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 철학아카데미에서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원래는 12강으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강의를 모두 끝내려고 했는데,

 

번역본들에 워낙 문제가 많아 번역을 수정해가면서 꼼꼼하게 읽다 보니까 절반도 채 진도를 못나갔네요.

 

1996년에 민음사에서 출판된 김성도 교수의 번역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번에 강의 참고본으로 채택한 김웅권 교수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동문선, 2004)나

 

2010년에 개역본으로 출간된 김성도 교수의 [그라마톨로지](민음사, 2010) 모두

 

많은 문제를 내포한 번역본입니다. 이 후자의 두 번역본 역시 거의 질적인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만큼

 

심한 오역들로 훼손되어 있습니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한글본으로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새로운 번역본이 꼭 필요합니다.

 

언제 새 번역본이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존의 번역본들은 데리다의 의도나 논의의 흐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2학기에도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계속 읽기로 했습니다.

 

2학기에는 2부 2장인 "이 위험한 대체보충 ..."에서부터 읽기를 시작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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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2부 2장. ‘이 위험한 대체보충 ...’

2강. 2부 2장. ‘이 위험한 대체보충 ...’

3강. 2부 3장 1절. 󰡔언어기원에 대한 시론󰡕의 위치

4강. 2부 3장 1절. 󰡔언어기원에 대한 시론󰡕의 위치

5강. 2부 3장 2절. 모방

6강. 2부 3장 2절. 모방

7강. 2부 3장 3절. 분절

8강. 2부 3장 3절. 분절

9강. 2부 4장. 대체보충에서 원천으로

10강. 2부 4장. 대체보충에서 원천으로

 

 

강의와 관련된 좀더 자세한 사항은 철학아카데미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acaphilo.or.kr/xe/lecture_2_2/143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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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2013-09-0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마스 님이 다 번역하시죠. 84세에도 번역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런데 굳이 대체보충이라고 해야 하나? 대체나 보충 둘 중 하나만 써도 되지 않을까요? 전 아무리 봐도 중복되는 표현처럼 보입니다. '동해(東海) 바다' 라고 말하는 거하고 뭐가 달라요?

그리고 애매하다는 표현보다는 모호하다는 표현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냥 프랑스 어로 수업하세요. 푸코를 프랑스 어로 수업하는 사람도 있어요. 영어 못하면 인간 취급 안 하는 한국이니 영어본으로 공부해도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국민주의(國民主義)'만 쓰시죠. 그게 발마스 님 생각에 더 부합하지 않나요? 또 갑자기 최초로 그 번역어를 쓴 것처럼 말씀하시지 마시고 지금부터 쓰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쓰실 것 아닙니까?

쾅! 2013-09-16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 사태를 보니 예전에 발마스 님이 예전에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발마스 님이 과학기술을 디스토피아 또는 지구 종말을 초래하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미신적인 거부 또는 종교적인 금기" 의식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일갈하지 않으셨나요?

그러면서 유전자 조작 기술의 善用에 대해 말하는 도미니크 리쿠르에 대해 얘기하시지 않았나요?

과학기술에 대한 종교적인 반대에서 벗어나자는 것은 동의하지만(어디까지난 종교적인 면에서)

과학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자는 주장이나 善用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과학기술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왔고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나요?

저는 오히려 과학이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는 발마스 님마저 공유하고 있는 그 "과학기술이 인간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고 문명이라는 위계적 개념 그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보는데 저와 발마스 님은 그런 점에서 서로 길이 갈라지는 것 같군요.

과학기술 개발하는 시간에 우주에 달나라에 가려고 돈을 낭비하지 말고 그 돈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더 낫지 않나요?

무슨 유전자 조작 기술로 생산한 음식을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 먹이는 것보다 과학기술에 투자한 돈으로 식량 지원을 하거나 공공도서관이나 짓는
게 더 낫다는 겁니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할 판에 발마스 님은 오히려 그 이데올로기를 긍정하라고 말하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