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수의 ‘통탄’


△ (왼쪽으로부터) 홍덕률 교수·최갑수 교수

“대학종합평가 기간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예상질문과 모범답안을 교육시키고, 설문조사 결과를 조작한다. 평가위원을 (먼저) 접대하려고 인근 대학 교수들과 신경전을 벌인다. 연구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동료 교수와 공모해 이름을 빌려주고 빌린다. 소규모 지역 학회를 전국 학회로 바꾸고, 학회발행지를 저명학술지로 둔갑시킨다. 학회지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논문심사 서류를 허위로 만들고 논문심사 탈락률을 조작한다. …”

홍덕률 교수(대구대 사회학과·사진 왼쪽)는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게재한 글에서 최근 대학교수들의 ‘그늘’진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대학과 교수사회의 비리와 부도덕, 지적 태만과 낮은 생산성을 해결해야 할 대학 및 교수 평가제도”가 실제로는 “이런 개혁과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뇌 위에서 설계되지 않았던 것”이다.

홍덕률 대구대교수 “교수들 직장인으로 전락”
최갑수 서울대 교수 “자신만의 살길을 찾는다”

특히 교육부와 대학교육협의회의 평가제도가 “학문과 지성의 위기에 대한 관심을 결여”한 결과, 요즘 대학교수들은 “창조적 지식활동보다는 논문편수 늘리기, 기성의 틀을 거부하는 실험적 지식활동보다 이에 순응하는 기능적 지식활동, 학문의 식민지성 극복을 위한 필생의 연구보다 1년 단위의 발표실적 극대화 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갑수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사진 오른쪽)도 <교수신문> 최근호 교수논평에서 이런 대학의 현실을 통탄했다. “(교수들이) 자신만의 살 길을 찾는 가운데 연구 성과는 현실적합성을 상실해가고, 아무도 그것을 읽지도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의 ‘노동강도’는 높아지지만, 교육은 소홀한 대접을 받고, 학생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가운데 교수사회는 파편화”된다고 최 교수는 전한다. “전문가는 많지만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든 대학이 사회재생산장치로서의 성격과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급속하게 잃어가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홍 교수는 그 책임을 교수 사회에 묻는다. “학자적 고민과 학문 일반에 대한 문제의식은 내동댕이친 채, 대학조직의 한 구성원, 생계를 고민하는 교수직에만 관심을 갖는 직장인으로 전락”한 교수 사회 스스로 대학·학문·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묻지 않는 ‘기형적 평가’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그래서 “연구능력, 교육적 역할, 성찰적 기능을 결합시킬 수 있는 공동체성의 회복”이 지식인으로서 교수가 제자리를 찾을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대학, 논문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 지난 7일 오후 전국교수노조 회원들이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사립학교법의 민주적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마친 뒤 종묘공원까지 행진을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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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들 직장인으로 전락”

  • ‘창작과 비평’ 겨울호 특집좌담 ‘대학 개혁’

    지금 전국교수노조(위원장 황상익)는 총력투쟁 중이다. 11월을 ‘대학문제의 총체적 개혁을 위한 대학구성원 총력투쟁 기간’으로 선포했다.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관련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세상의 무관심에 묻혔다.

    〈창작과 비평〉 겨울호의 특집좌담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들은 학문생산의 문제를 고리로 대학개혁을 고민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대학개혁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조차도 학문생산의 문제에서 비롯됨을 지적하고 있다.

    ■ 학문발전과 무관한 논문양산체제=현재 한국 대학사회는 ‘논문의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했다. 교육당국의 대학지원 및 교수업적평가가 유력 학회지 논문게재 건수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획일화된 기준을 가진 정부 주도의 정량적 평가 때문에 한 논문을 (여러 편으로) 쪼개 논문 편수를 늘리는 관행이 생겨나는 등 논문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신정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비판이 많다. 대학은 대학대로 “정부의 지원을 따내기 위해 급조된 프로젝트를 마련해 유능한 교수들을 본인의 관심과 무관한 영역에 동원”하고 있다.

    교수업적평가가 논문게재 건수와 직결
    ‘대량생산’ 돌입‥학문시장에 국가개입
    ‘학술진흥재단’ 권력화

    논문 양산체제의 정점에는 업적 평가의 기준을 독점한 학술진흥재단이 있다. “학문시장에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한 결과, 학진이 권력기관화하고 있다”(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비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개별 학자간, 분과학문간 단절도 심해지고 있다. “자기 논문과 관계없으면 다른 학자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임형택 성공회대 한문교육학과 교수) 때문이다.

    ■ 표류하는 학부와 대학원=교수들이 눈앞의 연구실적에 열을 올리는 동안, “기존의 분과학문 체제로는 안되겠다고 시작한 현행 학부제는 부실화돼 표류”(임형택)하고 있다.

