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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 10. 16. 토
강남에 살지 못하는 죄
이제 강남은 서울의 강남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강남이 되었다. 강남에 살지 못하는 죄로 강남 외의 대한민국 모든 지역의 학생들은 강남으로 이사 가지 못하는 부모의 경제적 무능력을 한탄하게 되었다. 홍길동은 근본천생의 처지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의적이 되었지만, 고교등급제를 바라보는 오늘의 학생들은 ‘사는 곳이 지위를 말해주는’ 이 현대판 신분제 아래서 장차 어떤 한을 품고 살아가게 될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의 차이를 액면 그대로 인정하자는 주장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비강남 고교에 입학하여 결국 수시모집에 탈락한 부모와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래도 결과의 차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수시모집에서 탈락한 비강남 지역의 학생이 만약 합격하더라도 대학 4년 동안 합격한 학생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곧, 현재의 차이가 기회의 제한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라 능력에 의한 것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육기관의 임무는 현재는 좀 모자라더라도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하여 특유의 교육방법을 통해 인재를 만들어 내는 데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학은 ‘이미 만들어진’ 성적에만 집착할 뿐,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수능성적이 사실상 대학 서열인 현재 한국의 실정이 바로 ‘대학 경쟁력’을 저하시킨 주범인데도 여전히 ‘일류대학’들은 교육보다는 입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물론 대학이 사회적 불평등까지 고려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유명 대학의 입시는 모든 학부모, 나아가 온 나라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호체계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변별력 없는 제도 때문에 ‘좋은 학생’ 못 뽑는 몇 대학의 손해는 그들의 이기적 행동으로 인한 국민적 혼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좋은 대학’ 가는 것이 계층 상승의 관문이며, 대학입시가 초등학교 이후 모든 교육을 지배하는 한국에서 ‘내신 부풀리기’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오히려 대학은 나름의 기준으로 ‘성적 부풀리는’ 고교와 교사들에게 벌을 줌으로써 교육 정상화에 기여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기야 일각의 주장대로 본고사를 부활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입시를 둘러싼 골치 아픈 논란에는 마침표를 찍겠지만 결코 선택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대안이다. 고대반, 연대반의 간판을 단 사설학원과 과외의 창궐만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학교교육을 완전히 입시교육으로 일색화하고 학생을 완벽한 시험기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본고사 부활론은 입시의 편의만 고려될 뿐 교육에 대한 비전과 철학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제도가 문제가 많음을 인정할 수 있고, 우수한 학생 뽑겠다는 대학의 욕심 자체가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이 말하는 ‘우수함’의 기준이 여전히 점수로 환산될 수 있고 표준화될 수 있는 ‘성적’이라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이들의 요구는 선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 식민지와 개발독재 시절의 것이고 따라서 그 시절에 ‘공부 잘했던’ 사람들의 향수가 오늘 이 시점 경쟁의 이름 아래 평준화 폐지, 본고사 부활론으로 나타나는 것은 결코 이상하지 않다.
나는 이 문제 해결에 마지못해 나서는 교육부의 철학 부재를 한탄한다. 고교등급제 불가피론을 내세우는 오늘 한국사회의 엘리트 집단의 머릿속에 과연 ‘일류대학’을 못 가는 95%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있을까? 아니, 진정으로 21세기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 그들 말대로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할 인재에 대한 상이 있는 것일까? 우수학생을 독점하고 싶은 ‘일류대학’ 당국에 묻는다. 입학 후 4년 동안 학생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