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내가 산 시디를 음악파일로 만들어 블로그를 꾸미는 게 불법이었다고?’ 누리꾼(네티즌)들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1월16일 저작권법 개정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파일공유 등은 예전부터 불법이었다는 사실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저작권자들과 문화관광부도 우선 대형 카페나 웹하드를 주시하겠지만 오는 6월부터는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 보호 강화가 누리꾼들의 개인적인 소통까지 가로막는 인터넷 문화의 족쇄인지,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한 버팀목인지 오병일 (35)진보네트워크센터 사무국장과 전문영 (46)한국음원제작자협회 고문 변호사가 지난 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토론을 벌였다.
전문영 “개인간 교류 반대않는다 기업형 배포행위가 문제”
오병일 “저작권은 소유권 아니다개인간 교류는 보호돼야” 좋은 시절은 가버렸나. 누리꾼들은 노래 가사 띄울 때도 저작권법 위반이 아닌지 고심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우려하는 오 사무국장은 저작권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저작권 보호를 주장하는 전 변호사도 누리꾼의 개인적 소통까지 막자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교집합을 보이는 듯하더니 두 사람은 곧 큰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전문영=1월16일 개정 저작권법이 발효되면서 가수·연주자 등 실연자와 음반제작자의 전송권이 인정됐습니다. 그렇다고 크게 변한 건 아니에요. 이전에도 저작권법 위반일 가능성이 큰 것들이 인터넷에 많았죠. 어디까지가 저작권법 위반인지는 딱 잘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주요 쟁점은 사적복제에 해당되느냐 여부입니다. 저작권법 27조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이나 가족 그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다고 허용하고 있거든요.
오병일=저작권법 안에 ‘저작재산권의 제한’이라는 부분이 있죠. 재판, 교육 등이 목적일 때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쓸 수 있도록 해놓은 겁니다. 이 저작재산권의 제한 사항 가운데 하나가 사적복제이지요.
전=보통 개인적으로 접근해서 쓰면 사적복제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적복제를 허용한 전제는 저작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용하라는 거죠. 지금 인터넷을 보면 형식은 사적복제이지만 실제로는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될 수 있는 형태로 저작자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음반을 인터넷에 올려 공유하면 누리꾼은 개인적으로 내려받는 것이지만 그 결과 음악인과 제작자의 노력과 투자의 결실인 음반은 공유가 가능해져 팔리지 않게 되죠.
오=저나 누리꾼들이 저작권법을 부정하자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간의 일상적인 이용, 문화적인 교류는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 보호돼야 한다는 겁니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개인간 소통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그러한지 검토해야 해요. 또 설사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부분이라면 저작권이 일정하게 제한돼야죠. 문화를 즐긴다는 게 상품을 사는 것만 말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개인이 자기 표현을 하고 다른 사람의 저작물에 대해 평가하고 나누는 것도 문화라는 점은 모두 인정할 겁니다. 인터넷에서는 카페나 블로그에서 이런 활동이 이뤄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시 동우회에서 어떤 시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라고 하는 건 평균적인 사람들의 법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듭니다. 음악 동우회에서도 가사나 곡을 올려놓고 비평할 수 있는 거죠. 이런 활동이 과연 시장에 얼마나 영향이 미칠까요? 특정 곡을 듣기 위해 그 블로그에 찾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거죠. 저작권은 보호해야 하지만 현행 저작권법은 일상적인 개인들의 문화 교류, 자기 표현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습니다.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오/ 카페·블로그서 곡 평할때마다 저작자 허락받는다는 것 납득안돼
