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식객] 1권 중에서,
"이 행사[우리쌀 지키기 도보행진]의 의미가 뭡니까?"
"2004년에 WTO와 재협상해야 하는 건 알죠?"
"예."
"우리는 쌀이 수입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재협상 이후 외국 쌀이 쏟아져 올 것이 분명해요. 세계 쌀 생산량 1위 국가가 32%의 중국, 2위가 22%의 인도, 그 뒤를 이어서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타이, 미얀마, 일본, 미국, 한국 순으로 생산하고 있어요.
중국 쌀 생산비는 1가마당 1만 8백원인데 우리 쌀은 8만 3천원이 들어요. 우리 쌀이 훨씬 비싸죠. 우리가 아무리 품질을 높인다 해도 가격 차이가 거의 5배나 나는데 국민이 우리 쌀을 먹겠어요?
게다가 미국은 평당 1천 3백원의 생산가가 드는데 우리나라는 평당 4만원이나 들어요. 30배나 비싸지요."
"미국은 쌀 생산량이 적지 않습니까?"
"적지요. 전체 생산량의 1.4%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나 미국 쌀은 자국 내에선 거의 소비되지 않고 거의 전부 수출해야 할 물량입니다. 앞으로 생산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고요. 앞으로 우리 쌀은 팔 데가 없어집니다. 그렇잖아도 우리 농민들이 빚투성이인데 팔 수 없는 쌀을 생산하겠습니까?
모두 손들어 버리면 우리 모두 외국쌀을 먹어야 해요. 그때 쌀 수출국들이 쌀을 무기화하면 어떡하죠? 원하는 대로 따라하는 수밖에 없죠. 이것은 쌀 생산하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민의 문제입니다."
25-27쪽
"쌀농사를 그만뒀을 때 쌀의 무기화말고 다른 중요한 것은 뭔가요?"
"첫째, 쌀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10% 이하입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모든 농산물의 수입 개방이 된 상황에서 쌀은 우리의 식탁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지요.
둘째, 벼농사는 홍수 조절 기능을 합니다. 전국 110만ha의 논에 가둘 수 있는 빗물의 양은 36억 톤으로 춘천댐 총 저수량인 1억 5천만 톤의 214배나 됩니다. 홍수 피해 감소 효과를 금액으로 따지면 1조 5천 8백억 원. 논의 저수 능력을 댐 건설 비용으로 따지면 15조 5천 340억이나 됩니다.
셋째, 논의 지하수 저장 능력은 기존 저수지 저수량의 3-4배나 됩니다. 논물 가운데 45%가 지하로 저장되어서 국민들의 물문제를 해결해주죠. 이는 소양강댐 저수량의 8.3배, 전국민 수돗물 사용량 58억 톤의 2.7배로 어마어마한 양이지요.
넷째, 대기 정화 기능입니다. 벼는 지구상의 식물 중 가장 많은 산소를 공급하고 가장 많은 탄산가스를 흡수합니다. 산소 방출량을 금액으로 따지면 5조 2천 8백억 ...
다섯째, 한여름 대기 냉각 기능입니다. 여름철 전국의 논에서 대기로 증발되는 물의 양은 하루 8천만 톤입니다. 이것이 뜨거운 대기의 온도를 낮추어 줍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건, 1991년 6월 일산에서 볍씨가 출토되었는데 연대 측정을 해본 결과 4500-5000년 전의 것이라고 밝혀졌어요. 이렇듯 벼농사는 우리 민족의 뿌리며 혼입니다. 지켜야지요."
38-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