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에 실릴 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6월 15일에 있었던 "탈근대, 탈민족, 탈식민: 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 심포지엄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6분 발표자들의 발표 내용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해봤는데
발표자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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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담론 수용 20년: 쟁점과 성찰
6월 15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회의실에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인문한국(HK) 사업단 내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 기획연구팀 주최로 “탈근대, 탈민족, 탈식민: 포스트담론 20년의 성찰”에 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포스트 담론의 공과를 따져보고, 포스트 담론의 장래를 가늠해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1987년 6월 항쟁과 그 뒤에 전개된 노동자대투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가 제한적이나마 일정하게 성취되었지만, 1989~90년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실질적으로 몰락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좌파 이론과 사상이 위기를 겪고 퇴조했다. 그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주의 같은 포스트 담론은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 문명과 현존 사회 질서를 포괄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주요 준거틀로 기능했으며, 지난 20여 년 동안 철학,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 국문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포스트 담론에 관한 주목할 만한 비평과 토론은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는 그 수용 초기에 나타난 바 있는 포스트 담론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과 자못 심각했던 논쟁을 상기해볼 때 역설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지식계는 외양으로는 포스트 담론에 관해 다양한 거부의 몸짓을 취했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지난 20여 년 동안 마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서서히 포스트 담론이 스며들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굳이 ‘포스트’라는 명칭을 붙일 필요가 없는 자연스런 과정이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포스트 담론이 갖춘 지적인 힘의 효과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활발한 논쟁과 토론의 부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포스트 담론이 수용된지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지난 2007년 이후 전 세계가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지금이야말로 포스트 담론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6명의 발표자가 나서 포스트 담론이 기여한 바와 그것이 지닌 문제점을 검토했다. 먼저 총론격인 「포스트 담론의 유령들」에서 진태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포스트 담론을 애도의 담론으로 규정했다. 포스트 담론은 한편으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을 애도하고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담론으로서 국내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 담론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동시에 전개된 신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에서 벌어진 새로운 종류의 갈등과 투쟁의 현실을 망각하고 말았다. 따라서 포스트 담론은 경제주의, 노동자 계급 중심주의, 유럽 중심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새로운 종류의 갈등과 투쟁을 적절히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 여기에는 포스트 담론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어느날 갑자기 수입되기 시작한 담론이었으며 우리 자신의 문제설정에서 생겨난 담론이 아니었다는 사정도 작용했다. 이로 인해 쇄신의 기회를 놓친 마르크스주의는 세력이 크게 약화되어 게토화되었고, 포스트 담론은 실천적 무기력 상태에 빠져들게 되었다. 진 교수는 이러한 이중적인 무력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문화’와 ‘경제’의 접합을 사고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 작업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다수의 보편들 사이의 관계, 해방적 주체화 과정의 모색, 복수의 정치 개념 등과 같은 포스트 담론의 이론적 기여를 적극 살리면서, “파당적인 독서 양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치학자인 김정한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1990년대 초 국내에 도입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담론의 애매성에 관해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에르네스트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가 제창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원래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과 프랑스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을 결합하여 여성운동, 환경운동, 반인종차별운동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를 모색하는 이론이었다. 따라서 그 자체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적 투쟁과 저항을 추구하는 이론이었다. 반면 국내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청산하고 주로 개혁 자유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논거로 기능했다. 특히 이병천 교수가 주도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수용은 마르크스주의를 청산하는 기능을 했을 뿐, 마르크스주의를 쇄신하는 데 기여하지도 못했고, 데리다, 라캉과 같은 포스트 구조주의 이론의 급진성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했다. 따라서 김 교수의 결론에 따르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강점과 난점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이 지닌 난점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사이의 새로운 결합 가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계원조형예술대 서동진 교수는 한국 사회과학에서 포스트 담론의 수용 과정을 분석하는 대신, 포스트 사회과학이라는 일반적인 문제를 검토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과학은 19세기 유럽을 휩쓴 1848년 혁명 이후 출현한 ‘사회적인 것’의 문제(재해, 실업, 주거, 양육 등)를 다루기 위해 자유주의 질서 내부에서 형성된 학문들을 통칭하는 명칭이었다. 