전/ 저작권자 자본·노력 깃든 콘텐츠 무체물 이유 대가없는 ‘펌’ 막아야 전=인용이나 비평을 위해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방법은 저작권법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라든지 음악을 인터넷에 띄워 막상 사야할 사람들이 사지 않고 저작물을 공짜로 쓰는 행태를 막자는 거죠. 저작권에서 보호하는 건 정보라기보다는 자본과 노력이 들어간 콘텐츠입니다. 공공재처럼 마구 돌아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보통 형체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무체물에 대한 인식은 별로 성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보나 문화가 교류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서점에 있는 책을 마음대로 가져가지는 않죠. 하지만 병원에서 주사나 약을 안 주고 상담료 내라고 하면 환자들은 받은 게 없는 것처럼 느껴요. 이런 상태에서 인터넷 문화가 형성되니 무체물이란 이유로 대가를 내지 않고 복제, 배포, 전송하는 일이 많습니다. 유체물에 대한 소유권과 저작물을 복제하는 저작권과는 구별해야죠.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내가 시디라는 유체물을 샀다고 해서 그 시디 안에 담긴 무체물인 저작물을 복제, 배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오=누리꾼뿐만 아니라 저작권자 자신들도 저작권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저작권은 소유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저작권자들이 소유권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래서 ‘누리꾼이 도둑질을 한다’라는 표현도 나오는 거죠. 저작권은 일종의 인센티브를 줘서 창작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이죠. 지식은 확산되고 이용됐을 때 또 다른 지식이나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작권법 안에도 예외규정을 둔 겁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 드렸듯이 제가 저작권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현행 저작권법이 디지털화된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저작권은 복제할 수 있는 권리인데 인터넷은 복제나 전송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아요. 책을 사서 빌려주거나 같이 보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됐죠. 비슷한 행동이 인터넷에선 파일을 전해주고 커뮤니티 안에서 공유하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저작권법이 온라인에도 오프라인과 마찬가지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겁니다. 상업적인 이용은 규제해야 하지만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건 문제죠.
전=저도 개인적인 교류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저작권 업계에서 누리꾼 개인에게 저작권료를 요구하거나 고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문제는 저작권 위반 사례가 기업화됐다는 거죠. 대표적으로 소리바다, 벅스뮤직 등이 있는데 이런 업체들이 거의 국내 음반 시장을 고사시키고 있어요. 개인들끼리 이용하는 것처럼 해놓고 그 사이트에 들어온 누리꾼을 상대로 엠피3 플레이어를 팔거나 광고해서 이익을 얻죠. 이들이 시장의 공정한 이용을 해치니 문제를 삼는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인터넷 문화를 모두 기존의 법으로 규제하려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죠. 풀 건 풀고 사적복제의 개념도 인터넷에 대비해 좀 더 명확히해야 합니다. 하지만 음반 시장이 흔들릴 만큼 내버려 둘 수는 없죠. 요즘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음원을 서버에 등록해 이를 형식상 친구목록에 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이트가 생겨나고 있죠. 친구에게 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데 이를 이용해 저작물이 불특정 다수에게 퍼져나가고 있어요.
발언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아, 그건.” “그게 아니라.” 처음엔 느긋하게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두 사람이 상대의 발언 중간을 끊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얼굴빛도 상기됐다.
오=인터넷 상에서 이용 행태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에 올려놓았다는 이유로 모두 뭉뚱그려 규제해요. 시 동우회에 시를 올려도 규제하는 거 아닙니까? 전=시 동우회의 범위와 유포 가능성이 문제가 되겠죠.
오=그럼 예를 들어 시 동우회는 7명 이내여야 하고 100~200명이 시를 놓고 토론하면 안 된다는 건가요? 전=시집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시인에게 저작권료를 내고 시를 옮겨놓을 수는 없는 건가요? 오=시 한편 한편 올려놓을 때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란 말씀인가요? 전=개인적으로 정당하게 퍼가는 경우와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퍼가는 경우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까? 누구라도 들어와서 퍼갈 수 있는 거라면 사적인 이용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런 해석이 개인, 가정 이에 준하는 범위 안에서만 복제해줄 수 있도록 허용한 법에 맞죠.
