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팽개친…문학은 끝장났다”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말’선언

‘문학이 죽었다’는 말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오래 전에 확인된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다. 문학의 의연한 생존을 확신하는 이들에게 그런 선언은 양치기 소년의 되풀이되는 거짓말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문학의 죽음에 관한 풍문이야말로 거꾸로 문학의 생존 근거이자 양식이라는 주장조차 나오는 판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살아 있는가. 여기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글이 있다.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일본의 문학평론가 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63)의 <근대문학의 종말>이 그것이다. 이 글은 지난해 10월 일본에서 행한 강연을 풀어 쓴 것이다.

가라타니의 논리는 ‘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영구혁명중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주관성)’이라는 사르트르의 정의에서 출발한다. 쉽게 말하자면 정치가 감당하지 못하는 혁명의 핵심을 문학이 담당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체적 비평과 포스트모던 문학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근대문학’은 이런 혁명적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것은 일본의 경우에 ‘1980년대에 끝났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미국은 더 일러서 1950년대로 시점이 올라간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가라타니 고진은 지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한 문학행사에 참석해 ‘일본에서 문학은 죽었다’고 발언해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는 문학평론가인 자신이 평론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런 발언을 했던 것인데, 그러면서도 한국에서만은 문학의 역할이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해 대조를 보였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그는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문학은 끝장이 났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문학이 사소해졌다는 것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가라타니는 문학은 자신에게 부여되는 지적·도덕적 요구를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문학으로서 존립할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러한 과제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다면, 문학은 단지 오락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문학’은 오락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나아가 일본 만화처럼 세계적인 상품으로 팔리는 문학을 권장하기조차 한다. 다만, 거기에다 본디 의미의 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본디 의미의 문학에 충실한 사례로서 그는 역설적이게도 ‘문학을 그만둔’ 두 사람의 사례를 든다. 부커상 수상작인 <작은 것들의 신>의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 그리고 <녹색평론> 발행인인 ‘전직’ 평론가 김종철씨가 그들이다. “위기의 시대에 한가롭게 소설 따위를 쓸 수는 없다”는 로이,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문학이 지극히 협소한 것만 다루게 되었”기 때문에 문학을 그만두었다는 김종철씨야말로 “‘문학’을 정통적으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반대로, “순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밖에는 읽히지 못할 통속적인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나 “그 존재가 문학의 죽음을 역력하게 증명할 뿐인 패거리”는 문학의 생존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그는 일갈한다.

그는 “역사적 이념도 지적·도덕적인 내용도 없이 공허한 형식적 게임에 목숨을 거는” ‘일본적 스노비즘’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문학을 떠나서 생각하라”고 결론 삼아 제안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모모 2004-11-27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로선 고진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고 그의 이름만 몇 번 들어보았을 뿐인데, 이 주장은 동의의 여부를 떠나서 매우 감동적이군요. 고작 신경숙 -- 내가 읽은 건 한권뿐이지만 그게 워낙 어이없어서.. -- 같은 작가가 한 세대를 대표하는 상황이라는 게 참.. 물론 사소한 것들은 중요하지만,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웅변하는 게 아닌, 그저 사소함 속에서 안주하고 그것을 변명하는, 그런 태도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윤리와 정치를 방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을지.. (문단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제가 알기로 신경숙 등을 띄워주는 데 앞장섰던 <문학동네>에 이 글이 실렸다는 게 재밌군요. 어떤 생각을 하고 실었을까..) 어쨌든 이것저것 고민을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지금 컴퓨터 상태가 이상해서 제 블로그에 글이 씌어지질 않는데, 블로그가 정상화되는 대로 이 글을 퍼가겠습니다. 미리 양해 =)

balmas 2004-11-2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모모님이 딱 꼬집어서 말씀하시는군요. [문학동네]도 식성이 참 다양하죠. 그만큼 고진이 만만하다는 뜻인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