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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1 
오마이뉴스 기자, 유럽에서 희한한 비행기를 타다
김종철 기자
안녕하세요. 경제부의 김종철 기자입니다.

요즘 공무원노동조합의 총파업을 앞두고 정부와 노동계가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 보입니다. 노동자로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노동 3권을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는 정부 설명도 이어집니다. 보수진영과 언론도 오랜만에 정부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투표행위마저 경찰력을 동원해, 연행하고 무산시키는 정부도 거의 없습니다.

얼마전 스웨덴에 다녀왔습니다. 적어도 제가 만난 스웨덴 학자나 경제전문가들은 (공무원)노조는 인정하면서 노동3권은 인정하지 않는 정부에 ‘좌파 정권’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우리나라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질문 자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최근 국내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한국자본주의 방향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진행중입니다. 거창하게 들리시겠지만, 향후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체제에 대한 고민인 셈입니다. 여기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이른바 ‘스웨덴 모델’ 입니다.

곧 기사로 찾아뵙겠지만, 스웨덴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던져주는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노동자의 단결을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자본(재벌)의 이익을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으로 함께 올려놓은 경험을 가진 나라입니다. 물론 스웨덴의 경제사회모델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사회복지 지출의 축소와 신자유주의적 경향 확대 등으로 스웨덴 모델은 가라앉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무원 노조를 지켜보면서, 사안이 약간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기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제 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KLM 네덜란드항공사의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1919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공사입니다. 스웨덴서 나와 지난달 31일 오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갈아탔습니다. 오후 5시에 출발 예정인 항공기가 무려 3시간 동안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 문제의 바로 그 KLM 항공기 내부. 승무원의 양해를 얻어 한 컷을 기념으로 남겼다.
ⓒ 오마이뉴스 김종철
‘항공기 지연 출발에 승객들 항의소동’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써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지요.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3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으려니 입이 나올 만도 했습니다.

항공기 기장은 매시간 비행기 상태를 알려줬습니다. 처음 1시간은 ‘항공기 날개 엔진에 새가 들어가 안전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가, 이어 활주로로 나가 출발하는가 싶더니 ‘엔진 작동에 문제가 생겼다’ 며 다시 공항청사로 돌아왔습니다.

3시간이 흘렀습니다. 안전을 확인한 기장이 항공기 출발을 전하자, 일부 승객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주로 외국인들이었습니다. 항공기가 일정한 고도에 오르자, 기장의 말이 다시 이어집니다. “출발이 3시간 늦어져 항공기내 승무원들이 네덜란드 노동법에 의해 운항중 3시간 동안 휴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어 기장은 “그 시간 동안 승객들은 기내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3시간 동안 늦게 출발한 것도 짜증나고 힘든데, 승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해야 할 승무원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휴식을 취하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0대로 보이는 한 국내 승객은 “이상한 비행기구만”이라며 “내돈 내고 비행기 타면서, 항공사 잘못으로 늦게 출발했는데, 승무원들이 고객서비스보다 자신들의 휴식을 더 챙기고...”라며 못마땅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기내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을 저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와 동행한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해진 기내식사는 그대로 나왔고, 승객들 개개인의 서비스 요구에도 승무원들은 친절히 응했습니다. 승무원들이 교대로 휴식을 취하면서, 최대한 서비스를 유지하려고 서로 노력했던 탓입니다. 승객들도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한국에 도착할 즈음에 KLM 승무원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부 승객사이의 불만을 전달했습니다. 한 승무원은 “아마 좀더 지연됐으면 손님 입장에선 더 황당한 일을 보셨을 것”이라며 “30분 이상 더 지연됐으면 아마 모든 승무원이 비행기에서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다른 승무원들이 오기까지 승객들은 다시 비행기 안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말도 덧붙여졌습니다.

3시간 휴식을 취했다는 한국인 승무원은 “기내서비스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승객의 안전”이라며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적 분위기와 시스템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는 말을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앞 좌석에 펼쳐진 한 국내 보수 일간지의 사회면 톱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은 “공공기관 민원실 점심휴무 확산, 민원 외면한 전공노”였고, 사진은 언제나 그래왔듯이 공무원노조의 점심시간 휴식 안내문을 크게 잡은 사진과 발길 돌리는 시민 표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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