오=어떤 이용까지를 사적 영역으로 인정할 것인지는 먼저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사실 저작권자 관점에서 보면 옆 사람한테 빌려주는 것까지 문제가 되죠. 모든 사람들이 사서 보고 듣는 게 가장 이익이 클 테니까요. 그렇게 보면 저작권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문화 발전이라는 저작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디지털 환경이 기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에 대한 엄밀한 분석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긍정적이라는 사람도 있고 부정적이라는 사람도 있죠. 인터넷 환경에서 개인의 여가생활 가운데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도 달라졌는데 음반시장 침체를 모두 온라인상 파일 공유의 탓으로만 돌리는 건 문제입니다. 음반시장은 줄었지만 온라인 음악시장과 함께 전체 시장도 커졌다고들 해요. 하지만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의 비중은 줄었답니다. 중간에 이동통신업자 등이 가져가는 수입이 있기 때문이죠.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춰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으면서 이용자들에 대한 규제 쪽으로만 나가고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전=예전에는 저작자들이 시디, 책을 팔면서 저작권료를 받았죠. 인터넷이 들어오면서 이런 유체물의 판매량이나 액수가 줄었습니다. 그러면 저작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무체물 시장, 온라인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작물이 유통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인터넷에선 다 공짜가 돼버렸어요. 소리바다, 벅스 등이 누리꾼의 지지로 성공을 거뒀고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인터넷에서 사업을 벌이려던 사람들은 다 실패했어요. 무료음원에 대항할 수 없는 거죠. 음반 업계 등도 유통을 금지시키자는 게 아니라 정당한 값으로 유통시키자는 거예요. 시장은 결국 인터넷 쪽으로 갈 텐데 지금처럼 개인적인 문화교류 차원에서 공짜로 유통되면 재생산을 할 수 없게 돼요. 인터넷의 장점인 신속성, 대량 유포라는 문화 교류의 기능에 정당한 유통구조가 정착되게 해야죠.
오=저도 유료화 자체에 반대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기존과 마찬가지로 저작권자의 복제권을 그대로 인정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일상적 소통 행위가 사이버 공간에선 복제와 전송을 통해서만 가능한 거죠. 블로그나 미니홈피는 개인과 지인들이 이용하는 사적인 공간이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한다면 사적인 소통 역시 가로막히게 되죠. 기존엔 가능했던 소통이 이젠 금지된다고 하니 네티즌들이 뜨겁게 항의하는 겁니다. 단순히 몰라서 또는 공짜로 쓰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규제는 하는데 정상적인 통로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태입니다. 개인은 단속 안 할 거라고 하시는데 말이 안 됩니다. 법이 ‘이건 불법이야, 하지만 단속 안 할게’ 한다고 위협이 사라지진 않아요.
전=내려받기가 가능하면 이미 개인적인 이용의 범위를 벗어나 나눠주겠다는 겁니다. 비밀 계정을 만들어 개인이나 몇몇 사람만 들을 수 있다면 상관 없겠지만요. 좀 다른 관점을 짚어보고 싶은데요. 우리나라 법체계는 대륙법계로 영미법에 비해 사회적 현상에 느리게 대응하는 편이죠.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다 보니 어디까지가 위법이고 어디까지가 적법인지 판례조차도 잘 안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법은 사회적 약속이니까 지켜주고 잘못된 부분은 개선해야 겠죠. 덧붙이자면 인터넷 관련 외국판례가 우리나라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돼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문화, 기술 발전이 우리나라가 첨단을 달리고 있는 거죠.
오 사무국장은 정부가 저작권 보호 강화로 문화산업만 키우려 하지 말고 문화 발전을 위한 공공 인프라를 튼튼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변호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문화산업이 말라가고 재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 모두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협정이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판했지만 해결 방법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렸다.