    논문실적 평가가 학부교육의 부실화로 이어지는 현상은 지방대가 더욱 심각한데, “존폐의 기로에 몰린 지방대학의 교수들은 신입생 모집, 재학생 지도, 졸업생 취업지도 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도, 교수평가는 연구성과 중심으로 이뤄진다”(서경희 광주대 외국어학부 교수)는 것이다.

    학부제의 표류 속에 대학원은 해외유학을 위한 중간 과정으로 전락했다. “석사를 마치고 모두 유학을 떠나고, 국내 대학 박사과정엔 다른 대학, 다른 전공 출신들이 들어오고, 교수들은 이들을 진정한 제자로 생각하지 않는”(신정완) 분위기다. 그런데도 각 대학은 “대학원을 위한 전임 교수를 따로 채용하지 않아도 되니, ‘어지간하면 남는 장사’”라는 이유로 학문 생산 기능을 상실한 대학원을 저마다 운영하고 있다.

    ■ 현실에 침묵하는 학문=이는 결국 우리 학문 스스로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다. 신정완 교수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한 인문사회 연구자들은 국내에서 학문을 하는 게 옳은데도, 미국 박사가 (과거보다) 더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 교수는 “미국 유학파 교수들 상당수는 우리 사회를 남의 사회 바라보듯이 하는데, ‘문제의식의 주체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문제의식 자체를 외국에서 배워오는 일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 현실을 설명하려는 노력 대신, 수입 인문학에 기댄 논문만 양산한 결과 “학문은 대중으로부터 격리돼 전공자들끼리만 통하는 것이 됐다”(임형택). 임 교수는 “인문학이 대중성과 사회성을 외면하고 버림받으면 건강하게 살아남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교수들이 앞장서 대학개혁의 중요성을 외쳐도,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쯤으로 흘려듣는 오늘의 세태는 국내 인문학계의 업보인 셈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2년전 논문집 재탕…학진, "학술지평가 전면 재검토"
    한국체육교육학회, 동일 학술지 중복 발간 파문

    2004년 11월 08일   허영수 기자 이메일 보내기

    백원우 의원,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정감사서 의혹 제기

    한국체육교육학회가 허위 서류 제출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 학술지 평가에서 등재후보학술지가 된 것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관련기사 3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백원우 의원(열린우리당)은 지난달 19일 국정감사에서 "한국체육교육학회가 동일논문을 중복 발간했는데도, 2002년 상반기에 등재후보학술지가 됐다"라며 학진의 엄정한 학술지 평가와 사후 조치를 요구했다. 논문 뻥튀기, 발행횟수 조작 등 학술지 평가를 둘러싼 교수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삼고 나선 것.

    이날 백 의원은 한국체육교육학회가 1997년 8월에 발행한 '제2권 제1호'를 1999년 2월에 '제3권 제2호'로 발행년도만 바꿔 중복 발간했다고 밝혔다.

    확인결과, 한국체육교육학회의 '제2권 제1호'와 '제3권 제2호'는 편집위원과 표지만 다를 뿐, 똑같은 논문들로 구성돼 있으며, 목차를 비롯해서 페이지수, 편집구성까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2001년 12월 학진의 국내 학술지 평가에 자료를 제출할 때는 1998년부터 평가까지 매년 2회씩 정기적으로 학술지를 발행했다고 보고했다.

    2002년 학진의 학술지 평가는 정량평가인 '체계평가'에서 △논문 1편당 심사위원수 △게재율 △정시 발행 등을 심사한 후, 전체 총점의 1/2을 넘기지 못할 경우 1차 탈락하게 돼 있었기 때문에, 학술지를 정기적으로 발행하는지의 여부는 중요한 평가 항목이었다.

    실제로 학진에 따르면, 한국체육교육학회는 체계평가에서 총점 40점 가운데 가까스로 20점을 받아 통과했으며, 5점이 최대점수인 '정시발행' 항목에서는 2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 당시, 학회에서 서류를 조작해 올리지 않고 사실 그대로 올렸다면, 한국체육교육학회는 체계평가에서 1차 탈락하게 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한국체육교육학회의 상임이사이자, 현 부회장인 김용환 청주교대 교수는 "학회 초창기에 학회지 2권1호를 발행했으나 학회가 어려워 배포하지 못했고, 3권2호를 발행할 때 거의 원고가 들어오지 않아 2권1호를 3권2호로 대체 발간했는데, 이마저도 배포하지 못하다가, 총서를 발간할 때 3권 2호로 배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자문 학진 이사장은 "민원이 제기된 적이 있어서, 2003년 8월 학술연구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동일논문 중복 발간을 문제시했는데, 지난해 9월 인사 이동 및 인수 인계 미흡 등으로 조치가 늦어졌다"라면서 "철저히 조사한 다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체육교육학회지에는 학진의 학술지 발행 지원금으로 2002년에 3백80만원, 2003년에 5백60만원이 지원된 바 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 해설 : 한국체육교육학회의 학술지 중복 출간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전모가 드러난 한국체육교육학회의 '동일논문 중복 발간'은 학계가 서류 조작 등으로 등재(후보)학술지를 만들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을 기정사실화시킨 측면이 크다.