사회과학은 자본주의 질서의 성립과 존재 이유를 정당화하는 정치경제학 및 초기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발전했지만, 이러한 비판은 자유주의 질서 내에서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포스트 사회과학은 본질주의 비판이라는 명목으로 ‘사회’라는 실체화된 대상에서 벗어날 것을 제창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적 구호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포스트 사회과학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포스트 사회과학은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유주의 내부에서의 자기비판의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경제학 비판은 정치경제학이 전제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었다. 따라서 포스트 사회과학이 제창한 사회라는 가상에 대한 비판을 전유하면서 이것을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획과 결합시키는 것이 오늘날 중요한 사유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근대사를 전공하는 민족문화연구원 정병욱 HK교수는 1990년대 이후 식민지 근대에 관한 자신의 연구 경험에 입각하여 1980년대의 민중사학과 2000년대에 제기된 새로운 민중사에 관해 비판적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민중사는 과거의 민중사학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추상성과 일면성, 경직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민중의 일상적 삶에 기반을 둔 역사학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구 민중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양 개론서를 제외한다면 민중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빼어난 연구 업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 교수는 민중사나 새로운 민중사 같이 민중이라는 별개의 범주를 설정하는 역사학보다는 개인의 구체적 삶에 초점을 맞춘 역사 연구를 수행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개인들의 삶을 일상적 연대와 사건적 연대의 이중적 시각에 따라 분석할 때 개인과 민중의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오히려 구체적인 민중의 삶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문학평론가인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전개과정은 탈정치화와 탈리얼리즘의 이중적인 과정이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초에 전개된 김영현 논쟁은 노동자 당파성에서 엿보이는 관념적 도식주의에서 벗어나 섬세한 내면까지 담아낼 수 있는 리얼리즘 문학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논의과정에서는 리얼리즘 대신 내면성이라는 표현만이 강조되어 이인화, 신경숙 등을 거치면서 리얼리즘 자체가 폐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리얼리즘의 폐기는 현실의 증발을 동반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1990년대의 문학은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의 내면주의,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의 문화적 급진주의, {문학동네}로 대표되는 상업주의 문학의 등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1990년대는 문학의 종언이 이루어졌던 시기인 셈이다. 이 교수는 현재의 한국문학 역시 이러한 1990년대의 우울한 유산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재는 문학적 재현과 정치적 대의 모두가 시장의 임금노예인 시대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발턴 연구에 천착해온 안준범 서강대 사학과 강사는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의 대표 저작들로 받아들여진 조앤 스콧의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과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책략가의 여행}을 꼼꼼하고 세련되게 분석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 대한 국내 학계의 인식에 맹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책들은 통념과 달리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과학적 역사 서술과 문학적 역사 서술의 경계를 무너뜨려 역사학을 상상력의 학문으로 만들려고 한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들은 각각 엄밀한 고증에 입각해 있으며, 기존의 역사학적 재현 양식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특이한 역사적 사례, 특이한 개인들의 재구성을 추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이 추구했던 문제는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보다는 루이 알튀세르나 자크 랑시에르 같이 흔히 구조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 이론가들의 문제의식에 더 가깝다. 따라서 새로운 역사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기존 역사학과 다른 새로운 비평적 읽기의 방식이며, 이러한 방식만이 새로운 사료 비판 양식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는 것이 안 교수의 주장이다.
여섯 명의 발표에 뒤이어 창작과비평, 역사비평, 진보평론, 실천문학, 자음과모음, 사회와철학 같이 국내 주요 계간지와 학술지 편집위원들이 토론자로 나서 포스트 담론 20년의 의미와 한계, 과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전개했다. 특히 토론에서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의 전개과정을 일방적이고 단순하게 ‘상업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으로 규정하는 것이 적합한가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지난 20여 년의 한국 문학은 고유한 문제를 탐구하는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또한 포스트 담론이 마르크스주의나 진보적인 사회과학 이론과 결합될 수 있는 비판이론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다.
한 차례의 심포지엄을 통해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포스트 담론에 관한 비판적 성찰이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이날 심포지엄은 포스트 담론에 관한 본격적인 토론 무대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포스트 담론이 앞으로 국내의 논의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거부와 무비판적인 찬양의 극단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포스트 담론이 기여한 인식과 문화에 대한 비판과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인 기여라고 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포스트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던 각 분과 학문 내에서 좀더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성찰과 모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