오=안타까게도 현재 저작권법 자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모색하기 힘듭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도 세계무역기구의 지적재산권협정(트립스) 틀 안에 있기 때문이죠. 국제협약 자체를 바꾸기가 힘드니까 그 안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는 현행 저작권법이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지 근본적으로 묻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저작권도 특허처럼 보호받고 싶은 사람은 등록하게 해 그 데이터베이스만 검색하면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있다고 봅니다. 요즘은 블로그가 일반화돼 있고 누리꾼이 창작자예요. 현행 저작권법에선 창작 즉시 저작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창작자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길 원하더라도 다른 사람 처지에선 이를 알 수가 없어요. 디지털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원격 접속은 못하고 도서관 가서 열람해야 해요. 그러면 디지털 도서관을 왜 필요한가요? 저작권을 요구할 때만 주면 그런 책만 빼고 나머지는 사람들이 집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문화는 공유, 확산됐을 때 새로운 창작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 논쟁이 일기 전 공유 문화 때문에 인터넷이 풍부한 정보의 바다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산업 쪽에서야 문화를 경제재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문제는 정책 결정자나 학자들마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오병일
“시장 침체이유 파일공유탓 잘못 사적영역 범위 사회적 합의를” 전문영
“음반사 열중 아홉은 경영난 허덕 저작권 비판보다 인식변화를” 전=말씀하신 저작권 등록제도 하나의 정책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권리 주체의 공백 상황이 생깁니다. 인터넷 문화에 장점인 신속성을 고려하면 등록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번에 누구의 노래이고 어떻게 허락을 받으며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면 혼란이 줄겠죠. 인터넷 문화의 원활한 흐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운영방식을 찾는 게 법을 바꾸는 것보다 효과적입니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법을 고쳐도 몇 년 뒤엔 안 맞는 현상은 계속 되죠. 인터넷 상에 저작물 이용과 관리에 대한 모델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법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법도 바뀌어야 해요. 그렇지 않아도 올해 저작권법 전면개정을 앞두고 있죠. 사적복제 개념을 명확히해 개인들의 일상적인 문화교류를 제약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등록제는 생각의 틀을 벗어나보자는 취지로 말씀드린 거예요. 국제협약의 제약 때문에 법을 고치더라도 한계는 많겠지만 상상력은 필요해요. 국제협약이 각국의 자율적인 문화정책을 가로막고 있는데 정부가 여기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없다면 해결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겠죠.
전=1996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저작물 보호에 대한 국제협정인 베른조약이 발효되게 됐죠.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저작권법도 외국인의 저작물을 소급해서 보호하게 개정되기도 했죠. 이런 조약은 각국의 이익을 반영합니다. 특히 미국은 베른조약에 가입하지 않다가 자국의 수출 문화상품이 늘어나자 정책을 바꾸죠. 베른조약을 기초로 삼고 특허, 상표 등 다른 지적재산권을 포괄한 ‘트립스협정’을 들고 나와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를 가입하게 했습니다. 저마다 저작권을 보호하면서 많이 벌어가려 하는데 우리만 혼자 빠져나올 순 없죠. 이제 한류라고 해서 우리 문화도 세계로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우리만 빠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나라들과 연대해 정치력을 발휘해야죠. 물론 쉽지 않지만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는 게 더 큰 일입니다. 미국 등 문화산업 선진국의 이해를 많이 반영하고 있는 트립스에 대한 비판이 유럽, 아시아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함께 거세지고 있어요. 우리도 그런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죠.
전=말씀하신대로 국제적 저작권 협정 체계가 강자의 논리대로 만들어져 왔죠. 그런데 거기서 생존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우리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 겁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우리가 세계문화의 주체가 되고 저작권료를 받을 수도 있는 거죠.
오=저작권이 산업의 논리로 개도국이나 문화적 약자를 착취하는 도구가 되고 있는 지금 국익을 위해 우리도 힘을 기르자는 논리는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질 높은 문화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죠. 문제는 문화 정책이 문화산업 정책으로만 가고 있다는 겁니다. 자발적 문화 창작자들이 늘어나도록 정부도 활성화 정책을 펴고 공공 인프라를 확충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영상 장비를 빌려주고 교육도 시켜주는 미디어센터처럼 돈 없어도 창작물을 내놓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본 중심으로 독점적 구조가 형성되고 자율적인 문화적 역량은 줄 수밖에 없어요. 문화산업이 발전한다고 문화가 발전하는 건 아니죠.
전=문화산업과 문화를 그렇게 딱 구별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인터넷 문화와 관련해 문화산업의 독점적 요소를 지적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문화산업을 어떻게 하면 정상화시키느냐가 문제겠죠. 지금 음반사를 보면 90% 이상이 허덕이고 있어요. 시디를 100장 내면 10장도 성공 못합니다. 자본을 투자해 곡이 나오면 팔려야 재투자를 할 수 있는데 어려움이 많아요. 콘텐츠를 무료로 내려받는 상황이 몇년간 계속된다면 음악을 공급하는 음반제작자의 자본이 고갈돼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 옵니다.
