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편견사슬에 묶인 한센병 환자들 한센병은 전염성이 매우 낮고 사실상 사멸하고 있는 질병이지만 이에 대한 사회의 무지로 한센병 환자와 그 가족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일반 사람들이 ‘문둥병’ 또는 ‘나병’으로 알고 있는 한센병은 나균에 의해 옮는 3군 전염병이다. 3군 전염병은 전염 속도가 늦고 국민 건강에 미치는 위해 정도가 낮은 병으로, 결핵·한센병·렙토스피라 등이 이에 속한다. ‘문둥병’이라는 병명이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담고 있기 때문에 1980년대 말부터 나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출신 학자 한센의 이름을 따 한센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99.9% 멸균치료 가능
사회차별은 불치인가
최규태 가톨릭대학교 한센병연구소장은 “한센병 환자는 약을 먹으면 균이 99.9%가 죽어 병을 옮기지 못한다”며 “병에 대한 사회의 무지가 1만6천 한센인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사람 95%는 한센병의 원인균인 나균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어 병에 걸리고 싶어도 걸리지 않는다”며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망가뜨려 사람의 손발과 얼굴 등에 변형을 주는 병의 특성이 사회적 편견을 낳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인권 여수애양병원 원장도 “나균은 항생제인 리팜피신 4알을 한 번만 먹어도 균이 99.9% 이상 죽어 길어도 3주 안에 전염력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도 25년 동안 한센병 환자들과 악수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잤지만 병이 옮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활동성인 한센병 환자와 접촉을 하더라도 면역력이 크게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전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의학적으로 본다면 전염력이 아주 약한 전염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염력낮고 사멸하는 병
일제격리-강제 정관수술
해방뒤엔 2세까지‘관리’
한센병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사멸해 가고 있다. 1970년에는 새로 발견된 환자가 1292명으로 1천명을 넘었지만 10년 뒤인 80년에는 499명으로 줄어들었다. 95년에는 94명으로 100명 이하로 감소한 데 이어 2000년 78명, 2003년 41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해 1월 현재 한센등록자는 1만6801명이지만 환자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성 환자는 3%인 518명뿐이다. 나머지 97%는 이미 병이 나은 정상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8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가 한센병 퇴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한센병은 환자들이 보기 흉한 모습에다 일제의 강력한 격리정책으로 일반인들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다. 194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센병은 한번 걸리면 약이 없는 ‘천형’으로 일반에 알려졌다. 일제는 1916년 소록도에 환자를 격리시키고 결혼을 앞둔 남자들에게 ‘단종’(정관수술)을 시행하면서 한센병자의 ‘씨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1943년 디디에스(DDS)라는 약이 개발되고, 1950년대 중반 이 약이 대중적으로 보급돼 전염성이 극히 낮아졌음에도, 이들에 대한 편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편견 해소에 적극 나서지 않고 오히려 한센병 2세들까지 ‘미감아’로 분류해 관리해온 정부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환자들이 완치된 뒤에도 평생 관리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
임철완 대한나학회장(전북의대 교수)은 “1940년대 약물치료 방법이 나오면서 전염병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며 “한센병은 이제 의학적이 아닌 사회적인 병”이라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