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님의 "[코멘트]푸코 심포지엄 참관기-교수신문"
ㅎㅎ 예 맞습니다. 그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였다고 할 수 있겠죠. 아마 알튀세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고전 맑스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알튀세르의 경우에는 더 역설적일 수 있을 텐데요, 다른 누구보다도 비경제적인 것(곧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을 강조하고 그것이 역사와 정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이 알튀세르였으니 그렇겠죠. 다만 알튀세르(를 포함한 고전 맑스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왜 경제만 리얼리티냐, 젠더, 지역, 종교, 신분, 연령, 에스니시티 등등(하도 끝도 없다)도 모두 리얼리티 아니냐'라고 반문할 경우, 다시 말해 리얼리티의 복수성, 다수성을 무한정하게 확장할 경우, 인식론적 비규정성에, 따라서 정치적 무력화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걱정스러웠겠죠. 사실 도그마님이 질문한 것처럼, 젠더, 지역, 종교, 신분, 연령, 에스니시티 등이 다 리얼리티라면, 따라서 경제와 똑같은 인식론적, 정치적 비중을 지니게 된다면, 거기에 더 이상 정치가 존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더욱이 어떤 포스트맑스주의자도 아마 지역, 종교, 신분, 연령, 에스니시티 같은 것을 '경제'와 대등한 리얼리티라고 하지는 않겠죠.
'선거를 통해 이 세계의 리얼리티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저로서는 잘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선거말고 다른 것을 통해서만 리얼리티가 바뀐다는 뜻인지, 아니면 리얼리티는 바뀔 수 없는 것이다라는 뜻인지도 불분명하구요. 우선 도그마님의 생각을 스스로 좀더 정확히 정리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