오=음반업계는 100만장 200만장 팔릴 때는 자신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하죠.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진입에 걸림돌이 되는 구조 등에 대한 비판은 신경 안 쓰고 안될 땐 인터넷 탓만 하는 겁니다.
전=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진입장벽이 있다고 하시는데 요즘 엠피3 파일 만들면 얼마든지 배포할 수 있죠. 그리고 100만장 그러면 과도한 이익처럼 보이지만 음반 산업은 위험이 커요. 시디 10장 만들면 1장 정도나 원금 회수합니다. 대박나는 경우는 극소수죠. 대박났던 사람도 재투자하다보면 나중에 쪽박차고 있어요. 어느 산업이든 반성해야 할 부분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네티즌의 이용 행태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죠.
오/ 블로그 꾸미는 건 자기표현인데 내간 산 음반 배경음 깔아도 규제
전/ 불특정 다수가 받아갈수 있는데 어떻게 사적이용이라 볼수있겠나 오=별개의 문제라면 엠피3 파일 때문에 음반시장이 망했다고는 이야기하지 말아야죠.
전=그렇게는 말할 수 있죠. 그렇지 않아도 음반산업이 유동적인데 여기에 공짜 엠피3 파일이 공유되면서 시디가 팔리지 않게 된 건 사실이잖습니까? 오=실제로 외국에는 엠피3 파일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사례들이 있어요. 사업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갈렸죠. 또 공짜로 배포하면서 공연이나 시디 판매와 연계할 수도 있습니다.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여지는 있어요. 핵심은 이런 노력보다 저작권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거죠.
전=외국에서 엠피3 파일을 팔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건 유료화가 정착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시장의 질서를 잡아 유료화 사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면 약간의 고통은 있겠죠. 하지만 누리꾼들이 저작권에 대한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저작권법이 개인의 표현을 제약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스스로 쓰고 발표하는 건 하나도 금지하지 않죠. 또 내 블로그에 내가 산 음반을 올리는 게 왜 안 되냐고 하는데 불특정 다수가 이용할 수 있는 걸 어떻게 사적 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물론 인터넷 문화에 걸맞게 현재 사적 복제의 개념을 확장해 가족에 준하는 범위 안에선 전송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바꿔갈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작권법을 비판하기보다는 인터넷 문화를 먼저 바꿔가야 합니다.
오=예를 들면 미니홈피를 꾸미려고 시디를 사서 엠피3 파일로 만들어 배경음악으로 깔아도 규제하는 것 아닙니까? 홈페이지를 꾸미는 것도 자기 표현의 한 방법인데 말입니다. 항상 누리꾼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오만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리자들도 저작권을 소유권으로 착각하고 지식이나 문화의 본질적인 속성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법이 생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지만 많은 누리꾼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법이 일반 상식을 반영하도록 바뀌어야죠.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일상생활, 커뮤니케이션까지 규제하는 건 일종의 검열입니다.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대표적인 저작권법 위반 행위는? 음악파일을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 음악파일 공유하기, 음반을 산 뒤 이를 디지털 파일로 바꿔 인터넷에 올리거나 공유하는 행위 등이다. 음악파일이 아닌 글귀나 시 구절, 그림, 사진 등을 다른 사이트에서 퍼온 뒤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출처를 밝히더라도 불법이다. 다만 저작권자가 이를 이용해도 좋다는 표시를 했다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시·사진·그림 퍼온뒤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
출처를 밝히더라도 불법 기존의 음악을 자신이 연주하거나 부른 뒤 그 파일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음악파일을 합법적으로 이용하려면 음악 저작권자와 실연자, 음반 제작자 모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저작권 위탁관리 단체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예술실연자단체협의회, 한국음원제작자협회 등에 맡겼을 때는 이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외국음악의 경우 국내 진출한 직배 음반사 등 해당곡의 제작자 또는 음악 대리 중개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한겨레> 1월19일치 29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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