우며, 이러한 연관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실재에 대한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인식, 곧 부적합한 인식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admiration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신학정치론󰡕에 나타나는 이 개념의 용법을 고려하면 그렇다. 󰡔신학정치론󰡕에는 admiration에 관한 적어도 두 가지 상이한 용법이 나타난다. 곧 󰡔신학정치론󰡕에서 admiration은 한편으로는 놀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찬양이나 경탄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예컨대 󰡔신학정치론󰡕 「서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용법은 admiration이 “놀람”의 의미로, 게다가 우중vulgus과 관련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만약 그들이 커다란 놀라움과 함께cum admiratone 신기한 어떤 것을 본다면, 그들은 이것을 신이나 지고한 신성의 분노를 드러내는 기이한 징조라고 믿게 된다.(모로판, 56-58쪽)


[종교가 타락한 이후] 신전 자체는 연극무대로 타락해서, 사람들은 더는 여기에서 교회 교사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연설가들의 말만 듣게 되는데, 이들은 사람들을 가르치기보다는 경탄으로써 그들을 매혹시키고 자신들의 견해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비방하고,  우중이 가장 찬양해마지 않는maxime admiraretur 새롭고 신기한 것들만을 가르칠 뿐이다.(모로판, 64쪽)  


이러한 용례에서 admiration은 일차적으로 무지와 관련된 놀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무지로 인해 생겨나는 놀람은 곧잘 경탄이나 찬양으로 연결되어 예속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다음과 같은 용례는 admiration이 반드시 예속의 도구로만 사용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신은 유일하다.

신이 헌신devotio, 곧 사랑과 경탄의 지고한 대상이 되기 위해서 이러한 교의가 필요하다는 점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존재들에 대한 한 존재의 우월성이야말로 그에 대한 헌신, 곧 경탄과 사랑을 낳기 때문이다.(모로판, 475쪽)


스피노자는 여기서 보편 신앙을 위한 교의, 곧 참된 종교를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의 공통 통념들을 열거하고 있으며, 그 중 하나로 “신은 유일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명제 또는 공통 통념이야말로 사람들의 헌신을 이끌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경탄 또는 적어도 사랑과 결부된 경탄(곧 헌신)은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 정서적 동력이 될 수 있다. (발리바르가 본문 152쪽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경탄이나 찬양은 상상적인 놀람을 전제한 가운데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윤리학󰡕에서 정의한 admiration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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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9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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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0 0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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