    그간 학계에서는 교수들이 문서 위조, 논문의 중복 게재, 탈락 논문수 뻥튀기 등 비양심적 행위를 통해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의 학회지 등급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들이 무성하게 제기돼왔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었다.

    □ 학술지 중복 발간 후, 가짜 서류 올려 = 이번 문제가 된 한국체육교육학회는 학회지의 발행 년도를 조작해 '등재후보학술지'가 된 경우다. 1997년 8월(제2권 제1호)에 발행한 학술지를 1999년 2월(제3권 제2호)에 표지와 발행년도만 바꿔 중복 발행한 다음, 학진에는 정기적으로 년 2회씩 학술지를 발간했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학진에 따르면, 한국체육교육학회는 '제3권 제2호'의 표지와 판권기를 학술지 평가에 자료로 첨부하기까지 했다. 2002년 상반기 평가 당시,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수가 5백73명에 달하는 학회에서 2년 전에 발행했던 학술지를 재탕했을 뿐 아니라, 관련 허위 증빙서류를 학진에 올린 셈이다.

    더구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정보서비스(http://www.riss4u.net)'에서 논문 검색만해봐도 금새 들통날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지고 있다. 현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는 한국체육교육학회가 1999년에 게재했다고 하는 논문들을 모두 1997년 제2권 제1호에 실린 논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회의 의도적인 조작을 통한 발행된 학술지 '제3권 제2호'가 학진의 학술지 평가 뿐 아니라, 교수신규임용, 재임용, 승진심사 등에 활용됐을 가능성도 있어 이에 대한 별도의 조사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위원회 소속 백원우 의원(열린우리당)은 "제3권 제2호에 게재된 연구자의 논문이 교수임용 또는 승진심사 등에 연구실적으로 제출됐을 수 있다"라면서 교육인적자원부에 감사를 강력히 요구한 상태다.

     

     

     

     

     

     

     

     

     

    □ 학진, 어떻게 조치하나 = 학진은 국정감사에서 '한국체육교육학회에 대한 조치 미흡' 등이 지적되자, 이번 기회에 학술지 평가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학진은 2003년 8월 27일 '한국체육교육학회의 동일논문 중복발간'을 안건으로 학술연구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허위서류 제출에 대한 엄격한 제재' 등을 심의했지만, 이후 행정상 착오로 인해 조치를 취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국체육교육학회 학술지 평가 적정성과 관련, 학진은 "당시 서류를 근거로 한 정량평가와 분과위원 평가, 주제전문가 평가 등에서는 문제가 없었으며, 학회가 제출한 자료에서는 서류의 허위성 등을 판별할만한 증거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허위서류 제출에 관해서는 "조사를 더 해야겠지만, 허위 서류 제출은 공지사항의 내용을 위반한 것이며, 위반했을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사전에 설명했기 때문에 제재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또 학진은 학계 대내·외적으로 학술지 평가와 등재(후보)학술지 논문 게재 등에서 서류 조작, 실적 부풀리기, 논문쪼개기 등 교수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크게 문제시됨에 따라, 학술지 평가의 엄격성, 학술지의 권위 확보 방안, 학술 논문에 대한 질적 평가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욱 학진 기초학문부장은 "학술지 평가는 학회지들이 일정정도의 수준을 지니도록 유도하고자 추진된 것인데, 애초의 목적과 의도와 달리 각 대학들이 과열된 양상으로 신규임용, 재임용, 승진 등에 학회지의 등급을 활용하고 있어, 재검토해야할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즉 학술지 평가가 학회의 적절한 편집위원 구성, 정기적인 발행 등 최소한의 토대를 갖추도록 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등재학술지가 되기 위한 학회들의 부도덕한 편법 등이 심각할 정도로 나타났다는 평가였다. 학회들의 비양심적 행태를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도 덧붙여 지적했다. 

    학진에 따르면, 2천여개가 넘는 학회 가운데 현재 등재(후보)학술지로 평가를 받은 학술지는 1천1백20종이며, 2004년만해도 평가대상인 학술지는 계속평가중인 6백56종과 하반기 신규평가 대상 학회지 72종 등 총 7백28종에 달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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