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출판 길에서 주최하는 벤야민 심포지엄 "2013 벤야민 커넥션"이 3월 9일-10일 이틀 동안 정독도서관에서 열립니다.
작년에는 그린비에서 주최하는 푸코 심포지엄이 열렸고, 올해는 벤야민 심포지엄이 열리게 됐는데,
앞으로 이런 종류의 행사가 좀더 많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저도 이번에 발표를 하나 맡게 됐는데, 제가 발표할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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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정의-벤야민, 하이데거, 데리다(벤야민 심포지엄 초록)
좌파 정치,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 진보 정치를 위해 메시아주의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그 철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이 이 글이 화두로 삼고 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두 가지 실마리를 통해 이 질문을 다루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실마리는 최근 유럽 정치철학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종말론적인 또는 메시아주의적인 경향이다. 특히 조르조 아감벤과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의 저작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러한 경향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를 유사파시즘적인 정치체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변혁하거나 넘어설 수 있는, 일종의 메시아주의적 정치를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 및 서양의 정치신학적 전통에 대한 재고찰만이 아니라, 하이데거, 벤야민 또는 데리다 같은 20세기 철학자들에 대한 재전유를 통해 자신들의 급진적인 메시아주의 정치 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 실마리는 {법의 힘}과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가 제안하는 하이데거와 벤야민에 대한 비판적 독해의 쟁점이다. 데리다는 {법의 힘} 「후기」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하이데거와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종말론적 해체(Destruktion)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메시아주의적 사상이 최악의 것(곧 파시즘)과 공모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면서 데리다는 두 사람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통해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정치철학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데리다의 비판은 정당한 것인가? 아니면 이 두 사람은 ‘데리다의 유령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두 개의 실마리를 부여잡고, 우리는 이 글에서 하이데거와 벤야민, 그리고 데리다 철학에서 시간과 정의의 관계를 검토해보려고 한다. 이 세 명의 사상가의 연관성과 차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은, 이들 사상의 독창성과 깊이도 중요한 이유가 되거니와, 또한 이들의 사상이 우리 시대의 급진적인 메시아주의 정치철학에 깊은 영향(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과 정의의 관계가 논의의 핵심 주제가 되는 것은, 이 세 사람 모두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 따라서 새로운 정치 및 윤리의 근거를 시간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통해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시간성과 정치ㆍ사회적 지배 메커니즘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성이 존재하며, 따라서 이러한 연관성에 대한 인식 및 그것에 대한 해체 없이는 진정한 정치적ㆍ윤리적 변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적어도 하이데거와 벤야민은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데리다는 시간과 정의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하이데거나 벤야민과 달리 통속적인 시간성과 진정한 시간성을 대비시키지도 않고, 법과 정의, 지배와 혁명, 또는 타락한 정치와 진정한 정치를 대립시키지도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말하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이 글이 답변해보려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